최첨단 주행을 향한 세 가지 승부
2018-06-21  |   113,928 읽음

Autonomous Driving Test

최첨단 주행을 향한 세 가지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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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똑똑한 세 대의 세단이 모였다. 자존심 높은 이들을 어렵사리 불러낸 만큼, 오늘 자리에서 확실한 우위를 가려야만 한다. 대결 종목은 반 자율주행 기술이다. 


<자동차생활>은 2016년 9월호에서 반 자율주행을 주제로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와 BMW 7시리즈의 비교를 진행했다. 양산차중 가장 똑똑한 두 차를 통해서 미래 주행기술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기사에서는 E클래스의 차선유지 능력과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의 완성도를 더 높게 평가했다. 아울러 “반 자율주행을 바라보는 두 브랜드의 시각이 다른 데 따른 결과”라며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7시리즈의 원인을 함께 설명했다. 특히 자동차 제조사에서 주장하는 차의 기술과 이를 실제 도로에서 적용했을 때의 차이점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최근 출시한 세 대의 세단을 같은 주제로 다시 모았다.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자율주행 기술을 점검해보기 위해서다. 


빠르게 진화하는 반 자율주행 기술

자율주행 기술은 그 수준에 따라 L0부터 L5까지 6단계로 나뉜다. L0는 운전자 주행, L1은 차간거리를 유지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또는 조향 보조 기능(둘 중 하나만 지원), L2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조향 보조가 결합한 자율주행, L3는 제한된 도로 조건에서의 자율주행, L4와 L5는 모든 조건에서 자동차 스스로 주행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국내에 시판 중인 양산 차를 포함해 2년 전 기사와 이번에 모인 차 전부 다 L2에 해당한다. 물론 같은 L2여도 최근에 출시한 차가 더 똑똑하다. 완만한 코너에서조차 차선을 벗어나는 예전 차와 다르게 작년에 나온 차는 그런 현상이 눈에 띄게 적다. 또한, 몇 달이나마 나중에 나온 모델일수록 조금 더 매끄럽게 주행한다. 2년 전 기사에 동원된 차보다 발전됐으리라 기대하는 이유다. 기자는 이러한 특성을 감안해 가장 최신차 위주로 비교 모델을 선정했다. 원래는 작년 하반기에 출시한 S클래스 부분변경 모델과 6시리즈 GT, 지난달 출시한 기아 K9을 부르려 했다. 그런데 BMW 측에서는 5시리즈의 반 자율주행이 BMW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주장에 펼쳤고 이 의견을 반영해 선수를 교체했다. 

반 자율주행 평가는 조향 보조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대부분 차가 능숙한 실력을 뽐내지만 비교적 신생기술인 조향 보조는 차마다 실력 편차가 큰 편이다. 따라서 변별력 높은 평가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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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과 S클래스는 난이도가 높은 내부순환로에서도 운전자의 도움없이 스스로 주행했다


코너를 능숙하게 대처하는 S클래스와 미흡한 5시리즈

시승 코스는 굽이진 코너를 비교적 빠른 속도로 달리는 서울 내부순환로 성산-종암 구간과 직선 위주의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구리-시흥 구간 및 올림픽대로로 구성했다. 성산램프로 진입한 세 대의 차는 시속 75km의 속도에 맞춰 반 자율주행을 시작했다. 점심시간 이후의 도로는 적당한 교통량과 원활한 흐름을 보였지만 일부 막히는 구간도 존재했다. 반 자율주행 테스트를 하기에 가장 알맞은 조건인 셈이다. 홍은동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곡선 구간에서는 세 대의 차 모두 쓸만한 조향 솜씨를 뽐냈다. 대체로 차로 가운데를 유지했으며 한쪽 차선으로 붙어서 주행하는 현상도 없었다. 이들의 승부는 정릉-길음 구간에서 갈렸다. 이곳은 간선도로에서 보기 드물게 급격히 굽은 코너가 연속되어 있다. 여기서 5시리즈는 첫 번째 코너를 돌 때부터 바깥쪽 차선에 가까이 붙어서야 조향을 시작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다음 반대 코너를 만나자마자 조향 보조가 해제됐다. 다른 두 차보다 조향 보조의 지원 각도가 완만했으며 조향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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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클래스는 조향 보조와 관련된 스위치를 한 곳에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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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리즈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조향보조 기능을 한 곳에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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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에 진입 전 스스로 감속하는 K9

S클래스와 K9은 같은 곳에서 사람이 운전하듯 자연스럽게 빠져나갔지만 운전 패턴은 살짝 달랐다. S클래스는 차의 예상 경로를 미리 파악한 듯 유연하게 코너를 통과했고 K9은 차로 중앙을 따라 정확하게 돌아나갔다. 부드럽게 주행하려는 벤츠와 기계적이지만 정확한 K9의 미묘한 거동 차이를 엿볼 수 있었다. 한편 국내 지도 데이터를 이용하여 코너를 만나기 전부터 스스로 감속하는 K9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국내 주행환경에서 태어난 국산차의 장점이 빛났다. 

결론적으로 두 차는 내부순환로를 달리는 동안 운전자의 조향을 단 한 번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뗐을 때 경고 메시지를 띄우는 시간은 S클래스와 5시리즈가 30초에서 1분 사이, K9은 2분 30초에서 3분 사이였다. 세 차 모두 근접 차량 여부와 주행속도, 코너의 곡률에 따라 다음 경고 메시지를 띄우는 시간이 달라졌다. 이때 조향 보조 기능을 연장하려면 가볍게 스티어링휠을 살짝 흔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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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레이더 센서는 실제 라디에이터 그릴처럼 보이도록 디테일에 신경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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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의 직관적인 크루즈 컨트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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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리즈는 조향 보조를 유지하는 시간이 30초에서 1분 사이로 짧은 편에 속한다


만약 여러 차례 경고 뒤에도 운전자가 스티어링휠을 잡지 않으면 세 차 모두 기능이 해제되고 마는데 이에 대한 대처는 차마다 다르다. S클래스는 계기판의 경고 화면과 경고음을 함께 띄우고 차의 속도를 서서히 줄인다. 운전자가 운전을 지속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여기고 안전한 정차를 도우려는 것이다. 5시리즈는 경고 화면과 함께 경고음을 발생하며 여기에 짧은 급브레이크를 통해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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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리즈는  조향보조가 해제되면 경고화면과 경고음을 함께 알리고 급브레이크를 짧게 잡는다


졸음운전을 하는 경우라면 확실한 도움을 주는 방식이다. 반면 K9은 한 번의 경고음 발생 없이 조향 보조가 조용히 풀린다. 이런 방식은 경우에 따라서는 운전자가 조향 보조가 지속되는 것으로 착각하여 사고가 날 우려도 있다. 아직 K9은 운전자 행동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듯싶다. 스티어링휠을 조향하는 힘은 K9이 가장 강했고 두 독일차는 비교적 약하게 개입했다. 이는 차에 대한 통제권을 운전자가 갖고 있어야 한다는 독일 제조사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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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클래스는 스티어링휠을 잡지 않으면 차의 속도를 서서히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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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는 수십년 간의 고집을 버리고 크루즈 컨트롤 위치를 스티어링휠 스포크로 옮겼다.


능숙한 실력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고속도로로 옮긴 세 대의 차들은 시속 100km로 속도를 높였다. 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자가 개입할 여지가 극히 적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기자의 이러한 기대와 달리 세 대의 차는 성남톨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돌발 행동을 펼쳤다. 차선이 버젓이 그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대의 차가 동시에 옆 차로로 넘어갔다. 원인은 고속도로 노면에서 찾을 수 있었다. 판교IC 부근은 콘크리트 노면에 흰색 차선인데다 대낮의 햇빛이 더해져 차선과의 구분이 어려웠다. 아울러 희미하게 그어진 차선 역시 추가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어디까지나 운전자의 주행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른단 사실을 몸으로 체험한 순간이다. 올림픽대로에 진입한 뒤로는 간헐적으로 정체 구간을 만났다.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는 도로 상황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의 미묘한 실력 차이를 파악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세 대의 차는 가속과 감속을 능숙하게 이어 갔다. 그래도 급제동만큼은 S클래스가 가장 정교하고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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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클래스는 차간 거리를 감지하는 레이더 센서가 그릴에 부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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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구간과 급하게 감속하는 상황에서는 S클래스의 대처가 가장 능숙하다


끼어드는 차를 대처하는 능력은 S클래스와 K9이 비슷했다. 차로에 절반 이상 진입했을 때부터 차를 인식하고 거리를 조절했으며 이를 안전하게 대처할 확률은 S클래스가 다섯 번 중 두 번, K9은 다섯 번 중 세 번 정도였다. 5시리즈는 이 구간에서도 대처 능력이 떨어졌다. 차로 안에 80% 이상 진입했음에도 앞 차를 인식하지 못한 채 차간 거리를 좁혔고, 완전히 진입한 뒤에야 속도를 줄였다. 이런 상황을 완벽히 소화하는 차는 최소 L3 단계의 반 자율주행 자동차다. 아직 L2 단계는 정체상황에서 끼어드는 차를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운전자의 능동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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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퍼 하단에 부착된 5시리즈의 차간거리 센서는 오염에 취약한 위치에 있다


자율주행으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

모든 주행 상황을 종합하자면 S클래스와 K9의 실력이 가장 뛰어났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는 국내 한정이다. S클래스는 국내 법규와 지도 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어 일부 기능을 막아둔 상태다. 대표적인 예가 방향지시등을 켜면 차로를 스스로 바꾸는 기능이다. 모든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S클래스의 반 자율주행 기술이 가장 앞선다. L3 단계라 주장하는 아우디 A8이 시판된다면 결과는 또 달라지겠지만. 

국내에서 가장 효용성 높은 반 자율주행 차는 K9이다. 특히 지도 데이터를 활용해 과속 단속 카메라와 코너 앞에서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 모습은 높은 점수를 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5시리즈는 차선 인식률이 낮고 차로를 이탈하는 경우도 잦아 이들과 비교하기 민망할 만큼 부족해 보였다. 아울러 앞차를 쫓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보니 앞차가 엉뚱하게 움직이면 그마저 똑같이 흉내를 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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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차를 쫓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때기 어렵다


이러한 실력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BMW는 그동안 쌓아둔 기술력이 적지 않고 이를 연구하는 서플라이어와도 꾸준히 협력하고 있다. 반 자율주행 장비(전방 레이더 센서와 두 개의 카메라)도 질과 양적인 면에서 세 차가 비슷하다. 수집한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은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후발 주자인 현대자동차가 양산차에서 빠르게 쫓아온 것을 보면 단지 이 때문만은 아닌듯싶다. 

기자는 자율주행을 바라보는 제조사의 철학이 그 차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자율주행으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인 현 시점에서는 여전히 자동차가 운전자의 통제 아래에 있어야 안전한 게 현실이다. 조향 보조 유지시간을 짧게. 조향 감도를 약하게 함으로써 운전자의 꾸준한 개입을 요구하는 시스템 특성에서 운전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제조사들의 철학과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른 5시리즈가 오히려 운전자에게 가장 안전한 시스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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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클래스와 5시리즈는 각각 스마트폰과 리모트키를 통해 운전자 탑승없이도 전진과 후진이 가능하다


글 이인주 기자 사진 최진호,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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