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체로키 2.4G AWD, 캘리포니아를 꿈꾸며
2018-05-28  |   117,096 읽음

Jeep Cherokee 2.4G AWD

캘리포니아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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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짐을 한가득 싣고선 무작정 도로를 내달렸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흥얼거리면서.



패션 사진가 리차드 아베든이 1979년 발표한 ‘In The Western People’(서부의 사람들)는 과거 서부 지역을 업신여기던 동부 지역 주민의 지역감정을 표현한 예술 사진 작품이다. 인간 도감처럼 펼쳐진 사진 속 인물들은 유전 노동자, 도축장 직원, 트럭커 등 하나같이 가난하고 거친 일을 하는 사회 하층민이다. 이는 ‘서부 사람들은 가난하고 못 배웠다’는 편견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작품이 공개되자 큰 논란을 빚은 것은 당연했다. 정치와 금융의 중심지인 동부 출신의 리차드 아베든(뉴욕 태생)이 다른 지역을 낮춰 바라보는 우월적인 시선을 통해 직업적 열등감(상업 사진가도 결국은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을 해소하려 한다는 비평이 뒤따랐다. 물론 이러한 인식도 모두 과거의 일. 이제 서부 지역은 미국에서도 가장 소득이 높은 지역으로 손꼽힌다. 


서부의 사람들, 그리고 지프

서부 발전의 중심에는 캘리포니아 주가 있었다. 캘리포니아는 샐러드 보울(bowl)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태평양과 맞닿아있는 지리적 특성상 이민자의 정착이 많았고 이 때문에 백인 비율이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리차드 아베든의 사진 속에서 유색인종이 유독 눈에 띄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문화적 리버럴리즘을 대표하는 히피 문화의 발원지로서 베트남 반전 시위와 대마초 합법화를 이끈 지역이기도 하다. 일부는 자유주의적 사고와 더불어 평화 속에서 안정적인 유토피아를 그리던 지역적 색채가 현재의 캘리포니아를 만들었다고도 이야기한다. 기자가 미국 서부 지역에 관한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까닭은 체로키가 가진 다양한 매력이 미국 서부지역과 캘리포니아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중남부 지역에 살던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따왔고 중동부 지역에서 만들어진 차가 어째서 캘리포니아를 연상케 했던 걸까? 지프가 가장 미국적인 브랜드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단지 그 뿐만은 아니다. 기자는 체로키에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함과 캘리포니아의 문화적 리버럴리즘이 맞닿아있다고 보았다. 60년대의 폭스바겐 Type2가 히피문화의 상징이었다면 풍요로운 일상을 만들어주는 크로스오버 SUV는 21세기형 히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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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폭의 부분변경을 거쳤지만 디자인 완성도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주간주행등과 헤드램프를 분리한 이전 체로키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유행을 이끄는 데 성공했지만 이에 대한 호불호 역시 상당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부분변경 모델은 프론트 펜더와 보닛, 테일게이트의 금형을 바꾸는 등 적잖은 비용을 들이며 외관을 다듬었다. 아마도 기존 디자인에 반감을 가진 소비자를 의식한 결과일 터. 전면부는 그랜드 체로키와 비슷한 얼굴로 성형을 거쳤고 후면부는 번호판 위치를 테일게이트로 옮겨서 디자인 밀도를 높였다. 물론 각진 형태로 빚은 지프 특유의 휠하우스 디자인은 여전하다. 부분변경 모델인 만큼 플로팅 모니터 같은 최신 트렌드를 담진 못했지만, 대시보드 윤곽을 다듬고 송풍구 면적을 넓히는 등 품질감을 높여 나름의 성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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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 특유의 사각형 휠하우스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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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램프 디테일에도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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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시보드 윤곽을 다듬은 덕분에 한결 깔끔한 인상을 자랑한다


미국차에 관한 선입견, 이를 깨부순 체로키

인상 깊었던 점은 미국차에 대한 편견을 부술 만큼 실내의 각 부분이 꽤 만족스럽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부 조립 마감이나 벤츠에서 가져온 스위치의 품질은 미국에서 조립하는 일본 브랜드 SUV보다 나아 보였다. 안락한 시트와 그럴듯한 운전 자세 역시 그간 실망감을 안겨준 FCA 모델을 생각하면 의외다. 실내 크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경쟁모델 싼타페보다 조금 작은 수준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충분한 사이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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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의 만듦새는 기대이상으로 만족스럽다


2.4L 엔진을 탑재한 시승차는 최고출력 177마력, 최대토크 23.4kg·m을 내며 ZF가 공급하는 9단 자동 변속기와 맞물려 네 바퀴에 동력을 전달한다. 체로키의 다단 변속기는 상품성 측면에서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실제 주행에서는 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일단 자연흡기 엔진 특성상 저회전 영역에서의 토크가 부족했고, 따라서 엔진 회전수를 낮춰 연비효율을 끌어올리는 다단 변속기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지 못했기 때문. 또한 회전수를 먼저 띄우고 속도계가 뒤따라가는 특징으로 인해 CVT의 가속감과 유사한 이질감이 크게 증폭되었다. 시종일관 rpm을 높게 쓰는 엔진과 부족한 방음 성능이 맞물려 실내로의 엔진음 유입도 컸다. 어쩌면 기자 역시 저속 토크가 풍부한 터보 엔진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반기에 출시할 2.0L 디젤과 현재 미국에서 판매하는 2.0L 터보, V6 3.2L가 간절할 다름이다. 


캘리포니아를 꿈꾸는 체로키

아쉬운 파워트레인 궁합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주행 질감은 꽤 즐겁다. 나온 지 5년이나 지난 차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무게중심도 낮고, 여느 세단보다 단단한 하체 세팅 덕분에 주행감이 날렵하다. 주행모드에 따라 큰 폭으로 달라지는 주행 분위기도 운전자의 감성을 돋운다. 스포트 모드로 설정하면 토크 배분이 40:60으로 전환되며 뒷바퀴 굴림차 같은 경쾌한 주행을 펼치는데, 이에 맞춰 TCS 기능이 일부 해제가 되고 변속 패턴도 바뀌어 저단 기어를 끈질기게 붙잡는다. 지프에서 가장 보편적인 성격의 도심형 SUV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하체 세팅과 차의 성격이 수긍이 가는 한편, 오프로더인 그랜드 체로키와 쏙 빼닮은 외모를 생각하면 반전매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울러 매력적인 주행 실력을 대중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리는 마케팅을 펼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론지튜드 하이 트림인 시승차에는 정지 후 재출발을 지원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사각지대 경보, AEB, 차선이탈 방지 보조 및 경고 등 주행 보조 안전 장비가 만재되었다. 이들이 결합한 반자율주행 기능이 더 이상 특별하진 않지만 비슷한 가격대 수입차에서는 보기 드물다. 후진 시 장애물에 앞서 스스로 브레이크를 잡는 모습은 운전자에게 든든함으로 다가온다. 반면 차선 이탈 방지 보조의 실력은 미흡했다. 코너에서 스스로 스티어링을 돌리지만 그 정확도가 무척이나 떨어져 운전에 방해만 되었고 차선 이탈을 쉽게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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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비슷한 가격대 수입 SUV에서 보기 드문 장비


물론 이런 단점을 감안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에 만족스런 SUV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지프의 듬직한 외모가 도시형 SUV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체로키의 매력이다. 아울러 실용적인 실내, 뛰어난 주행 실력도 FCA 차라면 어딘가 헐겁고 뒤떨어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시선을 가볍게 비웃는다. 마치 다른 동네 사람들의 폄하에 아랑곳하지 않고 큰 발전을 이룬 캘리포니아처럼 말이다. 풍부한 주행 보조 장비에서조차 실리콘밸리가 생각난다 하면 억지일까? 이토록 미국적인 차가 피아트의 플랫폼에서 태어났단 점도 미국의 다양성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곡 ‘California dreaming’을 흥얼거리며 여행 짐을 한가득 싣고선 무작정 도로를 내달리는 상상도 펼쳐본다. 이미 기자의 머릿속에서는 지붕 위 카고 캐리어에 한가득 짐을 싣고선 네바다 산맥과 캘리포니아 해변을 내달리는 체로키의 모습이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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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인주 기자 사진 |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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