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텀 시리즈 2회] 내겐 너무 낯선 그대, 디젤
2018-04-16  |   10,524 읽음

내겐 너무 낯선 그대, 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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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디젤차는 처음이네 ” 아버지의 무심한 한마디가 새삼 와 닿았다. 그러고 보니 머리털 나고 우리집에 디젤차가 들어온 건 처음이다. 줄어들지 않는 기름과 경쾌한 가속력은 대만족이지만, 생전 겪어보지 못한 낯선 부분도 적지 않다. 디젤과 친해지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고백컨대 나는 가솔린 예찬론자다. 아니, 예찬론자‘였’다. 태어나서 지금껏 우리집 차는 매번 가솔린이었다. 어렸을 때는 RV나 SUV라면 질색하는 아버지가 늘 가솔린차를 선택했고, 그 영향을 받은 나도 디젤에는 좀처럼 정이 붙지 않았던 까닭이다. 으레 대다수의 자동차 마니아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매끄러운 회전질감과 우렁찬 배기음, 치솟는 회전수에 대한 로망을 늘품고 살았다.

그런 내가 디젤차를 사겠다고 했으니 주변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무리 터보가 득세해도 자연흡기 대배기량의 감성은 따라올 수 없다며 4리터가 넘는 8기통 차를 타던 녀석이 208 구매를 선언했으니 말이다. 더구나 디젤게이트 이후로 디젤차는 고등어구이와 함께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낙인까지 찍히지 않았던가  이틀이 멀다하고 전기차의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는 기사가 쏟아지는 시대에 디젤차라니, 철 지난 유행을 따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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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다녀온 후배가 샹젤리제 거리의 푸조 에버뉴에서 208 다이캐스트를 사다줬다. 꼭 닮아 앙증맞다.

 

클린 디젤 더티 디젤  제대로 알고 타기 

흔히 디젤차의 배출가스에 관해 문제되는 부분은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이다. 언론에서는 뿌연 서울 하늘이 모두 디젤 탓인 것처럼 몰아가곤 하지만, 최신 디젤차들은 미세분진 필터가 탑재돼 있으니 그런 혐의에선 비교적 자유롭다. 차를 살 때 마음에 걸렸던 건 질소산화물 쪽이었다. 1급 발암물질이, 그것도 가솔린차보다 몇 배나 많이 나온다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하지만 그럼에도 선뜻 208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건 SCR(선택적 촉매 환원 장치) 덕분이다. 

SCR은 쉽게 이야기하면 질소산화물이 대기로 방출되기 전 질소와 산소를 분해해주는 장치다. 질소산화물 저감 효과가 뛰어난 대신 구조가 복잡하고 가격이 비싸 주로 중대형 모델이나 상용차에서만 쓰여왔다. 하지만 푸조는 유로6 적용 이후 출시된 모든 모델에 SCR을 기본 장착했다. 1.6L급 디젤 엔진이 탑재된 소형차에 SCR이 달린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만큼 배출가스 저감에 노력을 기울였다는 뜻이니 지구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덜 수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배출가스가 없는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를 타야겠지만, 적어도 누구나 그런 차를 불편 없이 탈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조금이라도 깨끗한 차를 타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디젤차를 산 데 후회는 없다.



재미있게, 가끔은 엉뚱하게  

거창한 환경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디젤차를 운전하는 건 썩 재미있는 일이다. 운전재미는 208을 살 때 고려했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99마력짜리 차 갖고 무슨 운전재미냐고  천만의 말씀, 제한된 출력 내에서 나 혼자 재미있는 걸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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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종종 타는 540i는 이틀 만에 208의 2주치 기름을 들이마시는 대식가다

 

208의 최대토크는 25.9kg·m으로, 토크만 놓고 보자면 비슷한 배기량의 가솔린 터보 엔진이나 2.5L급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과 맞먹는다. 게다가 최대토크 발휘 지점은 1,750rpm. 정차 상태에서 출발할 때는 약간 딜레이가 느껴지지만 조금만 회전수가 올라가면 힘껏 노면을 박차고 나간다. 덕분에 출력이 낮아도 전혀 답답함이 없다. 오히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 주행에서도 경쾌하게 힘을 낼 수 있다. 고속주행 중 추월을 할 때도 힘이 부치지 않는 건 물론이다. 출퇴근에 최적화된 이 엔진은 4m도 되지 않는 208의 작은 차체, 수동 기반의 MCP 변속기와 궁합이 좋다. 제한속도 내에서도 즐겁게 운전할 수 있다는 건 매일 차로 출퇴근해야 하는 내겐 큰 메리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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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에 다녀오면서 기념품으로 사온 수호랑 인형. 차가 점점 소녀풍이 되어간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연비가 좋고 손맛이 나쁘지 않다 해도 감성적인 부분을 충족시키긴 어렵다. 덜덜거리는 소음과 진동은 평소엔 아무렇지 않다가도 가끔은 엄청나게 거슬린다. 특히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1월에는 잡소리가 많이 났다. 시트, 암레스트, 유리창, 도어트림까지 한 번씩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당일치기로 강원도 여행을 다녀와서는 특히나 엔진 소리마저 약간 거칠어지고 진동도 커진 느낌을 받았다. 이 부분은 1만km 정기점검 때 제대로 진단을 의뢰할 생각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달아놓은 장치들이 간혹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루는 퇴근길에 문득 엔진 소리가 커졌다고 느꼈다. 신호대기 중에도 스톱 앤 스타트가 작동하지 않아 룸미러로 뒤를 보니,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하얀 연기가 나왔다. 말로만 듣던 ‘신차 뽑기’에 실패한 건가  깜짝 놀라 수소문을 해 보니 미세분진을 걸러주는 DPF가 일정 주기마다 재생 작업을 할 때 그럴 수 있단다. 디젤차는 처음 타 보니 그런 걸 본 것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출근길 기온이  19˚C까지 떨어진 날 아침에는 집을 나서자마자 트렁크 쪽에서 사이렌 소리 비슷한 요란한 소음이 났다. 요소수가  11˚C에 얼어버려 제대로 공급되지 않자 요소수 펌프로 추정되는 부위에서 굉음이 난 것. 조금 뒤 차에 온기가 돌면서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생전 처음 운행하는 디젤차에서는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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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차에약간의포인트를주기위해안개등에PPF를붙여줬다.이제좀랠리카같나

 

그럼에도 디젤을 선택한 이유는 아무래도 연비의 영향이 컸다. 고속주행이 90% 이상인 환경은 208의 효율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스테이지다. 날이 풀리면서 연비는 이전보다도 더 좋아졌다. 적당히 막히는 통근길 연비는 아무렇게나 운전해도 23km/L 정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집을 나서면서 트립컴퓨터를 리셋하고 회사에 도착하니 27.7km/L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생전 본 적 없는 숫자다. 물론 막히는 시내에서 연비를 재면 15km/L 수준까지 떨어지지만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나의 주 무대는 고속도로인데. 내 필요에 맞으면 그만이다. 필요에 약간의 취향을 가미해 통근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즐겁게 쓸 수 있는 차가 바로 20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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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주행한 출근길에 ‘인생연비’를 찍었다. 30km/L도 해볼 만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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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의 티코 옆에선 208이 대형차가 된다

 

글, 사진  이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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