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샘이 나다, 렉서스 LC 500h
2018-01-25  |   82,900 읽음


LEXUS LC 500h
시샘이 나다


질투가 났다. 과감한 결단을 치밀하게 완성한 그들의 집념에.

 

f156a8f9a400f6b520b1d29825c4570b_1516847351_2339.jpg

‘팔 생각이 없군!’ 1억8,000만원 가격표를 본 동료 기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벤츠 S클래스 쿠페, 포르쉐 911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렉서스라니, 폼 나는 유혹을 뿌리치고 이 차를 고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시승을 마친 지금도 여전히 기자는 삼각별이 반짝이는 S클래스 쿠페가 더 끌리지만, 이거 하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엠블럼 떼고 붙으면 장담할 수 없다.

디자이너가 그린 이상
예전 선배가 한 말이 떠올랐다. 학생 시절 자동차 스케치 몇 장을 그려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새롭긴 한데 멋이 없네, 디자이너라면 새로우면서도 멋지게 그려야 해.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뜬금없이 케케묵은 옛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LC가 ‘새로우면서 멋있는’ 그 이상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LC는 어떤 차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독창적이지만, 일견 멋지다. 납작하게 빚은 비율은 물론 A필러와 펜더를 잇는 철판에 서린 팽팽한 긴장감, 시선을 사로잡는 방사형 패턴 그릴까지, 새로운 멋짐이 가득하다. 특히 납작한 보닛과 과감한 펜더 볼륨엔 컨셉트카 느낌마저 스몄다. 실제로 렉서스는 LF-LC 컨셉트카의 납작한 보닛을 그대로 실현하기 위해 높이에 맞춰 서스펜션을 설계했다고. 과감한 비율은 직접 볼 때 더욱 빛난다.

 

f156a8f9a400f6b520b1d29825c4570b_1516847381_9035.jpg

 멋지게 진화한 스핀들 그릴과 컨셉트카에 가까운 화려한 헤드램프가 입체적이다


f156a8f9a400f6b520b1d29825c4570b_1516847381_9875.jpg

시속 80km가 되면 자동으로 올라오는 가변 스포일러가 멋을 더한다


실내도 외모만큼 납작하게 가라앉았다. 시트에 앉아보면 긴 보닛이 눈에 보일 듯 말 듯 걸리도록 눈높이가 내려간다. 운전 자세는 고급 쿠페라기보단 본격 스포츠카에 가까울 정도. 다만 부드러운 가죽과 알칸타라가 듬뿍 쓰인 화사한 실내가 이 차가 LC 즉, ‘럭셔리 쿠페’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특히 문짝과 높이를 맞춘 대시보드 상단이 요트에 앉은 듯 고급스러우면서도 든든하다.


다만 길이 4,760mm의 큼직한 쿠페라 뒷좌석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듯한데, 헛된 기대는 일찍이 접는 게 좋다. 엔진을 뒤쪽으로 당긴 프론트 미드십 구성 때문에 많은 공간이 보닛에 잡아먹혔고, 높이를 1,345mm로 낮게 빚은 탓에 뒷좌석 머리공간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표준 체격 기자가 편하게 앉기 위해선 머리로 뒷유리를 뚫어야 할 판이다.

f156a8f9a400f6b520b1d29825c4570b_1516847408_1556.jpg

럭셔리 쿠페(LC)답게 최고급 소재로 빈틈없이 꾸몄다


f156a8f9a400f6b520b1d29825c4570b_1516847408_2342.jpg

한 개의 원을 중심으로 배치한 계기판. 주행 모드에 따라 스타일이 바뀌며, 사진은 스포츠 S+로 설정했을 때의 모습이다


f156a8f9a400f6b520b1d29825c4570b_1516847408_3255.jpg
알칸타라와 가죽시트를 섞어 쓴 시트. 높이가 낮다

f156a8f9a400f6b520b1d29825c4570b_1516847408_4011.jpg

전자식 변속기와 노트북 마우스 패드처럼 사용하는 리모트 터치 인터페이스(RTI)가 달렸다

f156a8f9a400f6b520b1d29825c4570b_1516847408_4607.jpg

 자칫 지루할 뻔했던 모니터 옆 빈 공간에 독특한 패턴과 조명을 넣어 멋스럽게 꾸몄다

시샘이 나는 고성능
첫인상은 역시 고급 쿠페였다. 시동을 걸면 전기모터만이 깨어나 계기판에 ‘READY’ 글씨만 빛을 발할 뿐이며, 서서히 움직일 때도 엔진은 잠잠하다. 승차감도 마찬가지. 이 납작한 쿠페가 고급 세단이라도 된 양 작은 진동을 삼켜버린다. 역시 렉서스는 렉서스인 걸까.


하지만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순간 첫인상은 가볍게 깨졌다. 예민하게 조인 스티어링 기어비와 직경 365mm에 불과한 작은 림이 어울려 매섭게 방향을 튼다. 저속에서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 기민한 핸들링엔 앞바퀴에 실린 묵직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무게 따윈 느낄 새 없다. 그저 프런트 미드십 특유의 날카로움만이 남았다.


도로에 올라서면 전기 주행은 사실상 끝난다. 제원상 시속 140km까지 전기만으로 달릴 수 있다고 하지만 이론상 얘기일 뿐, 도로 흐름에 맞추다 보면 극히 저속이나 항속이 아니고서야 V6 3.5L 가솔린 엔진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다. 2톤의 차체를 끌기에 179마력 전기모터만으로는 버겁기 때문. 물론 299마력의 엔진이 깨어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스템출력 359마력의 충분한 힘으로 큰 차체를 여유로이 내몬다. 가속감은 하이브리드 자동차들이 대개 그렇듯 ‘용두사미’. 저속에서부터 힘을 몰아 쓰는 모터의 힘으로 5초 이내에 시속 100km를 돌파하지만, 속도가 높아질수록 힘이 빠져 시속 200km 즈음부터는 가속이 눈에 띄게 더뎌진다.


215, 217…220. 꾸준히 가속 페달을 밟아 시속 220km에 도달했을 때,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여태껏 이토록 만족스러운 고속 주행감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LC는 여느 수퍼카 만큼 안정적이면서, 고급 GT처럼 부드럽게 내달린다. 엉덩이로 느낀 그 비결은 바닥에 내리 깔린 무게중심과 처음엔 유연하되 곧장 탄탄하게 조여지는 서스펜션이다. 낮은 무게중심이 차를 노면에 착 가라앉히고 유연한 서스펜션이 잔진동을 효과적으로 거르다가도 큰 요철엔 팽팽하게 맞선다. 낮은 중심과 짧게 움직이는 서스펜션이 빚은 주행감은 테슬라 모델 S와 비슷하지만, 그 완성도는 앞뒤로 통통 튀는 모델 S에 비할 바가 아니다. 렉서스가 그토록 자랑하던 탄소섬유 소재 지붕을 곁들인 저중심 GA-L 플랫폼과 실시간 감쇠력을 조절하는 댐퍼가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고갯길에 접어들었다. 이어지는 첫 코너에 시험 삼아 빠르게 운전대를 감았더니 2톤의 무게가 무색하게 가뿐하다. 인상 깊은 건 역시 무게중심. 엉덩이 즈음에서 느껴지는 중심 덕분에 초기 반응 부드러운 서스펜션에도 불구하고 쏠림이 거의 없다. 여기에 예민하게 조율된 스티어링과 뒷바퀴 조향 장치가 어우러져 큼직한 덩치가 잊힐 정도로 날카롭게 코너를 공략한다. 이어 탈출할 때 즈음엔 주행 패턴을 파악한 변속기가 저속 기어를 끈질기게 물어 재가속까지 깔끔히 마무리짓는다.


LC의 빼어난 균형은 더 빠른 주행을 부추겼지만 1월 초 얼어붙은 고갯길을 달리는 건 무모했다. 몇 번을 미끄러진 후 결국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긴장 풀린 주행에선 GT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6기통 엔진은 나긋나긋한 회전질감으로 여유를 품고, 유연한 서스펜션은 어떤 속도에서든 진동을 확실히 걸러낸다. 물론 차분한 주행에서도 저중심 섀시에서 비롯된 핸들링은 여전하다. 고성능과 승차감을 모두 수준 높게 아우르는 모양새. 우리네 차에선 엿볼 수 없던, 저중심 섀시를 바탕으로 완성한 마법 같은 주행 성능에 왠지 모를 시샘이 났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특히 소리가 가장 아쉬웠는데, 서서히 다닐 때 조수석 방향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던 모터 소리가 가속할 때는 더욱 커져 엔진 소리를 거칠게 갈라버린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스피커가 엔진음을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어딘가 막힌 듯 답답하다. 1억원 후반대 스포츠카에 걸맞은 호쾌한 사운드를 즐기려면 V8 엔진을 품은 LC500을 고르는 편이 나을 듯하다.

한 걸음 멀어진 렉서스
무거운 배터리에 시달린 보상을 받을 때가 왔다. 약 200km를 주행하는 동안 기록한 연비는 리터당 8.7km. 2톤이 넘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맘껏 주무른 걸 감안하면 매우 만족스러운 효율이다. 고속에서 발을 뗄 때마다 알아서 중립 또는 EV 모드를 적극 활용한 게 주효했다. 참고로 공인연비는 리터당 10.9km며 8기통 엔진을 얹은 LC500은 리터당 7.6km를 달린다.
LC는 렉서스의 이상이 듬뿍 담긴 차다. 편안한 가운데 고성능을 품고, 하이브리드로 효율까지 빠짐없이 챙겼다.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차를 만들겠다’는 개발팀 목표만큼이나 LC는 어떻게 달려도 만족스러웠다. 외모처럼 별난 전기모터와 4단 자동변속기를 짝지은 가상 10단 자동변속기마저 자연스럽다. 우리네 후발주자가 렉서스를 바짝 쫓았다고 생각했건만 LC를 타보니 오만한 생각이었다. 렉서스는 또 한걸음 멀리 달아나 버렸다.

윤지수 기자 사진 최진호, 이병주

f156a8f9a400f6b520b1d29825c4570b_1516847467_2087.jpg

f156a8f9a400f6b520b1d29825c4570b_1516849136_9544.jpg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