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로 떠난 국토횡단
2017-12-29  |   34,192 읽음


테슬라로 떠난 국토횡단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신년을 맞겠다는 핑계로 장거리 여행에 나섰다. 전기차 여행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충전소 위치를 사전에 파악하는 것과 충전소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동선설정이다. 테슬라와 함께한 1박 2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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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기자님, 주중에 저와 같이 여행이나 다녀올래요?”.
흘리듯 내뱉은 기자의 한 마디에서 이번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의 목적은 서해의 일몰과 동해의 일출을 보고 오는 것. 지는 해와 뜨는 해를 감상하며 다사다난했던 2017년을 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2018년을 기념하겠다는 그럴 듯한 이유도 붙였다. 한편 기자는 보다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담기 위해 전기차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내연기관 자동차였다면 연비 테스트나 평범한 시승기에 머물렀을 테니까. 현재 국내에 시판 중인 전기차는 아이오닉 EV, 쉐보레 볼트(Bolt), BMW i3 등 다섯 개 정도다. 하지만 지방을 다녀올 만큼 주행가능거리가 뒷받침되는 차는 완충시 380km를 달릴 수 있는 쉐보레 볼트와 470km를 달릴 수 있는 테슬라 모델S(90d)뿐이다. 쉐보레를 선호하는 동료 윤지수 기자는 자꾸만 볼트(Bolt)의 이름을 흥얼거렸지만, 몇 달 전 장거리 시승에서 경험했던 좁고 불편한 실내와 부실한 승차감이 떠올라 일찌감치 고려대상에서 제외했다. 자연스레 우리의 의견은 테슬라 모델S로 모아졌다.


차가 정해졌으니 이에 맞춰 세부적인 여행 계획을 꾸렸다. 일정은 서울 청담동 테슬라 매장에서 출발하여 경기도 화성 궁평항에 도착해 일몰을 보고, 다음날 새벽 강원도 한계령으로 이동해 일출을 맞이하는 것으로, 총 주행거리가 600km에 달했다. 이론상 한 번의 추가 충전으로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인 만큼 별다른 부담감 없이 여행길에 나설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추가 주행과 빨리 떨어지는 배터리 잔량
여행 당일 오후 12시. 서울 청담동 테슬라 매장에서 시승차를 받으며 일정이 시작되었다. 모델S는 스타트 버튼이 따로 없으며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는 것으로 주행 가능한 상태가 된다. 활성화된 계기판에서는 현재 배터리 잔량을 80%라 표시했다.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된 상태에서의 주행가능거리를 기준으로 일정을 세웠기 때문에 예상보다 적은 배터리 양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시작부터 어긋난 셈이다. 급속 충전은 배터리 보호를 위해 80~90%까지 충전되며, 100%까지 충전하려면 완속 충전기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완속 충전은 시간당 충전률이 8~9% 정도로 더디게 진행된다. 일몰 때까지 궁평항으로 이동하려면 시간이 촉박하기에 서둘러 포토그래퍼가 사는 서울 도봉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모델S가 동부간선도로에 접어들었을 즈음, 미리 사놓은 샌드위치를 차 안에서 꺼내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전동모터 소리와 함께 실내가 살짝 시끄러워졌다. 범인은 틸트 상태에 놓인 선루프였다. 공기 질을 실시간 측정하는 모델S가 샌드위치 냄새를 발 빠르게 감지해 선루프를 살짝 개방하며 환기를 시작한 것이다. 기자는 샌드위치를 편하게 먹기 위해 반자율주행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테슬라의 반자율주행은 과연 그 명성대로였다. 차선이 완전히 사라진 공사구간에서도 자율주행이 해제되는 법 없이 자연스럽게 앞 차를 쫒아갔으며 곡률이 심한 코너도 능청맞게 돌아나갔다. 테슬라 측에 따르면 간선도로와 고속도로에서만 활성화되며 시내도로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한다.

포토그래퍼 집에 도착하니 배터리 잔량은 71%를 가리켰다. 20km의 간선도로 주행에서 9%나 줄어든 것이다. 예상보다 크게 소모되는 배터리를 걱정하며 윤지수 기자가 기다리고 있는 소공동 조선호텔로 향했다. 윤 기자는 일을 마치고 오후 세 시 반에서야 우리와 합류했다. 이날 일몰 시간은 오후 다섯 시로 소공동에서 궁평항까지 가기에는 꽤나 빠듯한 시간이다. 이때부터는 배터리를 절약하며 주행할 수 있는 주행거리 우선모드로 차량 설정을 전환했다. 주행거리 우선모드는 에어컨과 히터의 출력을 줄이고 모터 간에 토크 분배를 조절하여 전기소모를 줄인다.


그러나 떨어지는 해보다 앞서 도착하기 위해 급가속과 고속주행을 반복하다보니 60km 거리의 궁평항에 도착했을 때는 배터리 잔량이 25%밖에 남지 않았다. 촬영을 위해 항구 내부를 돌아다니느라 추가적인 배터리 소모도 발생하였다. 일몰이 구름 뒤에 가려져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궁평항의 멋진 풍경과 일렁이는 파도의 절경은 아쉬움을 달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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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평항의 일렁이는 파도와 전망대의 절경은 추위를 잊을 만큼 인상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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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아끼기 위해 히터끄고 주행하기도
촬영을 마치자 어느덧 6시. 이제 남은 배터리 잔량은 20%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강원도 속초까지 논스톱으로 가서 그곳에서 충전을 마치고 남은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배터리 잔량으로는 가장 가까운 충전소까지 가는 것마저도 위태로운 상황. 테슬라의 내비게이션은 궁평항에서 약 40km 떨어져 있는 시흥 신세계 아울렛의 충전소가 가장 가깝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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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을 통해 가장 가까운 충전소를 검색할 수 있다

지체 없이 상행선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충전소로 향했다. 정체된 퇴근길 도로에서 배터리 잔량은 더욱 빠르게 줄어들었다. 낮아진 기온이 배터리 성능에 영향을 미친 듯싶다. 충전소까지 주행하기 어려울 만큼 배터리 잔량은 아슬아슬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길목에 있는 송산포도 휴게소로 들어가 전기차 충전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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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포도 휴게소의 전기차 충전기는 고장이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도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나 충전기가 고장난 까닭에 이용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전기를 많이 쓰는 히터와 시트 열선을 끄고 센터페시아의 대형 모니터 밝기마저 줄이고선 다시 시흥 신세계 아울렛으로 향했다. 오디오도 끄고 싶었지만 내비게이션 경로안내를 듣기 위해 볼륨만 줄였다. 한 시간 동안 추위에 떨며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에는 배터리 잔량이 5%에 불과했다.


시흥 신세계 아울렛에는 데스티네이션이라 부르는 완속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1시간 반 정도 머무르며 가장 가까운 급속 충전기로 이동할 만큼의 전기만 충전하기로 했다. 저녁식사를 하는 1시간 동안 배터리 잔량은 14%로 늘어나 있었다. 이 정도면 가까운 급속 충전기가 있는 여의도 IFC까지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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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신세계 아울렛의 데스티네이션 충전기는 가정용 완속 충전기와 동일한 것이다

여의도 IFC 급속충전기는 9시 정각이 다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충전기는 지하 주차장 가장 아래층 안쪽에 위치해 있지만 기둥과 벽면 곳곳에 붙은 테슬라 표지를 따라간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모델S에 충전기를 연결하자 계기판에는 70분 동안 90%까지 충전이 가능하다며 알려왔다. 충전 시작과 함께 고주파 소리와 배터리 발열을 식히기 위한 팬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 때는 자동차 히터에서도 찬바람만 나온다. 아마도 충전에 따른 배터리 발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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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IFC 지하주차장의 테슬라 급속 충전기

주행속도에 따라 급격히 달라지는 주행가능거리
배터리 잔량이 90%에 다다랐을 즈음 시계를 보니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남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서둘러 동쪽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래도 배터리를 든든하게 채우니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그제서야 테슬라 모델S의 주행성능을 하나둘씩 살펴보게 되었다. 고속도로에서 확인한 모델S의 가속능력은 무척이나 뛰어났다. 0→시속 100km 4.4초의 가속성능은 스포츠카 못지않게 빠른 수치이며 고속에서의 추월가속 성능도 이에 못지않았다.


주행감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세련된 모터제어와 배터리팩이 만들어낸 낮은 무게중심이다. 모터제어가 뛰어난 까닭에 가속감이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2.23톤의 육중한 차체는 우아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전기모터는 발전기가 되어 운동에너지를 전기로 회수하는 회생제동을 시작한다. 이때는 마치 숙련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조작하는 것 처럼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속도가 줄어든다. 움직임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급하게 스티어링을 조작하며 회생제동을 사용해 보았다. 뻣뻣하게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을 차량조작이지만 낮은 무게중심의 차체와 정밀한 모터제어의 도움으로 능숙한 운전자가 모는 듯 부드럽고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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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시 예상 배터리 잔량을 보여주는 모델S의 내비게이션은 장거리 주행에서 무척이나 유용했다. 주행 속도에 따른 주행가능거리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기능으로, 지도 아래에 표시된 그래프를 통해 시속 100km와 시속 120km로 달릴 때의 주행가능거리가 20% 이상 차이가 남을 알 수 있었다. 일정이 촉박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속도를 내기 어려운 이유다.

여의도에서 두 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급속 충전기가 있는 롯데 리조트 속초의 지하주차장이었다. 배터리 잔량은 22%. 이곳 역시 테슬라 급속 충전기 위치를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알기 쉽게 표시하고 있어 처음 가는 취재팀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당초 계획은 여기서 배터리 잔량을 90%까지 채우고 내일 일정을 소화하려 했다. 하지만 피로가 누적된 관계로 30분 동안 61%까지의 충전한 후 나머지는 새벽 일출을 보고 다시 돌아와 마치는 것으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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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하면 도착시 예상 배터리 잔량을 그래프로 표시한다

달릴수록 충전되는 회생제동
아침에 확인한 배터리 잔량은 1% 더 줄어든 60%였다. 배터리가 낮은 온도에 약간의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숙소에서 45km 떨어진 한계령까지는 고속도로와 심한 오르막이 포함된 국도로 이루어져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한계령의 일출 시간은 오전 7시 반. 그러나 어제의 피곤함을 떨쳐내지 못한 일행은 늦잠을 자고야 말았고, 일출 전까지 한계령에 도착하기 위해 과속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행 속도가 높은 만큼 배터리 잔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경사가 심한 한계령 고갯길은 배터리 소모를 더욱 재촉했다. 한계령 정상에 다다르자 배터리 잔량은 29%로 줄어 있었다. 한계령 정상까지 오는 데 배터리 전력을 31%나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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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오르막길은 전기차에게도 혹독한 주행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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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일출 촬영을 끝낸 우리는 어제의 악몽이 되살아나 차를 최대한 살살 몰며 한계령을 내려왔다. 그런데 발전기가 된 전기모터가 29%였던 배터리 잔량을 오히려 30%로 늘려주었다. 내리막길 덕분일까? 롯데 리조트 속초까지 되돌아왔을 때의 잔량은 18%. 전체 용량의 약 11%의 전력만 사용한 셈이다. 같은 거리인데도 주행조건에 따라 2배 이상 차이가 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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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되돌아갈 전기를 충전하고 속초시장에 들렀다


서해의 일몰과 동해의 일출을 보겠다는 이번 여행 목적은 의도치 않게 전기차의 실용성과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충분한 제한조건으로 작용했다. 정해진 시간까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배터리를 최대한 아끼며 주행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전기차 사용환경을 체감했고, 테슬라의 완속 충전기와 급속 충전기 역할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을 넓혔다.

테슬라와 함께 한 장거리 여행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전국에 설치된 급속 충전기 위치 파악과 이를 벗어나지 않는 여행 동선의 설정이다. 아직까지 급속 충전기가 충분히 설치되지 않은 까닭에 사전조사와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이는 테슬라가 아닌 다른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충전소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이로 인한 불편함이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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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그동안 기자가 경험했던 그 어떤 여행보다도 고생스러웠다. 무엇보다 배터리 잔량에 신경 쓰며 길바닥에서 멈추어 서진 않을까 불안에 떨어야 했고, 하필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여행을 나선 탓에 냉방차 안에서 한파와도 맞닥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전기차 사용의 장단점과 미래의 자동차 생활을 들여다보게 된 값진 경험이었다고 위안 삼기에는, 정말 춥고 고생스러웠다.

이인주 기자 사진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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