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km를 오롯이 체험하다- 쉐보레 볼트 EV
2017-06-09  |   50,615 읽음



CHEVROLET BOLT EV
383km를 오롯이 체험하다


383km. 전기차 볼트EV의 총 주행가능거리다. 수치상으로는 장거리 주행도 가능하다. 쉐보레는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에서 인제까지 왕복 295km를 몰아보며 도심을 벗어난 전기차의 효용성을 따져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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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의 평균 주행가능거리는 100km가 조금 넘는다. 이는 현행 배터리 기술력과 ‘북미 자동차 운전자의 71%가 하루 평균 64km 미만을 주행한다’는 캘리포니아대학 교통연구소의 2011년 조사 결과에 의해 도출된 범위다. 필연적으로 근거리 주행에 초점이 맞춰진 이동수단인 셈. 그렇다고 해도 200km가 채 안 되는 주행거리는 많은 사용자의 불편을 야기하기에 충분했다. 한정된 에너지로는 다양한 운전자 성향과 지역 특성을 충족하기에 한계가 따랐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장거리 이동이 잦은 나라. 주행가능거리를 늘려달라는 목소리가 소비자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2000년대 초반부터 자동차전지기술을 쌓아온 LG화학은 지난 2014년 실내공간을 크게 잡아먹지 않으면서 무게를 400kg 정도로 억제하고 완충시 300km 이상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 60kWh 용량의 배터리를 개발했으며, 이듬해 이를 제너럴 모터스에 납품했다. 부피와 무게에서 손해 보지 않으면서 이전보다 증가한 주행거리를 갖춘 전기차 제작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2016년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공개된 쉐보레 볼트EV가 바로 이러한 배경 아래 만들어진 전기차다. 국내에는 지난 4월 출시됐고 시판 중인 여러 전기차 중 비교적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다. 완충시 383km 주행이 가능하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다루면 그 이상의 거리도 갈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서울에서 부산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한정된 지역에 국한됐던 기존 영역을 획기적으로 확장한, 말 그대로 전기차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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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하게 각인된 볼트 EV 로고

시작은 좋았으나……
시승차를 받자마자 확인한 총 주행가능거리는 397km. 쉐보레가 발표한 공식 주행거리보다 14km를 더 달릴 수 있다. 여기에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했을 경우 주행할 수 있는 거리는 무려 468km. 목표한 서울~인제 왕복은 거뜬히 다녀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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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차를 받자마자 확인한 총 주행가능거리는 397km.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했을 경우 주행할 수 있는 거리는 무려 468k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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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제동 시스템을 위한 리젠 버튼

더불어 주행가능거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회생제동 시스템은 이러한 확신에 ‘확신’을 더해줬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구간에서 단 1km도 소모하지 않는 에너지 효율성을 드러내서다. 마치 동이 나지 않는 통장을 보는 기분이랄까. 회생제동 시스템의 적극적인 개입은 가속으로 소비된 전력을 빠르게 채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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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춘천 간 고속도로 남양주 톨게이트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넉넉한 배터리 잔량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시원하게 뻗은 아스팔트가 자연스레 질주본능을 자극했고 이내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았다. 최고출력 204마력, 최대토크 36.7kg·m를 내는 모터가 0→시속 100km 가속을 단 6.9초 만에 끝내고 단숨에 최고시속 146km에 도달한다. 조용하면서도 재빠른 가속이 바람을 매섭게 갈랐으며 심장은 짜릿함으로 요동쳤다. 분명 일반적인 내연기관 자동차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요한 한방이 있었다. 한편 실내로 유입되는 바람소리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는데, 아마도 SUV에 버금가는 0.31의 공기저항계수가 원인인 것 같다. 볼트 EV의 디자인을 담당한 스튜어트 노리스(Stuart Norris)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볼트 EV는 공기역학의 재앙‘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사이 주행거리가 345km로 떨어졌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은 상태이기에 속도를 줄였다. 고속주행은 에너지 사용량 증가로 이어지기에 당초 ‘충전을 하지 않고 시승을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 지루하고 기나긴 여정이 되겠지만 정속주행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무료함을 벗 삼아 인제로 나아갔다. 고요한 모터음이 눈꺼풀을 무겁게 만들었다. 쭉 뻗은 국도를 지나 꼬불꼬불 산길을 넘어 반환점인 인제에 들어섰다. 남은 주행거리는 244km. 나쁘지 않았다. 돌아갈 거리가 약 146km이니 단순 계산으로도 90km 이상의 여유가 있었다. 초반에 무리하게 달렸다면 지금쯤 충전기를 찾아 다녀야 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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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운전과 졸음의 유혹을 견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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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를 향한 길고 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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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환점인 인제에서 확인한 남은 주행거리는 244km

 


인제군에서 급속충전기는 인제군농특산물전시판매장 단 한 곳 뿐. 다른 사람이 쓰고 있다면 기다리는 시간까지 따져야 한다. 지루한 운전과 졸음의 유혹을 견디며 에너지를 챙긴 일에 스스로가 대견한 순간이었다. 


짧은 휴식 뒤 서둘러 귀경길에 올랐다. 인제까지 정속주행을 한 탓에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됐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반환점까지 참은 욕구 때문일까. 돌아갈 때는 잠깐만이라도 속력을 내보고 싶은 보상심리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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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스피디움에 올라선 볼트 EV

244km나 남은 넉넉한(?) 주행가능거리가 오른발 끝을 자극했다. 강한 힘을 내뿜는 모터의 즉각적인 움직임은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스파크를 일으켰고 답답함 없는 가속감으로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크고 작은 충격도 잘 잡아 승차감도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계기판은 잠시 잊은 채 오직 볼트EV의 날쌘 동력성능을 만끽하고 또 만끽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 계기판을 확인하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서울은 아직도 까마득한데 남은 주행가능거리가 고작 110km. 당장 속도를 줄였다. 나름 신경을 쓴다고 스포츠 모드도 가까이 하지 않았건만……. 잠깐의 방심이 지금까지의 수고에 찬물을 끼얹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이대로 목표한 바를 완수할 것인가, 아니면 휴게소에 들러 충전을 할 것인가 고민을 거듭했다. 충전을 위해 휴게소에 들른다면 볼트 EV의 383km를 오롯이 체험하겠다는 의지는 수포로 돌아갈 터. 이상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현실적인 벽은 너무나도 컸다. 심리적 압박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결국 휴게소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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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을 위해 들어선 가평휴게소


가평휴게소에 마련된 급속충전기는 단 하나. 많은 이가 사용하는 휴게소에 충전기가 달랑 하나라는 사실에 일순 당혹스러웠다. 수도권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지방은 여전히 인프라 구축에 소홀한 모양이다. 여러 대의 전기차가 몰릴 경우 나중에 온 사람은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코앞에서 목도한다. 다행히 비어 있는 충전기 앞에서 확인한 주행가능거리는 79km, 서울까지 남은 거리는 56.7km이었다. 순간 볼트 EV가 원망스러웠다. 배신감도 살짝 들었다. 고속주행을 한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지만 잠시 속도를 즐긴 것 치고는 감내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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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휴게소 충전기 앞에서 확인한 주행거리는 79km, 서울까지 남은 거리는 56.7km

383km의 주행거리를 믿고 서울과 인제를 왕복하겠다는 생각은 DC콤보 급속충전 포트를 차에 꼽는 순간 물거품이 됐다. 급속충전으로 배터리 80%를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58분. 휴게소 구석구석을 탐방해도 될 시간이었다. 충전기 앞 주유소에서는 내연기관차들이 쉴 새 없이 들락날락. 그들은 가득 주유하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58분 대 5분.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제 아무리 주행거리가 늘었다지만 긴 충전시간은 여전히 EV 보급을 가로막는 크나큰 장애임이 분명했다. 참고로 완속 충전으로는 9시간 45분이 걸린다. 시작은 희망으로 들떴지만 끝은 아쉬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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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km의 주행거리를 믿고 서울과 인제를 왕복하겠다는 생각은 DC콤보 급속충전 포트를 차에 꼽는 순간 물거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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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충전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정확히 58분​

혁신 혹은 불편
사실 도심에서는 이만 한 차도 없다. 잦은 제동으로 회생제동 시스템이 자주 배터리를 채우고 급가속만 하지 않는다면 길어진 주행거리를 효율적으로 나눠 쓸 수 있는 볼트 EV는 환경과 주머니 사정을 지키는 기특한 전기차인 셈이다. 배터리 용량이 넉넉해진 만큼 에어컨과 히터 사용에도 조금 더 자유로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교외로 나가거나 장거리를 주행할 경우, 아직은 주행가능거리와 충전소를 꼼꼼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속력을 내고자 하는 욕구와 빠르게 줄어드는 주행거리 사이에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배터리에 채워둔 전기 에너지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최소 50분 정도를 충전기 옆에서 허비해야 한다. 게다가 아직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충전기 찾기가 쉽지 않다. 비치되어 있는 충전기 역시 고장 난 경우가 태반. 늘어난 주행가능거리만 믿고 도심을 벗어나기에는 여전히 불안함을 떨칠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운전자 스스로 에너지를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따라 볼트 EV는 혁신의 아이콘이 될 수도, 혹은 여전히 시기상조인 과도기적 결과물로 남겨질 수도 있겠다.

문서우 기자 사진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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