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 222 4V 럭셔리함과 레이싱 필드의 야성이 살아 있는
1999-07-29  |   29,747 읽음

마세라티 222 4V 럭셔리함과

레이싱 필드의 야성이 살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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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차 하면 스포츠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부가티, 알파로메오, 란치아, 데토마소, 치제타 모로도 등 이태리차들은 하나같이 라틴의 열정을 담고 있다. 대중적인 차에 주력해왔던 피아트조차 쿠페 피아트, 바르케타 등 경쾌한 성능을 가진 스포츠 모델을 내놓는 나라가 이태리다. 그런 이태리 명문 중 우리에게 가장 알려지지 않은 메이커가 마세라티일 것이다.


레이싱 컨스트럭터로 출발해 레이스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성능 스포츠카와 그란투리스모(GT)만을 만들어왔던 마세라티는 1926년 이태리 스포츠카의 본고장 모데나에서 마세라티 형제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는 페라리 역시 마세라티의 역사를 뒤쫓은 것이다.


이태리 명문으로 페라리의 경쟁자 강력한 성능

고급스런 분위기 지녀

마세라티의 상징은 고향인 모데나의 수호신 넵튠(그리스신화의 포세이돈)의 트라이던트( trident, 삼지창)를 형상화했다. 쥬피터(제우스)의 번개와 더불어 가장 강한 신의 무기였던 트라이던트를 상징으로 삼은 것은 마세라티의 강함을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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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고성능 스포츠카들을 만들어왔다. 60년대 초반까지 그랑프리를 중심으로 하는 레이스에서 페라리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60년대 이후부터는 레이스를 떠나 로드카 분야에서 페라리의 경쟁자로 존재해왔다. 하지만 강력한 성능의 엔진과 고급스런 분위기로 독자적인 세계를 지켜왔던 마세라티의 역사는 그리 순탄치 못했다.


마세라티는 2차 세계대전 뒤 창업자 형제의 손을 떠나 20여 년의 침체기를 거쳐 1968년에 프랑스 시트로엥의 품으로 넘어갔다. 이 시기에 마세라티는 시트로엥의 최고급 고성능 쿠페였던 SM의 심장을 제공하기도 했다. 8년 뒤 마세라티는 다시 이태리로 돌아와 아르헨티나 레이서 출신인 알레한드로 데 토마소가 세운 데토마소그룹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다시 93년 5월 피아트그룹으로 넘겨졌고, 피아트그룹에서도 왕년의 라이벌이었던 페라리의 산하로 들어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필자는 6년 전 스위스에서 84년식 콰트로포르테를 잠시 타보았고, 4년 전 마세라티 스파이더를 몰고 이태리 토리노와 밀라노를 오간 경험이 있다. 하지만 당시 벤츠 S클래스에 버금가는 고성능 고급차였던 콰트로포르테는 시승 당시 10년이나 된 84년식 낡은 모델이어서 벤츠보다 더 고급스럽구나하는 느낌뿐이었다. 마세라티 스파이더는 이태리 스포츠카로는 너무도 평범한 스타일링이었지만 엄청난 파워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있다.


마세라티를 시승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무척이나 마음이 설레었다. 2도어 중고차라는 말만 듣고 어떤 모델을 시승하게 될지 추측해보는 시간이 즐거웠다. 일본에서 등록된 차라니 85년 이후에 나온 모델일 것 같았지만 2도어로 비투르보 2.5부터 222, 228, 카리프, 샤말과 기블리까지 6종류의 모델이 있고, 엔진에 따라 E, ES, SR, 4V 등이 더 있었으니 어떤 모델일지 궁금했다. 시승 전날 <자동차생활>에서 시승차가 마세라티의 주력모델이었던 222라고 알려주었다.

파워 스티어링 고장나 핸들 무거워
비투르보의 최종형이자 최고모델

자유로에서 만난 마세라티는 93년형 마세라티 222 4V 수동기어 모델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222 4V의 컨디션은 좋지 못했다. 파워 스티어링 펌프가 고장나 파워 스티어링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파워 스티어링이 작동하지 않는 차의 스티어링 휠은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진다. 게다가 마호가니로 된 마세라티의 스티어링 휠은 운전자의 손에서 자주 미끄러지기 때문에 무척 신경 쓰였다.


80년대 초까지 세계적인 수퍼카 붐을 타고 이른바 이그조틱카를 내놓았던 마세라티에서 처음으로 독자적인 섀시와 엔진을 바탕으로 만든 차가 81년 등장한 비투르보(Biturbo)였다. 양산차로는 최초로 트윈터보 엔진을 얹은 모델이었다. 데토마소그룹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개발된 비투르보는 그간의 마세라티차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2도어 노치백 쿠페 보디는 당시 유행하던 웨지 스타일이었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마세라티답지 않게 평범한 스탕일링이었다.


당시 비투르보는 V6 2.0ℓ SOHC 엔진에 트윈 터보를 달아 정지->시속 100km 가속시간 8초, 최고시속 200km를 넘는 고성능을 자랑했다. 이 비투르보는 83년 2.5ℓ로 배기량을 키워 비투르보 2.5가 되었고, 84년에는 2천515mm였던 휠베이스를 2천600mm로 늘인 4도어 모델 425가 등장했으며, 85년에는 인테리어를 더욱 고급스럽게 꾸미고 서스펜션을 보다 단단하게 세팅한 비투르보 E가 등장했다. 87년에는 인터쿨러를 더하고 인테리어를 더욱 고급스럽게 꾸민 비투르보 ES로 바뀌었고 휠베이스를 2천400mm로 줄인 2인승 오픈모델 스파이더가 더해졌다.


비투르보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지치기 모델을 더한 마세라티는 89년 배기량을 2.8ℓ로 키워 250마력을 냈다. 이때부터 2도어 모델은 222 E, 4도어 모델은 430, 그리고 스파이더는 스파이더 자가토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이와 함께 430의 섀시에 2도어 보디를 얹은 228이 추가되었고 스파이더 자가토에 하트톱 모델인 카리프가 더해졌다.

 


222 E는 다시 여러 가지 장비를 더해 90년에 222 SE로 발전했고 92년에는 에어로파츠를 더한 222 SR로 발전했다. 한편 배기량 2.0ℓ를 고비로 세금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이태리 국내시장을 겨누어 V6 2.0ℓ DOHC 엔진으로 245마력을 내는 224V를 내놓기도 했다.


222 4V는 마세라티 비투르보의 최종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94년 새로운 보디를 얹은 기블리가 등장하고 비투르보의 숏 휠베이스(2천400mm) 섀시에 326마력의 V8 3.2ℓ엔진을 얹은 샤말 등도 있지만 비투르보의 섀시와 기본 보디를 그대로 쓴 모델로는 222 4V가 최종형이자 최고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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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는 일본인 스포츠카 매니아
실내는 고급스러움으로 넘쳐흘러

시승차의 오너는 도쿄에서 정밀 전자기기의 플라스틱 몰드를 생산하는 50대의 기타무라 시게타다(北村重忠)씨였다. 캐주얼한 차림의 군살 없는 그의 몸매에서는 젠틀한 이미지가 풍겼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자동차와 친숙한 분위기에서 자랐다고 한다. 시승차는 그의 세 번째 마세라티이고, 이 차를 처분하는 대로 마세라티 3200GT를 살 예정이라고 했다. 시간만 나면 스즈카 서키트를 찾는다는 그는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스포츠카 매니아 같았다.


그의 222 4V는 서스펜션이 낮은 이태리 내수모델이어서 유난히 차체가 낮았다. 키를 받아 차를 살펴보았다. 쥬지아로의 간결하고 균형 잡힌 스타일링에 레이싱카에 달릴 법한 거친 에어로파츠가 융화를 이룬 222 4V의 실루엣은 평범한 3박스 쿠페같이 보인다. 하지만 라디에이터 그릴부터 시작해 휠과 센터 페시아, 사이드 스텝, 시프트 노브 등 많은 부분에 달린 트라이던트가 마세라티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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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네트를 열자 드러나는 엔진룸은 예술품의 자태다. 빨간 헤드커버에는 메탈 컬러의 트라이던트가 빛나고 트윈터보에서 이어지는 크롬광택의 에어 인테이크 파이프가 대칭으로 자리잡아 280마력의 고성능과 마세라티라는 카리스마를 시각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222 4V는 최고출력 280마력/5천500rpm, 최대토크 43.9kg·m/3천750rpm라는 엄청난 수치를 자랑한다. 이처럼 고출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좌우 두 개의 터빈에서 들어오는 공기를 모아 상호유도효과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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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비범함은 인테리어에서도 드러난다. 가죽과 우드라는 같은 소재로 치장되었지만 여유와 고급스러움이 배어나는 영국차와 달리 마세라티에서는 스포츠카의 긴장감 넘치는 고급스러움이 풍겨 나온다. 센터 페시아 가운데 자리한 금장시계는 명문 라 살(La Salle)의 것이고, 가죽 내장은 피혁제품으로 이름 높은 미소니가 손보았다. 바느질 한 뜸 한 뜸에서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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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에 앉으면 세미 버켓 타입 시트가 안정된 자세를 만들어 준다. 계기판이나 센터 페시아의 디자인이 고급스런 대신 스위치의 배열은 약간 혼란스럽다. 이태리 디자인의 특기처럼 같은 모양의 스위치를 길게 늘어놓아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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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트윈터보 엔진이 빚어내는 그르렁거림은 레이싱 머신이 내는 불규칙한 아이들링음과 흡사하다. 시동을 건 후 약 3분 동안은 엔진회전이 안정되지 못하고 흔들린다. 엔진반응을 높이기 위해 얇고 가벼운 플라이 휠을 쓴 스포츠 엔진에서는 가끔 일어나는 반응이다. 일반 승용차처럼 엔진회전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무거운 플라이 휠을 쓰면 순발력이 떨어진다.


280마력이라는 엄청난 출력을 감당해야 하는 클러치여서 상당히 무거울 것이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가볍다. 출발하기 전에 댐퍼의 강도를 조절했다. 222 4V의 댐퍼 감쇄력은 4단계로 조절된다. 이른바 메커니컬 액티브 서스펜션으로 222 모델 중 222 4V에만 갖춰져 있다.

8기통 2.8ℓ트윈터보 엔진 280마력 내
엄청난 성능과 환상적인 핸들링 지녀

엔진도 워밍업 시킬 겸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달려보았다. 부드럽게 달려간다. 워낙 큰 토크를 가진 차여서 낮은 회전영역에서도 여유롭고 부드러운 달리기를 할 수 있다. 조용히 달릴 때까지 222 4V는 단지 고급스런 승용차일 뿐이다.
이 고급스런 차가 스포츠카로 변신하는데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액셀 페달을 힘껏 밟기만 하면 280마력의 힘과 43.9kg·m라는 엄청난 토크가 분출되면서 로켓이 되어버린다. 급가속은 그리 오래 할 수 없다. 순식간에 터보 부스터가 레드존을 가리키기 때문에 빠르게 시프트업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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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속 100km 가속에 6.5초라는 믿기 힘든 실력을 보여준다. 최고속도는 시속 260km라지만 시승중에는 시속 210km 정도만 낼 수 있었다. 이런 엄청난 동력성능은 환상적인 핸들링과 이어진다. 파워 스티어링이 고장난 상태였지만 고속 코너링에서는 레일 위를 달리듯 드라이버가 그린 궤적대로 움직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이어와 노면의 접지상태를 운전자가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93년이라면 ABS나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 등이 대중화되었을 시점이지만 222 4V에는 이같은 장비들이 없다. 그래서 고속 코너에서 트랙션을 잃으면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222 4V는 운전자가 차의 상태를 감지할 수 있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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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세라티 222 4V는 운전자의 실수를 너그러이 눈감아 주는 차는 아니다. 요즘 스포츠카들은 초보자도 쉽게 즐길 수 있지만 마세라티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이 드라이버를 가린다. 자신을 다룰 줄 아는 드라이버는 멋진 스피드의 세계로 인도하지만 어설픈 드라이버에게는 엄청난 출력과 토크가 버겁게만 느껴질 뿐이다.


222 4V는 페라리에 버금가는 운동성능과 중형차에 가까운 공간, 그리고 애스턴 마틴에 뒤지지 않는 고급스러움을 가진 독특한 스포츠카다. 만약 제임스 본드가 이태리인이었다면 엄청나게 비싼 애스턴 마틴 대신 마세라티를 탔을 것이다.
세련된 무드로 거친 야성을 감추고 있는 마세라티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차 중 하나다. 지난해 마세라티의 판매대수는 800대에도 못 미쳤다. 그만큼 마세라티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얘기다. 마세라티는 비싼 차다. BMW M5처럼 실용성과 스포츠성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 M5의 메카트로닉스 대신 귀족주의와 멋을 지닌 매력적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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