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피아트 푼토 유럽시장 영구집권 노리는 100주년 기념작
1999-09-29  |   13,606 읽음
지난날 이태리 왕국의 수도였던 토리노는 지난달 또 다른 왕국의 창립 100년 축제로 들떴다. 1861년 이태리 수도로서의 지위는 머지 않아 피렌체, 뒤이어 로마에 빼앗기고 말았다. 한편 1899년 7월 11일 조바니 아넬리를 비롯한 이 고장 명사들이 `파브리카 이타리아노 디 아우토모빌리 토리노`(Fabbrica Italiano di Automobili Torino), 줄여서 `피아트`(FIAT)를 세우기로 뜻을 모으고 서명했다.
그 뒤 토리노는 이태리, 나아가 유럽의 `자동차 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토리노의 20세기는 피아트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때문에 토리노 중심가에는 수많은 깃발이 나부꼈다. 주요한 광장에서는 갖가지 행사가 벌어졌고, 가게 진열장과 유리문에도 기념 포스터가 붙었다. 이 화려한 축제에 빛을 더한 것이 새로운 2세대 푼토였다.


낯익은 스타일이지만 80%가 새 부품
새 푼토, 표준 1.2ℓ엔진의 경쾌함


지금 피아트 그룹은 알파로메오, 란치아, 나아가 페라리, 마세라티까지 거느리고 있다. 한때 80%를 넘는 독과점 상태였지만 최근 다임러-크라이슬러 또는 포드와의 합병설이 나돌면서 위기감이 나타나고 있다. 피아트가 헛소문이라고 강력히 부인했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100주년 기념축전을 앞두고 피아트 경영진은 일본 미쓰비시 수뇌부와 토리노에서 만나 GDI 엔진 제공, SUV 공동개발을 논의했다.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라고 외치던 피아트 제국이 새로운 세기를 살아남기 위한 전략 짜기에 골몰하고 있는 중이다.
피아트 푼토는 93년 데뷔한 뒤 지금까지 6년간 판매량 300만 대를 넘어섰다. 올해 상반기에도 33만 대의 판매기록을 올린 히트작이다. 이 같은 푼토를 서둘러 모델 체인지한 것도 피아트의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의 명장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이끄는 이탈디자인의 작품인 초대 푼토는 아직도 매력을 잃지 않았다. 더구나 새차를 처음 보았을 때 구형과 큰 차이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링고토의 본사 앞마당에 늘어선 2세대 푼토를 보는 순간 얼핏 마이너 체인지를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누오보 푼토는 완전히 새로운 차. 부품의 일부는 그대로 넘겨받아 쓰고 있지만, 전체의 80%는 새로운 부품이다. 닮아 보이는 것은 크기와 휠베이스의 기본 규격이 구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신형의 길이x너비x높이는 3천800(5도어는 3천835)x1천660x1천480mm이고 휠베이스는 2천460mm이다. 구형은 3천770x1천625x1천450mm에 2천450mm로 별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하면 푼토의 디자인 특징인 옆으로 긴 헤드램프와 세로가 긴 뒤 컴비네이션 램프, 톨보이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형과의 차이가 드러난다. 1세대 푼토는 매끄러운 선을 이루는 해치백이라는 인상이 짙다. 하지만 신형 보디에는 곳곳에 에지가 들어간 선이 쓰이고 있다. 더구나 3도어와 5도어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스타일링을 맡은 피아트 첸트로 스틸레의 피터 파스펜더는 `3도어는 세로선을 강조해 역동적인 효과를 노렸다. 그와 달리 5도어는 수평적인 바탕에 안정감과 우아함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푼토는 유럽의 소형차시장에서 피아트를 대표한다. 라이벌은 푸조 206, 르노 클리오, 그리고 도요다 야리스. 시장의 왕좌를 노리는 만큼 구형보다 더 많은 버전을 마련했다. 보디는 3도어와 5도어 2가지. 엔진은 5종, 기어박스 4종, 거기에다 트림 레벨이 6개(기본/SX/ELX/HLX/스포팅/HGT)로 나누어진다. 통틀어 23개 버전이다.
엔진부터 설명하면 출력이 낮은 순으로 휘발유 1.2ℓ SOHC(60마력, 10.4kg·m), 1.2ℓ DOHC 16밸브(80마력, 11.6kg·m), 그리고 1.6ℓ DOHC 16밸브(130마력,16.7kg·m)의 3가지. 디젤 엔진은 1.9ℓ(60마력, 12.0kg·m )와 JTD라는 커먼레일형 1.9ℓ직분사 터보 디젤(80마력, 20.0kg· m) 2종이 있다. 어느 것이나 4기통이다. 지금까지 란치아 Y, 바르케타와 알파로메오 156에 얹혀 성능을 인정받은 제품을 더욱 향상시킨 것이다.
트랜스미션은 수동 5단과 6단(1.2ℓ 16밸브 스포팅에만 달렸다)에다 새로운 토크 컨버터가 달린 무단변속기(CVT)도 마련했다. `스피드기어(Speedgear)`라 불리는 CVT에는 앞뒤로 레버를 움직여 정해진 포지션을 고를 수 있는 게이트를 갖추고 있다. 스피드기어는 6단(1.2ℓ 16밸브 ELX용)과 7단(1.2ℓ 16밸브 스포팅용)의 2종이 있다. 1.2ℓ16밸브 엔진은 4종류의 변속기와 모두 짝을 짓는다는 뜻이다. 1.8ℓ를 얹는 HGT는 3도어뿐이다.


누오보의 정상, 소형의 럭셔리 HGT
7단 CVT를 쓰는 스포팅 스피드기어


지금 피아트 본부와 전시장으로 쓰이는 링고토는 1923년에 완성되었다. 옥상에 테스트 코스까지 만들어 놓은 가히 혁명적인 공장이었다. 100년 축전을 맞아 링고토 앞마당에는 온갖 색깔의 푼토가 줄지어 서 있었다. 앞서 말한 대로 23개에 이르는 버전을 하루에 시승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먼저 푼토의 평균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1.2ℓ 16밸브 80마력 엔진에 수동 5단 기어를 얹은 EXL을 몰고 교외로 달려나갔다. 이 엔진은 란치아 Y에 얹힌 것과 같다. 이전 모델과 마찬가지로 민첩하고 발랄했다. 그러나 제대로 힘이 나는 것은 3천500rpm부터다. 조금 시끄럽지만 건강한 엔진음을 즐기는 사이에 한계영역인 7천rpm에 도달했다. 이태리 소형차다운 경쾌한 엔진이다.
그와 달리 7단 CVT를 쓰는 스포팅 스피드기어는 인상이 싹 달랐다. 같은 엔진을 얹었지

만 단단한 하체와 CVT 때문에 훨씬 듬직한 느낌을 주었다. CVT는 종전의 전자 클러치식보다 쓰기 쉬웠다. 토크 컨버터가 달려 있어 그립도 있고, 복잡한 거리에서 정지와 출발할 때도 매끈했다. D 레인지의 가속감도 그만하면 괜찮았다. 그러나 이 모델을 시가지에 알맞은 실용 AT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최신형 CVT라고는 하지만 수동식에 비해 반응이 둔했다. 게다가 시퀀셜 모드에서 셀렉터의 조작이 무겁고 둔해 산뜻한 맛이 없다. ELX의 타이어가 165/70R 14인데 비해 185/60R 14로 광폭인 때문이기도 하다.
바르케타와 같이 1.8ℓ 엔진을 얹은 HGT는 한마디로 어른스러운 차다. 힘과 토크를 갖추고 있는 데다 무게도 1천40kg으로 1톤을 넘는다. 이 모델에만 트랙션 컨트롤이 달리고 장비도 풍부해 2세대 푼토의 럭셔리 버전인 셈이다. HGT는 하체가 스포팅보다 단단하고 타이어도 185/55R 15로 커진다. 코너링도 안정감이 높고 롤링이 적다.
HGT와 스포팅은 인테리어도 약간 호사스럽다. 기어 레버와 핸들에 가죽을 감았고, 센터 콘솔에 알루미늄과 같은 광택처리를 해 하위 버전의 값싼 플라스틱 질감과는 차이가 있다. 격에 맞지 않게 멋을 부리려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두 호화 버전을 고르는 고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유럽시장에서 압도적인 다수는 1.2ℓ 표준형이거나 디젤 버전을 고른다.
실내는 구형과 마찬가지로 공간이 넓고 쓸모가 있었다. 알찬 앞자리 공간도 변함이 없고, 운전석 주위에는 작은 물건을 넣을 수납공간이 많다. 뒷좌석도 어른 2명이 타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꼿꼿이 앉게 되어 등받이가 높은 데도 머리공간이 별로 넉넉하지 않은 점은 불만이다. 특히 3도어는 기울기 때문에 뒷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다.
새 푼토는 9월부터 시판에 들어간다. 이태리에서 최고급 버전 1.8ℓ HGT가 2천500만 리라(약1천675만원), 1.2ℓ스포팅 스피드기어가 2천130만 리라(약1천427만원)로 값은 녹녹치 않다. 피아트의 대중적인 야심작 2세대 푼토가 어느 길을 달려갈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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