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SCHE Cayenne Turbo 아무도 닮지 않고, 누구의 이해도 바라지 않는 순수 포르쉐
2003-11-28  |   36,404 읽음
450마력,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에 걸리는 시간 5.6초, 6포트 대형 디스크 브레이크…. 수퍼 스포츠카의 제원표가 아니다. 지금 기자 앞에 서 있는 SUV가 숨기고 있는 실력이다. ‘진정한 고성능 SUV’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은, 포르쉐 카이엔 터보 이야기다.
지난 5월에 카이엔S와 카이엔 터보가 발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이엔S는 시승을 할 기회가 있었다. BMW가 5시리즈를 바탕으로 만든 X5와 랜드로버의 기함 뉴 레인지로버가 동행하는 자리였다. 서울에서 출발해 강원도 삼척까지 먼 길을 달리는 동안 넉넉한 출력과 탄탄한 달리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짐을 실을 수 있는 5인승 포르쉐’라고 결론을 내린 카이엔S의 온로드 성능에 홀딱 빠져 버렸다. 높은 키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코너링과 340마력 엔진이 뿜어내는 막강한 가속력, 시속 200km를 간단하게 넘어가는 최고시속은 혀를 내두를 만했다.

예상보다 빠르고 정확한 몸놀림

하지만 터보는 쉽게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생산대수가 많지 않아 국내에 들여와 팔 차가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시승 기회를 만들기는 불가능했다. 태백의 준용 서키트에서 시승행사를 가졌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정해진 코스에서 성능을 검증하는 것일 뿐, 도로를 달리며 확인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몇 차례 곡절을 겪고 나서야 어렵게 카이엔 터보를 단독 시승할 수 있었다. 반나절의 짧은 만남이었으나 온로드와 오프로드에서 진가를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카이엔 터보 시승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기자가 탔던 고출력차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계에 가깝게 성능을 테스트했던 차들 중에는 처음으로 시속 300km를 경험하게 해준 페라리 F355(380마력)가 있고, 세단은 BMW M5(400마력)가 대표적이다. 동승한 차 중에서 가장 출력이 높은 차는 일본에서 한국 나들이를 왔던 800마력의 스카이라인 GT-R이었다. 0→400m 도달에 9초가 걸리는 괴물로, 공포감을 느낀 유일한 차였다.
튜닝카와 양산차를 통틀어 300마력 정도의 출력이 나오는 차를 몰면서 빠른 스피드와 원하는 대로 돌고 멈추는 손맛에 최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고출력차들을 경험한 때문인지 300마력이라는 힘은 스포츠카와 일반 자동차를 나누는 기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기준을 깨 버린 차가 포르쉐 카이엔 터보다. 시승 코스를 용인 에버랜드 주변으로 잡은 것은 앞에서 적은 차들을 대부분 그곳에서 탔기에 비교적 객관적인 비교가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우선 카이엔 터보의 제원부터 살펴보자. V8 터보 엔진은 배기량 4천511cc, 최고출력 450마력/6천rpm이고 최대토크는 2천250∼4천750rpm에서 63.2kg·m를 낸다. 압축비가 자연흡기 승용차에 맞먹는 9.5, 터보의 과급압은 0.8바 정도다. 이처럼 압축비가 높고 과급압이 낮은 엔진은 큰 배기량의 자연흡기 엔진처럼 반응하는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카이엔 터보는 타임 래그를 거의 느낄 수 없다. 기어를 몇 단에 놓든 도로의 경사, 승차인원, 적재량 같은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저 원하는 곳으로 방향을 잡고 액셀 페달을 깊숙이 밟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예상보다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그 위치에 옮겨진다. 여기에 액셀 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부스트를 조절해 저회전 정속주행에서는 연비를 높이고, 부하가 걸리는 고속에서는 출력을 키운다. 기어를 6단에 넣고 시속 100km로 정속주행할 때 엔진 회전수는 고작 1천800rpm.

오프로드 실력 레인지로버 못지 않아

살살 밟을 때는 카이엔S와 터보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지만 3단 이상으로 급가속을 하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튀어 나간다. S보다 120kg 무겁지만 출력은 110마력 높아진 덕이다. 고속도로 달리기에서 유일한 스트레스는 앞을 가로막는 차들이다. 꽂히듯 멈추는 브레이크가 아니었다면 씨근덕거리는 카이엔 터보를 잠재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굳이 시속 266km라는 제원표상의 최고시속을 확인하지 않아도 될 정도.

높게 앉는 SUV의 특성상 시야가 좋아 도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가속하는 도중에는 약한 언더스티어를 보이다가 액셀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약한 오버스티어로 바뀌어 코너 안쪽으로 파고드는 핸들링은 ‘좀더 고속 스테이지로 데려가 달라’는 주문처럼 들렸다.
이런 카이엔 터보의 바램을 무시하고, 옆자리에 앉은 사진기자의 비명에도 귀를 막은 채 에버랜드 주변의 와인딩 로드를 힘차게 달려 보았다. 팁트로닉S 6단 기어 레버를 수동(M)으로 밀어 넣고, 2단과 3단만을 사용했다. 비대칭 트레드 패턴을 가진 피렐리 P제로 275/45 ZR19 타이어는 조금씩 비명을 지르지만 스포츠 모드에 맞춘 쇼크 업소버와 막강한 에어 서스펜션 덕분에 차체는 핸들을 꺾은 대로 파고든다. 2.3톤의 무게에 높이가 1천699mm인 SUV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움직임이다. 기본적으로 코너링 한계가 높아 가속할 시기를 확실하게 정하면 속이 후련한 코너링도 어렵지 않다.
0→시속 100km 가속 5.6초의 빠른 가속력은 브레이크-핸들 조작-가속으로 이어지는 동작을 점점 더 바쁘게 한다. 최후의 순간에만 개입하는 포르쉐 주행 안정 관리(porsche stability management)와 포르쉐 트랙션 관리(porsche traction management) 시스템은 운전자의 능력을 시험하는 듯 했다.
다만 레드존을 넘어서면 기어가 자동으로 올라가는 특징 때문에 엔진 브레이크만으로 코너를 빠져 나가려다가 울컥 앞으로 밀려가는 차체에 놀란 적이 있다. 옵션에도 없지만 카이엔 터보에 수동기어를 단다면, 국도와 고속도로에서 왕자로 군림할 가능성이 엿보였다.
오프로드에서는 어떨까? 터보 모델에는 에어 서스펜션이 기본이다. 차고 조절은 가장 낮은 적재 모드부터 가장 높은 오프로드 모드까지 6단계로 되어 있다. 간단하게 스위치를 눌러 지상고를 157-179-190-217(기본)-243-273mm까지 선택할 수 있다. 대체로 에어 스프링을 달면 차고를 올릴 수 있지만 스트로크가 줄어 충격 흡수력은 되려 떨어질 수 있다.
발목 정도 깊이의 모글과 돌이 널린 오프로드에서 카이엔 터보는 예상 밖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레인지로버 못지않게 부드러웠고, 2.7의 로 기어 감속비, 2단(2.37)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낮은 팁트로닉 1단 기어비(4.15) 때문에 600rpm의 낮은 엔진 회전에서 시속 1km로 꾸준하게 모글을 넘어 다녔다. 지상고를 가장 높이 올려도 조금 부족한 듯 싶은 32.4도의 접근각이 걱정될 뿐 오프로드 성능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다만 고속 주행을 위해 선택한 고성능 타이어는 트랙션 컨트롤의 작동이 무색할 정도로 오프로드 그립이 형편없었다. 막강한 엔진 힘 때문에 못 오를 곳이 없겠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시승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과연 카이엔 터보는 어떤 종류의 자동차로 나누어야 하는가. SUV로 넣자니 이렇게 빠르고 뛰어난 핸들링을 가진 차가 없었다. 그렇다고 스포츠카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다.
어쨌든 카이엔 터보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내년에는 같은 섀시로 개발한 SUV 중 마지막 모델인 아우디 파이크스피크 콰트로가 최소한 500마력이 넘는 엔진을 얹고 나온다. BMW는 X5에 4.8X 엔진을 써 360마력으로 출력을 높였다. 레인지로버조차 같은 PAG 산하 재규어의 V8 4.2X 수퍼차저 400마력 엔진을 리스트에 올려놓은 상태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카이엔 터보는 포르쉐다’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일지 모르지만, 애당초 포르쉐는 일상적으로 탈 수 있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목표로 한 차다. 카이엔 터보는 어떤 SUV와도 닮지 않고 경쟁할 필요도 없는, 순수한 포르쉐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786×1928×1699mm

휠베이스
2855mm

트레드 앞/뒤
1647/1662mm

무게
2355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V8 DOHC 트윈터보

굴림방식
네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93.0×83.0mm

배기량
4511cc

압축비
9.5

최고출력
450마력/6000rpm

최대토크
63.2kg·m/2250~475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100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6단 팁트로닉

기어비 ①/②/③
4.150/2.370/1.560

④/⑤/ⓡ
1.160/0.860/0.690/3.390

최종감속비
3.70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5도어 왜건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더블 위시본/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V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75/45 ZR18

성능
최고시속
266km

0→시속 100km 가속
5.6초

시가지 주행연비
6.0km/ℓ


17,16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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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로드 달리기 성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으로 역시 포르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의외로 서스팬션이 부드러워 돌을 타고 넘는 솜씨가 뛰어났지만 고속용 타이어가 오프로드에서 걸림돌이다포르쉐 특유의 오렌지색 내장제가 고급스럽고 스위치 조작이 간단해 쉽게 익숙해진다계기판은 항상 빛을 내는 방식으로 가운데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다에어 서스펜션 높이 조절과 로 기어 선택은 간단한 스위치로 할 수 있다터보임을 나타내는 트윈 머플러에서는 묵직한 배기음이 나온다275/45 ZR19 피렐리 타이어는 온로드에서 막강한 접지력을 보이지만 오프로드 그립은 기대 이하다450마력이라는 엄청난 힘을 가진 V8 트윈터보 엔진은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처럼 반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