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베르나 SV - 소형차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1999-07-29  |   23,460 읽음

현대 베르나 SV - 소형차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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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센트 후속모델의 코드네임이 LC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자연스럽게 이름이 떠올랐다. 요즘 현대차의 이름이 EF 쏘나타, 그랜저 XG로 이어지고 있으니 엑센트 LC가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엑센트와는 조금도 닮지 않은 베르나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외국에서는 잘 팔리는 차의 이름을 바꾸는 일이 흔치 않다. 새차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은 우리만의 강박관념이기도 하다. 베르나를 대할 때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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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움, 소형차의 한계 넘어서
세계적 추세에 따르는 직선 디자인
베르나는 포니과 포니2, 엑셀, 엑센트로 이어지는 현대의 소형차 계보에 오를 새 이름이다. 앞선 모델이 모두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베르나 개발팀은 부담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차를 처음 대하는 순간 이전에 갖고 있던 소형차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크롬장식을 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경쟁차 라노스의 것보다 한 차원 높은 품격을 나타낸다. 뒷모습은 쏘나타와 닮았지만 누비라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테일램프 윗부분이 꺾어진 모습은 크라이슬러 300M과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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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차를 이 정도로 고급스럽게 꾸민 것은 현대가 치밀한 시장분석을 한 결과다. 아토스, 마티즈의 등장과 경제난이 겹치면서 소형차 수요자가 경차로 발길을 돌리는 일이 많아졌다. 반면 소형차의 주 수요층이 되어야 할 20대 후반~30대 초반 운전자들은 준중형차와 중형차를 선호했다. 그 사이에서 소형차는 갈 곳을 잃고 판매량이 떨어지는 현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엑센트는 처음 등장할 때 신세대를 위한 차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리를 경차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후속모델은 고급화가 개발 컨셉트가 되었다. 그래서 프리미엄 세단임을 주장한다.

그랜저 XG를 닮은 차체의 옆주름은 직선을 살리는 세계적 추세를 따랐다. 획일적으로 통일시키기보다는 차종마다 부분적으로 변형시켜 일치감을 주는 현대의 디자인은 디자인을 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숨은그림 찾기 같은 방식이다. 실내 분위기도 더욱 고급스러워졌다. 시트의 질감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어설펐던 엑센트의 컵홀더는 크기에 맞게 조절되는 타입으로 바뀌었다. 커진 도어포켓, 센터콘솔에 마련한 동전함, 그리고 운전석 쪽에도 있는 글로브 박스 등 수납공간이 많아진 것도 마음에 든다. 운전석 암레스트와 좋은 질감의 도어 핸들은 국산 소형차 중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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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자 개인적으로는 암레스트보다 콘솔박스를 더 좋아한다. 운전하면서 암레스트에 팔을 기대보니 기어변속하기가 불편하다. 수동이나 자동변속기 모두 마찬가지다. 소형차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부분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도어트림에 달린 도어핸들은 부드러운 질감이 고급차 수준이다.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손을 잡는 듯한 기분을 주어 자꾸만 잡고 싶어진다. 가족을 생각하는 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뒷좌석에 분리형 헤드레스트를 달았다. 이 차의 수요층을 중학생 정도의 자녀를 둔 40대 가장으로까지 넓혔다는 의미다. 반면 이전 모델에 달려 있던 뒷좌석 접힘장치는 없어졌다. 공간활용보다는 안전을 택한 것이다.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지만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은 것은 옥의 티다. 도어스텝을 플라스틱으로 덮은 부분이 들떠 있고 트렁크 안쪽의 철판이 날카롭게 드러나 있다. 짐을 안쪽으로 싣다가 손을 벨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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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지 못한 마무리는 불만
가속력과 핸들링 뛰어난 수준
시승차는 베르나의 주력모델인 SV1.5 SOHC 3밸브 96마력 엔진을 얹었다. 엑센트에 얹었던 α엔진은 고회전에서의 소음과 진동이 문제였다. 베르나에는 새 엔진이 아니라 이것을 개량해 얹었다고 해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예감이 심상치가 않았다. 아이들링 때의 소음과 진동이 확실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속도를 높여도 엔진은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이 차 SOHC 엔진 맞아? 할 정도로 가속력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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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란 것은 베르나의 핸들링이다. 슬라럼 주행을 해보니 준중형차보다 나은 수준이다. 시속 70km로 코너링할 때도 타이어 소음만 귀에 거슬릴 뿐이다. 코너링은 같은 급에서는 비교할 차가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차의 성능을 감안하면 175/70R 13 사이즈는 어울리지 않는다. 185/60R 14 정도는 되어야 제 성능을 충분히 낼 것이다. 잘 튜닝하면 참가자가 적어 존폐위기에 놓인 국내 자동차경주 투어링 B카로도 인기를 끌 듯하다.

시승차로 수동과 자동, 두 가지를 준비한 일은 잘한 것 같다. 자동변속기의 성능이 눈에 띄게 좋아졌음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를 높일 때 울컥 하던 변속충격이 많이 줄었고 4→2, 3→1단으로 직접 변속되는 스킵 시프트 기능이 더해져 동력성능과 연비를 함께 높였다. 좋아진 차를 타고나니 기분도 좋다. 베르나는 성능만 보자면 아주 기분을 좋게 해주는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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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아쉬운 것은 베르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엑셀보다 크기를 줄이고 신세대라는 확실한 목표를 설정해 만들었던 엑센트와 달리, 베르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번갈아 타도 어색하지 않게 누구나 좋아하는 차가 되고자 했다. 따라서 개성이 강하지 않아 일정한 계층의 사랑을 받기는 어려울 듯하다. 게다가 우연히 본 베르나 3도어와 5도어는 이런 걱정을 더 크게 했다. 유로/프로 엑센트에 비해 디자인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분위기도 어색했기 때문이다. 세단의 꽁무니를 잘라 놓은 듯해 누비라 D5를 보는 느낌이었다.

일본차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새삼 놀란 것은 뛰어난 성능 못지 않게 다양한 차종이었다. 그들은 소수를 위한 모델도 빠짐없이 내놓고 간혹 선보이는 스페셜 모델까지 더해 선택을 자유롭게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실정에서는 지금 엑센트나 아벨라를 타던 사람들이 고를 차가 마땅치 않다. 경차는 싫고 준중형차를 살 능력은 안되는 사람은 울며 겨자먹기로 가족을 생각해 베르나를 사야 한다. 수요가 많은 시장을 목표로 한 현대의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요즘 같은 개인주의시대에 가족이라니. 혼자 탈 차를 찾는 사람은 비싸고 고급스러운 베르나가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벨라 후속모델인 B-는 베르나의 아랫급으로 나온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베르나가 가족을 생각 하고 만든 차라면 앞으로 나올 소형차는 나와 애인을 위한 차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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