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시승기

메르세데스 벤츠 CLK320 쿠페 명품 이미지 완성.. 2003-08-18
메르세데스 벤츠 쿠페의 역사에서 1961년 데뷔한 250SE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코드네임 W111시리즈의 플랫폼을 이용한 250SE는 당시로는 드물게 B필러를 없앤 하드톱과 라운드 타입 뒷유리로 우아함을 뽐냈다. 벤츠 CLK 쿠페는 250SE를 떠올리게 한다. 아름다운 스타일은 보이는 모습 그대로 흠잡을 데 없고, 성능에 대해서도 완벽에 가깝다는 평이 들린다. 완벽함에서 미완성된 부분을 찾는 즐거움은 메르세데스 벤츠를 경험하는 자의 특권이 아닐까? 공기저항계수 0.28의 미끈한 차체 B필러 없애 세련미와 개방감 높여 오늘날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 라인업의 아이덴티티로 자리잡은 땅콩 모양 헤드램프의 원조는 지난 93년 나온 ‘쿠페 스터디’다. 95년 등장한 6세대 E클래스(W210)에서 처음 실용화된 이 스타일은 97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데뷔한 CLK까지 이어졌다. 쿠페 스터디가 단순히 두 개의 원형 램프를 배치한 것과 달리, CLK는 약간의 굴곡과 단차로 멋을 부렸다. 메르세데스 벤츠 디자인팀장 부루노 사코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인 수작이었다. 지난해 데뷔한 신형 CLK는 스타일을 더욱 미끈하게 다듬었다. 공기저항계수 0.28이라는 숫자를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듯한 늘씬한 모습은 구형보다 얇아진 C필러에서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B필러를 없애 개방감을 높였다는 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42년 전 등장했던 250SE의 컨셉트를 되살리는 동시에 현대적인 세련미까지 덤으로 얻었다. 도어는 손잡이를 살짝 잡아당긴 후 활짝 여는 것이 좋다. CLK는 창틀이 없는 프레임리스 도어의 밀폐성을 높이기 위해 문이 열릴 때 유리가 조금 내려가고, 문이 닫히면 유리가 다시 바짝 올라가도록 설계했다. 여기에다 다른 차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게 뒷유리까지 앞뒤로 살짝 움직여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도어를 닫으면 CLK는 달리기 위한 준비를 갖춘다. 올라가 있던 스티어링 휠이 적당히 내려오고, 운전석과 조수석의 안전벨트는 손에 닿기 좋은 위치까지 밀려나온다.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했을까 싶게 요모조모 신경을 쓴 것이 마음에 든다. ‘쿠페의 뒷좌석은 타고 내리기 불편하다’는 고정관념은 CLK를 타면서 달라진다. 앞좌석을 젖히는 레버를 당기면 헤드레스트가 자동으로 시트 쿠션에 밀착되는데, 이는 헤드레스트가 지나치게 높게 튀어나와 조작에 방해가 될 때를 대비한 것이다. 앞좌석을 원위치로 놓으면 헤드레스트도 자동으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온다. 쿠페에서 뒷좌석의 넉넉함을 바라는 것이 사치일 수도 있지만, CLK는 성인 남자가 타도 편안할 정도의 넉넉한 2인승 뒷좌석을 마련했다. 구형보다는 길이 71mm, 너비 18mm, 높이 42mm가 늘어난 수치. 키 177cm의 기자가 뒷좌석에 앉으면 머리와 뒷유리 사이에 두 손바닥을 끼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생긴다. 쿠페를 즐기는 연인들이 친구 커플을 불러 같이 타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얇은 듯한 스티어링 휠이 마음에 드는데, CLK의 것은 두께가 적당하다. 시트나 내장재의 질감은 ‘명품’이라 불러도 좋고, 동급에서 가장 고급스럽다. 그러나 앞좌석에 컵홀더가 하나밖에 없고, 수납공간이 적어 불편하다. 정숙성 뛰어난 V6 3.2X 218마력 엔진 운전자 의도 읽어내는 영특한 서스펜션 CLK의 엔진은 모두 7가지인데 우리나라에는 이 중 V6 2.6X 170마력의 CLK240과 V6 3.2X 218마력의 CLK320이 수입된다. CLK200 컴프레서(직렬 4기통 1.8X)부터 CLK55 AMG(V8 5.5X)까지 다양한 모델 중 경제성과 주행성능을 조화시킨 알짜배기 모델만 수입되는 셈이다. 더 좋은 경제성을 원한다면 2.7X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얹은 CLK270 CDI의 수입이 허용되는 2005년까지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시승차로 나온 CLK320은 도로를 달릴 때 작은 숨소리만 낸다. B필러가 없는 프레임리스 도어를 달았지만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철저하게 차단되고, 엔진의 흡배기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미세하게 전달되는 벨트 구동음으로 달리고 있음을 느끼는 정도. 급가속 때 커지는 소음도 거부감을 줄 정도는 아니다. 트윈 스파크 플러그를 쓴 V6 3밸브 엔진의 정숙성은 이미 완숙의 경지에 올랐다. 다만 급가속 때 반 박자 늦은 엔진 반응은 조금 의외다. 액셀 페달을 밟으면 과급기를 단 엔진처럼 반응전달에 조금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최대토크(31.6kg·m)가 나오는 3천~4천600rpm 구간에서는 특유의 가속력을 발휘해 속도를 빠르게 높인다. 즉, 최고시속 244km를 기록하는 절대적인 성능은 모자람이 없으나 저속에서의 토크 반응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 모드’를 갖춘 자동 5단 터치 시프트를 적절히 활용하면 어느 정도 보완할 수는 있다. 주행성능을 테스트하다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트렁크를 열어보았다. 구형보다 넓어진 435X 크기의 트렁크에는 225/45 R17 사이즈의 스페어 타이어가 담겨 있다. 차체 경량화를 위해 템포러리 타이어를 갖추는 최근 추세에 비춰보면 조금 의외지만 든든한 느낌도 든다. CLK320의 주행성능은 ‘감동’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작은 충격까지 정밀하게 흡수하는 서스펜션은 도로에 착 붙는 안정감을 선사한다. 여기에다 급코너링 테스트까지 통과한다면 ‘감동의 대단원’에 마침표를 찍을 순서. 눈앞에 나타난 코너에서 핸들을 움켜잡고 급코너링을 시도했다. CLK320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서스펜션의 반응을 소프트타입에서 하드타입으로 급격히 바꾸고, 차체의 쏠림 없이 머릿속에 그린 라인을 그대로 따라간다. 구형에서 더블 위시본이던 앞 서스펜션이 스트럿으로 바뀌고 뒤 서스펜션은 멀티링크 타입 그대로인데, 변화는 성공적이다. 적당한 언더스티어 특성을 갖고 있는 CLK320은 운전자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는 영특함까지 지녔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의 라이벌 대결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지금 CLK의 라이벌은 찾기 힘들지만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올 가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등장하는 BMW 6시리즈가 CLK의 강력한 적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라이벌의 대결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나든 고객은 그 치열한 경쟁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다. 시승협조: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02)532-3421. 벤츠 CLK320 쿠페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635×1740×1415mm 휠베이스 2715mm 트레드 앞/뒤 1525/1495mm 무게 1530kg 승차정원 4명 엔진 형식 V6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9.9×84.0mm 배기량 3199cc 압축비 10.0 최고출력 218마력/5500rpm 최대토크 31.6kg·m/3000~46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62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950/2.420/1.490 ④/⑤/ⓡ 1.000/0.830/3.150 최종감속비 3.27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2도어 쿠페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모두 스트럿 브레이크 앞/뒤 ㅡ 타이어 앞/뒤 225/45 R17, 245/40 R17 성능 최고시속 244km 0→시속 100km 가속 7.9초 시가지 주행연비 8.0km/ℓ 값 8,800만 원
1977년형 롤스로이스 실버 레이스Ⅱ 자동차 전체가.. 2003-08-18
거의 200회나 되는 에 쓴 나의 시승기 가운데 롤스로이스를 시승해 본 것은 이번까지 합쳐서 네 번이다. 첫 번째는 1987년 11월 6일, 프랑스 파리의 TFI TV 방송국의 ‘Jeux Sans Frontieres’(국경 없는 게임)이란 90분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 그곳에 갔을 때다. 같이 출연한 우리나라 출신 가수 키메라 씨가 갖고 있던 1972년형 실버 섀도를 파리시내에서 시승해 보았다. 두 번째는 한국의 수입업자 도움으로 1989년형 실버 스퍼를 타본 것이고, 세 번째로 탄 차는 지난 2001년 삼성교통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롤스로이스가 생산한 차 중에서 가장 비싼 1955년형 리무진형이었다. 네 번째인 오늘은 태백에다 우리나라의 두 번째 자동차경기장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는 한국모터사이클연맹(KMF)의 신준용 회장이 일본에서 들여온 1977년형 실버 레이스(Silver Wraith)Ⅱ를 타 보게 되었다. ‘세계에서 최고 중의 최고 차’라고 불리는 롤스로이스를 이렇게도 다양하게 시승하는 기회를 가진 나는 실로 행운아라고 아니할 수 없으리라. 로이스와 롤스의 만남으로 회사 설립 1938년 팬텀Ⅲ 개량한 레이스 내놓아 이 기사를 읽는 독자를 위해서 역시 롤스로이스사의 약력과 특징을 우선 소개해보겠다. 프레데릭 헨리 로이스는 1863년 영국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피터보로에 있는 기관차 공장의 견습생으로 인생을 출발했다. 1884년, 21세의 이 청년은 자본금 70파운드(약 200달러)를 갖고 로이스사를 일으켰다. 그의 작은 회사는 발전기와 전기기중기를 만들고 있었는데 외제보다도 튼튼하여 인기가 있어서 사업은 확장되어 1899년에는 자본금이 3만 파운드(약 8만 달러)에 이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1903년, 로이스는 프랑스제의 데코빌이란 중고차를 구입하여 더 이상 개량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이것저것 손보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동차의 구조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얻어 스스로 차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여 드디어 최초의 로이스차가 1904년 4월 1일에 나왔다. 2기통 1.8X 엔진을 얹은 차는 딴 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게 조용히 움직였다. 그렇지만 자동차판매에 익숙지 못했던 로이스는 이때 훌륭한 파트너를 얻게 된다. 그의 이름은 찰스 스트워트 롤스. 롤스는 부유한 귀족 출신으로 자동차의 매력에 사로잡혀 스피드 기록 등에 도전하면서 런던에서 값비싼 수입차만을 판매하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로이스의 차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렸다. 롤스는 곧 로이스가 제작하는 모든 차종에 롤스로이스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조건으로 로이스에 합류하여 1906년 3월에 롤스로이스주식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 때의 자본금이 6만 파운드(약 17만 달러)였다. 롤스로이스차는 2기통뿐만 아니라 3, 4기통 엔진도 만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자동차에 얹는 엔진은 거의 모두 2기통짜리였는데 롤스로이스는 이 개념을 깨는 새로운 차원의 호화로운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것은 곧 대인기를 얻었고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열린 자동차경주까지 휩쓰는 바람에 그 성가는 날로 높아져갔다. 1904∼1907년까지 생산 총대수는 100대를 넘지 못했는데, 최초의 진정한 롤스로이스는 6기통 6.75X 40/50마력의 실버 고스트(Silver Ghost, 은빛 유령)란 이름이 붙은 차로 1906년 런던모터쇼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때 벌써 그 유명한 ‘그리스의 파르테논’을 본딴 라디에이터 그릴을 썼고 그 뒤 롤스로이스의 색다른 그릴은 세계 최고의 차라는 상징적 역할을 오늘날까지 톡톡히 해왔다. 실버 고스트는 조용한 엔진, 뛰어난 달리기, 높은 품질을 지녀 롤스로이스사는 ‘세계 최고의 차’라고 자랑스럽게 선전했다. 한편 1910년 롤스는 그가 타고 있던 라이트 복엽비행기가 불과 7m 상공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세상을 뜬다. 그러나 롤스로이스는 생산을 계속했고 1925년까지 6천 대의 실버 고스트가 만들어졌다. 성능이 좋고 차체가 견고하여 1차대전 때는 이 차가 장갑차로까지 이용되어 유명한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이 차로 큰 활약을 보였다. 롤스로이스는 항공기 엔진제작에도 손대, 별도회사지만 롤스로이스의 항공엔진은 지금도 이름이 높다. 전설적인 실버 고스트가 1920년대 이후 팬텀 Ⅰ, Ⅱ, Ⅲ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1933년, 로이스마저 세상을 하직한다. 1938년에는 팬텀Ⅲ을 개량한 레이스(Wraith)가 나왔다. 2차대전 뒤인 1949년에 실버 돈(Silver Dawn), 50년엔 팬텀Ⅳ가 나왔고 92년까지 팬텀Ⅵ로 변신한다. 1955년부터 실버 클라우드 시리즈가 65년까지 Ⅰ∼Ⅲ이 생산되었고, 66년서부터 실버 섀도(Silver Shadow)가 선보였다. 이밖에 실버 스피릿, 실버 스퍼, 카마르구 등도 생산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도 롤스로이스 생산량은 많아야 1년에 1천몇백 대 수준이어서 겨우 1985년에 이르러 10만 번째 차가 나왔을 정도다. 한 대 한 대 모두가 수작업으로 만들어져 차의 완성도는 완벽에 가까운 차원에 도달한다. 롤스로이스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국가원수, 귀족들이 타는 최고의 프레스티지를 가진 호화차로 군림하고 있지만 경영이 어려워져 곡절 끝에 BMW 산하에 들어갔다. 실버 레이스Ⅱ, 77년 제네바 모터쇼 데뷔 ‘구름에 달 가듯이’ 안락한 승차감이 일품 약속한 날짜에 나타난 1977년형 실버 레이스Ⅱ는 남들을 압도하는 스타일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검은 차체는 요사이 만들어진 고급차의 페인트칠과 비교해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6번이나 칠하고 굽고 또 칠하고 했으니까 페인트 칠 자체가 두툼한 층을 구성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롤스로이스는 스타일의 변경을 자주하지 않고 오랜 세월 같은 스타일링을 고집해서 70년대의 롤스로이스는 여러 모델의 모습들이 거의 비슷하다. 예를 들어 내가 1987년 프랑스 파리에서 타본 72년형 실버 섀도와도 이 레이스Ⅱ는 거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내장도 마찬가지다. 외형은 같지만 72년형 실버 섀도는 수동식인데 반해 오늘 타보는 77년형 레이스Ⅱ는 자동변속기가 컬럼식으로 운전대의 축에 달려 있다. 미국식과는 정반대인 것이 영국식(일본도 마찬가지) 교통법규와 운전석 배치 등인데 이 변속시스템만은 일본, 유럽식과도 달리 미국식을 따른 것이 약간 기이하다고 생각되었다. 이 차는 77년에 제네바모터쇼에서 데뷔했다. V8 6.75X 엔진을 얹었고 단일차체 구조다. 실버 레이스는 1938년에 최초의 모델이 나와 6기통 4.3X 엔진을 달았던 것이 1955년에 이르러 4.9X로 배기량이 늘었다. 2001년에 내가 타본 삼성교통박물관 소장의 1955년형 투어링 리무진도 실버 레이스를 대형화한 것이었다. 실버 레이스Ⅱ는 겉모습도 날씬한 몸매로 변신했고 얹은 엔진도 6.75X로 커졌다. 가속판을 살짝 건드렸는데도 차는 경차 이상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튀어나가려고 한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제동장치가 엔진에 비해서 너무나 둔하다. 한번 밟으면 제동이 걸리지 않고 오히려 더 미끄러져 나가는 기분이어서 처음 이 차를 타는 사람은 약간 불안할 것 같다. 더 강하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만 제동의 반응이 온다. 앞창을 통해 보이는 길게 뻗은 엔진뚜껑 끝에는 앞서 말한 ‘파르테논 신전’ 모습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있고 그 위엔 또 하나 너무나도 유명한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엠블럼이 놓여져 있다. 이것은 1911년에 젊은 몬태구가 제안한 것을 칠스 사이크스가 날개를 달고 나는 듯한 여신 모습으로 디자인한 황홀의 영혼(Spirit of Ecstasy) 상이다. 이것 하나만 갖고도 롤스로이스의 존재가치를 알리는데 충분하다. 어디를 가나 이 엠블럼은 바람을 가르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자동차 전체가 하나의 미술품이다. 차 안팎의 크고 작은 그 어느 부품을 보아도, 그것을 전담하여 만든 장인(匠人)들의 정성어린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크롬도금을 한 제아무리 작은 부품이라도 100년 이상 버틸 수 있는 광택을 지니고 있다. 좌석은 역시 최고급 가죽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바느질하여 만들었기에 25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도 건재하다. 특히 좌석의 쿠션감각은 오리지널 그대로 살아 있어서 앉은 촉감이 마치 구름 위에 떠받쳐져 있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달릴 때 절묘한 서스펜션의 도움으로 어떠한 상태의 도로조건에서도 그야말로 ‘구름에 달 가듯이’ 내 엉덩이에 아무런 충격을 주지 않는다. 이 승차감은 영국 귀족들을 모시는 것을 기본으로 한 덕분인지 최고로 안락하다는 미국의 캐딜락과 링컨의 좌석마저도 상대가 되지 못한다. 눈앞에 일자로 길게 로즈우드 패널이 달려 있는 곳에 가장 왼쪽부터 라이트를 켜는 손잡이와 시동을 걸기 위해 키를 꽂는 곳이 원형모양으로 모여있고, 다음에는 10개의 자동차 각 부위의 상태를 알리는 표식이 5개씩 두 줄로 네모나게 배치되어 있다. 이어서 그 오른쪽에는 속도계, 그 다음에는 같은 크기의 큰 원반 속에 전류, 오일, 냉각수 온도 및 연료상태를 알리는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또 오른쪽에는 통풍구멍이 있고 이어서 외부온도를 알리는 계기가 붙어 있다. 이 장치는 딴 차에서는 볼 수가 없는 독특한 것이다. 그리고 시계와 통풍구멍이 나열된 다음, 작은 물품을 수납하는 콤파트먼트로 끝난다. 패널에 달린 모든 계기는 원형으로 되어 있고, 이 시스템은 고집스럽게 70∼90년대의 모든 차종에 똑같은 구조와 크기로 통일되어 있다. 최신 모델의 롤스로이스도 같은 패널모양이기에 시대에 약간은 뒤떨어진 인상을 주지만 영국인의 전통을 자랑하는 그 고집을 누가 꺾는단 말인가. 8기통 6.75X 엔진 90년대까지 사용 하이빔과 경음기, 발로 밟아서 조작 8기통 6.75X 212마력 엔진도 1968년에 팬텀Ⅵ에 얹은 뒤 90년대까지 모든 모델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엔진에 대한 내용을 알리는 제원도 공표된 것이 없다. 자동차 출고 때 엔진은 ‘충분(sufficient)하다’는 딱지 한 장만 붙이고 고객에게 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세부적인 제원 정보도 없이 다만 6.75X 배기량의 엔진이 달린 차로 제공되는 롤스로이스이지만 그 신용도와 애프터서비스는 세계 제일이다. 사하라사막에서 롤스로이스가 고장났다. 그 상황을 알렸더니 헬리콥터로 기술자가 곧 날아와 수리를 한 다음 “모래가 들어가서 그랬는데 엔진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곧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다. 롤스로이스는 애프터서비스에도 완전무결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25년 넘은 이 77년형 실버 레이스Ⅱ는 정말 경쾌하게 잘도 달린다. 배기량이 6.75X나 되기 때문인지 차를 끄는 힘이 마치 어른이 어린애를 다루는 식으로 가뿐하게 느껴진다. 달리면서 속도를 올린다. 그런데 시속 100km에 속도계의 바늘이 옮겨지자마자 “삐삐삐……”하고 경고음이 울린다. “천하의 롤스로이스가 시속 100km밖에 내지 못한다니 될 말인가” 하고 계속 더 밟아도 경고음은 꺼지지 않고 시끄럽게 자꾸만 소리를 낸다. 신경이 거슬려서 그만 속도를 낮추어 버렸으나 이 차의 능력이라면 시속 200km 가까이는 충분히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핸들에 자유도가 없어서 좌우로 조금만 틀어도 곧 반응하기 때문에 고속운전에서는 위험할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재미난 것은 하이빔으로 헤드라이트를 조정하는 장치와 “빵빵” 하는 경적소리를 내는 장치 모두가 브레이크 페달 왼쪽 바닥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나도 옛날에 발로 밟아서 하이빔을 조정하는 미국차를 몰아 본 적이 있었는데 경적소리마저 발로 밟아서 낸다는 것은 롤스로이스가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일 것이다. 이 차의 고급감을 더해주는 장치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운전석과 뒷좌석을 가르는 칸막이 유리창을 운전석에서나 뒤에서 버튼 하나로 오르락내리락하게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이나 연인끼리 밀담을 나누고 싶을 때 이 칸막이를 올리면 앞좌석과 뒷좌석은 완전히 차단된다. 롤스로이스는 여기까지 신경을 써서 차를 만들어준다. 직진성, 접지감각, 방음 그리고 코너링 모두가 25년 된 차 같지 않고 끄떡없다. 독일의 벤츠와 BMW 등이 차를 만드는 기본철학과는 다른 영국인의 고집―성능 좋은 차보다도 품위 있는 완성된 차를 만들자는 태도에 나는 머리를 숙이면서 이 차에서 내렸다. 1977년형 롤스로이스 실버 레이스Ⅱ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5270×1490×1890mm 휠베이스 3060mm 트레드 앞/뒤 1540/1540mm 무게 2245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8기통 OHV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104.1×99.1mm 배기량 6750cc 압축비 9.1 최고출력 212마력/4000rpm 최대토크 ㅡ 연료공급장치 카뷰레터 연료탱크 크기 107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4단 기어비 ①/②/③ 3.82/2.63/1.45 ④/⑤/ⓡ 1.00/ㅡ/4.30 최종감속비 ㅡ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더블 위시본/트레일링 암 브레이크 앞/뒤 모두 디스크 타이어 앞/뒤 모두 235/70 HR15 성능 최고시속 195km 0→시속 100km 가속 ㅡ 시가지 주행연비 3.8km/ℓ 값 ㅡ
BMW 760Li·730Li & 뉴 325Ci BM.. 2003-08-14
국내 수입차시장 부동의 1위를 질주하고 있는 BMW코리아가 매우 특별한 시승회를 마련했다. 기함 7시리즈에 새로 추가된 베이식 모델 730Li와 최상급 760Li를 비롯해 올 하반기 시판예정인 325Ci 페이스리프트, 그리고 Z4와 X5 등 주요 모델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게다가 장소는 제주도. 환상의 시승 코스에 BMW와의 만남은 충분히 기대할 만했지만 날씨가 변수였다. 장마전선의 한가운데 일정이 속해있었기 때문. 1박 2일 스케줄 대로라면 시승 시간도 넉넉하지 않았다. 아무튼 사진기자와 함께 제주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이른 아침, 세찬 비가 내렸지만 비행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 것이다. 760Li·730Li V12와 직렬 6기통의 차이는 깊어 제주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전방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비가 오는가 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쾌청한 하늘을 내보이기를 몇 차례 되풀이했다. 하지만 청정지역에서의 비 개인 후 기분은 날아갈 듯 상쾌했다. 멋진 풍광 속 아스라이 뻗은 도로는 무작정 달리고싶은 욕구를 쉽게 달랠 수 없을 만치 매혹적이었다. BMW코리아는 A, B 2개의 시승 코스와 구간별 길 안내 지도인 로드맵을 준비했다. 캠프는 중문관광단지의 S호텔. 760Li와 함께 중문에서 송악~사계리 해안도로를 지나 서부관광도로(1117번 지방도), 1100도로를 돌아오는 B코스 총 82km 구간을 달렸다. 760Li는 V12 6.0X 엔진을 얹은 BMW 7시리즈의 최고봉. 이전 세대 750iL은 V12 5.4X 326마력 엔진을 얹었지만 이번 760Li의 V12 엔진은 6.0X DOHC 445마력으로 전혀 새로우면서 보다 강력하다. 또한 V12 휘발유 엔진으로는 세계 처음으로 직접연료분사방식을 썼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른 7시리즈 모델과 보디 스타일의 차이는 없고 18인치 대형 휠과 사이드보디의 V12 로고가 위압적으로 번쩍인다. 실내에는 7시리즈의 선진성을 나타내는 i드라이브(Drive) 시스템과 둥근 컨트롤러가 빛난다. 여러 번 타 보았지만 여전히 낯선 느낌을 주는 운전석은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패키징 때문. IT시대에 사는 경영진에게 무언가 암시를 주는 듯하다. 실내는 또한 천장의 알칸타라 가죽 등 더욱 고급스런 내장재를 써 최상급 모델의 분위기를 냈고, 뒷좌석에서 TV와 DVD 등을 볼 수 있는 모니터와 이를 조정하는 앞좌석과 같은 둥근 컨트롤러를 마련했다. 모니터를 볼 때 햇빛이 신경 쓰인다면 간단한 버튼 조작으로 양쪽 윈도에 준비된 선바이저를 펼치면 된다. 뒷좌석 전용 에어컨 또한 빠짐이 없다. 파워 시트는 등받이의 각도, 머리 받침의 높이, 시트 면적의 길이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조정 기능을 가지며 시트 히터, 메모리 기능도 갖추고 있다. 덧붙여 머리 받침은 좌우가 접혀 고정시키기 쉬워진다(다만 한쪽으로 머리에 힘을 주면 푹 꺼지는 단점이 있다). 최고출력 445마력, 최대토크 61.2kg·m의 엔진 파워는 길이 5m, 무게 2톤이 넘는 보디를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로 가속하는데 불과 5.6초만 필요로 할 뿐이다. 부드럽고 조용하게 움직이다가 액셀 페달에 힘을 가하면, 과감하게 최대회전수까지 솟구치는 감각은 무리 없이 깨끗하다. 흡입공기량을 밸브에서 직접 제어하는 밸브트로닉(Valvetronic)과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인 더블 바노스(Double VANOS) 등을 쓴 첨단 엔진 기술은 시프트 바이 와이어에 힘입은 자동 6단 스텝트로닉 트랜스미션, 그리고 롤(roll)과 댐핑 모두 전자제어되는 섀시와 합쳐져 완벽한 달리기 성능을 나타낸다. 아무래도 쇼퍼 드리븐에는 아깝다. 한적한 직선도로에서 풀 드로틀을 시도하자 순식간에 속도계 바늘이 180km를 넘어선다. 시속 200km에서도 불안한 거동은 전혀 없다. 압도적인 가속성능은 그야말로 12기통의 위력을 실감하게 만들어 준다. ZF제 6단 AT는 노멀과 스포츠 외 스티어링 휠 앞뒤의 버튼으로 조작하는 매뉴얼 모드도 갖추었지만, 노멀 상태의 시프트 프로그램이 뛰어나므로 거의 필요가 없다. 760Li의 서스펜션은 EDC-C(전자제어 댐퍼 컨트롤)에 의해 노면 상황에 따라 무단계·연속적으로 댐핑을 조정한다. 따라서 대형차로는 믿기 어려운 경쾌한 거동을 보여준다. 트랙션을 높여주는 DTC(Dynamic Traction Control)와 더불어 코너에서의 안정감도 뛰어나다. 이어서 타본 730Li는 분명 힘이 부쳤다. 직렬 6기통 231마력 엔진은 훌륭하지만 7시리즈의 보디를 능숙하게 다루기에는 버거워 보였다. 가속 때는 상급 7시리즈 모델과 다르게 액셀 페달을 밟는 발에 힘이 들어갔고, 심장은 다소 힘에 겨운 신음을 토해냈다. 힘의 세기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핸들링은 만족스러운 부분. i드라이브 시스템을 비롯한 각종 첨단 및 편의장비는 그대로다. 물론 뒷좌석용 모니터와 컨트롤러는 제외된다. 베이식 모델인 만큼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것. 한편 뒷좌석에 연이어 탄 사진기자는 편안함은 760과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730Li와 760Li의 값 차이는 1억 2천만여 원에 이른다. 아이러니한 얘기지만 직접 운전한다면 상급 모델을, 뒷좌석에만 탄다면 아랫급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2003년형 325Ci 컨버터블 바람과 파도의 소리를 들으며 325Ci와 함께는 산록도로와 1112, 1117번 도로를 돌아오는 A코스 124km 구간을 달렸다. 변덕스런 날씨 탓에 소프트톱을 몇 번이나 벗기고 닫았는데 버튼 하나로 완벽하게 작동해 무척 편리했다. 더욱이 바람과 파도의 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오픈 에어링이란! 325Ci는 지난 2001년형 모델에서 323Ci가 업그레이드된 모델로 이번에 2003년형으로 거듭났다. 헤드램프 디자인과 에어댐 주위가 보다 날렵하고 다이내믹해진 모습이고, 전체적인 변화는 크지 않다. 엔진 또한 직렬 6기통 2.5X DOHC 192마력 그대로다. 최고시속 234km, 0→시속 100km 가속 8.0초의 성능을 낸다. 기술적으로는 전방 시야를 넓힌 어댑티브 헤드라이트와 밝기를 높인 LED 리어 램프, 그리고 양쪽 윈도에 손목 등이 끼었을 때 자동으로 멈추는 트랩 릴리스 기능 등이 더해졌다. 고속 코너링 때 안정감을 높여주는 CBC(Cornering Brake Control) 기능도 새로 추가된 부분. 325Ci 컨버터블은 뛰어난 강성을 자랑하는 A필러와 뒷좌석 헤드레스트에 내장된 롤 바(roll bar)가 오픈 때의 전복사고에 대비한다. 듀얼 에어백과 앞/뒤 사이드 에어백까지 모두 6개의 에어백을 갖추고 있어 안전대책은 충분하지만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다면 이 모두가 소용없게 된다. 오픈 주행에서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이 바로 안전벨트를 매는 일이라는 얘기다. 트랜스미션은 수동 6단을 기본으로 자동 5단 및 6단 SMG(Sequential Manual Gearbox)가 옵션으로 마련된다. 시승차는 자동 5단을 얹었고, 수동 조작이 가능한 스텝트로닉 방식이다. 두툼하고 그립이 좋은 스티어링 휠은 스포티한 기분을 돋구고, 7시리즈와 달리 컴팩트한 보디는 보다 경쾌하게 내달린다. 코너가 연달아 이어지는 와인딩 로드에서 수동 모드로 기어를 바꾸며 달리는 맛이 짜릿하다. 변속은 빠르고 정확하게 걸리며 엔진 브레이크도 확실하게 반응한다. 앞 뒤 50:50의 무게 배분으로 빠른 코너링에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는다. 3천500rpm에서 터지는 24.97kg·m의 최대토크는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힘으로 달리기를 돕는다. 추월가속의 순발력은 민첩하고, 단단한 서스펜션과 몸을 잘 잡아주는 시트는 멋진 앙상블로 과격한 움직임에 대응한다. 다만 승차감이 나빠지는 것은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325Ci에는 2개 팀 4명이 타고 달렸는데, 생각보다 뒷좌석이 여유있고 편안했다. 이 부분도 325Ci의 장점이 될 것이지만 ‘BMW의 특별함’은 역시 운전대를 잡았을 때 헤어나기 힘든 매력에 빠진다는 점이다. 주요 제원 BMW 760Li BMW 730Li 크기 길이×너비×높이(mm) 5169×1902×1492 ← 휠베이스(mm) 3130 ← 트레드 앞/뒤(mm) 1578/1582 ← 무게(kg) 2180 1820 승차정원(명) 5 ← 엔진 형식 V12 DOHC 직렬 6기통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 보어×스트로크(mm) 89.0×80.0 89.6×80.0 배기량(cc) 5972 2979 압축비 11.3 10.2 최고출력(마력/rpm) 445/6000 231/5900 최대토크(kg·m/rpm) 61.16/3950 36.58/3500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 연료탱크 크기(ℓ) 88 ←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6단 자동 6단 기어비 ①/②/③ 4.17/2.34/1.52 ← ④/⑤/⑥/R 1.14/0.87/0.69/3.40 ← 최종감속비 3.15 3.73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멀티링크 스트럿/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V디스크(ABS) ← 타이어 앞/뒤 245/50 R18 225/60 R17 성 능 최고시속(km) 250 237 0→시속 100km가속(초) 5.6 8.3 시가지 주행연비(km/ℓ) ㅡ ㅡ 값 2억3,510 1억1,150
Mercedes-Benz CL55 AMG 한여름 낮.. 2003-08-13
달콤하지만 화끈했던 한여름 낮의 단잠에서 깨어났다. 꿈과 현실의 구분이 흐릿한, 몽롱한 순간이 스멀스멀 흩어질 즈음 족히 10년은 기억 속에 자리할 몽환 같은 실재는 예의 우아함 그대로 시야에서 멀어졌다. 2003년 7월의 어느 하루, 메르체데스 벤츠 CL55 AMG와의 만남은 되살릴 수 없을 맛깔스런 오침처럼 부피 큰 아쉬움을 남기고 그렇게 끝이 났다. 속세로 내려온 천상계의 마차 90년대 메르체데스 벤츠는 격동의 시대를 보냈다. 프레스티지 세단 시장의 숙적 BMW가 건넨 금단의 열매―V12 엔진의 750iL―를 집어먹은 순간 S클래스는 순식간에 공룡(dinoSaur)으로 변모했다. ‘사상 최악의 디자인’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써 자존심을 한껏 구긴 벤츠는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모토로 시급히 체질 개선에 들어갔고 95년 W210(6세대 E클래스)에서 출발한 새로운 디자인 방향은 98년의 신형 S클래스(W220)로 완성되었다. W220의 우아한 스타일링에 대한 찬사가 채 식지도 않은 이듬해 제네바 오토살롱, 벤츠는 호화 쿠페 CL을 선보이며 90년대 초 그들을 괴롭혀온 혹평에 마침표를 찍었다. S클래스의 플랫폼을 바닥에 깔고 절정에 달한 디자인 펜촉으로 그려낸 아름다운 2도어 쿠페 보디와 최고급 장비로 포장한 CL클래스에 세상은 다시 ‘바퀴 달린 것 가운데 지구상 최고’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01년 국내에도 정식 수입된 ‘지상에서 가장 고급스런 쿠페’는 그러나, 2억7천만 원에 이르는 값과 수요쪾공급의 절대부족으로 정작 지상도로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천상계의 탈것에 불과했다. 고작해야 1년에 1~2대쯤이나 팔리는 집 한 채 값의 차를 두고 독자의 열망이나 전문지 기자의 소명의식을 앞세워 수입사 측에 시승차 운영을 다그치기란 참 염치없는 일이었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수입차 시장 환경이 나아질 10수년쯤 뒤로 예상했지만, 만남의 날은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메이커조차 쉽사리 나서지 못한 CL과의 만남을 주선한 주인공은 지난 2월 포르쉐 튜너인 겜발라와 벤츠 튜너 로린저의 공식 수입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피봇 모터테크&디자인. 정통 유로피안 스타일의 튜닝카로 차별화된 수입차 시장을 이끌어가겠다는 호기를 지닌 이 회사는 주력상품인 로린저 S500과 SL500 에디션의 국내 시판을 기념해 선뜻 자사 전시장(피봇 모터스)에 모셔두었던 CL55 AMG를 독자를 위한 자축선물로 풀어놓았다. CL55 AMG는 V8 5.0X 엔진의 CL500을 바탕으로 메르체데스-AMG가 빚어낸 궁극의 머신이다. 1967년 창립해 70년대부터 벤츠 레이싱의 세미 워크스 팀으로 명성을 날린 AMG는 레이스에서 얻은 노하우를 고스란히 도로용 고성능 벤츠에 이식하며 공인 튜너로 성장했다. 90년대의 협력관계를 거쳐 지난 99년 메르체데스-AMG로 이름을 바꾸고 벤츠 산하의 고성능 차 디비전으로 자리잡은 AMG는 이후 의욕적인 고성능 모델을 선보이며 BMW M 버전, 아우디 S 라인에 맞서갔다. AMG와 손잡은 지상에서 가장 고급스런 쿠페 2000년 선보인 CL55 AMG는 지난해 베이스 모델 CL의 마이너 체인지와 더불어 디자인 일부를 개선하고 SL55, S55 AMG와 함께 쓰는 V8 5.5X 수퍼차저 500마력 엔진을 새로운 동력원으로 삼았다. 기자의 손에 주어진 스마트키의 보금자리는 2002년형 모델로 이미 C55와 CLK55 AMG로 거처를 옮긴 전 세대 V8 5.5X 수퍼차저 360마력 엔진이 유물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CL55 AMG가 여전히 지상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강력한 쿠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아한 S클래스의 연장선상에서 출발해 군살을 덜어내고 세련미와 관능미를 더한 CL의 스타일링은 원작을 뛰어넘는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여물대로 여문 CL의 늘씬한 실루엣은 근육질의 앞 범퍼와 사이드 스커트, 탄력 있게 올라붙은 엉덩이가 하체를 둘러싸며 힘찬 AMG 스타일을 완성한다. 팽팽한 볼륨이 두드러진 휠아치 안에는 전자제어식 유압 스트럿과 재래식 댐퍼를 조합한 액티브 보디 컨트롤(ABC) 서스펜션을 두고 앞뒤 각각 245/40 ZR19, 275/35 ZR19 사이즈의 미쉐린 파일럿 스포트 타이어가 빈틈없이 들어앉았다. 하나같이 AMG V8 엔진이 토해내는 360마력의 출력과 54.1kg·m의 억센 토크를 온몸으로 떠 안은 채 스피드 넘치는 CL55 AMG를 노면에 붙들어맬 빛나는 조연들이다. 무겁고 긴 도어를 열고 실내로 입성하자 스티어링 칼럼과 가죽시트가 앞뒤로 물러나며 운전자를 영접할 채비를 갖춘다. 무늬목 장식과 천연가죽, 알칸타라 내장재로 단장한 운전자 중심의 인테리어에는 S500 수준의 고급 편의장비가 가득하다. S클래스보다 헤드룸이 20mm 낮고 프레스티지 세단 못지않게 화려한 CL55의 운전석은 이 차가 S클래스 급의 운전환경과 세련된 감각 안에서 스포티한 운전의 즐거움을 찾는 벤츠 고객을 타깃으로 삼고 있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운전자와 옆자리 승객을 제외한 +α의 뒷자리 동반자는 등받이 모서리에 달린 레버를 당겨 살짝 제치고 올라타면 그만. 허리를 꺾은 채 대시보드로 물러났던 앞 시트는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오고 뒷사람의 무릎이 등받이에 닿으면 30mm 정도 물러나며 레그룸을 확보한다. 이그니션 키 홀에 꽂힌 스마트키를 살짝 돌리자 부드러운 시동음과 함께 트윈 머플러를 통해 번져 나오는 박력 있는 배기음이 출발을 재촉한다. 시트를 당겨 앉고 사이드 볼스터를 한껏 조여 수초 후 시작될 CL55 AMG와의 고성능 데이트를 준비한다. 액셀 페달을 지긋이 누르자 가볍게 출발하고 우아하게 미끄러져 나간다. 수퍼차저와 레이스 경량화 기술을 바탕에 깔고 신뢰성 높은 3밸브 디자인과 트윈 스파크 이그니션, 가변 흡기 매니폴드 등의 첨단기술을 버무린 V8 5.5X 엔진은 벤츠의 이미지에 걸맞은 세련된 감각과 스포티한 성능을 조화롭게 넘나든다. 다루기 편한 경량 V8 엔진의 CL55는 최고출력이 360마력에 이르는 고성능 차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매끄럽게 움직인다. 품위와 세련미 잃지 않은 아름다운 고성능 점진적으로 올라간 속도계가 어느새 시속 100km를 가리키고 있지만 한치의 흔들림이 없고 잘 짜여진 실내공간에는 품위와 안락함이 여전하다. 심심한 고성능이라고? 타코미터 바늘이 2천rpm을 넘지 않았다면 분명 옳은 판단이다. 시속 60km에서 터치 시프트 5단 AT를 2단으로 고정하고 액셀 페달을 힘껏 밟는 순간 ‘덜컥’하며 머리가 젖혀지고 막힘 없이 치솟는 rpm과 함께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는 득달같은 가속이 이뤄진다. 차창 밖 풍경이 새로운 차들로 메워진 10여 초 뒤 시속 160km를 넘어가는 속도계를 확인하고는 비로소 수습에 나섰다. “휴~.” 예상한 마지노선을 너무나도 간단히 뛰어넘은 CL55의 성능에 감탄과 안도가 뒤섞인 한숨이 새어나왔다. 시속 100km 이상의 고속에서 반복적인 급차선 변경과 추월가속이 두어 번 이어진 뒤에야 CL55가 보여준 가슴 졸이는 고성능이 예측가능하고 즐거운 운전재미로 다가왔다. 시속 60km에서 보여준 세련된 몸놀림이 시속 120km에서도 한결같이 이어진다는 놀라운 사실이 CL55의 고성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평탄한 도로에서 노면과 타협하며 안락한 승차감을 끌어내던 말랑말랑한 섀시는 완만한 커브가 굽이굽이 감도는 지방도로 들어서자 ABC 서스펜션의 제어 아래 금세 강건한 돌덩이처럼 탈바꿈한다. 시속 100km를 넘나들며 코너를 파고들어도, 바깥쪽으로 무게를 실어 몸을 던져봐도 나지막이 내려앉은 차체는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한 채 부드럽고 빈틈없는 핸들링으로 도로를 정복해간다. AMG가 조율한 섀시는 한계치가 높지만 이마저 넘어설 때면 주행안정장치 ESP가 즉각 진압에 나선다. CL55 AMG는 제원상 최고시속 250km(속도제한), 0→시속 100km 가속 6.0초의 성능을 내지만 3시간 여의 짧은 시승 동안 이를 온전히 받아줄 도로는 찾아내지 못했다. V8 5.5X 엔진이 품은 잠재력 중 절반도 채 끌어내지 못했지만, 폭발적이고 때론 과격하기까지 한 여느 고성능 스포츠카와 뚜렷이 구분되는 ‘아름다운 고성능’을 체험한 것은 크나큰 수확이었다. 자동차 탄생과 함께 키워온 스피드와 낭만적인 고출력에 대한 끝없는 열망. 벤츠는 이 문제를 AMG와 맞잡고 풀어내 CL55 AMG라는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시승차 협조 및 문의: 피봇 모터스 ☎ (02)6002-5000 “로린저, 겜발라와 함께 하는 업그레이드된 튜닝 문화, 기대해도 좋습니다” 이명헌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피봇 모터테크&디자인의 이명헌 사장은 인터뷰 시작과 함께 “리치 마케팅에 기본을 둔 차별화된 수입차 시장을 이끌어갈 것”이라며 포부를 드러냈다. 이 사장은 또한 정식 라이선스 계약에 근간을 둔 ‘가격 정찰제와 국내 규정에 맞는 다양한 튜닝 패키지, 전국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세부적인 사업방향을 제시하며 “지금까지의 그레이 임포터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지난 2월 포르쉐 튜너 겜발라의 수입 발표회를 열었던 피봇 모터테크&디자인은 얼마 뒤 벤츠 전문 튜너 로린저와도 공식 딜러 계약을 맺으며 수입 튜닝카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컴플리트 튜닝카 및 전용 에어로파츠의 수입·판매를 시작으로 앞으로는 튜닝 파츠의 라이선스 생산과 본사 지침에 따른 퍼포먼스 튜닝까지 실시할 예정. “우선 제대로 된 세일즈 마켓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예정입니다. 애프터서비스 시설과 전문인력 양성은 기본이지요. 전국적인 네트워크란 곧 벤츠 코리아와 한성자동차의 전시장이 자리잡은 곳이라면 로린저와 겜발라의 쇼룸도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린저, 겜발라와 함께 하는 업그레이드된 튜닝 문화를 기대해도 좋습니다.” 현재 피봇 모터테크&디자인이 선보인 모델은 로린저 패키지로 단장한 S500L 에디션과 SL 에디션(사진) 등 두 가지. 1억9천540만 원의 S500L은 지난 7월에 한 대 팔려 피봇 모터테크&디자인의 출고 모델 제1호로 기록되었다. SL500을 바탕으로 한 로린저 SL 에디션은 V8 5.0X 306마력 엔진과 터치 시프트 5단 AT 등 기본적인 메커니즘 구성이 베이스 모델 그대로. 앞뒤 각각 245/35 ZR19, 275/30 ZR19 사이즈 타이어에 로린저가 자랑하는 경합금 휠 LM6 시리즈를 더하고 범퍼 스포일러와 사이드 스커트로 구성된 전용 에어로 파츠 세트로 단장해 역동적인 분위기를 물씬 살렸다. 값은 1억9천870만 원. 퍼포먼스 튜닝에 초점을 맞춘 겜발라는 인증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지만 국내 시판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피봇 모터테크&디자인은 정식 인증과 더불어 체계적인 전용 튜닝 프로그램이 마련되는 올해 안에 겜발라의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피봇 모터테크&디자인 ☎ (02)6002-3000, www.pivotmotortech.com 메르체데스 벤츠 CL55 AMG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993×1857×1398mm 휠베이스 2885mm 트레드 앞/뒤 1577/1578mm 무게 2320kg 승차정원 4명 엔진 형식 V8 수퍼차저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97.0×92.0mm 배기량 5439cc 압축비 10.5 최고출력 360마력/5500rpm 최대토크 54.1kg·m/3150~45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88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588/2.186/1.405 ④/⑤/ⓡ 1.000/0.831/3.160 최종감속비 2.82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2도어 쿠페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4링크/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45/40 ZR19, 275/35 ZR19 성능 최고시속 250km 0→시속 100km 가속 6.0초 시가지 주행연비 ㅡ 값 ㅡ
푸조 307 2.0 유럽 베스트셀러카의 매력 확인하.. 2003-08-11
유럽 사람들의 소형 해치백 사랑은 대단하다. 특히 오늘 시승한 푸조 307이 속한 C세그먼트 해치백 시장은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부문이다. C세그먼트에서 경합을 벌이고 있는 해치백으로는 폭스바겐 골프, 오펠 아스트라, 포드 포커스, 푸조 307 등이 대표적이다. 유럽의 소형 해치백 시장에서 오랫동안 절대강자의 지위를 누려온 차는 폭스바겐 골프였다. 그러나 지난 2001년 봄 제네바 오토살롱에서 푸조 307이 데뷔하자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유럽의 자동차 전문지들은 한결같이 307의 놀라운 변신을 칭찬했고,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푸조 307은 이듬해 ‘2002 카 오브 더 이어’에 올랐다. 판매도 순조로워 지난해 유럽 시장에서 골프를 제치고 베스트셀러카가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보수적인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골프에서 307로 돌아서게 했을까. 원박스 디자인의 풍만한 스타일 자랑 개방감 뛰어나고 실내공간도 넉넉해 푸조 307은 컨셉트카 프로메테에서 보여주었던 원박스 디자인을 이어받았다. 원박스 디자인은 최근 소형차에서부터 대형차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쓰이고 있는 새 경향. 한정된 크기(주로 길이와 너비) 안에서 실내공간을 넓히려면 톨보이 혹은 원박스 스타일이 당연한 귀결이다. 다만 둔해 보이는 원박스 스타일을 어떻게 멋진 디자인으로 빚어낼지, 키가 커지더라도 주행성능에 손실을 입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더 고심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잘 절충하는 것이 결국 한 자동차와 그 메이커의 역량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푸조 307은 이 같은 문제를 아주 멋들어지게 해결해냈다. 307의 얼굴은 아랫급 모델 206을 많이 닮았다. 한눈에 봐도 날렵한 인상을 풍기지만 보디 옆면은 앞모습과 달리 풍만하다. 쐐기(wedge) 모양으로 앞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벨트 라인과 크지 않은 옆창 면적 때문에 큰 키도 자연스럽다. 뒷모습 역시 굴곡진 보디와 어울리는 빵빵한 엉덩이를 지녔다. 운전석에 오른 첫 느낌은 현대 라비타와 비슷하다. 높은 시트 포지션과 캡포워드 스타일 덕분에 널찍이 뻗은 대시보드가 그런 느낌을 더한다. 겉에서 볼 때는 조금 풍만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지만 실내에 들어서면 작은 미니밴에 가까울 정도로 여유로운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 느낌의 대부분은 높은 지붕 덕분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승객의 무릎이 닿는 도어 트림 부분을 어김없이 안으로 파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도어 암레스트가 무릎에 닿는 차들이 워낙 많아 제원표에 나온 실내 너비에 비해 좁게 느껴지는 차들이 많은 터라, 이런 배려는 실제 거주공간의 확대와 맞먹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 시트는 심하게 몰아 부치더라도 자세를 흩뜨리지 않을 만큼 몸을 잘 잡아준다. 실내 곳곳의 품질은 예전의 프랑스차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자동차회사간 디자이너들의 이동이 잦고 특히 폭스바겐 골프의 실내가 벤치마킹의 집중대상이 되면서 최근 나온 소형차들에서는 한 두 가지쯤 골프와 닮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 307의 실내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예전 프랑스차들의 인테리어는 독특하지만 독일차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307에서는 그런 느낌을 거의 받을 수 없다. 무늬만 독일차를 닮고 품질은 떨어지는 여느 차들과는 사뭇 다르다. 공간활용도는 RV로 착각될 만큼 뛰어나다. 트렁크는 입구가 조금 높고 좁은 편이지만 뒷좌석을 두 단계(더블 폴딩)로 접으면 해치백이 아닌 차로는 흉내낼 수 없는 넉넉한 짐 공간이 생긴다. 뒷좌석 등받이가 바닥과 평평할 정도로 완전히 눕지는 않지만 큰 흠은 아니다. 종이 접기라도 하듯 평평하게 접히는 뒷좌석은 등받이가 밋밋해 승객의 안락감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실내 곳곳에는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정리할 수 있는 수납공간이 많이 마련되어 있다. 시승차는 적산거리계가 이제 170km를 가리키는 새차지만 아이들링 때에 약한 진동이 느껴진다. 아마도 길들이기 없이 바로 가혹한 테스트를 시작한 탓인 것 같다. 앞으로 쭉 뻗은 캡포워드 스타일과 높은 시트 포지션 덕에 개방감은 무척 뛰어나다. 특히 앞유리창이 많이 누운 덕분에 보통 차로는 A필러로 가려질 만한 부분에 삼각 쪽창이 나있어 시계가 더욱 좋다. 운전에 적극 개입하는 팁트로닉 AT 품질 뛰어나고 프랑스적 기질 가득해 엔진 반응은 예민한 편이다. 액셀 페달을 깊게 밟으면 4천rpm 이후 레드존 근방까지 꾸준히 가속되고 엔진음도 경쾌하다. 무게가 1천313kg로 가벼운 편이 아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몸놀림이 가뿐하다. 속도를 높여 바람소리가 엔진소리를 넘어서기 전까지 운전석 사이드미러 부근에서 약한 풍절음이 들린다. 애써 잡아낸 흠이 이 정도이고, 직진주행성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팁트로닉 AT의 반응은 매우 인상적이다. 스포츠와 스노, 수동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이런 기능들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액셀 페달을 밟는 운전자의 습관에 따라 AT가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액셀 페달을 조금 깊숙이 밟아 킥다운을 했다 발을 떼면 한참이 지나도 기어가 윗단으로 변속되지 않는다. 기어가 계속 낮은 단수에 머무르기 때문에 높은 rpm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평소 AT 레버를 수동 모드에 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적극적으로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구미에 맞을 만한 세팅이다. 기어 레버를 수동으로 움직여야 할 횟수를 크게 줄일 수 있지만 그 반응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서스펜션의 반응도 매우 재미있다. 처음에는 조금 부드러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딱딱해진다. 저속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콱 밟으면 차체는 흔들림이 없는데 오히려 그 충격에 운전자의 몸이 들썩거릴 정도다. 비교적 탄탄한 서스펜션과 205/55 R16 사이즈의 큰 타이어 덕에 웬만한 코너는 운전자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돌아나간다. 키가 보통 승용차보다 큰 것이 전혀 의식되지 않는다. 차체가 균형을 잃었을 때 자세를 다잡아주는 ESP의 작동시기는 조금 빠른 편이다. 코너링에서는 약한 언더스티어 경향을 보이지만 브레이크 페달로 살짝 발을 옮기면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순식간에 앞바퀴의 접지력이 살아난다. 앞바퀴굴림 차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나 307은 그 정도가 평균치를 웃돈다. 얼마 전에 골프를 탔던 기억을 더듬어 굳이 비교하자면 골프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반응을 보여 듬직한 느낌을 준 반면 307의 반응은 약간 유동적이다. 바꿔 말해 307은 운전자가 어느 정도 기교를 부리며 운전하기에 좋은 차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승날은 307의 에어컨 냉각 팬이 쉴새 없이 돌아갈 만큼 무더웠다. 조금 크다싶은 냉각 팬 소음은 최근 몰아본 푸조차들의 공통적인 현상인 것 같다. 그러나 폭염 속에서 307과 보낸 이틀은 307이 왜 베스트셀러카가 되었는지 납득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307은 폭스바겐 골프와 맞먹는 품질과 동력성능에다 프랑스 기질이 넘쳐나는 세련된 스타일과 넓은 거주공간을 지닌 매력적인 차다. 국내에서는 고급옵션이 많이 들어간 탓에 307의 값이 골프보다 비싸지만 유럽에서는 대체로 값도 싸다. 이쯤 되면 골프의 골수 팬이 아니라면 한번쯤 흔들릴 만하지 않을까. 진정한 맞대결은 올해 말 신형 골프가 나온 뒤 시작되겠지만, 해치백의 인기 자체가 시들한 국내 수입차시장에서는 두 차가 손을 잡고 해치백시장 규모부터 늘리고 봐야 할 것 같다. 푸조 307 2.0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202×1746×1510mm 휠베이스 2608mm 트레드 앞/뒤 1505/1510mm 무게 1313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직렬4기통 DOHC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5.0×88.0mm 배기량 1997cc 압축비 10.8 최고출력 138마력/6000rpm 최대토크 19.4kg·m/41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60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4단 기어비 ①/②/③ 2.720/1.500/1.000 ④/⑤/ⓡ 0.710/ㅡ/2.450 최종감속비 3.65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5도어 해치백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토션바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05/55 R16 성능 최고시속 202km 0→시속 100km 가속 11.8초 시가지 주행연비 ㅡ 값 3,450만 원
포드 토러스 & 익스플로러 베스트셀러카로 확인한 포.. 2003-07-14
1900년 미국에는 3천만 마리의 말이 있었으나 자동차는 겨우 8천 대가 등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지방에서는 그 지역의 법으로 자동차가 마차와 마주쳤을 때는 정지하고 엔진을 꺼야 한다든지, 아니면 길가에 차를 세워 마차가 무사히 통과하도록 규제한 곳도 많았다. 웃지도 못할 사실이었다. 미국에서는 1893년 최초의 휘발유 엔진차가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라는 도시의 도로 위에 선보인 뒤로 무려 4천을 넘는 자동차 메이커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들이 만든 차들은 털럭거리며 달리다가 도중에 멈추기도 하고 20km도 못 달리다가 아예 주저앉기도 하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자동차 왕국인 미국을 이룩하는 데 모두 크게 공헌했다. 이러한 초창기에, 싼값으로 자동차를 제공한 헨리 포드의 성공은 미국 자동차역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올렸다. 그는 1863년 농장경영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전기기사의 길을 택했다가 새로 떠오르는 자동차를 보고 자신도 이 분야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여 디트로이트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는 여기서 1896년, 첫 자동차 콰드리사이클을 만들었다. 포드는 1899년 윌리엄 머피의 재정원조를 얻어 디트로이트자동차회사를 일으킨다. 그런데 포드는 경주차 제조와 레이스에 열중하여 머피는 이를 억제하려고 헨리 릴랜드를 생산고문으로 초빙했고, 포드는 노발대발하여 1902년 3월에 사직하고 말았다. 포드가 떠난 뒤 이 회사가 1903년에 만들어낸 차 이름은 포드가 아닌 캐딜락이었다. 1903년에 문 열어 올해로 100주년 맞이해 토러스, 80년대 어렵던 포드 구한 구세주 포드는 1902년 새로운 재정후원자를 얻는다. 석탄 매매업으로 성공한 알렉산더 맬콤슨은 포드가 만든 차가 자동차경주에 신기록을 여러 번 낸 것을 보고 출자하기로 결심하여 1903년 6월 16일, 포드자동차제조회사가 정식으로 발족해 오늘날까지 그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바로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이 날이 포드자동차제조회사가 설립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또 이 시승기도 포드사가 만든 왕년의 베스트셀러 토러스와 현재 미국에서 잘 팔리고 있는 인기 SUV 익스플로러를 타본 이야기여서 감개가 무량하다. 헨리 포드는 1908년 T형을 내놓고 몇 해 뒤 대량생산방식으로 차값을 계속 떨어뜨리면서 1927년까지 1천500만 대 이상을 생산했다. 그가 자동차왕으로 떠오른 포드의 성공담은 널리 알려져 있어 생략한다. 제너럴 모터스, 크라이슬러와 함께 빅스리의 중심에 자리잡은 포드자동차의 재정상태가 1980년대에 불경기와 일본차의 공세에 밀려 하강선을 그리던 무렵, 구세주같이 등장한 차가 바로 토러스였다. 이름 그대로 ‘황소‘같은 성능을 가진 차로 1986년에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유럽감각의 스타일을 한 토러스 중에서 일본의 야마하가 설계한 ‘쇼군’(將軍)이란 이름이 붙은 V6 3.0X 엔진을 얹은 SHO (Super High Out= 초고출력) 모델은 그 당시 미국의 젊은이에겐 ‘꿈의 차’였던 BMW 535i의 성능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0→시속 100km 가속을 7.0초 이내로 끊는 것을 보자 너도나도 이 차에 달려들어, 토러스는 순식간에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처음의 모델은 6년간 제조되었고 제2세대가 92년에 등장했다. 새 토러스의 외형은 거의 그대로였으나 93년형부터 AT모델이 추가되어 미국 중형차시장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96년에 데뷔한 제3세대에 이르러 토러스는 스타일이 완전히 변했다. 요사이 흔한, 계란을 누른 것같이 차체 전체에서 직선감각이 없어지고 AT만 얹은 스포츠 세단으로 변신했다. 예리한 발놀림은 환영받았으나 차의 스타일은 일부의 불평을 샀다. 그래서 베스트셀러의 5년간 기록이 점차로 하강선을 그리게 되자, 2000년에는 좀더 세련된 스타일로 꾸며 제4세대 토러스로 재출발했다. 앞 헤드램프가 샤프하게 긴 타원형으로 변했고 전체적으로 보면 ‘황소’라기보다 ‘노루’같은 인상을 준다. 길이 5m가 넘는 대형차급 체구 자랑해 순발력 뛰어나고 든든한 안전장비 갖춰 오늘, 내 앞에 나타난 포드 토러스는 미국에서 중형이라지만, 한국에서는 대형급에 속해 크기(길이×너비×높이)가 5천20×1천855×1천420mm나 된다. 이는 현대 에쿠스의 5천65×1천870×1천465mm, 쌍용 체어맨의 5천55×1천825×1천465mm와 비교해서 손색이 없고 수입차의 최고봉인 벤츠 S클래스의 5천43×1천855×1천444mm, BMW 7시리즈의 5천29×1천902×1천445mm에 버금가는 크기다. 그러나 값이 3천만 원대(디럭스 기준)이니 같은 수입차로서 토러스는 1/3의 저렴한 값으로 최대의 실용적인 크기와 실내공간을 즐기게 해준다. V6 3.0X 203마력 엔진을 쓰고 있는 포드 토러스의 성능은 달리기만을 보면 딴 수입차들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약 8년 전 제2세대 토러스 시승기를 에 썼을 때보다 크기가 16cm나 길어져서 이제는 정말로 대형차같은 모습을 안팎으로 갖췄다. 차 안으로 들어가 앉으면 넓은 실내공간과 편안한 좌석에, 역시 미국차는 다르다는 인상을 새삼스럽게 받는다. 눈앞과 옆에 달린 계기와 편의장비를 보면 자동차가 갖춰야 할 기본 시스템만이 질서정연하게 마련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국산차와 수입차의 고급모델은 이것저것 기본운전과는 관계가 없는 것들을 복잡하게 만들어 얹고 있어서 값이 자꾸만 튀고 초보운전자들을 헷갈리게 할 뿐이다. 자동차 운전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오히려 귀찮은 장치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뜻에서도 토러스는 잘 정돈된 차라 할 수 있다. 차의 서스펜션은 미국차답지 않게 스포츠카와도 같이 아주 탄탄해서 안정감을 준다. 출발 때의 미끈하고도 탄력 있는 엔진의 힘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가속된다. 바람을 일으키지 않은 채 공기를 뚫고 나가는 차체는 마치 총알과도 같다. 이 감격은 자동차 운전경력의 짧고 긴 것과는 상관없이 아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넓은 앞창 시야에다가 방음장치도 잘 갖춰 운전자의 심리를 아주 편안하게 해준다. 비상시에 대비한 ABS도 물론 달려 있어서 산길 커브운전이나 눈빗길 운전도 안심이 된다. 특히 안전운전을 위한 충돌사고 대비도 잘 되어 있다. 앞좌석에 달린 에어백은 물론 옆구리 충돌에도 앞좌석에 내장되어 있는 사이드 에어백이 옆으로 터지며 운전자를 보호한다. 차 앞에 달린 세이프티 셀은 자동차가 충돌 때 받는 충격을 분산시켜줄 뿐 아니라 그 에너지를 흡수하니, 이것도 안전운전에 크게 도움되겠다. 차값에 걸맞지 않는 전동식 틸팅 및 슬라이딩 선루프도 천장에 마련되어 있어 신선한 공기의 보급과 환기에 큰 몫을 해줄 것이다. 3천만 원대의 값으로 수입대형차의 넓고 안락한 공간과 예리한 주행성, 안전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차는 포드 토러스밖에 없다. 이 차 생산도 2005년에는 끝난다 하니, 서둘러서 사는 것이 좋겠다. 수입차는 역시 타는 맛이 다르다. 익스플로러, 미국에서 인기 있는 SUV 국산차 압도하는 당당한 크기 돋보여 포드의 SUV는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차다. 사실 지금 포드는 승용차보다도 SUV와 픽업 트럭 생산에 비중을 더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포드의 SUV 생산라인은 4개 종목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그 이름 모두에 E자로 시작하는 단어가 붙어 있다. 가장 작은 SUV는 이스케이프(Escape)로 일본의 마쓰다와 공동개발했고 생산도 세계분업체제에 의한 효율화로 잘 만들어졌다. FF와 4WD 두 가지로 나오고 4기통 2.0X 127마력과 6기통 3.0X 201마력 엔진이 있다. 일본에서는 마쓰다가 ‘트리뷰트’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다음은 익스플로러(Explorer)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SUV다. 이것은 5도어 보급형과 3도어 스포츠 그리고 픽업인 스포츠트럭 등 3차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엔진은 210∼239마력의 여러 종류가 있다. 세 번째는 익스페디션(Expedition)이란 이름의 헤비급 SUV다. 이 모델도 미국같이 크고 작업량이 많은 나라에서는 수요가 제법 많아 아주 인기이다. 네 번째는 그야말로 거한(巨漢)이라고 표현해야 할 트럭 베이스의 엄청나게 큰 SUV인 익스커션(Excursion)이란 모델이다. 길이가 5천200mm를 넘고 232∼260마력 엔진을 얹은 익스페디션보다도 한층 더 큰 5천800mm의 길이를 갖고 V8 5.4X 255마력 또는 V10 6.8X 325마력의 엔진을 얹는, 3톤이 넘는 거구와 힘을 자랑하는 차다. 한국 사정에는 두 번째 크기의 익스플로러가 적합하리라 생각되어 이 모델이 주로 도입되었다. 내 눈앞에 나타난 익스플로러는 이 차 주위에 주차한 국산차들이 아주 꼬맹이들 같이 보일 만큼 주위를 압도하는 크기였다. “우와, 정말로 크구나!” 하는 것이 나의 첫 인상이었고 “참으로 든든하게 만들어졌군 그래” 하는 것이 두 번째 인상이었다. 오히려 ‘가장 작은 모델인 이스케이프가 좀더 한국 사정에 맞는 것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한국에서 뛰는 모든 SUV를 압도하는 왕자(王者)를 끄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 이 차를 굴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SUV를 모는 사람의 과반수가 으스대기 좋아하는 것 같아서(큰 덩치로 고속도로의 1차선을 악착같이 달리며 뒤따라오는 차들의 시야를 가로막는 일을 서슴지 않을 뿐 아니라 쾌감마저 느끼며 달리는 것 같은 SUV를 많이 보았기에 하는 소리다) 이왕이면 이 익스플로러를 갖고 운전하면 더욱 신날(?) 것 아니겠냐 말이다. 다양한 시트 배열과 뛰어난 주행 안정성 미끄러운 길에서 자동으로 트랙션 조정 두툼한 살이 붙은 타이어와 권위 있어 보이는 앞 그릴이 인상적이다. 운전대에 앉으니 승용차보다 훨씬 높아서 마치 내가 도로를 지배하는 착각마저 든다(이래서 SUV 운전자는 으스대면서 운전하는가 보다). 좌석은 편안하고 좌석 수를 2, 3, 4, 5 및 7개로 변경 배치할 수 있어서 큰짐을 운반하거나 야외에 나가서 호텔같은 공간을 만들어 2∼3명이 편히 매트를 깔고 야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내가 시승한 익스플로러는 V6 4.0X 213마력 엔진을 쓰고 있어 큰 힘으로 딴 국산 SUV는 옆에도 못 쫓아올 만큼의 주행실력을 자랑한다. 고속주행 때 느끼는 약간의 불안한 진동이 SUV의 단점인데 이 차는 그런 것과 인연이 없다. 과연 미국 최고인기 SUV답게 달리는 동안 운전하는 즐거움을 나뿐만 아니라 같이 탄 사람들까지 맛보게 해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지녔다. 특히 이 차에는 어드밴스드 트랙 조정 시스템이 있다. 운전하는 동안 차의 주행상태와 반응을 지속적으로 감시하여 미끄러운 도로나 험한 길을 달릴 때 자동적으로 주행안전과 제어력을 유지시키는 장치다. 또한 운전자 자신도 도로면의 조건에 따라 네바퀴굴림(4WD)을 4×4 로(Low), 4×4 하이(High), 4×4 오토의 다양한 구동방식으로 택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따로 쓸 것이 많지만, 크기와 안전한 달리기에서 국산 SUV를 압도하는 왕자(王者)가 되고 싶으면 “바로 이 차를 타라”라고 권하고 싶다. 주요 제원 포드 토러스 포드 익스플로러 크기 길이×너비×높이(mm) 5020×1855×1420 4840×1880×1755 휠베이스(mm) 2755 2889 트레드 앞/뒤(mm) 1565/1560 1547/1554 무게(kg) 1515 2095 승차정원(명) 5 7 엔진 형식 V6 DOHC V6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네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mm) 89.0×79.5 100.4×84.4 배기량(cc) 2967 4009 압축비 9.1 9.7 최고출력(마력/rpm) 203/5650 213/5000 최대토크(kg·m/rpm) 27.7/4500 35.3/3700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 연료탱크 크기(ℓ) 68 79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4단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2.770/1.540/1.000 3.219/2.414/1.545 ④/⑤/⑥/R 0.690/2.260 1.000/0.750/3.070 최종감속비 3.770 3.73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5도어 왜건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더블 위시본 모두 더블 위시본 브레이크 앞/뒤 디스크/드럼(ABS) 모두 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15/65 R16 255/70 R16 성 능 최고시속(km) 180 171 0→시속 100km가속(초) 7.9 ㅡ 시가지 주행연비(km/ℓ) 9.4 7.01 값 4,030 6,130
폭스바겐 뉴 비틀 카브리올레 감성 자극하는 독특한 .. 2003-07-14
세상에는 이성으로만 풀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 그것은 아마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 보면 자동차도 차디찬 쇳조각(물론 요즘에는 전자제품화 되어 가는 경향이 있지만)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때로 그 쇳조각이 주는 감성에 이끌려 넋을 잃기도 한다. 올드 비틀 카브리올레의 DNA 이어 받아 뉴 비틀 실루엣 살린 둥근 소프트톱 달아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차는 꽤 많다. 멋진 스포츠카나 럭셔리카는 달리는 즐거움과 마음까지 푸근해지는 여유로움을 주고 오프로더용 SUV는 사람들이 자연과 동화되는 듯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물론 감성을 자극하는 차들 가운데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차도 있다. 오래된 자동차 중에서 꼽으라면 로버 미니나 시트로엥 2CV, 폭스바겐 비틀 정도가 아닐까. 이 가운데 미니는 BMW의 품안에서 새롭게 태어났고 폭스바겐 비틀도 지난 98년 뉴 비틀로 환생해 부모 세대들이 지었던 환한 미소를 이어가고 있다. 폭스바겐 비틀은 원산지인 독일보다 미국에서 더 인기가 있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올드 비틀이 많이 돌아다니고 비틀의 섀시를 이용해 만든 키트카나 비틀을 고성능으로 튜닝한 수퍼 비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래서 폭스바겐이 지난 98년 뉴 비틀을 데뷔시킨 곳도 유럽이 아니라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였다. 뉴 비틀 카브리올레 역시 올해 2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데뷔했고, 기자도 그 현장에 있었다.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미국인들의 ‘비틀 사랑’은 역시 대단했다. 덩치 큰 그네들이 조그맣고 동글동글한 뉴 비틀 카브리올레의 시트에 올라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지난 5월, ‘2003 수입차 모터쇼’에서 한국인의 ‘비틀 사랑’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폭스바겐 부스를 가장 환하게 빛낸 주인공은 화려한 크림색의 뉴 비틀 카브리올레였다. 폭스바겐이 야심만만하게 개발한 럭셔리 SUV 투아레그는 뉴 비틀 카브리올레의 그늘에 가려 별로 눈길을 받지 못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들도 뉴 비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을 보면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동화책 속에 나오는 자동차 일러스트 가운데 조금 귀엽다 싶으면 어김없이 딱정벌레로 통하는 비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 비틀 카브리올레 시승이 애타게 기다려졌다. 눈으로 봐도 즐거운 차를 한번 몰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뉴 비틀 카브리올레의 모티브가 된 올드 비틀 카브리올레는 1949년 선보여 1980년 단종 될 때까지 33만 대 이상 판매된 오픈카의 성공작이었다. 그래서 올해 2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발표된 뉴 비틀 카브리올레는 성공을 거둔 올드 비틀 카브리올레와 98년 선보여 새로운 패션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뉴 비틀의 DNA를 모두 이어받았다. 뉴 비틀 카브리올레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철판 지붕 대신 씌운 소프트톱. 둥그런 모양의 톱은 뉴 비틀의 지붕 실루엣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톱을 열기 위해서는 일단 연결 고리를 손으로 풀어야 하지만 그 나머지는 전기모터가 알아서 접는다. 톱을 여닫는 데 걸리는 시간은 13초로, 조용한 작동음이 인상적이다. Z자로 접힌 톱은 올드 비틀이 그랬던 것처럼 트렁크 위쪽에 가지런히 놓인다. 요즘에는 소프트톱은 물론 하드톱까지 전동으로 접어서 트렁크에 수납하는 차들이 많기 때문에 트렁크 위로 노출되는 소프트톱을 낯설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구형의 DNA를 잇기 위해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모양이기도 하고 트렁크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실용적인 장점도 있다. 가지런히 접힌 소프트톱은 올드 비틀 카브리올레처럼 뒷부분에 불룩 솟아 뒤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열선이 들어간 뒤창 덕에 룸미러를 통해 보는 뒷시야도 선명하다. 소프트톱을 얹다보니 뒤쪽 해치를 모두 열어제칠 수 있는 뉴 비틀에 비해 트렁크 입구가 좁아졌지만 그나마 빵빵한 엉덩이(뒤 펜더) 덕에 좌우 폭은 제법 넓다. 진득한 성능 내는 2.0X 엔진 얹어 6단 팁트로닉 AT로 운전재미 더해 시승차는 지난 수입차 모터쇼에 나와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차다. 보디색은 물론 가죽시트나 도어 트림, 실내에 드러난 철판이 모두 새하얀 색깔이지만 뉴 비틀과 마찬가지로 대시보드 중간 윗부분에는 빛의 반사를 막아주는 검은 플라스틱을 댔다. 대시보드 어디도 플라스틱이 아닌 부분은 없지만 결코 싸구려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플라스틱은 싸구려, 그 플라스틱 위에 나무무늬 스티커를 붙이면 고급차’라는 등식은 국내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가뜩이나 눈에 띄는 차라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 톱을 벗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톱을 씌운 상태에서의 방음은 대 만족이다. 시속 150∼160km까지 속도를 높여도 바람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적당한 곳에서 톱을 벗기고 풀 드로틀을 해본다. 뉴 비틀 카브리올레는 뉴 비틀, 골프 2.0과 함께 쓰는 2.0X 115마력 엔진을 얹었다. 최대토크 17.5kg·m를 비교적 낮은 3천200rpm에서 내는 이 SOHC 엔진은 이미 오랫동안 숙성된 폭스바겐 2.0X 엔진의 터주대감이다. 진득한 맛이 일품이지만 5천rpm부터는 눈에 띄게 토크가 떨어지므로 그 이전에 변속하는 편이 좋다. 톱을 벗긴 상태에서 시속 150∼160km로 달려도 운전석 뒤쪽에 달린 윈드 디플렉터 덕분에 실내로 들이치는 바람이 생각보다 세지 않았다. 뉴 비틀 카브리올레의 새로운 무기는 6단 팁트로닉 AT. 소형 카브리올레에서는 보기 드문 6단 AT는 이전의 4단 AT보다 기어비가 촘촘하기 때문에 엔진 토크를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연비나 가속성능이 좋아지고 소음도 줄어든다. 물론 팁트로닉으로 수동 변속도 가능하다. 그러나 100kg이나 늘어난 무게 때문에 실제 0→시속 100km 가속은 12.9초로 뉴 비틀과 똑같다. 최종감속비가 높지만 6단의 기어비가 낮아 시속 100km 정속주행은 2천400rpm이면 충분하다. 6단은 순항기어 성격이기 때문에 변속기 레버를 스포츠 모드에 넣으면 최고단수가 5단으로 제한된다. 액셀 페달을 꾹 밟으면 시속 160km까지 손쉽게 올라가지만 뉴 비틀 카브리올레는 결코 빨리 달리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 타는 차가 아니다. 2.0X 115마력 엔진이 현재 뉴 비틀 카브리올레의 엔진 라인업(1.4X 75마력, 1.6X 102마력, 2.0X 115마력) 가운데 가장 윗급인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올해 말쯤 보다 고성능을 원하는 사람을 위해 골프 GTi에 얹은 1.8X 150마력 엔진 모델도 내놓을 계획이지만 국내 수입 여부,는 미지수다. 플랫폼은 물론 엔진이나 서스펜션 등 많은 부품을 골프와 공유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달리기 특성은 비슷하지만 급코너링이나 잦은 차선 변경에서는 골프의 재빠른 몸놀림을 따라가지 못했다. 뉴 비틀 카브리올레는 뉴 비틀이란 매력 만점의 차에 상쾌한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는 ‘날개’를 단 차다. 운전재미를 더해주는 6단 팁트로닉 AT는 물론 10개의 스피커를 가진 고성능 오디오, 오픈 때 작동하는 초음파 도난방지 시스템, 주행안정장치(ESP) 등 소형 카브리올레에서는 보기 드문 풍부한 장비까지 갖췄다. 특히 멋진 스타일을 위해 헤드룸을 거의 포기해야 했던 뉴 비틀의 뒷좌석과는 달리 카브리올레의 헤드룸은 더 이상 여유로울 수 없다. 상쾌한 하늘이 전부 뉴 비틀 카브리올레의 헤드룸이 아닌가. 물론 2천만 원대 후반의 뉴 비틀과 3천만 원대 후반인 뉴 비틀 카브리올레의 값 차이 1천만 원은 보기에 따라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톱을 제쳐 하늘을 이고 달리는 뉴 비틀 카브리올레의 ‘자유’ 앞에서는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승 협조: 고진 모터스 ☎(02)516-0033 VW 뉴 비틀 카브리올레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081×1724×1498mm 휠베이스 2509mm 트레드 앞/뒤 1508/1494mm 무게 1352kg 승차정원 4명 엔진 형식 직렬4기통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2.5×92.8mm 배기량 1984cc 압축비 10.3 최고출력 115마력/5400rpm 최대토크 17.5kg·m/32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55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6단(스텝트로닉) 기어비 ①/②/③ 4.040/2.370/1.560 ④/⑤/⑥/ⓡ 1.160/0.850/0.670/3.190 최종감속비 4.32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2도어 컨버터블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트레일링암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05/55 R16 성능 최고시속 181km 0→시속 100km 가속 12.9초 시가지 주행연비 ㅡ 값 3,890만 원
BMW 760Li 생각이 깨인 소셜 리더들을 위한 .. 2003-07-09
아마도 1991년이었던 것 같다. 정보화 바람에 휩쓸려 아버지께서 집안에 새 컴퓨터를 들여놓으신 것은. 그간 게임기에 가까운 8비트 컴퓨터에 익숙해져 있던 필자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혁신적인 32비트 컴퓨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혼란스러웠던 것은 컴퓨터 키보드 옆에 놓인 흰색 플라스틱 덩어리(마우스)와 한글 윈도우 3.1 운영체제였다. 명령어를 쳐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한번에 하나의 프로그램 밖에는 쓸 수 없었던 도스(DOS)를 갓 접했던 필자에게, 난데없이 눈앞에 펼쳐진 윈도우의 세계는 신기함과 함께 어렵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좀더 편하고 손쉽게 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긴 했지만, 그것이 쉽다는 것을 깨닫고 적응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만만치 않았다. i-드라이브, 뒷좌석 와서 제자리 잡아 성능이 점점 상향평준화 되고 있는 요즘에 있어 더욱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 바로 사람과 차 사이에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 문제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에 시승한 BMW 760Li는 차 자체가 갖고 있는 여러 특징들에 앞서 i-드라이브(i-Drive)라는 인터페이스에 관심이 모아졌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왜 새삼스럽게 꺼내느냐고? 760Li에서는 i-드라이브 컨트롤러를 손에 쥐는 것이 운전자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i-드라이브는 나날이 늘어가는 편의장비를 다스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스템이다. 운전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장비들을 한데 몰아놓고, 단순한 몇 번의 손놀림으로 그 많은 기능들을 손쉽게 찾고 작동시킬 수 있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멋지다. 운전과 관련된 모든 장치들은 스티어링 휠 주변에 몰려 있어 그저 손가락들만 움직이면 된다. 레버의 수만 해도 모두 4개. 6단 자동 변속기의 모드 전환 레버마저도 오른손 근처로 옮겨왔고, 수동변속 스위치는 스티어링 휠에 자리잡고 있다. 나머지 장비들은 센터콘솔의 컨트롤 센터와 센터페시아 주변에 몰려 있다. ‘드라이빙 존’과 ‘컴포트 존’의 완벽한 구분이 i-드라이브 시스템의 핵심이다. i-드라이브는 전후좌우와 대각선의 8방향으로 밀고 당김으로써 주 기능을 선택하고, 다이얼처럼 돌려서 메뉴를 이동하고 컨트롤러를 누름으로써 설정하는 간단한 조작으로 모든 기능을 다룰 수 있게 되어 있다. 문제는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기능선택 메뉴의 시인성과 직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운전에 집중해야 할 운전자가 한눈에 파악하고 기능을 조절하기에는 분명 부담스러운 장비다. 그렇기에 뒷좌석에 마련된 i-드라이브 컨트롤러는 오히려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진정한 고급차는 운전사와 오너의 역할과 위치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차라는 점을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고전적인 인터페이스를 고수하고 있는 벤츠나 MMI라는 통합 인터페이스를 시도하고 있는 아우디와 심각하게 비교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i-드라이브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 듯하다. 시승 시간의 상당 부분을 여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보내야 했던 탓이다. 사실 i-드라이브를 제쳐놓고 보면, 운전자 입장에서 760Li는 입에 침이 마르게 하는 차다. 80여 년에 걸친 BMW의 자동차 만들기에서 정점에 위치한다는 무형의 의미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BMW 역사상 가장 큰 엔진인 V12 6.0X 엔진과 섀시에 얹힌 다양한 첨단기술들은, 이 차의 크기를 잊은 채로 ‘스포츠 세단을 몰고 있다’는 기분에 물씬 젖게 한다. 6.0X 급 대 배기량 엔진의 경험은 독일에서 시승했던 폭스바겐 페이튼에 이어 두 번째다. 사실 두 엔진, 그리고 두 차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뿐 아니라 비교하고 싶지도 않다. 이미 두 차는 상식적인 차원의 고급스러움을 넘어섰다. W12와 V12라는 형식상의 차이, 앞바퀴 중심의 4WD와 뒷바퀴굴림이라는 구동방식의 차이는 제쳐놓더라도 여러 면에서 부족할 것 없는 완벽에 가까운 차들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비교대상이라 할 메르체데스 벤츠 S600 역시 V12 엔진을 얹고 있는데, 배기량은 760Li에 약간 못 미치는 5.5X 다. 배기량이 큰데도 출력이 더 낮은 이유는 S600이 터보를 얹은 탓도 있지만, 760Li의 N73 엔진이 직분사 방식을 쓰기 때문이다. 대 배기량 엔진의 가장 큰 문제점인 배기가스로 인한 공해문제 해결을 위해, BMW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독자기술을 개발해 얹었다. 그럼에도 고유의 감각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것은 더블 바노스(VANOS)와 밸브트로닉 전자식 밸브제어장치가 익을 만큼 익었기 때문이 아닐지. 가속할 때 발끝에 와 닿는 정교한 진동의 점점 치밀해지는 느낌과, 배기관을 꽉 채운 듯 빈틈없는 배기음의 또렷한 상승감은 다른 어떤 차에서도 맛볼 수 없다. 가속력에 있어서는 달리 말이 필요 없다. 정지상태부터 전력질주하는 느낌도 놀랍지만, 시속 80km에서 가속하든 120km에서 가속하든 상관없이 등 전체로 느껴지는 압박감은 2톤이 넘는 차의 덩치를 잊게 한다. 구형의 신뢰감 넘치는 몸놀림은 몸집이 훨씬 불어난 신형에서도 여전하다. 힘의 여유가 의도하는 바는 스포츠성이 아니건만, 운전자의 의지에 따라 같은 차로 안락함과 긴장감을 함께 맛볼 수 있다. 넉넉한 힘의 여유는 정속주행 때 더욱 돋보인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와중에도 기어는 5단, 엔진회전수는 2천rpm에 머물러 있다. 기어를 6단으로 올리면 엔진은 1천500rpm 안팎에서 잔잔하게 움직인다. 고속순항에 알맞은 최상의 안락감 한적한 국도의 굽은 길에서 느껴지는 약한 오버스티어는 덩치 큰 V12 엔진을 얹느라 앞이 무거워진 때문. 이런 특성이 서스펜션의 소프트한 세팅과 맞물려 가슴을 살짝 들뜨게 하지만 운전자의 의도에 따라 전자제어 주행안정장치가 주행 라인을 바로잡으려 애를 쓴다. 큰 키 탓인지 차체의 롤이 약간 거슬리긴 해도 뒷좌석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정교한 전자장비 덕분에 스티어링 휠을 돌리고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에만 신경 쓰면 된다. BMW 전통의 전투적 분위기를 풍기는 운전석과 달리 뒷좌석은 럭셔리 세단의 기본기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특히 뒷좌석은 2명까지만 타야 기능을 100% 활용할 수 있다. 좌석의 각도나 히터 온도조절은 물론이고, i-드라이브 컨트롤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중앙의 접이식 팔걸이를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급을 타는 사람이라면 여러 편의장비쯤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적당한 탄력과 단단함을 갖춘 시트는 다분히 장거리 고속순항을 염두에 둔 것이다. 굴곡과 재질감은 여유와 긴장감을 골고루 갖추고 있고, 쿠션도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하지만 앞좌석 사이에 놓인 모니터는 왠지 ‘구색 맞추기’용으로 보인다. 트렁크에 놓인 DVD 체인저를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인디비주얼 모델의 고급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더해야 할 듯하다. 트렁크는 버튼으로 열리고 닫히는 완전자동 도어를 지녔다. 한 손에 짐을 들고도 손쉽게 물건을 넣고 뺄 수 있다. 트렁크 도어가 열리는 모습을 보면 차 뒤쪽의 독특한 스타일이 기능성을 고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골프백 4개 정도는 넉넉히 들어가는 공간이지만 냉장고 때문에 여유가 줄어 아쉽다. 철판이 그대로 노출된 뒷창 아래의 선반 밑 부분도 조금은 의외였다. BMW 760Li를 타며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보기에 무척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선물이지만 너무 꼼꼼하고 기술적으로 포장되어 있어 포장지를 벗기기가 조금 번거롭다는 점, 그리고 그 포장지를 벗겨내면 생각했던 것만큼 알차고 뿌듯한 선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 받고 보내기마저 곤란해하는 연령대 고객들이 주로 구입할 만한 차임에도 컴퓨터 세대가 아니면 난감해 할 인터페이스를 가진 신형 7시리즈가 국내에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차만 놓고 본다면, 인터페이스가 어렵지 않거나 구매층의 나이가 그리 높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논점을 하드웨어 외적인 쪽으로 옮겨야 하고. 사실 이 정도의 럭셔리 세단을 구입하는 것은 단순한 수치 비교나 성능 차이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특히 보수적인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760Li는 여러모로 깨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차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나라는 뭔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끄는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그 ‘뭔가 다른 생각’이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는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시승협조: BMW 코리아 ☎ (02)546-7301 BMW 760Li의 장단점 장점 ·모자람을 느끼기 힘든 역동적인 운전감각 ·감성과 감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신뢰성 단점 ·균형과 조화가 부족한 실내외 디자인 ·편의장비 배치에 좀더 신경 써야 할 듯 BMW 760Li의 주요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5169×1902×1492mm 휠베이스 3130mm 트레드 앞/뒤 1580/1580mm 무게 2180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V12 DOHC 직분사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0.0×89.0mm 배기량 5972cc 압축비 11.3 최고출력 455마력/6000rpm 최대토크 61.2kg·m/395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88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6단 기어비 ①/②/③ 4.170/2.340/1.520 ④/⑤/⑥/ⓡ 1.140/0.870/0.690/3.400 최종감속비 3.15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맥퍼슨 스트럿/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V디스크 타이어 앞/뒤 모두 245/50 R18 성능 최고시속 250km 0→시속 100km 가속 5.3초 시가지 주행연비 7.4km/ℓ 값 23,320만 원
프레스티지 세단의 새 영역 확인하다 알루미늄 보디의.. 2003-07-09
눈 앞에는 또 한번 거친 코너가 펼쳐진다. 3단에 고정되어 있던 시프트기어를 2단으로 내린 뒤 재빨리 오른손으로 스티어링 림의 빈자리를 잡아 끌어본다. 흐트러짐 없이 코너의 끝을 정복한 차체는 이미 다음 오르막 커브를 공략하기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길이 5.09m의 알루미늄 보디는 가볍지만 경박하지 않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와인딩 로드에서 보여주는 끈끈하고 경쾌한 핸들링에 절로 감탄 섞인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앞서 탄 아우디 A8의 빈틈없고 야무진 감각에 젖어 있던 몸은 어느새 가장 영국적인 프레스티지카의 유연한 움직임에 동화되고 있었다. 프레스티지 세단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는 순간, 기자의 두 손은 재규어 XJ6의 스티어링 휠을 움켜쥐고 있었다. 전통의 테두리 안에 담긴 첨단기술 재규어 XJ는 프레스티지 세단이면서 권위적이지 않은, 세련된 스트라이프 양복이 참 잘 어울리는 차였다. 하지만 80년대 질곡의 세월 속에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눈에 띄는 기술적 성과도 이루지 못했다. XJ는 여전히 기품 있는 차였지만 전통의 가치를 인정하는 격조 높은 소수의 오너를 위한 차로 자리매김해갔다. XJ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그와 함께 유럽 프레스티지 세단을 대표하던 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는 나날이 발전하며 확고한 자리를 굳혔고 후발주자인 아우디 A8이 XJ의 빈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슬며시 기억의 끝자락으로 밀려나는 듯했던 XJ는 지난해 파리 오토살롱에서 일신한 모습으로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은빛 알루미늄 옷을 입고 선보인 7세대 XJ는 변한 듯 변함 없는 우아한 스타일링이 화제였고 전통의 테두리 안에 눈에 띄지 않게 쟁여놓은 첨단기술이 또한 화젯거리였다. 새로운 방식으로 완성한 알루미늄 보디는 신형 XJ의 가장 큰 변화. 아우디 A8의 스페이스 프레임과 달리 XJ는 주된 골격을 스틸 모노코크 보디처럼 프레스 성형의 알루미늄 패널로 구성하고 용접 없이 리벳과 열경합성 에폭시만으로 섀시를 여몄다. 서스펜션 마운팅과 도어, 루프를 알루미늄 구조물로 만들고 시트 프레임과 대시보드마저 경량 마그네슘으로 마무리했다. XJ 안에 쓰인 스틸 소재는 고작 서스펜션 서브 프레임과 도어 힌지 정도. V8 4.2X 엔진을 쓴 XJ8의 무게(1천615kg)가 V6 3.0X 엔진의 재규어 막내 X타입(1천630kg)보다 가볍지만 보디 강성은 구형보다 60%나 높아졌을 정도로 경량화 기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밖에 시속 120km 이상에서 차고를 자동으로 15mm 낮추고 승객 수나 화물에 상관없이 일정한 지상고를 유지하는 에어 서스펜션, 전자제어식 가변 댐퍼 CATS, 레이저 크루즈 컨트롤 등 첨단의 끝을 보여주는 신기술이 ‘알루미늄 재규어’의 이력서를 빈 칸 없이 채웠다. 하지만 스타일리스트를 자부하는 XJ에게 고유의 세련미를 잃지 않은 유려한 스타일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을까? 재규어는 변하지 않는 전통보다 더 고집스러운 것이 XJ 고정 팬의 내리사랑임을 잘 알고 있었고 과거의 실패와 전 세대 모델이 거둔 절반의 성공을 밑거름 삼아 7세대 XJ에 ‘재규어 DNA’의 모든 것을 담았다. ‘올드패션’ 재규어의 참 매력 데뷔 이후 반년 넘게 뜸을 들이던 XJ는 올해 4월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시판에 나섰고 국내에는 지난 6월에 들어왔다. 재규어 코리아는 V6 3.0X 엔진의 XJ6과 V8 4.2X 엔진을 얹은 XJ8, 두 가지를 먼저 선보였고 곧 V8 3.5X의 XJ8 3.5를 더할 예정. V8 4.2X 수퍼차저 400마력의 XJR은 당분간 도입 계획이 없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 기자는 고민 없이 스트라이프 정장을 받쳐입고 XJ6의 시승에 나섰다. 시승차 하나를 대하는 데 이처럼 유난스런 예우를 갖춰야 할까 싶지만 영국 귀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3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XJ라면 군말 없이 그에 걸맞은 차림새를 지니고 싶었다. 곱디고운 옥빛 옷을 입은 XJ6은 구형보다 길이 50mm, 높이 125mm가 늘어났다지만 불어난 몸집이 피부로 와 닿지는 않았다. 낮고 길게 드리운 옆모습이 우아하고 극단적으로 당긴 앞쪽에 비해 여유 있게 뻗은 뒤 오버행이 예전처럼 멋스럽다. 볼륨을 더하고 앞 유리를 조심스레 눕혀 스포티한 감각을 불어넣었지만 전체적인 비례는 전통의 XJ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두껍게 찍어 바른 듯한 윈도 라인의 크롬장식과 활대처럼 은근히 굽은 캐릭터라인은 ‘올드패션’ 재규어로 통하는 출입구. 연륜이 묻어나는 XJ의 스타일링에는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전통 없이는 부릴 수 없는 여유가 있다. 애써 멋 부리지 않아도 인정받을 수 있는 가치야말로 XJ만의 참 매력이다. S타입의 구성을 빌려온 인테리어는 아늑하고 친근하다. 숙련된 기능공의 손으로 꾸며졌지만 화려함이 절제되어 있고 차분함이 앞선다. 호두나무 원목으로 단장한 고풍스런 대시보드에는 단출한 계기판과 에어벤트, 클래식한 아날로그 시계만이 마련되어 있고 코널리 가죽을 두른 센터페시아도 오디오, 공조장치 등 이제껏 알던 기능 외에는 유다른 것을 갖추지 않았다. 인테리어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제시하는 최근의 독일 프레스티지 세단과 달리 운전자와 승객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으로 생소한 환경에 대한 혼란을 줄인 것이 특징. 단순함과 기능성에 충실한 인테리어는 재규어가 전통을 지켜 가는 또 다른 방법이다. 시트는 앞뒤 모두 세 가지 자세를 기억할 수 있고 운전석은 16가지 위치 조정 외에도 페달과 스티어링 휠, 사이드미러 위치까지 함께 저장한다. 길이가 조절되는 시트 쿠션도 눈에 띈다. 조정 폭이 커 롱다리든 ‘장롱’다리든 문제없이 허벅지를 편안하게 받쳐준다. 스위치를 누르면 글러브박스와 트렁크가 잠겨 호텔 등에서 주차대행을 맡길 때 염려 없는 ‘발레’(valet) 기능도 쓰임새가 좋다. 아우디 A8과의 조우 XJ6의 시승에는 특별히 양산 알루미늄 보디의 리더 아우디 A8이 동행했다. 지난 94년 1세대 ASF 기술을 들고 등장한 A8은 XJ의 자리를 대신한 데 그치지 않고 지난해에는 더욱 발전된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과 첨단기술을 버무려 S클래스와 7시리즈를 제치고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XJ가 확고부동한 전통의 가치 위에 서 있는 차라면, A8은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정상급 기함이라고 할 수 있다. 얌전하고 우아한 XJ6의 곁에 선 A8은 새 역사를 써내려가는 주인공답게 안팎에서 화려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시원하게 펼쳐진 옆모습이 당당하고 날카롭게 가다듬은 얼굴과 테일램프를 한껏 올려붙인 엉덩이가 공격적인 인상을 더한다. 다기능의 단순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 시스템 MMI는 A8의 인테리어에 첨단감각과 화려함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 단순함에서 기능성을 찾는 XJ6과는 접근방법 자체가 다르다. MMI를 처음 접할 때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도 되어야 하는 걸까’ 싶지만 컨트롤 패널과 같은 레이아웃의 팝업 모니터를 보면서 그저 누르고 돌리면 그만인, 지극히 간단명료한 장비다. 경량 알루미늄 보디에 아우디 고유의 풀타임 4WD 콰트로 시스템을 접목하고 4가지 모드로 세팅을 달리하는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을 곁들인 A8은 묵직하고 안정적인 달리기가 매력적이다. 시속 80km에서 180km까지 순식간에 끌어올리는 맹렬한 가속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노면을 짓이기듯 달리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와인딩 로드에서는 포르쉐 복스터를 탔을 때처럼 짜릿한 전율마저 인다. 약간은 가볍고 거칠었던 구형에 비해 한층 숙성되고 업그레이드된 A8은 스포티한 감각과 핸들링, 가속성능, 밸런스만을 놓고 볼 때 분명 동급 최강의 자리에 올라섰다. 하지만 XJ6은 A8과 다른 영역에서, 독일 프레스티지 세단이 넘볼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달리기를 끌어냈다. 그 차이는 시승 장소로 즐겨 찾는 용인의 와인딩 로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기념사진 찍듯 촬영을 끝낸 A8은 잠깐 동안의 조우를 뒤로 하고 매력적인 배기음을 내뿜으며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XJ6은 S, X타입과 함께 쓰는 V6 3.0X DOHC 240마력 엔진을 얹고 ZF 자동 6단 트랜스미션으로 뒷바퀴를 굴린다. 시동을 걸고 액셀 페달을 밟으면 뜻밖에도 뛰어난 응답성에 놀라게 된다. 부드럽지만 어김없는 반응으로 엔진회전수를 끌어올리고 2천~5천rpm 사이를 스트레스 없이 오르내린다. 자연스럽고 야무진 반응을 보이는 것도 비단 엔진만이 아니다. 스티어링과 브레이크, 트랜스미션도 직접적이지 않지만 부드럽게 제 역할을 해낸다. 승차감과 핸들링의 절묘한 조화 저속과 고속, 포장도로와 거친 노면을 가리지 않고 시종일관 이어지는 안락한 승차감은 XJ 매력 돋보기의 시작에 불과하다. 부드러운 서스펜션은 급커브에서 흠잡을 데 없는 핸들링을 끌어내고 그립이나 차체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코너 입구에서 일렁이던 차체는 무게가 바깥쪽으로 쏠리는 순간부터 암팡지게 노면을 붙잡고 돌아나간다. 무게 1천545kg밖에 안 되는 가벼운 차체가 쓰러질 듯하면서도 어김없이 자세를 추스르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여간 신기한 게 아니어서 S자 코스와 헤어핀에 가까운 커브가 이어지는 와인딩 로드에 심술궂게 몸을 던져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XJ의 알루미늄 보디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날 듯 강건한 A8의 그것과 달리 고양이처럼 유연한 반응으로 경쾌하고 암팡진 핸들링을 보인다. XJ6의 달리기는 무난하고 추월가속에서도 꼭 필요한 만큼의 힘만 뽑아 쓴다. 좀더 힘찬 드라이빙을 즐기고 싶다면 J게이트 6단 기어의 2~5단을 부지런히 활용하면 된다. 이마저 짜릿하진 않지만 체구를 잊은 알루미늄 재규어의 날렵한 발놀림을 느끼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XJ에는 아랫급 모델처럼 여전히 시프트 인디케이터가 없다. 이쯤 되면 재규어의 고집에 운전자의 취향을 맞추는 수밖에. 재규어는 예나 지금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관록과 기품을 더해가는 흔치 않은 차다. 더구나 7세대 XJ는 재규어의 브랜드 가치에 첨단기술을 버무려 독일 세단과 구별되는 독보적인 영역을 재창조했다. 문제라면 국내 시장에서 미약한 브랜드 인지도. XJ가 정작 넘어야 할 산은 독일 손맛에만 길들여진, 보수적인 국내의 억만장자 고객이 아닐까. 시승 협조 : 재규어 코리아 ☎ (02)3781-3800 고진모터임포트 ☎ (02)730-0051 재규어 XJ6의 장단점 장점 ·전통에 충실한 스타일링 ·승차감과 핸들링의 절묘한 조화 단점 ·박진감이 부족한 V6 엔진 ·여전히 달리지 않은 시프트 인디케이터 재규어 XJ6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5090×1860×1450mm 휠베이스 3035mm 트레드 앞/뒤 1506/1506mm 무게 1545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V6 DOHC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9.0×79.5mm 배기량 2967cc 압축비 10.5 최고출력 238마력/6800rpm 최대토크 29.8kg·m/41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85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6단 기어비 ①/②/③ 4.171/2.340/1.521 ④/⑤/⑥/ⓡ 1.143/0.867/0.691/3.403 최종감속비 3.071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더블 위시본/더블 위시본 브레이크 앞/뒤 모두 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35/50 ZR18 성능 최고시속 240km 0→시속 100km 가속 8.1초 시가지 주행연비 9.1kmℓ 값 1억850만 원
끝없이 진보하는 핸들링 머신 BMW 5시리즈 혁신과.. 2003-07-09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신형 5시리즈는 21세기의 BMW를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7시리즈와 Z4에서 시험했던 놀라운 디자인 변화와 그 속에 담긴 첨단 기술을 다듬고 숙성시켜 하나로 모았다. 앞선 두 모델과 달리 5시리즈는 3시리즈와 함께 BMW 판매의 핵심이니 만큼 시장의 뜻을 거스르거나 너무 앞질러 가면 외면당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성공에 안주하는 것 역시 BMW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는 일. 혁신과 전통 가운데서 찾아낸 절묘한 절충점이 바로 신형 5시리즈다. 지난 5월 BMW는 그들의 야심 찬 프로젝트 결과물을 공개하면서 냉혹한 저널리스트들의 평가를 당당하게 받아들였다. 환상의 시승 코스에서 만나다 시승 장소로 선택된 곳은 이태리 제2의 섬 사르디냐. 새차의 시승지 선정은 개발 프로젝트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까다로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시승자가 어렵지 않게 코스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테스트와 사고 방지를 위해 교통량이 많으면 안 된다. 고속주행 성능과 핸들링 특성을 음미할 수 있는 고속 직선로와 와인딩 로드의 적절한 배합도 중요한 요소. 매끈한 노면상태에 곁들여 멋진 주위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르디냐는 차가 조금 많다는 것을 제외하면 엄지손가락이 저절로 올라갈 만큼 훌륭한 코스였다. 이태리의 섬 하면 대개 시칠리아와 카프리 정도를 떠올린다. 이태리에서 두 번째로 넓다는 사르디냐(2만4천90km2)는 크기에 비해 우리에게 너무나 낯선 곳. 아마도 유적지 구경에만 열을 올리는 관광 취향 때문이리라. 누구나 이름만 대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유명 관광지는 없지만 쪽빛 바다와 푸르른 자연풍광이 어울러진 사르디냐 섬은 시승만 하고 떠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절경을 품고 있었다. 시승 일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섬 남쪽에 자리한 칼리아리에 도착한 일행은 버스를 타고 20여 분 달려 항구 컨테이너 야적장에 마련된 워크숍 장소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차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간단한 체험코스를 경험한 뒤 시승차를 받아 직접 호텔까지 이동하는 방식. 컨테이너가 듬성듬성 놓여 있는 야적장 한편에 50대의 신형 5시리즈가 도열해 취재진을 맞이했다. 시승 모델은 휘발유(530i)와 디젤(530d) 두 가지 엔진에 MT와 AT를 조합한 4가지. 새차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최신 메커니즘 소개에 이어 간단한 주행 테스트가 이어졌다. 실물로 접한 5시리즈는 생각보다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미 사진을 통해 눈에 익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7시리즈와 Z4에 비하면 ‘혁신적’이라 부르기에는 충격의 강도가 떨어진다. 앞선 두 모델이 감당해야 했던 언론과 팬, 자동차업계의 차가운 반응을 무시할 수 없었나 보다. 더구나 신형 5시리즈는 연간 2만6천 대 판매를 목표로 할 만큼 중추적인 사명을 띤 모델이기 때문에 다양한 고객의 취향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크리스 뱅글이 신형 5시리즈를 흔히 보았던 듯 밍밍한 모습으로 완성했을 리 없다. 새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헤드램프 디자인에 깃털 느낌으로 살짝 얹은 깜박이, 양쪽 끝을 바짝 치켜든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와 트렁크리드, C필러 그리고 차체 옆 액센트 라인이 만들어내는 조형미는 구형과 분명히 구분된다. 길이 66mm, 너비 48mm, 높이 40mm가 늘어난 당당한 체구를 지녔고 실내공간 확보를 의식해 휠베이스는 62mm 길어졌다. 인테리어, 특히 대시보드 디자인은 7시리즈와 Z4를 한데 버무렸다. 낯선 개성과 화려함으로 무장했던 7시리즈와 달리 신형 5시리즈의 내면은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로 승객을 감싼다. 중간이 불룩하게 곡선을 그리는 간결한 대시보드에 새로운 3스포크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을 얹었다. 센터페시아는 i-드라이브를 위한 모니터를 위에 두고 그 밑에 에어벤트와 스위치, 오디오를 두었다. 직사각형 버튼을 일직선으로 나열했던 구형과 달리 버튼과 로터리 스위치를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시인성과 조작성이 한결 좋아졌다. 시프트게이트와 사이드 브레이크가 놓인 센터터널 디자인은 5시리즈만의 독특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부분. 시프트 노브가 없는 7시리즈와 달리 시프트게이트 아래쪽에 달린 i-드라이브 컨트롤 스위치는 조작하기에 딱 알맞은 위치. 하지만 이 첨단 시스템은 여전히 적응하는 데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트는 안락하면서도 운전자를 확실하게 감싸고 늘어난 휠베이스가 뒷좌석의 여유를 더했다. 6가지나 준비된 시트 중에서 최고 버전은 등받이 윗부분과 럼버 서포트를 비롯해 사이드 서포트까지 조절할 수 있다. 변하지 않은 듯 개선된 실키 식스 BMW는 전 세계 메이커 중 구동계의 변화가 가장 적은 메이커 중 하나. 대부분 메이커들이 V6으로 노선을 바꾼 상황에서도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직렬 6기통은 물론 FR 레이아웃을 고집하고 있다. 현재 발표된 신형 5시리즈용 엔진은 직렬 6기통 DOHC 2.0X 170마력과 3.0X 231마력 2가지 휘발유에 3.0X 직분사 디젤 218마력. 머지않아 2.5X와 V8 4.4X 휘발유도 더할 예정이다. 오랜 전통의 직렬 6기통 휘발유 엔진은 흡배기 가변식 밸브 타이밍 기구(VANOS)로 토크 특성을 매끄럽게 다듬었다. 구형에 비해 달라진 부분이 거의 없는 것은 더 이상 개선할 것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상적인 사용’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차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보수가 필요 없다는 설명. 한편 직분사 디젤 엔진은 많은 발전을 거쳐 출력이 12%(218마력), 토크가 22%(51.0kg·m)나 늘었다. 새로운 커먼레일 직분사 시스템은 1천600기압으로 연료를 분사하고 더블 파일럿 분사를 통해 진동과 배기가스 문제를 해결했다. 발전된 제어 시스템과 함께 6V의 저전압 스파크플러그를 갖춰 영하 20도의 강추위에서도 2초면 시동이 걸린다. 변속기는 수동 6단과 자동 6단. 자동 6단은 7시리즈가 세계 최초로 쓰기 시작했다. 단수가 늘었지만 최고시속은 모두 5단에서 얻어지고, 6단은 정속주행 때 엔진의 회전수를 낮춰 소음과 연료소비를 줄이기 위한 오버드라이브 개념이다. 신소재 사용으로 구형 5단보다 오히려 무게가 줄었고, 최신 마찰용접 방식으로 만든 알루미늄 프로펠러 샤프트가 구동계 저항을 최소화한다. M3과 3시리즈 쿠페/컨버터블에 얹었던 6단 세미 AT SMG도 기대되는 옵션. 길고 지루한 탐색전은 여기까지. 이제 시승차에 몸을 싣고 본격적인 테스트에 나섰다. 530d를 타고 도전한 첫날 시승 코스는 워크숍 장소를 떠나 숙소인 호텔 포르테 빌라지까지의 약 130km 구간으로, 초반은 직진 안정성을 살펴볼 수 있는 고속구간이었다. 섬에 이 정도로 긴 직선로가 있다는 데 놀랐지만 제주도의 13배 면적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 아직까지 국내에서 접할 수 없던 첨단 직분사 디젤의 성능은 놀라웠다. 매끄러운 회전에 진동이나 소음도 거의 느껴지지 않아 시동을 걸거나 액셀을 밟는 것만으로는 휘발유 엔진과 구별하기 힘들다. 5천rpm부터 빨갛게 변하는 타코미터를 눈여겨봐야 확인할 수 있을 정도. 530i에 비해 토크가 67%나 높은 51.0kg·m에 이르지만 좁은 토크밴드와 급격한 곡선특성 때문에 2천rpm 이하에서는 가속이 답답하다. 6단 MT로는 재빠른 달리기가 힘들지만 AT와 어우러지면 제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휘발유에 비해 순발력이 크게 뒤지지 않으면서 520i보다 뛰어난 연비가 자랑거리. 한편 이튿날 몰아본 직렬 6기통 휘발유 엔진의 530i는 ‘실키 식스’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매끄러운 반응과 순발력, 다루기 쉬운 토크특성을 보여주었다. 최대토크의 90%를 1천500~6천rpm의 넓은 범위에서 뿜어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출력 부족을 느끼기 힘들고 변속기와의 매칭도 뛰어나다. 파워풀한 V8 엔진도 좋겠지만 이 쪽이 신형 5시리즈의 성격에 가장 잘 어울려 보인다. 수동 6단은 클러치가 단단하고 시프트 노브의 스트로크는 승용차답게 조금 긴 편. 하지만 절도 있는 느낌이 운전의 재미를 더한다. 6단 AT 스텝트로닉은 변속 충격이나 슬립 없이 재빠른 변속을 이어나간다. 수동 모드는 여전히 시프트 노브를 왼쪽으로 당긴 채 밀고 당기는 타입. 신무기 액티브 프론트 스티어링 신형 5시리즈 메커니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새로운 스티어링 시스템 AFS(Active Front Steering)다. 스티어링 샤프트와 피니언 사이에 기어박스와 모터를 달아 기어비를 조절하는 AFS는 저속에서 적은 스티어링 조작에도 앞바퀴를 많이 꺾고 고속에서는 그 반대로 제어한다. 우선 워크숍 장소에 마련된 코스를 통해 그 성능을 느껴볼 수 있었다. 시속 20~30km 정도로 통과해야 하는 저속 슬라럼에서 기본형은 스티어링 휠을 좌우 180°이상 틀어야 했지만 AFS가 달린 차는 두 손을 떼지 않은 채로 통과할 수 있었다. 시승 코스를 달리며 ‘AFS 집중탐구’에 나섰다. 그 효능이 두드러진 부분은 저중속의 와인딩 로드. 특히 급코너가 이어진 코스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실력을 자랑했다. 특히 둘쨋날 초반의 산을 휘감아 도는 코스는 새 메커니즘의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할 수 있는 무대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고속에서의 핸들링 감각. 시속 200km 부근에서 스티어링을 꺾었을 때의 차 움직임이 머리 속으로 예상한 것과 약간 다른 데서 이질감을 느꼈다. 안전을 우선한 설계임에는 틀림없지만 운전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의문이 남는 부분. 와인딩 로드에서의 재빠른 몸놀림은 AFS뿐 아니라 고강성 섀시와 잘 다듬어진 서스펜션이 있기에 가능하다. 구형에서 이어받은 알루미늄 소재의 앞 스트럿, 뒤 멀티링크 레이아웃은 숙성에 숙성을 거듭했고 7시리즈로부터 다이렉트 드라이브 시스템까지 전수받았다. 다이렉트 드라이브 시스템은 예전부터 인정받아온 5시리즈의 칼날 같은 핸들링을 더욱 갈고 닦아줄 비장의 무기. 스테빌라이저를 인위적으로 비틀어 차의 롤링을 제어하기 때문에 직선이나 저속에서의 승차감을 해치지 않으면서 코너링 때 롤링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처음에는 서스펜션이 부드러워 와인딩 로드에서 얼마큼 버텨줄지 의심스러웠지만 막상 빠르게 코너에 진입하니 예상이 무참히 깨어지고 만다. 타이어 접지력을 확보하고 주행안정성을 높이는 DTC(Dynamic Traction Control)와 DSC(Cynamic Stability Control), ASC(Automatic Stability Control) 등의 장비도 안정된 주행을 돕는다. 전혀 다른 성질의 알루미늄과 스틸을 조합해 만든 섀시는 우려와 달리 가혹한 시승 코스에서도 흐트러짐을 전혀 느낄 수 없고, 가벼워진 앞부분 덕에 무게배분이 더욱 완벽해졌다. 이로서 V6에 비해 앞부분이 무거워지는 직렬 6기통 엔진의 고질적인 단점이 해소되었다. 소음은 요즘 기준에서 조금 큰 편이지만 스포티한 차의 성격을 생각하면 노면과의 마찰음이나 배기음 유입이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에필로그 이틀간의 시승을 통해 몸으로 느껴본 신형 5시리즈는 성공을 예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BMW 디자인 변신을 주도해온 크리스 뱅글이 시장 반응을 의식해 한발 물러섰다는 평도 있지만 그보다는 앞선 모델에서 시험한 혁신적 디자인을 다듬고 정리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덕분에 메이커 이미지가 또렷하면서도 참신해지고, 거부감 없는 새로운 얼굴이 완성되었다. 메커니즘 면에서는 전통적인 엔진 형식과 구동계, 서스펜션에 신기술을 더함으로써 달리기 성능을 한층 갈고 닦았다. 이밖에 HUD와 어댑티브 브레이크 램프, 런플랫 타이어 등의 다양한 기술을 써 BMW의 21세기 기술을 테스트하는 실험차라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특히 와인딩 로드에서 보여준 AFS의 성능은 BMW가 주장해온 ‘궁극적 드라이빙 머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빛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호랑이가 날개를 달 듯, 훌륭한 자질에 첨단기술을 더한 5시리즈는 이제 힘차게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발톱을 세우고 날아갈 격전지에서 기다리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라이벌 벤츠 E클래스. 이 둘의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는 것도 직접 5시리즈를 운전하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일이다. BMW 뉴 5시리즈의 주요 제원 530i 530d 크기 길이×너비×높이(mm) 4841×1846×1468 ← 휠베이스(mm) 2888 ← 트레드 앞/뒤(mm) 1558/1582 ← 무게(kg) 1570 1685 승차정원(명) 5 ← 엔진 형식 직렬 6기통 DOHC 직렬 6기통 DOHC 직분사 디젤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 보어×스트로크(mm) 84.0×89.6 84.0×90.0 배기량(cc) 2979 2993 압축비 10.2 17.0 최고출력(마력/rpm) 231/5900 218/4000 최대토크(kg·m/rpm) 30.6/3500 51.0/2000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 연료탱크 크기(ℓ) 70 ← 트랜스미션 형식 수동 6단 자동 6단 기어비 ①/②/③ 4.350/2.496/1.665 4.170/2.340/1.520 ④/⑤/⑥/R 1.230/1.000/0.851/3.930 1.140/0.870/0.690/3.400 최종감속비 2.930 2.47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멀티링크 ← 브레이크 앞/뒤 모두V디스크(ABS) ← 타이어 앞/뒤 225/55 R16 ← 성 능 최고시속(km) 250 243 0→시속 100km가속(초) 6.9 7.3 시가지 주행연비(km/ℓ) 7.1 9.4 값 ㅡ ㅡ
Jaguar X-type 2.1 국내 판매 울상인 .. 2003-06-19
탄생 배경 사이드카 제작회사로 출발한 재규어는 48년 태어난 스포츠카 XK120의 성공을 발판 삼아 50~60년대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최고시속 212km의 뛰어난 성능에 안락한 승차감까지 갖춰 ‘스포츠카는 거칠다’는 통념을 뒤집은 XK120은 이후 C타입(51년)과 D타입(55년) 경주차로 발전해 내구레이스를 휩쓸었고 D타입은 55~57년 르망 24시간 3연패의 업적을 쌓으며 재규어를 영국의 신흥명문으로 이끌었다. XK 시리즈와 호화로운 대형 세단 마크Ⅶ 사이를 메우면서 55년 선보인 마크Ⅰ은 59년 XK150의 3.8X 엔진을 얹은 마크Ⅱ로 이어졌다. 마크Ⅱ는 XK120 같은 스포츠카를 타던 젊은 귀족이 가정을 꾸린 뒤 자연스럽게 옮겨 탈 수 있는 ‘작은 재규어’였다. 5명이 앉기에 충분한 공간과 스포티한 달리기, 영국차만이 지닐 수 있는 엘레강스한 라인이 매력적인 마크Ⅱ는 67년까지 생산되며 재규어의 전성기를 풍미했다. 브리티시 레일랜드에서 분리되어 84년 민영화된 재규어는 영국 특유의 낮은 생산성과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88년 포드 그룹에 합병되었다. 영국 귀족주의의 낭만에 절어 있던 재규어는 미국 포드의 실용주의와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명가 재건을 알렸다. 94년 등장한 신형 XJ6과 2년 뒤 선보인 스포츠 쿠페 XK8의 인기로 원기를 회복한 재규어는 98년 S타입을 내놓으며 체질개선에 들어갔다. 모 기업 산하의 링컨 LS 플랫폼 위에 재규어의 색깔을 입힌 S타입 데뷔 이후 재규어의 판매대수는 5만 대(98년)를 넘어섰고 2000년에는 9만 대 수준까지 성장했다. 판매에 불이 붙은 재규어는 연산 20만 대의 목표를 세우고 점차 커져가는 유럽 D세그먼트 시장을 겨냥한 컴팩트 세단 X400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유럽포드에서 빌려온 몬데오 플랫폼에 재규어 차 중 처음으로 4WD 시스템을 얹었고 S타입의 성공에서 얻은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마크Ⅱ 이후 40여 년 만에 등장한 ‘베이비 재규어’ X타입은 2001년 판매를 시작해 영국 니어 럭셔리 시장에서 벤츠 C클래스, BMW 3시리즈 등을 제치고 65%의 점유율을 차지했고, 같은 해 스코틀랜드 ‘카 오브 더 이어’를 수상했다. 메커니즘 X타입은 기본적으로 유럽포드의 몬데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FF 방식의 몬데오와 달리 독자적인 네바퀴굴림 구동계를 얹었고, 공용 부품도 20% 정도로 많지 않다. ‘트랙션4’라 부르는 풀타임 4WD 시스템은 비스커스 커플링 센터 디퍼렌셜이 앞뒤 바퀴 구동력을 평소에는 40:60으로 나누고 한쪽 바퀴가 미끄러지면 나머지 바퀴에 구동력을 집중시킨다. 하지만 지난해 추가된 2.1X 엔진의 베이식 모델은 몬데오와 같은 앞바퀴굴림. 포드에서 물려받은 2.1, 2.5, 3.0X 세 가지 배기량의 V6 DOHC 엔진은 가변 흡기 시스템과 가변 밸브 기구를 더해 2천~2천500rpm에서 최대토크의 90%가 나오도록 세팅, 재규어다운 순발력을 가미했다. 트랜스미션은 게트락 수동 5단과 일본 자트코가 개발한 자동 5단 두 가지. 앞뒤 서스펜션은 각각 맥퍼슨 스트럿, 멀티링크 타입으로 핸들링과 승차감을 두루 만족시킨다. 올 하반기에는 고성능 R버전을 더할 예정. X타입 R은 새로 개발한 V6 3.0X 330마력 엔진과 수동 6단 또는 옵션으로 마련된 자동 6단 트랜스미션을 조합하고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4WD 시스템의 성능을 더욱 보강해 BMW M3, 벤츠 C32 AMG 등과 경쟁하게 된다. 스타일 & 인테리어 이미 데뷔 2년이 지났지만 재규어 라인업의 막내 X타입에 대해서는 아직도 갖가지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네 개의 원형 헤드램프와 갸름하게 눌러앉은 그릴 등 앞모습에서는 기함 XJ의 얼굴이 떠오르고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에서는 XK의 DNA가 느껴진다. 끝자락을 살짝 내리고 보디 옆면에 깊게 팬 캐릭터라인은 오직 재규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 우아한 보디라인도 XJ의 실루엣 그대로지만 풍만해진 차체에 세련미를 더하려 새겨 넣은 잔주름이 불어난 뱃살을 감추려는 화려한 장신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전통과 변화의 갈등은 인테리어에서도 드러난다. 고풍스런 단풍나무 장식을 넓게 펴 붙인 대시보드나 연한 베이지 가죽을 수건처럼 두른 부드러운 곡선의 센터페시아는 영락없는 재규어다. 브리티시 그린 바탕의 클래식한 원형 계기판이나 우드 시프트 노브, 전통의 J게이트 등에서도 ‘재규어다운’ 감각이 물씬하다. 하지만 전통에 충실한 나머지 ‘베이비 잭’(Baby Jag)이라는 애칭에 걸맞지 않게 서툰 애늙은이 같은 모습도 느껴진다. 대시보드와 센터콘솔의 빈 공간을 화려하게 채운 나무장식은 재질이 의심스럽고 실내 부품에서는 값싼 포드 냄새가 진하다. 큼지막한 스위치를 가지런히 배치한 센터페시아는 아기자기한 맛이 덜할지언정 조작성만큼은 으뜸이다. 제법 넓은 글러브박스는 펜 홀더와 잔챙이 물건을 옥죄어둘 수 있는 그물까지 갖췄고 질감 좋은 가죽 스티어링 휠도 크루즈 컨트롤과 오디오 조절 스위치를 덤으로 얹었다. 깊고 넓은 트렁크는 적재용량 452X 로 전통적인 재규어보다 공간이 넓다. 한껏 멋을 부린 테일램프가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입구를 좁혔지만 트렁크 덮개의 너비가 충분해 부피 큰 골프 클럽도 너끈히 싣고 내릴수 있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단장한 시트는 등받이와 쿠션 모두 사이즈가 넉넉하고 8가지 방향의 전동 컨트롤러로 편한 운전자세를 잡을 수 있다. 뒷좌석은 헤드룸이 좁지만 무릎공간이 넉넉해 거주성을 크게 해치지는 않는다. 등받이 각도가 알맞고 쿠션도 적당히 단단해 몸을 아늑하게 감싸준다. 하지만 등받이 양옆에 두툼한 쿠션이 마련되어 있어 성인 셋보다 두 명이 편하게 앉기에 적당하다. 70:30 비율로 나눠 접어 짐칸을 넓힐 수도 있다. 주행성능 포드 몬데오의 골격을 물려받은 X타입은 전통에 충실한 실내외 디자인으로 재규어다운 감각에 다가섰다. 뒷바퀴에 더 많은 구동력이 전해지는 4WD 시스템(V6 2.5, 3.0X )도 전통 뒷바퀴굴림 방식과의 연결고리. 옛것에 바탕을 둔 진화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FF와 FR 방식의 특성을 넘나드는 주행성격 속에서 안정된 핸들링의 타협점을 찾았고 민첩한 발놀림이 이를 뒷받침했다. 시승차로 선보인 X타입 2.1은 V6 2.1X DOHC 엔진과 5단 AT를 조합하고 유일하게 앞바퀴굴림 방식을 쓴 모델이다. 포드 듀라텍에 바탕을 둔 V6 2.1X 엔진은 최고출력 156마력을 내고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와 4단계로 조절되는 가변 흡기 시스템을 써 최대토크(20.0kg·m)의 90%를 2천rpm부터 이끌어낸다. 컴팩트 재규어의 ‘베이비 V6’ 엔진은 군더더기 없는 반응으로 조용히 속도를 높여간다. 4기통 터보의 폭주할 듯한 긴장감이나 FR 세단의 짜릿한 추월가속이 그리울지라도 더 이상의 기대는 금물이다. 밸런스 샤프트로 잔 진동까지 잡아낸 엔진은 부드럽고 순하기로 치자면 단연 톱클래스다. J게이트 기어는 시프트 인디케이터가 없고 낮은 기어를 쓰려면 손으로 J자를 그리듯 레버를 올려붙여야 하는 조작 방식이 낯설지만 재규어 오너라면 ‘특혜’로 여기고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손목을 털 듯 가볍게 낚아채는 손맛에 익숙해진 뒤부터는 운전 재미가 배로 늘어난다. 묵직한 센터 디퍼렌셜과 드라이브 샤프트를 떼어내 부담이 줄어든 하체는 유연한 고양이처럼 복잡다단한 도로 위를 사뿐사뿐 내딛는다. 보디 제어 능력은 더욱 나아졌고 급격한 스티어링 조작에 매끈한 동선을 그리며 따라오는 핸들링도 돋보인다. X타입을 위해 마련된 트랙션 컨트롤은 때아닌 폭우로 물바다가 된 도로를 헤쳐갈 때 휘청대는 차체를 다잡으며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주었다. 4WD마저 떨쳐버린 X타입은 이단아로 낙인찍힐 수 있다. 하지만 재규어 특유의 경쾌한 풋워크가 여전하고 약한 언더스티어를 안고 야무지게 돌아나가는 코너링 실력은 예상밖에도 4WD 모델보다 낫다. 구입 가이드 포드 PAG 산하의 재규어는 지난해 세계 64개국에 13만 대 이상의 차를 팔아 29%의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그 중 X타입은 지난 2년 동안 10만 대 정도 팔리며 S타입과 함께 90년대 더딘 걸음을 걷던 재규어에 숨통을 틔워주었다. 해외 시장에서 당당했던 영국 귀족의 막내는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잔뜩 위축된 모습이다. 판매 모델은 V6 2.1, 2.5, 3.0 세 가지. 지난해 1월 국내 판매를 시작한 X타입은 한 해 동안 모두 31대가 팔려 재규어 전체 판매량(71대)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올해도 4월까지 20대가 팔리며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경쟁 모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 기대를 안고 올 1월에 선보인 V6 3.0X 231마력 엔진의 3.0 모델이 꾸준한 인기를 모으는 것이 그나마 위안되는 점이다. 지난 3월 논현동 전용 전시장 오픈을 기념해 36개월 무이자할부, 자동차세 대납 등의 파격적인 서비스를 실시했던 재규어 코리아는 뉴 XJ의 6월 출시를 계기로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X타입은 12가지 보디 컬러와 6개 인테리어 색깔을 조합할 수 있다. 재규어가 귀족의 차라지만 전시장의 문턱은 늘 열려 있다. X타입은 5천850~6천900만 원으로 가장 싼값에 얻을 수 있는 재규어다. 문의 : 재규어 전용전시장 ☎ (02)514-9588 재규어 X타입 2.1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700×1790×1430mm 휠베이스 2710mm 트레드 앞/뒤 1520/1535mm 무게 1485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V6 DOHC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1.6×66.8mm 배기량 2099cc 압축비 10.8 최고출력 156마력/6800rpm 최대토크 20.0kg·m/41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61.5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802/2.132/1.365 ④/⑤/ⓡ 0.935/0.685/2.970 최종감속비 4.15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맥퍼슨 스트럿/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V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05/55 R16 성능 최고시속 205km 0→시속 100km 가속 10.8초 시가지 주행연비 11.1kmℓ 값 5,850만 원
Saab 9-3 실패 확률 적은 ‘팜므 파탈’의 유.. 2003-06-18
R 등급의 영화가 있다. 미국 할리우드의 상영구분 중 하나인 R 등급은 ‘restrict’(제한)의 머릿글자로 우리 기준대로라면 ‘18세 이하 관람불가’ 정도에 해당한다. 영상 표현의 수위가 제법 자유로운 할리우드에서도 R 등급을 받는 영화들은 대개 깨부수는 재미로 가득한 블록버스터이거나 신체의 노출 정도가 심한 포르노그라피인 경우가 많아 유달리 자극적인 볼거리에 충실한 편이다. 낯선 스타일링에 새 에어로파츠 더해 R 등급 영화에 등장하는 미모의 팜므 파탈(Femme Fatale, 악녀)처럼 ‘위태로워 더욱 매력적인’ 차도 있다. 기자에게는 2년 전에 만난 사브의 구형 9-3 에어로가 그런 차였다. 2.0X 고압터보 203마력 엔진을 얹은 9-3은 앞차를 덮칠 듯 덤벼드는 추진력이 화끈했다. 양팔의 기력을 고갈시키는 억센 토크스티어와 노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스티어링 감각조차 적극적인 운전 쾌감으로 갈무리되었다. 짜릿한 만남의 기억이 아스라해질 즈음, 혈기왕성했던 스칸디나비아 친구가 온몸을 뜯어고치고 지난해 말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오펠 벡트라와 GM 계열 입실론 플랫폼을 함께 써 뼛속 깊은 곳까지 확 바꾸었다는 소식. 지난 겨울에 만난 새 9-3은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개성 만점이던 해치백 스타일을 버렸다는 사실에 마음의 빗장을 걸어둔 뒤였고, 새로운 노치백 보디는 사브 전통의 프론트 그릴만 아니면 독일 스포츠 세단에 다름없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에어로의 존재는 남달랐다. 이미 구형 9-3 에어로의 짜릿한 자극에 혼을 빼앗겨버린 적이 있지 않던가. 새로운 컴팩트 사브의 에어로 모델이 옛 친구의 기질을 물려받았다면 그것이 팜므 파탈의 위험한 유혹일지라도 흔쾌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때 이른 더위로 지면이 이글거리던 날, 완전히 달라진 9-3 에어로와 해후했다. 깔끔한 실버 메탈릭 컬러로 단장한 시승차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자세가 낯설다. 럭비 헬멧 같은 에어댐으로 얼굴을 감싸고 허리 아래와 뒤 범퍼에도 스커트를 덧대 험상궂은 인상이지만 이런 액세서리들 덕분에 차체 앞뒤의 리프트 현상은 기본형보다 70, 40%나 나아졌다. 트렁크리드에 조심스레 얹은 조그만 스포일러도 ‘공중부양’을 억제하는 기막힌 소품. 휠 아치를 가득 채운 225/45 ZR17 사이즈의 피렐리 P제로 타이어가 터질 듯한 긴장감을 더한다. ‘에어로’다운 변화를 확인하고 운전석 도어를 여는 순간, 반가운 옛 흔적에 흡족한 웃음이 배어 나왔다. 뒤로 갈수록 올라붙던 벨트라인은 쪽창에 이르러 웃음 띤 기자의 입 꼬리처럼 부드럽게 꺾이며 2년 전 만났던 그 친구의 옆얼굴(윈도 그래픽)을 그려내고 있었다. 새로운 것은 겉모습뿐만이 아니다. 세련된 인테리어가 두드러지고 캐딜락 CTS처럼 선 굵은 3스포크 스티어링 휠도 한눈에 들어온다. 시승차는 스티어링 스포크 위에 날개처럼 생긴 센트로닉 변속 버튼을 달고 도어 패널을 아우르는 라인과 기어박스를 무광 우드 그레인 대신 메탈 장식으로 단장해 스포티함을 더했다. 도어트림과 대시보드, 센터콘솔의 이음새를 매끈한 곡선으로 마감한 디자인과 뒷마무리 실력은 꼼꼼한 독일 메이커들도 울고 갈 수준. 변화의 폭이 크지만 사브의 고정 팬들이 쉽게 납득하고 익숙해질 수 있는 디자인이라는 사실에 더욱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대시보드 실루엣과 독특하게 조작되는 에어벤트, 기어레버 뒤에 둔 이그니션 키홀이 사브 매니아의 향수를 달래준다. 시인성이 매우 뛰어난 비선형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센터미터 방식의 SID(Saab Information Display)는 완전히 달라진 사브 중 하나다. 센터페시아는 정리가 잘 되어 있지만 버튼이 많아 혼란스럽다. 스위치가 작아지기까지 해 더 이상 구형에서처럼 장갑을 끼고 ‘툭, 툭’ 눌러대기는 어려워 보인다. 운전석에는 SID 말고도 대시보드 가운데 또 하나의 디스플레이가 마련되어 있다. 두 가지 화면은 모두 조그 다이얼로 메뉴를 고르고 세팅하는 방식. 쓰임새 좋은 기능이 많지만 다이얼을 돌리고 눌러가며 순차적으로 메뉴를 찾아가는 과정이 좀처럼 손에 익지 않는다. 고분고분 명령에만 따르던 예전과 달리 버릇없이(?) 운전자에게 지시하는 법을 알았다는 점은 신형 9-3 에어로의 또 다른 변화 포인트다. 주행 도중 조수석 승객이 안전벨트를 풀면 계기판 인디케이터에 ‘i’라는 글자를 띄워 SID를 주목하라고 명령한다. 센터미터에 시선을 돌리면 어김없이 빨간 바탕의 경고등이 들어와 있다. 운전석 시트는 척추 마디 하나하나를 떠받들 듯 몸 전체를 빈틈없이 다잡아주고, 뒷좌석은 트렁크에 달린 레버를 당겨 60:40으로 간단히 나눠 접을 수 있다. 열린 도로 빨아들이는 짜릿한 가속 9-3 에어로에 얹은 심장은 오펠 에코텍에 바탕을 둔 알루미늄 블록의 4기통 2.0 DOHC 터보 210마력·2천500rpm에서 28.5kg·m의 최대토크가 나오지만 트라이오닉8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고압터보의 부스트 압력을 제어해 거친 반응을 부드럽게 순화시키고 중저속부터 부족하지 않은 토크를 이끌어낸다. 날카롭고 예민해 더욱 즐거웠던 구형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시동키에 손을 가져갔다. ‘아차!’ 스티어링 칼럼에서 헛손질을 한 뒤에야 사브임을 깨닫는 버릇은 어김없이 반복되는 해프닝이다. 절제된 엔진 진동과 소음이 예전 같지 않지만 야수의 본능처럼 그렁대는 숨소리마저 감추지는 못한다. 액셀 페달을 밟자 묵직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당혹스럽다. 1/3의 답력을 유지하고 시속 100km까지 속도를 높여갈 때는 패밀리 세단처럼 다소곳하다. 팜므 파탈 에어로에 정적은 어울리지 않는다. 액셀러레이터에 얹은 오른발을 깊숙이 밀어 넣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아본다. 속도계 오른쪽의 터보 게이지가 숨차게 레드존을 때리고 시승차는 패대기쳐진 돌처럼 먼 도로 앞 공간으로 쏜살같이 뻗어간다. 아니, 9-3 에어로의 순간가속은 먼발치의 공간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느낌에 더 가깝다. 실제속도보다 체감속도의 상승폭이 훨씬 크지만 비틀림 강성이 높아진 섀시에 영리한 서스펜션을 버무려 차체를 흔드는 위화감은 크게 줄었다. 직진주행성도 한결 개선되었지만 속도계 바늘이 시속 140km를 가리킬 때부터 도로에 진득하게 들러붙는 느낌이 옅어져 불안하다. 진화과정을 겪은 뒤로 까다로운 토크스티어와 절정의 노면 타기가 흔적을 감추었지만 고속과 부지런한 움직임에 더욱 날카로워지는 스티어링 감각은 여전히 스릴 만점이다. 숙성된 터보 유닛은 응답성이 좋고 터보 작동시점도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매끄럽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와인딩 로드를 시속 110km를 유지하며 헤집을 때는 군더더기 없는 핸들링이 빛을 발한다. 도로를 지그시 누르고 달리는 서스펜션 감각은 독일 스포츠 세단의 야무진 하체를 떠올릴 만큼 매력적이다. 여세를 몰아 시속 70~80km로 파고든 예각의 코너에서도 주춤거림 없는 몸놀림이 일취월장한 컴팩트 사브의 실력을 증명한다. 한편 센트로닉 기어의 수동 모드는 시프트 반응이 반 박자씩 늦어 운전재미를 떨어뜨리고 냉수 들이키듯 연료를 먹어치우는 대식가라는 사실이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새 9-3 에어로는 시트에 앉아 순항만 하는 것이 더 어려운 차다. 자극적인 운전재미를 덜어내고도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 움찔거리는 녀석이다. 더구나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거친 뒤로는 다양한 운전자와 타협하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다. 자, 이제는 운전자가 고집을 버리고 차에게 다가서야 할 차례. 시승을 마친 기자는 시동을 끄기 위해 다시 한번 스티어링 휠 뒷공간을 휘저었다. 시동키는 여전히 시프트레버 뒤에 꽂혀 있고 연료도 한 눈금이나 남아 있었다. 9-3 에어로와 사브의 짜릿한 달리기는 남은 연료처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승협조 : GM 오토월드 ☎ (02)3408-6262 사브 9-3 에어로의 장단점 장점 ·도로를 집어삼킬 듯 짜릿한 가속 ·시인성 좋은 비선형 계기판 ·군더더기 없는 핸들링 단점 ·다루기 번거로운 SID ·작고 많은 센터페시아 버튼들 ·연료에 대한 식탐 사브 9-3 에어로의 주요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635×1760×1465mm 휠베이스 2675mm 트레드 앞/뒤 1506/1506mm 무게 1560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직렬4기통 DOHC 터보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6.0×86.0mm 배기량 1998cc 압축비 10.1 최고출력 210마력/5300rpm 최대토크 28.5kg·m/25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63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4.575/2.979/1.947 ④/⑤/ⓡ 1.317/1.000/5.024 최종감속비 2.44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4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모두 225/45 ZR17 성능 최고시속 230km 0→시속 100km 가속 9.0초 시가지 주행연비 9.0km/ℓ 값 5,76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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