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시승기

프레스티지 세단의 새 영역 확인하다 알루미늄 보디의.. 2003-07-09
눈 앞에는 또 한번 거친 코너가 펼쳐진다. 3단에 고정되어 있던 시프트기어를 2단으로 내린 뒤 재빨리 오른손으로 스티어링 림의 빈자리를 잡아 끌어본다. 흐트러짐 없이 코너의 끝을 정복한 차체는 이미 다음 오르막 커브를 공략하기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길이 5.09m의 알루미늄 보디는 가볍지만 경박하지 않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와인딩 로드에서 보여주는 끈끈하고 경쾌한 핸들링에 절로 감탄 섞인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앞서 탄 아우디 A8의 빈틈없고 야무진 감각에 젖어 있던 몸은 어느새 가장 영국적인 프레스티지카의 유연한 움직임에 동화되고 있었다. 프레스티지 세단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는 순간, 기자의 두 손은 재규어 XJ6의 스티어링 휠을 움켜쥐고 있었다. 전통의 테두리 안에 담긴 첨단기술 재규어 XJ는 프레스티지 세단이면서 권위적이지 않은, 세련된 스트라이프 양복이 참 잘 어울리는 차였다. 하지만 80년대 질곡의 세월 속에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눈에 띄는 기술적 성과도 이루지 못했다. XJ는 여전히 기품 있는 차였지만 전통의 가치를 인정하는 격조 높은 소수의 오너를 위한 차로 자리매김해갔다. XJ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그와 함께 유럽 프레스티지 세단을 대표하던 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는 나날이 발전하며 확고한 자리를 굳혔고 후발주자인 아우디 A8이 XJ의 빈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슬며시 기억의 끝자락으로 밀려나는 듯했던 XJ는 지난해 파리 오토살롱에서 일신한 모습으로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은빛 알루미늄 옷을 입고 선보인 7세대 XJ는 변한 듯 변함 없는 우아한 스타일링이 화제였고 전통의 테두리 안에 눈에 띄지 않게 쟁여놓은 첨단기술이 또한 화젯거리였다. 새로운 방식으로 완성한 알루미늄 보디는 신형 XJ의 가장 큰 변화. 아우디 A8의 스페이스 프레임과 달리 XJ는 주된 골격을 스틸 모노코크 보디처럼 프레스 성형의 알루미늄 패널로 구성하고 용접 없이 리벳과 열경합성 에폭시만으로 섀시를 여몄다. 서스펜션 마운팅과 도어, 루프를 알루미늄 구조물로 만들고 시트 프레임과 대시보드마저 경량 마그네슘으로 마무리했다. XJ 안에 쓰인 스틸 소재는 고작 서스펜션 서브 프레임과 도어 힌지 정도. V8 4.2X 엔진을 쓴 XJ8의 무게(1천615kg)가 V6 3.0X 엔진의 재규어 막내 X타입(1천630kg)보다 가볍지만 보디 강성은 구형보다 60%나 높아졌을 정도로 경량화 기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밖에 시속 120km 이상에서 차고를 자동으로 15mm 낮추고 승객 수나 화물에 상관없이 일정한 지상고를 유지하는 에어 서스펜션, 전자제어식 가변 댐퍼 CATS, 레이저 크루즈 컨트롤 등 첨단의 끝을 보여주는 신기술이 ‘알루미늄 재규어’의 이력서를 빈 칸 없이 채웠다. 하지만 스타일리스트를 자부하는 XJ에게 고유의 세련미를 잃지 않은 유려한 스타일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을까? 재규어는 변하지 않는 전통보다 더 고집스러운 것이 XJ 고정 팬의 내리사랑임을 잘 알고 있었고 과거의 실패와 전 세대 모델이 거둔 절반의 성공을 밑거름 삼아 7세대 XJ에 ‘재규어 DNA’의 모든 것을 담았다. ‘올드패션’ 재규어의 참 매력 데뷔 이후 반년 넘게 뜸을 들이던 XJ는 올해 4월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시판에 나섰고 국내에는 지난 6월에 들어왔다. 재규어 코리아는 V6 3.0X 엔진의 XJ6과 V8 4.2X 엔진을 얹은 XJ8, 두 가지를 먼저 선보였고 곧 V8 3.5X의 XJ8 3.5를 더할 예정. V8 4.2X 수퍼차저 400마력의 XJR은 당분간 도입 계획이 없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 기자는 고민 없이 스트라이프 정장을 받쳐입고 XJ6의 시승에 나섰다. 시승차 하나를 대하는 데 이처럼 유난스런 예우를 갖춰야 할까 싶지만 영국 귀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3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XJ라면 군말 없이 그에 걸맞은 차림새를 지니고 싶었다. 곱디고운 옥빛 옷을 입은 XJ6은 구형보다 길이 50mm, 높이 125mm가 늘어났다지만 불어난 몸집이 피부로 와 닿지는 않았다. 낮고 길게 드리운 옆모습이 우아하고 극단적으로 당긴 앞쪽에 비해 여유 있게 뻗은 뒤 오버행이 예전처럼 멋스럽다. 볼륨을 더하고 앞 유리를 조심스레 눕혀 스포티한 감각을 불어넣었지만 전체적인 비례는 전통의 XJ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두껍게 찍어 바른 듯한 윈도 라인의 크롬장식과 활대처럼 은근히 굽은 캐릭터라인은 ‘올드패션’ 재규어로 통하는 출입구. 연륜이 묻어나는 XJ의 스타일링에는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전통 없이는 부릴 수 없는 여유가 있다. 애써 멋 부리지 않아도 인정받을 수 있는 가치야말로 XJ만의 참 매력이다. S타입의 구성을 빌려온 인테리어는 아늑하고 친근하다. 숙련된 기능공의 손으로 꾸며졌지만 화려함이 절제되어 있고 차분함이 앞선다. 호두나무 원목으로 단장한 고풍스런 대시보드에는 단출한 계기판과 에어벤트, 클래식한 아날로그 시계만이 마련되어 있고 코널리 가죽을 두른 센터페시아도 오디오, 공조장치 등 이제껏 알던 기능 외에는 유다른 것을 갖추지 않았다. 인테리어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제시하는 최근의 독일 프레스티지 세단과 달리 운전자와 승객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으로 생소한 환경에 대한 혼란을 줄인 것이 특징. 단순함과 기능성에 충실한 인테리어는 재규어가 전통을 지켜 가는 또 다른 방법이다. 시트는 앞뒤 모두 세 가지 자세를 기억할 수 있고 운전석은 16가지 위치 조정 외에도 페달과 스티어링 휠, 사이드미러 위치까지 함께 저장한다. 길이가 조절되는 시트 쿠션도 눈에 띈다. 조정 폭이 커 롱다리든 ‘장롱’다리든 문제없이 허벅지를 편안하게 받쳐준다. 스위치를 누르면 글러브박스와 트렁크가 잠겨 호텔 등에서 주차대행을 맡길 때 염려 없는 ‘발레’(valet) 기능도 쓰임새가 좋다. 아우디 A8과의 조우 XJ6의 시승에는 특별히 양산 알루미늄 보디의 리더 아우디 A8이 동행했다. 지난 94년 1세대 ASF 기술을 들고 등장한 A8은 XJ의 자리를 대신한 데 그치지 않고 지난해에는 더욱 발전된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과 첨단기술을 버무려 S클래스와 7시리즈를 제치고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XJ가 확고부동한 전통의 가치 위에 서 있는 차라면, A8은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정상급 기함이라고 할 수 있다. 얌전하고 우아한 XJ6의 곁에 선 A8은 새 역사를 써내려가는 주인공답게 안팎에서 화려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시원하게 펼쳐진 옆모습이 당당하고 날카롭게 가다듬은 얼굴과 테일램프를 한껏 올려붙인 엉덩이가 공격적인 인상을 더한다. 다기능의 단순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 시스템 MMI는 A8의 인테리어에 첨단감각과 화려함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 단순함에서 기능성을 찾는 XJ6과는 접근방법 자체가 다르다. MMI를 처음 접할 때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도 되어야 하는 걸까’ 싶지만 컨트롤 패널과 같은 레이아웃의 팝업 모니터를 보면서 그저 누르고 돌리면 그만인, 지극히 간단명료한 장비다. 경량 알루미늄 보디에 아우디 고유의 풀타임 4WD 콰트로 시스템을 접목하고 4가지 모드로 세팅을 달리하는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을 곁들인 A8은 묵직하고 안정적인 달리기가 매력적이다. 시속 80km에서 180km까지 순식간에 끌어올리는 맹렬한 가속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노면을 짓이기듯 달리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와인딩 로드에서는 포르쉐 복스터를 탔을 때처럼 짜릿한 전율마저 인다. 약간은 가볍고 거칠었던 구형에 비해 한층 숙성되고 업그레이드된 A8은 스포티한 감각과 핸들링, 가속성능, 밸런스만을 놓고 볼 때 분명 동급 최강의 자리에 올라섰다. 하지만 XJ6은 A8과 다른 영역에서, 독일 프레스티지 세단이 넘볼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달리기를 끌어냈다. 그 차이는 시승 장소로 즐겨 찾는 용인의 와인딩 로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기념사진 찍듯 촬영을 끝낸 A8은 잠깐 동안의 조우를 뒤로 하고 매력적인 배기음을 내뿜으며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XJ6은 S, X타입과 함께 쓰는 V6 3.0X DOHC 240마력 엔진을 얹고 ZF 자동 6단 트랜스미션으로 뒷바퀴를 굴린다. 시동을 걸고 액셀 페달을 밟으면 뜻밖에도 뛰어난 응답성에 놀라게 된다. 부드럽지만 어김없는 반응으로 엔진회전수를 끌어올리고 2천~5천rpm 사이를 스트레스 없이 오르내린다. 자연스럽고 야무진 반응을 보이는 것도 비단 엔진만이 아니다. 스티어링과 브레이크, 트랜스미션도 직접적이지 않지만 부드럽게 제 역할을 해낸다. 승차감과 핸들링의 절묘한 조화 저속과 고속, 포장도로와 거친 노면을 가리지 않고 시종일관 이어지는 안락한 승차감은 XJ 매력 돋보기의 시작에 불과하다. 부드러운 서스펜션은 급커브에서 흠잡을 데 없는 핸들링을 끌어내고 그립이나 차체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코너 입구에서 일렁이던 차체는 무게가 바깥쪽으로 쏠리는 순간부터 암팡지게 노면을 붙잡고 돌아나간다. 무게 1천545kg밖에 안 되는 가벼운 차체가 쓰러질 듯하면서도 어김없이 자세를 추스르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여간 신기한 게 아니어서 S자 코스와 헤어핀에 가까운 커브가 이어지는 와인딩 로드에 심술궂게 몸을 던져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XJ의 알루미늄 보디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날 듯 강건한 A8의 그것과 달리 고양이처럼 유연한 반응으로 경쾌하고 암팡진 핸들링을 보인다. XJ6의 달리기는 무난하고 추월가속에서도 꼭 필요한 만큼의 힘만 뽑아 쓴다. 좀더 힘찬 드라이빙을 즐기고 싶다면 J게이트 6단 기어의 2~5단을 부지런히 활용하면 된다. 이마저 짜릿하진 않지만 체구를 잊은 알루미늄 재규어의 날렵한 발놀림을 느끼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XJ에는 아랫급 모델처럼 여전히 시프트 인디케이터가 없다. 이쯤 되면 재규어의 고집에 운전자의 취향을 맞추는 수밖에. 재규어는 예나 지금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관록과 기품을 더해가는 흔치 않은 차다. 더구나 7세대 XJ는 재규어의 브랜드 가치에 첨단기술을 버무려 독일 세단과 구별되는 독보적인 영역을 재창조했다. 문제라면 국내 시장에서 미약한 브랜드 인지도. XJ가 정작 넘어야 할 산은 독일 손맛에만 길들여진, 보수적인 국내의 억만장자 고객이 아닐까. 시승 협조 : 재규어 코리아 ☎ (02)3781-3800 고진모터임포트 ☎ (02)730-0051 재규어 XJ6의 장단점 장점 ·전통에 충실한 스타일링 ·승차감과 핸들링의 절묘한 조화 단점 ·박진감이 부족한 V6 엔진 ·여전히 달리지 않은 시프트 인디케이터 재규어 XJ6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5090×1860×1450mm 휠베이스 3035mm 트레드 앞/뒤 1506/1506mm 무게 1545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V6 DOHC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9.0×79.5mm 배기량 2967cc 압축비 10.5 최고출력 238마력/6800rpm 최대토크 29.8kg·m/41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85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6단 기어비 ①/②/③ 4.171/2.340/1.521 ④/⑤/⑥/ⓡ 1.143/0.867/0.691/3.403 최종감속비 3.071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더블 위시본/더블 위시본 브레이크 앞/뒤 모두 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35/50 ZR18 성능 최고시속 240km 0→시속 100km 가속 8.1초 시가지 주행연비 9.1kmℓ 값 1억850만 원
끝없이 진보하는 핸들링 머신 BMW 5시리즈 혁신과.. 2003-07-09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신형 5시리즈는 21세기의 BMW를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7시리즈와 Z4에서 시험했던 놀라운 디자인 변화와 그 속에 담긴 첨단 기술을 다듬고 숙성시켜 하나로 모았다. 앞선 두 모델과 달리 5시리즈는 3시리즈와 함께 BMW 판매의 핵심이니 만큼 시장의 뜻을 거스르거나 너무 앞질러 가면 외면당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성공에 안주하는 것 역시 BMW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는 일. 혁신과 전통 가운데서 찾아낸 절묘한 절충점이 바로 신형 5시리즈다. 지난 5월 BMW는 그들의 야심 찬 프로젝트 결과물을 공개하면서 냉혹한 저널리스트들의 평가를 당당하게 받아들였다. 환상의 시승 코스에서 만나다 시승 장소로 선택된 곳은 이태리 제2의 섬 사르디냐. 새차의 시승지 선정은 개발 프로젝트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까다로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시승자가 어렵지 않게 코스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테스트와 사고 방지를 위해 교통량이 많으면 안 된다. 고속주행 성능과 핸들링 특성을 음미할 수 있는 고속 직선로와 와인딩 로드의 적절한 배합도 중요한 요소. 매끈한 노면상태에 곁들여 멋진 주위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르디냐는 차가 조금 많다는 것을 제외하면 엄지손가락이 저절로 올라갈 만큼 훌륭한 코스였다. 이태리의 섬 하면 대개 시칠리아와 카프리 정도를 떠올린다. 이태리에서 두 번째로 넓다는 사르디냐(2만4천90km2)는 크기에 비해 우리에게 너무나 낯선 곳. 아마도 유적지 구경에만 열을 올리는 관광 취향 때문이리라. 누구나 이름만 대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유명 관광지는 없지만 쪽빛 바다와 푸르른 자연풍광이 어울러진 사르디냐 섬은 시승만 하고 떠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절경을 품고 있었다. 시승 일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섬 남쪽에 자리한 칼리아리에 도착한 일행은 버스를 타고 20여 분 달려 항구 컨테이너 야적장에 마련된 워크숍 장소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차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간단한 체험코스를 경험한 뒤 시승차를 받아 직접 호텔까지 이동하는 방식. 컨테이너가 듬성듬성 놓여 있는 야적장 한편에 50대의 신형 5시리즈가 도열해 취재진을 맞이했다. 시승 모델은 휘발유(530i)와 디젤(530d) 두 가지 엔진에 MT와 AT를 조합한 4가지. 새차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최신 메커니즘 소개에 이어 간단한 주행 테스트가 이어졌다. 실물로 접한 5시리즈는 생각보다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미 사진을 통해 눈에 익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7시리즈와 Z4에 비하면 ‘혁신적’이라 부르기에는 충격의 강도가 떨어진다. 앞선 두 모델이 감당해야 했던 언론과 팬, 자동차업계의 차가운 반응을 무시할 수 없었나 보다. 더구나 신형 5시리즈는 연간 2만6천 대 판매를 목표로 할 만큼 중추적인 사명을 띤 모델이기 때문에 다양한 고객의 취향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크리스 뱅글이 신형 5시리즈를 흔히 보았던 듯 밍밍한 모습으로 완성했을 리 없다. 새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헤드램프 디자인에 깃털 느낌으로 살짝 얹은 깜박이, 양쪽 끝을 바짝 치켜든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와 트렁크리드, C필러 그리고 차체 옆 액센트 라인이 만들어내는 조형미는 구형과 분명히 구분된다. 길이 66mm, 너비 48mm, 높이 40mm가 늘어난 당당한 체구를 지녔고 실내공간 확보를 의식해 휠베이스는 62mm 길어졌다. 인테리어, 특히 대시보드 디자인은 7시리즈와 Z4를 한데 버무렸다. 낯선 개성과 화려함으로 무장했던 7시리즈와 달리 신형 5시리즈의 내면은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로 승객을 감싼다. 중간이 불룩하게 곡선을 그리는 간결한 대시보드에 새로운 3스포크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을 얹었다. 센터페시아는 i-드라이브를 위한 모니터를 위에 두고 그 밑에 에어벤트와 스위치, 오디오를 두었다. 직사각형 버튼을 일직선으로 나열했던 구형과 달리 버튼과 로터리 스위치를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시인성과 조작성이 한결 좋아졌다. 시프트게이트와 사이드 브레이크가 놓인 센터터널 디자인은 5시리즈만의 독특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부분. 시프트 노브가 없는 7시리즈와 달리 시프트게이트 아래쪽에 달린 i-드라이브 컨트롤 스위치는 조작하기에 딱 알맞은 위치. 하지만 이 첨단 시스템은 여전히 적응하는 데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트는 안락하면서도 운전자를 확실하게 감싸고 늘어난 휠베이스가 뒷좌석의 여유를 더했다. 6가지나 준비된 시트 중에서 최고 버전은 등받이 윗부분과 럼버 서포트를 비롯해 사이드 서포트까지 조절할 수 있다. 변하지 않은 듯 개선된 실키 식스 BMW는 전 세계 메이커 중 구동계의 변화가 가장 적은 메이커 중 하나. 대부분 메이커들이 V6으로 노선을 바꾼 상황에서도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직렬 6기통은 물론 FR 레이아웃을 고집하고 있다. 현재 발표된 신형 5시리즈용 엔진은 직렬 6기통 DOHC 2.0X 170마력과 3.0X 231마력 2가지 휘발유에 3.0X 직분사 디젤 218마력. 머지않아 2.5X와 V8 4.4X 휘발유도 더할 예정이다. 오랜 전통의 직렬 6기통 휘발유 엔진은 흡배기 가변식 밸브 타이밍 기구(VANOS)로 토크 특성을 매끄럽게 다듬었다. 구형에 비해 달라진 부분이 거의 없는 것은 더 이상 개선할 것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상적인 사용’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차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보수가 필요 없다는 설명. 한편 직분사 디젤 엔진은 많은 발전을 거쳐 출력이 12%(218마력), 토크가 22%(51.0kg·m)나 늘었다. 새로운 커먼레일 직분사 시스템은 1천600기압으로 연료를 분사하고 더블 파일럿 분사를 통해 진동과 배기가스 문제를 해결했다. 발전된 제어 시스템과 함께 6V의 저전압 스파크플러그를 갖춰 영하 20도의 강추위에서도 2초면 시동이 걸린다. 변속기는 수동 6단과 자동 6단. 자동 6단은 7시리즈가 세계 최초로 쓰기 시작했다. 단수가 늘었지만 최고시속은 모두 5단에서 얻어지고, 6단은 정속주행 때 엔진의 회전수를 낮춰 소음과 연료소비를 줄이기 위한 오버드라이브 개념이다. 신소재 사용으로 구형 5단보다 오히려 무게가 줄었고, 최신 마찰용접 방식으로 만든 알루미늄 프로펠러 샤프트가 구동계 저항을 최소화한다. M3과 3시리즈 쿠페/컨버터블에 얹었던 6단 세미 AT SMG도 기대되는 옵션. 길고 지루한 탐색전은 여기까지. 이제 시승차에 몸을 싣고 본격적인 테스트에 나섰다. 530d를 타고 도전한 첫날 시승 코스는 워크숍 장소를 떠나 숙소인 호텔 포르테 빌라지까지의 약 130km 구간으로, 초반은 직진 안정성을 살펴볼 수 있는 고속구간이었다. 섬에 이 정도로 긴 직선로가 있다는 데 놀랐지만 제주도의 13배 면적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 아직까지 국내에서 접할 수 없던 첨단 직분사 디젤의 성능은 놀라웠다. 매끄러운 회전에 진동이나 소음도 거의 느껴지지 않아 시동을 걸거나 액셀을 밟는 것만으로는 휘발유 엔진과 구별하기 힘들다. 5천rpm부터 빨갛게 변하는 타코미터를 눈여겨봐야 확인할 수 있을 정도. 530i에 비해 토크가 67%나 높은 51.0kg·m에 이르지만 좁은 토크밴드와 급격한 곡선특성 때문에 2천rpm 이하에서는 가속이 답답하다. 6단 MT로는 재빠른 달리기가 힘들지만 AT와 어우러지면 제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휘발유에 비해 순발력이 크게 뒤지지 않으면서 520i보다 뛰어난 연비가 자랑거리. 한편 이튿날 몰아본 직렬 6기통 휘발유 엔진의 530i는 ‘실키 식스’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매끄러운 반응과 순발력, 다루기 쉬운 토크특성을 보여주었다. 최대토크의 90%를 1천500~6천rpm의 넓은 범위에서 뿜어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출력 부족을 느끼기 힘들고 변속기와의 매칭도 뛰어나다. 파워풀한 V8 엔진도 좋겠지만 이 쪽이 신형 5시리즈의 성격에 가장 잘 어울려 보인다. 수동 6단은 클러치가 단단하고 시프트 노브의 스트로크는 승용차답게 조금 긴 편. 하지만 절도 있는 느낌이 운전의 재미를 더한다. 6단 AT 스텝트로닉은 변속 충격이나 슬립 없이 재빠른 변속을 이어나간다. 수동 모드는 여전히 시프트 노브를 왼쪽으로 당긴 채 밀고 당기는 타입. 신무기 액티브 프론트 스티어링 신형 5시리즈 메커니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새로운 스티어링 시스템 AFS(Active Front Steering)다. 스티어링 샤프트와 피니언 사이에 기어박스와 모터를 달아 기어비를 조절하는 AFS는 저속에서 적은 스티어링 조작에도 앞바퀴를 많이 꺾고 고속에서는 그 반대로 제어한다. 우선 워크숍 장소에 마련된 코스를 통해 그 성능을 느껴볼 수 있었다. 시속 20~30km 정도로 통과해야 하는 저속 슬라럼에서 기본형은 스티어링 휠을 좌우 180°이상 틀어야 했지만 AFS가 달린 차는 두 손을 떼지 않은 채로 통과할 수 있었다. 시승 코스를 달리며 ‘AFS 집중탐구’에 나섰다. 그 효능이 두드러진 부분은 저중속의 와인딩 로드. 특히 급코너가 이어진 코스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실력을 자랑했다. 특히 둘쨋날 초반의 산을 휘감아 도는 코스는 새 메커니즘의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할 수 있는 무대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고속에서의 핸들링 감각. 시속 200km 부근에서 스티어링을 꺾었을 때의 차 움직임이 머리 속으로 예상한 것과 약간 다른 데서 이질감을 느꼈다. 안전을 우선한 설계임에는 틀림없지만 운전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의문이 남는 부분. 와인딩 로드에서의 재빠른 몸놀림은 AFS뿐 아니라 고강성 섀시와 잘 다듬어진 서스펜션이 있기에 가능하다. 구형에서 이어받은 알루미늄 소재의 앞 스트럿, 뒤 멀티링크 레이아웃은 숙성에 숙성을 거듭했고 7시리즈로부터 다이렉트 드라이브 시스템까지 전수받았다. 다이렉트 드라이브 시스템은 예전부터 인정받아온 5시리즈의 칼날 같은 핸들링을 더욱 갈고 닦아줄 비장의 무기. 스테빌라이저를 인위적으로 비틀어 차의 롤링을 제어하기 때문에 직선이나 저속에서의 승차감을 해치지 않으면서 코너링 때 롤링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처음에는 서스펜션이 부드러워 와인딩 로드에서 얼마큼 버텨줄지 의심스러웠지만 막상 빠르게 코너에 진입하니 예상이 무참히 깨어지고 만다. 타이어 접지력을 확보하고 주행안정성을 높이는 DTC(Dynamic Traction Control)와 DSC(Cynamic Stability Control), ASC(Automatic Stability Control) 등의 장비도 안정된 주행을 돕는다. 전혀 다른 성질의 알루미늄과 스틸을 조합해 만든 섀시는 우려와 달리 가혹한 시승 코스에서도 흐트러짐을 전혀 느낄 수 없고, 가벼워진 앞부분 덕에 무게배분이 더욱 완벽해졌다. 이로서 V6에 비해 앞부분이 무거워지는 직렬 6기통 엔진의 고질적인 단점이 해소되었다. 소음은 요즘 기준에서 조금 큰 편이지만 스포티한 차의 성격을 생각하면 노면과의 마찰음이나 배기음 유입이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에필로그 이틀간의 시승을 통해 몸으로 느껴본 신형 5시리즈는 성공을 예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BMW 디자인 변신을 주도해온 크리스 뱅글이 시장 반응을 의식해 한발 물러섰다는 평도 있지만 그보다는 앞선 모델에서 시험한 혁신적 디자인을 다듬고 정리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덕분에 메이커 이미지가 또렷하면서도 참신해지고, 거부감 없는 새로운 얼굴이 완성되었다. 메커니즘 면에서는 전통적인 엔진 형식과 구동계, 서스펜션에 신기술을 더함으로써 달리기 성능을 한층 갈고 닦았다. 이밖에 HUD와 어댑티브 브레이크 램프, 런플랫 타이어 등의 다양한 기술을 써 BMW의 21세기 기술을 테스트하는 실험차라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특히 와인딩 로드에서 보여준 AFS의 성능은 BMW가 주장해온 ‘궁극적 드라이빙 머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빛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호랑이가 날개를 달 듯, 훌륭한 자질에 첨단기술을 더한 5시리즈는 이제 힘차게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발톱을 세우고 날아갈 격전지에서 기다리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라이벌 벤츠 E클래스. 이 둘의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는 것도 직접 5시리즈를 운전하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일이다. BMW 뉴 5시리즈의 주요 제원 530i 530d 크기 길이×너비×높이(mm) 4841×1846×1468 ← 휠베이스(mm) 2888 ← 트레드 앞/뒤(mm) 1558/1582 ← 무게(kg) 1570 1685 승차정원(명) 5 ← 엔진 형식 직렬 6기통 DOHC 직렬 6기통 DOHC 직분사 디젤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 보어×스트로크(mm) 84.0×89.6 84.0×90.0 배기량(cc) 2979 2993 압축비 10.2 17.0 최고출력(마력/rpm) 231/5900 218/4000 최대토크(kg·m/rpm) 30.6/3500 51.0/2000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 연료탱크 크기(ℓ) 70 ← 트랜스미션 형식 수동 6단 자동 6단 기어비 ①/②/③ 4.350/2.496/1.665 4.170/2.340/1.520 ④/⑤/⑥/R 1.230/1.000/0.851/3.930 1.140/0.870/0.690/3.400 최종감속비 2.930 2.47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멀티링크 ← 브레이크 앞/뒤 모두V디스크(ABS) ← 타이어 앞/뒤 225/55 R16 ← 성 능 최고시속(km) 250 243 0→시속 100km가속(초) 6.9 7.3 시가지 주행연비(km/ℓ) 7.1 9.4 값 ㅡ ㅡ
Jaguar X-type 2.1 국내 판매 울상인 .. 2003-06-19
탄생 배경 사이드카 제작회사로 출발한 재규어는 48년 태어난 스포츠카 XK120의 성공을 발판 삼아 50~60년대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최고시속 212km의 뛰어난 성능에 안락한 승차감까지 갖춰 ‘스포츠카는 거칠다’는 통념을 뒤집은 XK120은 이후 C타입(51년)과 D타입(55년) 경주차로 발전해 내구레이스를 휩쓸었고 D타입은 55~57년 르망 24시간 3연패의 업적을 쌓으며 재규어를 영국의 신흥명문으로 이끌었다. XK 시리즈와 호화로운 대형 세단 마크Ⅶ 사이를 메우면서 55년 선보인 마크Ⅰ은 59년 XK150의 3.8X 엔진을 얹은 마크Ⅱ로 이어졌다. 마크Ⅱ는 XK120 같은 스포츠카를 타던 젊은 귀족이 가정을 꾸린 뒤 자연스럽게 옮겨 탈 수 있는 ‘작은 재규어’였다. 5명이 앉기에 충분한 공간과 스포티한 달리기, 영국차만이 지닐 수 있는 엘레강스한 라인이 매력적인 마크Ⅱ는 67년까지 생산되며 재규어의 전성기를 풍미했다. 브리티시 레일랜드에서 분리되어 84년 민영화된 재규어는 영국 특유의 낮은 생산성과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88년 포드 그룹에 합병되었다. 영국 귀족주의의 낭만에 절어 있던 재규어는 미국 포드의 실용주의와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명가 재건을 알렸다. 94년 등장한 신형 XJ6과 2년 뒤 선보인 스포츠 쿠페 XK8의 인기로 원기를 회복한 재규어는 98년 S타입을 내놓으며 체질개선에 들어갔다. 모 기업 산하의 링컨 LS 플랫폼 위에 재규어의 색깔을 입힌 S타입 데뷔 이후 재규어의 판매대수는 5만 대(98년)를 넘어섰고 2000년에는 9만 대 수준까지 성장했다. 판매에 불이 붙은 재규어는 연산 20만 대의 목표를 세우고 점차 커져가는 유럽 D세그먼트 시장을 겨냥한 컴팩트 세단 X400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유럽포드에서 빌려온 몬데오 플랫폼에 재규어 차 중 처음으로 4WD 시스템을 얹었고 S타입의 성공에서 얻은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마크Ⅱ 이후 40여 년 만에 등장한 ‘베이비 재규어’ X타입은 2001년 판매를 시작해 영국 니어 럭셔리 시장에서 벤츠 C클래스, BMW 3시리즈 등을 제치고 65%의 점유율을 차지했고, 같은 해 스코틀랜드 ‘카 오브 더 이어’를 수상했다. 메커니즘 X타입은 기본적으로 유럽포드의 몬데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FF 방식의 몬데오와 달리 독자적인 네바퀴굴림 구동계를 얹었고, 공용 부품도 20% 정도로 많지 않다. ‘트랙션4’라 부르는 풀타임 4WD 시스템은 비스커스 커플링 센터 디퍼렌셜이 앞뒤 바퀴 구동력을 평소에는 40:60으로 나누고 한쪽 바퀴가 미끄러지면 나머지 바퀴에 구동력을 집중시킨다. 하지만 지난해 추가된 2.1X 엔진의 베이식 모델은 몬데오와 같은 앞바퀴굴림. 포드에서 물려받은 2.1, 2.5, 3.0X 세 가지 배기량의 V6 DOHC 엔진은 가변 흡기 시스템과 가변 밸브 기구를 더해 2천~2천500rpm에서 최대토크의 90%가 나오도록 세팅, 재규어다운 순발력을 가미했다. 트랜스미션은 게트락 수동 5단과 일본 자트코가 개발한 자동 5단 두 가지. 앞뒤 서스펜션은 각각 맥퍼슨 스트럿, 멀티링크 타입으로 핸들링과 승차감을 두루 만족시킨다. 올 하반기에는 고성능 R버전을 더할 예정. X타입 R은 새로 개발한 V6 3.0X 330마력 엔진과 수동 6단 또는 옵션으로 마련된 자동 6단 트랜스미션을 조합하고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4WD 시스템의 성능을 더욱 보강해 BMW M3, 벤츠 C32 AMG 등과 경쟁하게 된다. 스타일 & 인테리어 이미 데뷔 2년이 지났지만 재규어 라인업의 막내 X타입에 대해서는 아직도 갖가지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네 개의 원형 헤드램프와 갸름하게 눌러앉은 그릴 등 앞모습에서는 기함 XJ의 얼굴이 떠오르고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에서는 XK의 DNA가 느껴진다. 끝자락을 살짝 내리고 보디 옆면에 깊게 팬 캐릭터라인은 오직 재규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 우아한 보디라인도 XJ의 실루엣 그대로지만 풍만해진 차체에 세련미를 더하려 새겨 넣은 잔주름이 불어난 뱃살을 감추려는 화려한 장신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전통과 변화의 갈등은 인테리어에서도 드러난다. 고풍스런 단풍나무 장식을 넓게 펴 붙인 대시보드나 연한 베이지 가죽을 수건처럼 두른 부드러운 곡선의 센터페시아는 영락없는 재규어다. 브리티시 그린 바탕의 클래식한 원형 계기판이나 우드 시프트 노브, 전통의 J게이트 등에서도 ‘재규어다운’ 감각이 물씬하다. 하지만 전통에 충실한 나머지 ‘베이비 잭’(Baby Jag)이라는 애칭에 걸맞지 않게 서툰 애늙은이 같은 모습도 느껴진다. 대시보드와 센터콘솔의 빈 공간을 화려하게 채운 나무장식은 재질이 의심스럽고 실내 부품에서는 값싼 포드 냄새가 진하다. 큼지막한 스위치를 가지런히 배치한 센터페시아는 아기자기한 맛이 덜할지언정 조작성만큼은 으뜸이다. 제법 넓은 글러브박스는 펜 홀더와 잔챙이 물건을 옥죄어둘 수 있는 그물까지 갖췄고 질감 좋은 가죽 스티어링 휠도 크루즈 컨트롤과 오디오 조절 스위치를 덤으로 얹었다. 깊고 넓은 트렁크는 적재용량 452X 로 전통적인 재규어보다 공간이 넓다. 한껏 멋을 부린 테일램프가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입구를 좁혔지만 트렁크 덮개의 너비가 충분해 부피 큰 골프 클럽도 너끈히 싣고 내릴수 있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단장한 시트는 등받이와 쿠션 모두 사이즈가 넉넉하고 8가지 방향의 전동 컨트롤러로 편한 운전자세를 잡을 수 있다. 뒷좌석은 헤드룸이 좁지만 무릎공간이 넉넉해 거주성을 크게 해치지는 않는다. 등받이 각도가 알맞고 쿠션도 적당히 단단해 몸을 아늑하게 감싸준다. 하지만 등받이 양옆에 두툼한 쿠션이 마련되어 있어 성인 셋보다 두 명이 편하게 앉기에 적당하다. 70:30 비율로 나눠 접어 짐칸을 넓힐 수도 있다. 주행성능 포드 몬데오의 골격을 물려받은 X타입은 전통에 충실한 실내외 디자인으로 재규어다운 감각에 다가섰다. 뒷바퀴에 더 많은 구동력이 전해지는 4WD 시스템(V6 2.5, 3.0X )도 전통 뒷바퀴굴림 방식과의 연결고리. 옛것에 바탕을 둔 진화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FF와 FR 방식의 특성을 넘나드는 주행성격 속에서 안정된 핸들링의 타협점을 찾았고 민첩한 발놀림이 이를 뒷받침했다. 시승차로 선보인 X타입 2.1은 V6 2.1X DOHC 엔진과 5단 AT를 조합하고 유일하게 앞바퀴굴림 방식을 쓴 모델이다. 포드 듀라텍에 바탕을 둔 V6 2.1X 엔진은 최고출력 156마력을 내고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와 4단계로 조절되는 가변 흡기 시스템을 써 최대토크(20.0kg·m)의 90%를 2천rpm부터 이끌어낸다. 컴팩트 재규어의 ‘베이비 V6’ 엔진은 군더더기 없는 반응으로 조용히 속도를 높여간다. 4기통 터보의 폭주할 듯한 긴장감이나 FR 세단의 짜릿한 추월가속이 그리울지라도 더 이상의 기대는 금물이다. 밸런스 샤프트로 잔 진동까지 잡아낸 엔진은 부드럽고 순하기로 치자면 단연 톱클래스다. J게이트 기어는 시프트 인디케이터가 없고 낮은 기어를 쓰려면 손으로 J자를 그리듯 레버를 올려붙여야 하는 조작 방식이 낯설지만 재규어 오너라면 ‘특혜’로 여기고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손목을 털 듯 가볍게 낚아채는 손맛에 익숙해진 뒤부터는 운전 재미가 배로 늘어난다. 묵직한 센터 디퍼렌셜과 드라이브 샤프트를 떼어내 부담이 줄어든 하체는 유연한 고양이처럼 복잡다단한 도로 위를 사뿐사뿐 내딛는다. 보디 제어 능력은 더욱 나아졌고 급격한 스티어링 조작에 매끈한 동선을 그리며 따라오는 핸들링도 돋보인다. X타입을 위해 마련된 트랙션 컨트롤은 때아닌 폭우로 물바다가 된 도로를 헤쳐갈 때 휘청대는 차체를 다잡으며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주었다. 4WD마저 떨쳐버린 X타입은 이단아로 낙인찍힐 수 있다. 하지만 재규어 특유의 경쾌한 풋워크가 여전하고 약한 언더스티어를 안고 야무지게 돌아나가는 코너링 실력은 예상밖에도 4WD 모델보다 낫다. 구입 가이드 포드 PAG 산하의 재규어는 지난해 세계 64개국에 13만 대 이상의 차를 팔아 29%의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그 중 X타입은 지난 2년 동안 10만 대 정도 팔리며 S타입과 함께 90년대 더딘 걸음을 걷던 재규어에 숨통을 틔워주었다. 해외 시장에서 당당했던 영국 귀족의 막내는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잔뜩 위축된 모습이다. 판매 모델은 V6 2.1, 2.5, 3.0 세 가지. 지난해 1월 국내 판매를 시작한 X타입은 한 해 동안 모두 31대가 팔려 재규어 전체 판매량(71대)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올해도 4월까지 20대가 팔리며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경쟁 모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 기대를 안고 올 1월에 선보인 V6 3.0X 231마력 엔진의 3.0 모델이 꾸준한 인기를 모으는 것이 그나마 위안되는 점이다. 지난 3월 논현동 전용 전시장 오픈을 기념해 36개월 무이자할부, 자동차세 대납 등의 파격적인 서비스를 실시했던 재규어 코리아는 뉴 XJ의 6월 출시를 계기로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X타입은 12가지 보디 컬러와 6개 인테리어 색깔을 조합할 수 있다. 재규어가 귀족의 차라지만 전시장의 문턱은 늘 열려 있다. X타입은 5천850~6천900만 원으로 가장 싼값에 얻을 수 있는 재규어다. 문의 : 재규어 전용전시장 ☎ (02)514-9588 재규어 X타입 2.1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700×1790×1430mm 휠베이스 2710mm 트레드 앞/뒤 1520/1535mm 무게 1485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V6 DOHC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1.6×66.8mm 배기량 2099cc 압축비 10.8 최고출력 156마력/6800rpm 최대토크 20.0kg·m/41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61.5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802/2.132/1.365 ④/⑤/ⓡ 0.935/0.685/2.970 최종감속비 4.15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맥퍼슨 스트럿/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V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05/55 R16 성능 최고시속 205km 0→시속 100km 가속 10.8초 시가지 주행연비 11.1kmℓ 값 5,850만 원
Saab 9-3 실패 확률 적은 ‘팜므 파탈’의 유.. 2003-06-18
R 등급의 영화가 있다. 미국 할리우드의 상영구분 중 하나인 R 등급은 ‘restrict’(제한)의 머릿글자로 우리 기준대로라면 ‘18세 이하 관람불가’ 정도에 해당한다. 영상 표현의 수위가 제법 자유로운 할리우드에서도 R 등급을 받는 영화들은 대개 깨부수는 재미로 가득한 블록버스터이거나 신체의 노출 정도가 심한 포르노그라피인 경우가 많아 유달리 자극적인 볼거리에 충실한 편이다. 낯선 스타일링에 새 에어로파츠 더해 R 등급 영화에 등장하는 미모의 팜므 파탈(Femme Fatale, 악녀)처럼 ‘위태로워 더욱 매력적인’ 차도 있다. 기자에게는 2년 전에 만난 사브의 구형 9-3 에어로가 그런 차였다. 2.0X 고압터보 203마력 엔진을 얹은 9-3은 앞차를 덮칠 듯 덤벼드는 추진력이 화끈했다. 양팔의 기력을 고갈시키는 억센 토크스티어와 노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스티어링 감각조차 적극적인 운전 쾌감으로 갈무리되었다. 짜릿한 만남의 기억이 아스라해질 즈음, 혈기왕성했던 스칸디나비아 친구가 온몸을 뜯어고치고 지난해 말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오펠 벡트라와 GM 계열 입실론 플랫폼을 함께 써 뼛속 깊은 곳까지 확 바꾸었다는 소식. 지난 겨울에 만난 새 9-3은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개성 만점이던 해치백 스타일을 버렸다는 사실에 마음의 빗장을 걸어둔 뒤였고, 새로운 노치백 보디는 사브 전통의 프론트 그릴만 아니면 독일 스포츠 세단에 다름없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에어로의 존재는 남달랐다. 이미 구형 9-3 에어로의 짜릿한 자극에 혼을 빼앗겨버린 적이 있지 않던가. 새로운 컴팩트 사브의 에어로 모델이 옛 친구의 기질을 물려받았다면 그것이 팜므 파탈의 위험한 유혹일지라도 흔쾌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때 이른 더위로 지면이 이글거리던 날, 완전히 달라진 9-3 에어로와 해후했다. 깔끔한 실버 메탈릭 컬러로 단장한 시승차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자세가 낯설다. 럭비 헬멧 같은 에어댐으로 얼굴을 감싸고 허리 아래와 뒤 범퍼에도 스커트를 덧대 험상궂은 인상이지만 이런 액세서리들 덕분에 차체 앞뒤의 리프트 현상은 기본형보다 70, 40%나 나아졌다. 트렁크리드에 조심스레 얹은 조그만 스포일러도 ‘공중부양’을 억제하는 기막힌 소품. 휠 아치를 가득 채운 225/45 ZR17 사이즈의 피렐리 P제로 타이어가 터질 듯한 긴장감을 더한다. ‘에어로’다운 변화를 확인하고 운전석 도어를 여는 순간, 반가운 옛 흔적에 흡족한 웃음이 배어 나왔다. 뒤로 갈수록 올라붙던 벨트라인은 쪽창에 이르러 웃음 띤 기자의 입 꼬리처럼 부드럽게 꺾이며 2년 전 만났던 그 친구의 옆얼굴(윈도 그래픽)을 그려내고 있었다. 새로운 것은 겉모습뿐만이 아니다. 세련된 인테리어가 두드러지고 캐딜락 CTS처럼 선 굵은 3스포크 스티어링 휠도 한눈에 들어온다. 시승차는 스티어링 스포크 위에 날개처럼 생긴 센트로닉 변속 버튼을 달고 도어 패널을 아우르는 라인과 기어박스를 무광 우드 그레인 대신 메탈 장식으로 단장해 스포티함을 더했다. 도어트림과 대시보드, 센터콘솔의 이음새를 매끈한 곡선으로 마감한 디자인과 뒷마무리 실력은 꼼꼼한 독일 메이커들도 울고 갈 수준. 변화의 폭이 크지만 사브의 고정 팬들이 쉽게 납득하고 익숙해질 수 있는 디자인이라는 사실에 더욱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대시보드 실루엣과 독특하게 조작되는 에어벤트, 기어레버 뒤에 둔 이그니션 키홀이 사브 매니아의 향수를 달래준다. 시인성이 매우 뛰어난 비선형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센터미터 방식의 SID(Saab Information Display)는 완전히 달라진 사브 중 하나다. 센터페시아는 정리가 잘 되어 있지만 버튼이 많아 혼란스럽다. 스위치가 작아지기까지 해 더 이상 구형에서처럼 장갑을 끼고 ‘툭, 툭’ 눌러대기는 어려워 보인다. 운전석에는 SID 말고도 대시보드 가운데 또 하나의 디스플레이가 마련되어 있다. 두 가지 화면은 모두 조그 다이얼로 메뉴를 고르고 세팅하는 방식. 쓰임새 좋은 기능이 많지만 다이얼을 돌리고 눌러가며 순차적으로 메뉴를 찾아가는 과정이 좀처럼 손에 익지 않는다. 고분고분 명령에만 따르던 예전과 달리 버릇없이(?) 운전자에게 지시하는 법을 알았다는 점은 신형 9-3 에어로의 또 다른 변화 포인트다. 주행 도중 조수석 승객이 안전벨트를 풀면 계기판 인디케이터에 ‘i’라는 글자를 띄워 SID를 주목하라고 명령한다. 센터미터에 시선을 돌리면 어김없이 빨간 바탕의 경고등이 들어와 있다. 운전석 시트는 척추 마디 하나하나를 떠받들 듯 몸 전체를 빈틈없이 다잡아주고, 뒷좌석은 트렁크에 달린 레버를 당겨 60:40으로 간단히 나눠 접을 수 있다. 열린 도로 빨아들이는 짜릿한 가속 9-3 에어로에 얹은 심장은 오펠 에코텍에 바탕을 둔 알루미늄 블록의 4기통 2.0 DOHC 터보 210마력·2천500rpm에서 28.5kg·m의 최대토크가 나오지만 트라이오닉8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고압터보의 부스트 압력을 제어해 거친 반응을 부드럽게 순화시키고 중저속부터 부족하지 않은 토크를 이끌어낸다. 날카롭고 예민해 더욱 즐거웠던 구형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시동키에 손을 가져갔다. ‘아차!’ 스티어링 칼럼에서 헛손질을 한 뒤에야 사브임을 깨닫는 버릇은 어김없이 반복되는 해프닝이다. 절제된 엔진 진동과 소음이 예전 같지 않지만 야수의 본능처럼 그렁대는 숨소리마저 감추지는 못한다. 액셀 페달을 밟자 묵직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당혹스럽다. 1/3의 답력을 유지하고 시속 100km까지 속도를 높여갈 때는 패밀리 세단처럼 다소곳하다. 팜므 파탈 에어로에 정적은 어울리지 않는다. 액셀러레이터에 얹은 오른발을 깊숙이 밀어 넣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아본다. 속도계 오른쪽의 터보 게이지가 숨차게 레드존을 때리고 시승차는 패대기쳐진 돌처럼 먼 도로 앞 공간으로 쏜살같이 뻗어간다. 아니, 9-3 에어로의 순간가속은 먼발치의 공간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느낌에 더 가깝다. 실제속도보다 체감속도의 상승폭이 훨씬 크지만 비틀림 강성이 높아진 섀시에 영리한 서스펜션을 버무려 차체를 흔드는 위화감은 크게 줄었다. 직진주행성도 한결 개선되었지만 속도계 바늘이 시속 140km를 가리킬 때부터 도로에 진득하게 들러붙는 느낌이 옅어져 불안하다. 진화과정을 겪은 뒤로 까다로운 토크스티어와 절정의 노면 타기가 흔적을 감추었지만 고속과 부지런한 움직임에 더욱 날카로워지는 스티어링 감각은 여전히 스릴 만점이다. 숙성된 터보 유닛은 응답성이 좋고 터보 작동시점도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매끄럽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와인딩 로드를 시속 110km를 유지하며 헤집을 때는 군더더기 없는 핸들링이 빛을 발한다. 도로를 지그시 누르고 달리는 서스펜션 감각은 독일 스포츠 세단의 야무진 하체를 떠올릴 만큼 매력적이다. 여세를 몰아 시속 70~80km로 파고든 예각의 코너에서도 주춤거림 없는 몸놀림이 일취월장한 컴팩트 사브의 실력을 증명한다. 한편 센트로닉 기어의 수동 모드는 시프트 반응이 반 박자씩 늦어 운전재미를 떨어뜨리고 냉수 들이키듯 연료를 먹어치우는 대식가라는 사실이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새 9-3 에어로는 시트에 앉아 순항만 하는 것이 더 어려운 차다. 자극적인 운전재미를 덜어내고도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 움찔거리는 녀석이다. 더구나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거친 뒤로는 다양한 운전자와 타협하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다. 자, 이제는 운전자가 고집을 버리고 차에게 다가서야 할 차례. 시승을 마친 기자는 시동을 끄기 위해 다시 한번 스티어링 휠 뒷공간을 휘저었다. 시동키는 여전히 시프트레버 뒤에 꽂혀 있고 연료도 한 눈금이나 남아 있었다. 9-3 에어로와 사브의 짜릿한 달리기는 남은 연료처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승협조 : GM 오토월드 ☎ (02)3408-6262 사브 9-3 에어로의 장단점 장점 ·도로를 집어삼킬 듯 짜릿한 가속 ·시인성 좋은 비선형 계기판 ·군더더기 없는 핸들링 단점 ·다루기 번거로운 SID ·작고 많은 센터페시아 버튼들 ·연료에 대한 식탐 사브 9-3 에어로의 주요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635×1760×1465mm 휠베이스 2675mm 트레드 앞/뒤 1506/1506mm 무게 1560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직렬4기통 DOHC 터보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6.0×86.0mm 배기량 1998cc 압축비 10.1 최고출력 210마력/5300rpm 최대토크 28.5kg·m/25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63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4.575/2.979/1.947 ④/⑤/ⓡ 1.317/1.000/5.024 최종감속비 2.44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4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모두 225/45 ZR17 성능 최고시속 230km 0→시속 100km 가속 9.0초 시가지 주행연비 9.0km/ℓ 값 5,760만 원
Audi A8 3.7 Quattro 운전자와 공명하.. 2003-06-18
변신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쉽지 않은 결단이다. 1988년, 아우디가 V8이라는 이름으로 대형 세단을 선보였을 때도 용기에 대한 박수만큼이나 너무 모험적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미 확고부동한 위치에 서 있던 벤츠와 BMW는 당시 중형차 메이커로 인정받던 아우디에 있어 너무 어려운 경쟁상대. V8이라는 이름은 이 차에 얹은 엔진을 나타냄과 동시에 12기통을 갖추고 있던 벤츠/BMW와의 상대적 위치를 결정짓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었다. 브랜드 이미지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V8급의 대형 세단에 특기인 콰트로 시스템을 결합해 승부수를 띄운 것. 디자인은 날렵하면서도 권위를 살린 딱딱한 모습이었고 2년 후 롱 휠베이스 버전을 더하며 기반 다지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3세대 맞이한 도전의 역사 V8을 통해 고급차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고 판단한 아우디는 2세대부터 이름을 A8(94년)로 바꾸었고, 잘 알려져 있듯이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ASF)이라는 신무기를 들고 나왔다.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콰트로 시스템의 단점을 해결하면서 환경친화적이기까지 한 알루미늄 프레임은 한편으로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홍보수단이었다. 4WD 시스템을 얹고도 경쟁차보다 200kg 정도 가벼워 순발력과 연비가 좋았다. 보디라인도 부드러워졌고 한층 ‘아우디다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결론적으로 A8에 이르러 ‘하이테크 세단’이라는 이미지로 유럽 고급차 시장에서 기반 다지기에 성공한 아우디는 브랜드 자체의 이미지 상승이라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얻어냈다. 도전을 시작할 당시 많은 이들이 걱정스런 시선을 보냈지만 10여 년의 세월을 헤쳐 나온 아우디는 이제 세계를 대표하는 고급차 브랜드의 하나로 당당하게 서 있다. 그리고 지난해 맞이한 두 번째 풀 모델 체인지에서 신형 A8은 변한 듯 만 듯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섰다. 혈통을 고스란히 이은 디자인과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 콰트로 시스템, V8이 주축을 이루는 엔진 라인업을 그대로 이어받은 정상적 모델 체인지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우디의 기업 이념이 바로 ‘기술을 통한 진보’(Vorsprung durch Technik) 아니던가? 이번 역시 꼼꼼한 메커니즘 개량과 함께 신기술 개발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신형 A8의 모습은 분명 구형과 많은 연결점이 있지만 세부적인 변화 요소는 대부분 A6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앞뒤 오버행의 펜더와 범퍼 연결 부위. 늘어진 볼살처럼 어색했던 라인 처리가 A8에서 말끔하고 세련되게 바뀐 점은 환영받을 만하다. 역시 A6을 닮은 헤드램프 안에는 스티어링에 따라 빛의 방향을 바꾸는 최신 메커니즘을 담았다. 차체는 구형보다 휠베이스가 60mm 늘어났지만 쿠페 라인에 가까운 C필러와 트렁크 처리는 물론 엉덩이 위로 힘껏 올라붙은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 덕에 스포티한 감각을 물씬 풍기는 당당한 세단으로 거듭났다. 공기저항계수(0.27)와 트레드에서도 라이벌에 가장 앞선다. 다기능의 단순화, MMI 절제와 화려함이 공존하는 인테리어는 하이테크 장비의 전시장 같다. 인스트루먼트에 4개의 구멍을 파서 단 원형 미터는 모두 운전자 시선을 향해 절묘한 각도로 배치되어 있다. 센터페시아 한가운데 달린 팝업식 LCD 모니터는 내비게이션을 달지 않은 상황에서 그다지 필요치 않아 보이지만 MMI(Multi Media Interface)에 꼭 필요한 장비다. MMI는 다기능을 최소한의 스위치로 통합한 조작 시스템의 명칭으로 BMW i-드라이브와 달리 좌우 회전과 버튼 기능이 있는 원형 노브 하나와 주변 스위치로 기능을 분산한 것이 포인트. MMI가 없었다면 대시보드는 물론 루프 콘솔 공간까지 스위치로 가득 채워야 했을 것이다. 시트는 넉넉하고 안락하게 운전자를 감싸며 4방향으로 움직이는 럼버서포트(요추조절장치)가 최적의 자세를 만들어준다. 시트의 이동범위가 넓어 다양한 체형의 운전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 한편 B필러와 센터콘솔에 마련된 뒷좌석용 에어벤트나 접이식 도어 포켓,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등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시동키를 꽂고 시승 준비에 들어갔다. 엔진 시동과 함께 느껴지는 첫 느낌은 뛰어난 정숙성. 렉서스 등장과 함께 고급차에 요구되는 정숙성의 기준이 예전과는 달라졌지만 이를 감안한다고 해도 A8은 ‘절대정숙 공간’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승차는 V8 3.7X 5밸브 280마력 엔진을 얹은 A8 3.7 콰트로. 4.2X 휘발유와 최근 더한 4.0X TDI 엔진이 있으니 현재 A8의 엔트리 버전이라 할 수 있지만 280마력의 최고출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최대토크도 36.7kg·m에 이르며 가변식 밸브 타이밍 기구와 가변 흡기 매니폴드 등에 힘입어 그 대부분을 3천~5천rpm의 넓은 대역에서 뿜어낸다. 매끄러운 회전은 강력한 방음장치와 어우러져 엔진의 존재 자체를 망각시키고 5천rpm을 넘어서도 불쾌한 진동 없이 맹렬한 엔진 회전과 멀리서 들리는 매력적인 배기음만이 느껴진다. ZF의 팁트로닉을 포르쉐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인 장본인이 바로 아우디였다. 아우디 세단의 스포티한 성격과 팁트로닉은 포르쉐를 뛰어넘는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신형 6단 팁트로닉에서 눈에 띄는 것은 새로운 스티어링 휠의 변속 스위치. 스포크 뒤쪽에 달리며 오른쪽이 시프트업(+), 왼쪽이 시프트다운(-)이다. 눌렀을 때 ‘딸깍’거리는 느낌이 좋고 반응도 빨라 스포츠 주행의 동반자로 부족함이 없다. 시프트 노브를 S 위치로 놓으면 횡가속을 측정해 코너링 때 시프트업을 제한하기 때문에 출구에서 빠른 가속을 돕는다. 하이테크로 무장한 정숙 공간 달리기 성능은 화려하지 않지만 안정되고 강인하다. 철저하게 배제된 엔진 진동과는 달리 적당한 배기음이 즐거운 운전을 돕고 넓은 토크밴드와 매끄러운 변속이 속도감을 잊게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몸으로 느껴지는 체감속도가 실제속도를 따르지 못한다. 액셀 페달을 지긋이 밟아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주변의 차들이 빠르게 뒷걸음질치기 시작한다. 페이튼과 함께 쓰는 에어 스프링은 비틀림 강성이 60%나 향상된 알루미늄 섀시, 아우디 특유의 멀티링크 서스펜션과 어울려 효과적인 노면 충격흡수는 물론 안정감 넘치는 달리기를 선사한다. 여기에 네 바퀴 접지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콰트로 시스템이 더해지면서 어지간한 와인딩 로드에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시승날 갑작스런 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겨났지만 시속 100km가 넘는 고속으로 물살을 갈라도 마른 노면을 달리듯 무덤덤하기만 했다. 이 클래스가 목표로 하는 지향점은 궁극적으로 비슷하지만 그 좁은 목표에 도달하는 데는 다양한 길이 존재한다. A8은 S클래스나 7시리즈와는 다른 아우디만의 개성으로 그 목표에 착실하게 다가서고 있는 것 같다. 버튼으로 가득한 콕피트가 처음에 조금 부담스럽지만 익숙해지는 순간 자신의 손과 발끝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첨단 메커니즘의 하모니를 즐길 수 있다. 운전자 의지에 따라 공명하는 하이테크의 결정체. 이것이 바로 A8의 매력 포인트다. 아우디 A8 3.7 콰트로의 장단점 장점 ·안정된 달리기 ·치밀하게 제어되는 하이테크 장비 단점 ·여전히 복잡한 다기능 ·매끄럽다 못해 두덤덤한 감각 아우디 A8 3.7 콰트로의 주요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5051×1894×1444mm 휠베이스 2944mm 트레드 앞/뒤 1629/1615mm 무게 1770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V8 DOHC 5밸브 굴림방식 4WD 보어×스트로크 84.5×93.0mm 배기량 3697cc 압축비 11.0 최고출력 280마력/6000rpm 최대토크 36.7kg·m/375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90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6단 기어비 ①/②/③/④ 4.171/2.340/1.521/1.143 ⑤/⑥/ⓡ 0.867/0.691/3.403 최종감속비 3.539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모두 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V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모두 235/55 R17 성능 최고시속 250km 0→시속 100km 가속 7.3초 시가지 주행연비 ㅡ 값 12,800만 원
포르쉐 356 스피드스터 수많은 매니아 거느린 ‘살.. 2003-06-11
포르쉐 356이라니! 그것도 초록색 대한민국 번호판을 붙이고 버젓이 운행하고 있는 차라니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늘 지녀보고 싶은 차였기에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356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포르쉐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자연스러울 만큼 356은 포르쉐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차다. 하지만 356의 의미를 포르쉐 역사에만 국한한다면 길이 남을 명차에 대한 커다란 결례라고 할 수 있다. 356은 단종 4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열광적 추종자를 거느린 살아있는 컬트이다. 페리 포르쉐, 1947년에 356 개발 시작해 65년 포르쉐 911에게 자리 내주고 퇴장 1931년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설립해 운영하던 포르쉐 디자인 스튜디오는 2차대전을 피해 오스트리아의 한적한 산골마을 그뮌트에 둥지를 틀었다. 자동차에 관해서라면 아버지 못지 않은 열정과 천재성을 지녔던 페리 포르쉐는 1947년 6월, 356 프로젝트에 들어가면서 평소 꿈꾸어 오던 스포츠카를 만들 기회를 맞게 되었다. 페리의 새 프로젝트카 356은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등 많은 부품을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2차대전 전 개발해 46년 재생산에 들어간 폭스바겐 비틀에서 가져다 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런 부품들을 그뮌트에서 자체 조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에 이는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다시 말해서, 비틀의 부품들을 개조해 스포츠카 개념의 차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침내 48년 6월초, 베른에서 열린 스위스 그랑프리에서 폭스바겐에서 가져온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1천131cc 40마력 엔진을 얹은 첫 356/1 로드스터(프로토 타입)가 선보였다. 언론은 356이 폭스바겐 비틀과 아우토 우니온의 경주차를 이어주는 스포츠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의 356은 강철 파이프로 짠 스페이스 프레임에 알루미늄 보디를 얹은 미드십 형태였는데 이렇게 차를 만들면 공정이 복잡하고 제작단가가 높아 시장성이 불리해진다. 따라서 페리는 스포츠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싸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가벼우면서도 강성이 좋은 철판을 용접해 만든 박스 섹션(ㅁ 단면) 프레임을 사용하고 엔진은 짐 공간의 확보를 위해 뒤차축 뒤로 옮겼다. 1950년 포르쉐사는 옛 근거지인 슈투트가르트의 주펜하우젠으로 돌아가 356의 본격 생산을 시작했다. 크게 356(48년), 356A(55년), 356B(59년), 356C(63년)의 4세대로 나누어 볼 수 있는 356은 등장부터 퇴장까지 줄곧 기술혁신을 통해 다듬어지며 진화를 거듭했다. 1천100cc 40마력에서 시작된 엔진은 356SC에서 1천600cc 115마력에 이르렀고(경주차 버전에는 2천cc급 엔진도 있다) 쿠페, 카브리올레, 로드스터, 스피드스터 등 다양한 보디로 선보였다. 65년 포르쉐 911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날 때까지 356은 7만6천여 대가 생산되었다. 부드러운 곡선 아름다운 스피드스터 50년대 미국에 선보여 큰 인기 얻어 지금 타보려고, 아니 느껴보려고 하는 356은 스피드스터다. 스피드스터는 1954년 포르쉐의 미국 판매권을 가지고 있던 막스 호프만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356의 한 모델이다. 50년대 초반 미국의 경량스포츠카 시장에서는 영국의 MG가 선전하고 있었다. 포르쉐 356은 영국의 경량 로드스터들에 비해 값이 비싼 편이었다. 그러나 356의 성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판매에서 이를 적절히 활용했던 호프만은 미국 시장에서 포르쉐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356의 미국내 차값을 3천 달러 이하로 맞추어 줄 것을 요구했다(52년 포르쉐 356 쿠페의 미국내 차값은 4천300달러). 이 값을 맞추는 것은 쉬운 일도,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포르쉐의 해법은 간단했다. 성능은 유지하되 차를 단순화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카브리올레를 손 본 단순한 보디가 만들어졌다. 대시보드와 계기판도 최대한 단순화되었다. 그러면서도 기능성과 미적 균형은 해치지 않았다. 윈드실드가 낮아졌고 카브리올레에 있던 옆 유리 창문은 비닐 커튼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버킷 시트의 쿠션도 최소한의 패딩만으로 처리되었다. 이렇게 하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낮은 차체에 완만하게 둥글려진 윈드실드, 좀 빈약한 듯한 톱을 씌운 스피드스터가 탄생했다. 값은 2천995달러, MG와 재규어의 중간 수준이었다. 스피드스터는 출시되자마자 빠르게 팔려나갔다. 전통적 보디 분류의 입장에서 볼 때 스피드스터는 로드스터다. 독일에서는 스파이더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포르쉐는 초기 광고 문구에서 이 차를 로드스터 혹은 스파이더라 부르는 대신 스피드스터라는 용어를 썼고 후에 이것이 공식 모델명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스피드스터는 성능면에서 일반 356과 같았다. 54∼55년에는 1천500cc의 노멀과 수퍼 버전 엔진을 썼고, 55년 10월부터 시장에서 물러난 58년까지는 1천600cc의 노멀과 수퍼 엔진을 얹었다. 생산라인을 갓 벗어난 듯한 356 스피드스터 한 대가 앞에 서있다. ‘미국에서 배를 탔겠구나.’ 언뜻 생각된다. 57년 생이라는데 젊다. 허나, 나이는 있으되 허우대만 멀쩡한 자동차를 한두 대 접해본 게 아니다. 상태가 아주 좋아 보인다. 미국에서 두어 차례의 복원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엔진도 두 차례의 분해수리작업을 끝냈다. 자동차의 복원은 작업의 목표와 범위에 따라 몇몇 단계로 나뉜다. 그 중 한번의 작업은 프레임 오프(frame off) 복원이었다고 한다. 이 작업은 말 그대로 보디와 프레임을 분리하고 모든 부품을 떼어내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을 모두 손보는 것으로, 그 차와 부품의 진품 비중과 정도는 작업의뢰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차체는 진한 붉은 와인색으로 96년형 포르쉐 911의 페인트를 구해 칠했다고 한다. 차체의 도장, 실내외 트림, 대시보드 등은 미국에서 작업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있다. 복원에 사용된 많은 부품은 복제품일 것이다. 하지만 단종된 지 40년 된 차의 순정부품을 구하기란 매우 어려울 뿐더러 이를 고집하는 것도 부질없다. 어쨌든 차의 복원이 산업으로 자리잡고, 이러한 차종의 부품이 복제품의 형태로라도 원활히 공급되고 있는 ‘그쪽‘의 현실에 차를 사랑하는 필자는 언제나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스피드스터의 소프트톱은 그야말로 비상용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도 강렬한 햇볕과 비는 피해야 하니까. 시승날은 그야말로 지붕 없는 차를 위한 날씨였다. 당연히 톱은 좌석 뒤로 고이 접어둔 채로다. 운전석 뒤쪽에서 공랭식 수평대향 엔진이 들려주는 배기의 화음에 가슴이 뛴다. 기어를 넣고 출발해본다. 복원을 했다고는 하지만 45년이 넘은 차를 몰아붙일 수는 없다.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스티어링은 탄탄하며 유격이 과하지 않다. 가속페달의 압력은 조금 뻑뻑한 듯하다. 브레이크는 요즘의 차를 몰 듯 습관대로 사용한다면 당황할 것이다. 유압식이기는 하지만 배력장치가 없는 탓에 요즘 차들에 비해 페달 밟기가 수월치는 않으나 익숙해지면 불편한 정도는 아니다. 출력 모자람 없고 코너링 성능 뛰어나 단단한 서스펜션, 요철에서 튀는 느낌 도로로 나섰다. 신록의 품을 가르며 난 구불구불한 길을 잘도 헤치며 달려준다. 엔진의 출력은 요즘 기준으로는 충분치 않지만 모자람이 없고 코너링 솜씨는 요즘의 어지간한 앞바퀴굴림 차들을 앞선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초여름의 햇빛이 뜨겁고, 지나가는 차들에서 쏟아지는 시선은 더 뜨겁다. 싱그러운 바람이 볕을 흩뜨린다. 낮은 윈드실드를 한번 때리고 머리 위에서 난류를 만들며 흩어지는 공기가 귓전에 상쾌한 공명을 전한다. 계속 달리고 싶다. 서스펜션은 상당히 단단하다. 도로의 요철 부분에서는 통통거리며 차체가 튀는 경향을 보이고 보디롤은 약간 부자연스런 면이 보인다. 불안정하거나 미끄러운 노면의 코너에서는 운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시승 후 오너의 말을 들어본즉 최신 쇼크 업소버가 달려 있다고 했다. 원래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주행중 이 차가 들려주던 배기음은 전에 타보았던 356들과 조금 다르다. 카랑카랑함이 덜 한 느낌인데, 이는 상당히 주관적이고 게다가 오래된 엔진이므로 절대적인 비교는 무의미할 것이다. 시승을 마치고 엔진룸을 찬찬히 살펴보니 57년형 356 스피드스터의 원래 엔진과는 약간 달랐다.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부품 수급의 문제인 것이다. 필자의 기호에는 옛 자동차가 딱 맞는다. 특히 운전이 가능하면 더 그렇다. 굳이 ‘클래식’이라는 수식을 붙이지 못하는 차여도 좋다. 단순히 옛날 것을 좋아하는 차원은 아니다. 옛날 차들은 더 신경 써서 운전해야 하고 운전기술에 대해서도 더 생각해야하며 무엇보다 그 차의 잠재력을 100% 가까이 쓸 수 있어 좋다. 요즘 차들은 그 능력을 다 써주지 못해 운전하려면 밋밋하고 미안하다. 실로 오랜만에 감상적이고 꿈결같은 운전을 경험했다. 비록 문헌에서 보아오던 성능을 제대로 다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멋진 자동차 문화의 한 면을 향유해 본 것으로도 충분할 따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명차들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 본다. 시승차 협조: 포르쉐 매니아 클럽 코리아 ☎019-388-2492 포르쉐 356 스피드스터의 주요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3950×1670×1310mm 휠베이스 2100mm 트레드 앞/뒤 1306/1272mm 무게 855kg 승차정원 2명 엔진 형식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OHV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2.5×74mm 배기량 1582cc 압축비 8.5 최고출력 75마력/5000rpm 최대토크 11.9kg·m/3700rpm 연료공급장치 카뷰레터 연료탱크 크기 ㅡ 트랜스미션 형식 수동 4단 기어비 ①/②/③ 3.180/1.760/1.130 ④/⑤/ⓡ 0.815/ㅡ/ㅡ 최종감속비 4.42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2도어 컨버터블 스티어링 웜 앤드 너트 서스펜션 앞/뒤 더블 트레일링 암/싱글 트레일링 암 브레이크 앞/뒤 모두 드럼 타이어 앞/뒤 모두 165/50 R15 성능 최고시속 ㅡ 0→시속 100km 가속 ㅡ 시가지 주행연비 ㅡ 값 ㅡ
‘준중형차 대전(大戰)’ 선언한 기아의 싸움소 P제.. 2003-12-16
지난 10월 초, 제2회 부산국제모터쇼가 열린 벡스코를 찾은 취재진들은 기아자동차 부스에서 갑갑한 한숨을 내뱉어야 했다. ‘스펙트라 후속 모델이 부산국제모터쇼에 등장한다’는 소문에 먼길을 달려갔건만, 스모그 처리한 유리관 속의 주인공은 ‘쎄라토’라는 이름과 희미한 보디라인만 드러냈을 뿐 많은 이들의 기대를 매정하게도 걷어차버렸기 때문이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올라온 서울. TV에는 낯선 이미지 광고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등장하기 시작했다.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잘 생긴 남자가 장발머리를 흩날리며 곁눈질을 하는가 싶더니 눈부신 헤드램프 불빛 뒤로 낯선 자동차의 실루엣이 엿보이는 광고……. 기아 LD(쎄라토의 프로젝트 명)는 올 초부터 가장 기다려진 모델이다. 자동차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정체불명의 LD 관련 자료가 넘쳐흘렀고 편집부로도 “언제쯤 나오느냐”고 묻는 독자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왔다. ‘대한민국 대표 세그먼트’로 자리잡은 준중형급은 이제 새차 등장 소문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붙들어맬 만큼 견고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시장 요구에 충실한 하이루프 타입 보디 지금, 쏟아지는 겨울비 속을 달려온 쎄라토가 눈앞에 서 있다. 지난 11월 5일 발표회를 갖고 공식 데뷔한 지 정확히 일주일만의 만남이다. 준중형차 시장의 비중을 감안해서인지 예상보다 빨리 북적이는 서울 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시승차는 주력 모델인 1.5 CVVT 골드 세이프티 버전. 1.5X 엔진을 얹은 모델 가운데 최상급이다. 발표회장의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만났던 쎄라토는 불륨감 넘치는 풍만한 몸매와 현란하게 꾸민 얼굴로 정신을 흩어놓았다. 눈앞의 쎄라토는 그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사람이나 차나 조명발, 화장발을 조심해야 하는 법. 그렇다고 속단하지 말기를. 쎄라토의 스타일링이 “아니올시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쎄라토는 하이루프 타입 보디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볼륨감을 한껏 키우고 떡 벌어진 체구를 지닌 덕분인지, 바싹 다가서지 않는 한 지붕은 그리 높게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그동안 경차나 소형차를 통해 보아왔던 하이루프 타입처럼 어정쩡하지 않다. 쎄라토 스타일링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또한 이 점.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라인이 부조화를 보이는 등 일부 어색한 면이 없지 않으나 전체적인 스타일링은 준중형차 시장의 요구에 잘 어울릴 듯하다. 무난하되 오리지낼리티는 모자란 다. 무거워 보이는 앞모습에 비해 덕테일 타입으로 살짝 들어올린 트렁크리드는 경쾌하다. 날렵하게 떨어지는 C필러에서 속도감이 느껴지고, 넓은 트렁크룸 입구는 예전 스펙트라의 대표적인 단점을 한방에 날려버린다. 쎄라토의 스타일링 위로 수많은 차들이 오버랩된다. 시승 과정에서 이 차를 본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연모래색 보디 컬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쎄라토의 얼굴은 크라이슬러 세단을 연상케 하고, 헤드램프와 보네트라인에서 렉서스 차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 형태의 곡선을 그리는 옆구리 라인을 보다가 재규어를 상상했고 도톰한 뒷모습을 보면서 혼다를 생각했다. 전 세계 모든 브랜드들은 서로를 벤치마킹한다. 최근 트렌드의 장점들을 뽑아 잘 소화해낸다면 이는 결코 지적할 부분이 아니다. 도어를 여는 느낌이 좋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절도 있게 여닫히는 감이 신선하다.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 스티어링 휠과 시트 등의 마무리도 무척 좋은 편. 카렌스Ⅱ에서부터 기아의 인테리어 질감이 한 단계 좋아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쎄라토의 마무리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넉넉한 공간과 실용적인 장비 돋보여 커다란 속도계를 중심으로 rpm 게이지와 연료계 등을 단순화해 배치한 계기판은 한눈에 들어오는 타입. 스티어링 휠 역시 멋을 부리지 않았으나 손바닥에 전해오는 그립감은 마음에 든다. 손가락 닿는 위치에 정확히 달려 있는 오디오 리모컨과 핸즈프리 버튼도 제자리를 잘 잡은 듯. 옵션인 MP3/CD 플레이어 내장 오디오와 전자식 공조 시스템을 단 센터페시아도 깔끔하다. 전자식이면서도 온도 및 풍량을 다이얼로 조절할 수 있는 공조 시스템은 무척 실용적이다. 계기판과 스티어링 휠, 센터페시아 등 쎄라토 운전석을 에워싼 장비들의 기본 컨셉트는 ‘실용성 최우선’. 운전석 시트 아래에서 계기판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 트렁크 오픈 버튼은 패밀리 세단으로 많이 쓰일 준중형차임을 감안할 때 작은 변화로 편리함을 높인 장비다. 핸즈프리 소켓 바로 옆에 마련한 예비전원은 핸드폰 충전용으로 요긴할 것 같다. 앞뒤 유리창 김서림 제거 장치에다 덤으로 얹어준 와이퍼 결빙 제거 장치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환영받아 마땅할 듯. 쎄라토 인테리어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공간. 준중형차들 가운데 가장 앞선 차체 높이와 너비가 기대 이상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특히 다른 차들보다 3cm 이상 높은 천장이 주는 체감 여유는 수치상의 차이를 뛰어넘는다. 헤드룸과 레그룸, 어깨공간이 모두 넉넉한 뒷좌석은 스키스루 내장 암레스트까지 갖춰 준중형차 시장의 요구를 충실히 따른다. 컵이나 병을 단단히 잡아주는 뒷좌석용 컵홀더도 괜찮은 장비. 반면 2.0 골드 모델에만 제공되는 6:4 분할접이식 등받이와 분리형 뒷좌석 헤드레스트는 아쉬움을 남긴다. 시승차와 함께 한 1박2일 중 하루는 장맛비처럼 거센 겨울비가 내렸고 또 다른 하루는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다. 일정에 쫓겨 대부분의 테스트 주행과 사진촬영을 비가 쏟아지는 날 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맑은 날이면 확인하기 어려울’ 성능까지 들춰볼 수 있었다. 탄탄한 서스펜션 앞세운 달리기 성능 쎄라토의 시동음은 놀라우리만큼 차분하다. 소음 및 진동 방지 설계에 공을 들였다는 메이커의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시동음만 놓고 본다면 소리에 민감한 국내 운전자들의 군소리를 잠재울 수 있을 것 같다. 현대 아반떼 XD와 같은 1.5X 107마력 엔진을 얹었지만 한결 가벼운 차체(1천190kg) 덕분인지 출발가속도 비교적 매끈하다. 도로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액셀 페달을 꾹 밟아 급가속, rpm이 순식간에 솟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매서운 엔진음이 운전석으로 파고든다. 급가속 때 엔진 반응은 그리 빠르지 않은 편. 시속 120km까지 힘들이지 않고 올라가던 속도계 바늘은 그 언저리에서 멈칫거리기만 한다. D레인지로는 어딘지 모자라고 시프트다운하면 연결감이 떨어지는 4단 AT가 불만. 2.0X 버전에 얹힌 수동 겸용 AT의 성능이 궁금하다. 일단 속도를 떨어뜨린 뒤 이번에는 저단에서부터 기어를 차근차근 올리며 정속주행. 바삐 몰아치지만 않는다면 쎄라토는 꽤 훌륭한 달리기 실력을 보여준다. 급가속 때와 달리 rpm을 여유 있게 올려가며 가속을 시도하자 시속 100km를 넘어서고도 가속력을 유지한다. 제원상 최고시속은 184km. 쏟아지는 빗속을 다른 차들과 무인감시 카메라까지 조심하며 달렸음에도 시속 175km에 그리 어렵지 않게 도달한다. 고회전 영역으로 접어들면서 엔진음은 오히려 침착해지고 빗길임에도 차체가 안정감을 잃지 않는다. 풍절음 차단도 훌륭하다. 이 정도 주행성능이면 스타일링을 좀더 예쁘게 다듬어도 좋을 걸 그랬다. 빗길이라 괜한 긴장감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쎄라토는 제법 급한 코너를 거침없이 내닫는다. 시트를 따라 전해오는 서스펜션의 탄력이 예사롭지 않다. 90도로 꺾이는 급코너를 찾아 코너링을 시도, 듬직한 하체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하드한 서스펜션 세팅이 인상적이다. 뒤 서스펜션이 무척 단단하게 느껴져 급코너 때 뒷바퀴의 추종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지만, TCS를 끄고 코너를 파고들어도 차체가 조금 밀릴 뿐 별 문제가 없다. 시트는 몸을 잘 받쳐주고 스티어링 휠 컨트롤도 괜찮은 편. 기아가 밝힌 쎄라토의 주 타깃은 최근 우리 사회의 주력으로 떠오른 P세대. 쎄라토는 정치적 민주화와 정보화, 부유함을 탄생 배경으로 하는 P세대의 엔트리카를 겨냥한다. 이틀을 함께 보낸 쎄라토는 국내 준중형차 시장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쎄라토는 이미 러브콜을 날렸다. 시장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P세대는 쎄라토의 러브콜에 기꺼이 답신을 보낼까? 이제 둘 사이의 애정행각을 지켜볼 차례다. 기아 쎄라토 1.5 CVVT 골드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480×1735×1470mm 휠베이스 2610mm 트레드 앞/뒤 1495/1485mm 무게 1190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4기통 DOHC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ㅡ 배기량 1495cc 압축비 ㅡ 최고출력 107마력/6000rpm 최대토크 13.8kg·m/45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ㅡ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4단 기어비 ①/②/③ 2.846/1.581/1.000 ④/⑤/ⓡ 0.685/ㅡ/2.176 최종감속비 4.041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맥퍼슨 스트럿/듀얼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195/60 R15 성능 최고시속 184km 0→시속 100km 가속 ㅡ 시가지 주행연비 12.4km/ℓ 값 1,231만 원
기아 쎄라토 2.0 AT 부드러운 승차감과 만족스러.. 2003-12-15
뿔이라는 뜻의 쎄라토는 국산차 이름에서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리스어다. 부르기 쉬운 이름인 세라토는 스포티한 스타일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쎄라토를 처음 대하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알려진 대로 쎄라토는 현대 아반떼 XD의 플랫폼을 이용한다. 현대와 기아는 클릭 플랫폼과 아반떼 XD 플랫폼으로 3~4차종을 개발함으로써 비용을 줄이고 개발 효율성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즉, 지금까지 베르나와 리오가 맡았던 소형차 분야는 위의 2가지 차종에 흡수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아반떼 XD와 쎄라토가 맡아야할 분야는 지금보다 더욱 넓어진다. 준중형차 고객뿐 아니라 소형차 고객까지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플랫폼을 쓰는 두 차종은 서로의 역할분담이 매우 중요하다. 이틀 동안 쎄라토를 시승해 보니 ‘차별화’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남성적이고 스포티한 느낌 강조한 디자인 차체 높여 공간 넓히고 실내 소재 고급화 우선 스타일에서 두 차의 지향점이 다르다. 아반떼 XD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무난한 디자인이지만 쎄라토는 남성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뿔을 형상화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볼륨 있는 앞 펜더가 공격적이며 강한 인상이고, 완만한 뒤창과 짧은 트렁크 리드가 스포티한 분위기를 낸다. 여성적인 느낌을 주었던 스펙트라와는 정반대의 디자인 컨셉트다. 쎄라토가 택한 하이 루프 스타일은 넓은 실내와 뛰어난 공간활용도라는 플러스 알파를 선사한다. 헤드룸은 넓어졌지만 결코 차가 껑충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도요타 카롤라와 닛산 프리메라 등이 이런 스타일을 쓴 대표적인 모델이다. 아반떼 XD보다 차체를 45mm 높이는 한편, 시트 높이(535mm)를 일반적인 승용차보다 높여 타고 내리기가 편하다. 잭(jack)처럼 레버를 당기고 밀어서 조절하는 운전석 시트는 국산차에서는 처음으로 쓰였다. 처음에는 신기하게 느껴지지만 시트의 앞뒤 높이를 별도로 조절할 수 없으니 조금은 불편하다. 대시보드는 경쟁차 중 가장 호화롭다. 투톤으로 처리한 디자인은 쏘렌토를, 전체적인 모양은 옵티마의 것을 닮았다. 완전히 닫히는 송풍구와 쓰기 편리한 공조장치 스위치 등 마무리와 소재의 질감도 좋다. 그러나 개선할 점도 눈에 띈다. 센터 콘솔은 호화로운 다른 장비에 걸맞지 않게 너무 작고, 앞좌석용 컵홀더는 크기 조절이 안 되어 품질감이 떨어진다. 크기가 조절되는 뒷좌석용 컵홀더가 차라리 쓰기 편해 보인다. 2.0 골드에만 기본으로 있는 6: 4 분할 뒤 시트는 아반떼 XD 1.5 모델에 옵션으로 마련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위로 꺾여 올라간 테일램프는 혼다 차에서 많이 보던 스타일이어서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과거 도요타 입섬을 닮은 카렌스와 렉서스 RX300을 닮은 쏘렌토가 비난의 대상이 된 것에 비하면 독자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성공한 모델을 쫓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적지만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생각이다. 부드러운 변속과 안락한 승차감 인상적 급코너링에도 안정감 있는 몸놀림 보여 시승차로 준비된 모델은 2.0 골드. 준중형차에서 비중이 작은 2.0 모델을 시승차로 준비한 이유는 시장 상황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쎄라토를 비롯해 요즘 나오는 준중형차들은 과거에 비해 덩치가 상당히 커졌다. 휠베이스만 보더라도 쎄라토(2천610mm)는 88년에 나왔던 현대 Y2 쏘나타(2천650mm)와 거의 비슷해졌고 무게는 쎄라토 2.0 AT가 1천255kg으로 Y2 쏘나타 1.8 AT(1천220kg)보다 많이 나간다. 소비자들은 갈수록 많은 편의장비와 넓은 실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니 자동차 메이커들은 차의 덩치를 자꾸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덩치가 커진 준중형차에 1.5X급 엔진을 얹고 뛰어난 운동성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기아가 쎄라토의 시승차로 2.0 모델을 내세운 것은, 준중형차가 힘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깨는 동시에 한 급 위의 시장을 겨냥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쎄라토에 얹은 2.0X CVVT(Continuously Variable Valve Timing) 엔진은 현대 아반떼 XD에 얹은 VVT (Variable Valve Timing) 엔진과 기본적으로 같다. 기아는 VVT 엔진을 업그레이드해 CVVT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나, 현대의 VVT나 기아의 CVVT 엔진은 출력과 토크가 모두 같다. VVT와 CVVT는 메커니즘에 차이가 있을 때만 다르게 부르는 것이 옳다. 메커니즘의 기본은 아반떼 XD가 처음 나왔을 때 얹은 2.0X 베타 엔진을 바탕으로 했는데, 당시 아반떼 XD 2.0 수동 모델의 엄청난 가속력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원하는 시점에서 필요한 만큼 터져 주는 토크는 가슴속까지 후련하게 만들었다. 시승차로 나온 2.0 AT는 부드러운 변속과 안락한 승차감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수동 모드로 바꾼 후 저단 기어에서 킥 다운을 시도할 때 응답성이 떨어지고, 가속력은 확실히 수동 기어에 못 미친다. 1.5X AT에 성인 5명이 탄다면 힘 부족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부드러운 승차감을 위해 서스펜션을 조금 소프트하게 다듬은 느낌인데, 코너링 성능은 기대 이상이다. 직선주행에서 조금씩 출렁거리던 차체는 시속 80km로 돌아나가는 급코너링에서 의외로 안정된 몸놀림을 보인다. 일상적인 주행에서라면 별다른 불만이 없을 정도로 세팅이 좋은 편이다. 디스크 브레이크는 확실하게 바퀴를 움켜쥐고, 급제동 때 차가 앞으로 쏠리는 노즈 다이브도 적다. 2.0 모델에 기본으로 달린 스트럿 타워 바와 195/60R 15 타이어(1.5 LX 이상)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 덕분이고, 이 정도의 섀시강성이라면 서스펜션을 좀더 딱딱하게 튜닝하고 16인치 타이어를 끼워도 충분히 좋은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커튼 에어백 및 사이드 에어백이 포함한 세이프티 팩은 값을 크게 낮춘 만큼 많은 이들이 혜택을 누릴 것이다. 승용차 내수 판매에서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했던 기아로서는 쎄라토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 있게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멋진 스타일과 잘 달리는 모습이 ‘호타준족’으로 불리는 프로야구 선수 이종범을 떠올리게 할 정도. 그러나 기아가 여기에서 만족하지 말고 욕심을 더 부렸으면 좋겠다. 소비자들의 욕구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선진 자동차 메이커들처럼 옵션이나 모델을 더욱 세분화해 높은 기대수준을 만족시킬 의무도 국내 메이커들에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예를 들면 더 나은 주행성능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1.5X 모델에도 스트럿 타워 바를 옵션으로 마련하고, 서스펜션도 부드러운 것과 딱딱한 것 중 고를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떨까? 젊은 여성을 위한 레이디 스페셜 모델이나 가족여행을 위해 편의장비를 강화한 패밀리 팩을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양한 선택 폭은 경쟁력을 높이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선의의 경쟁은 우수한 품질을 낳는다. 치열한 4파전이 벌어질 준중형차시장은 소비자들에게 ‘골라 타는 재미’를 안겨줄 것이다. 쎄라토가 국내 준중형차시장 부흥의 산파역을 맡길 기대한다. 기아 쎄라토 2.0 골드 AT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480×1735×1470mm 휠베이스 2610mm 트레드 앞/뒤 1495/1485mm 무게 1255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직렬 4기통 DOHC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2.0×93.5mm 배기량 1975cc 압축비 10.3 최고출력 143마력/6000rpm 최대토크 19.0kg·m/45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55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4단 기어비 ①/②/③ 2.842/1.529/1.000 ④/⑤/⑥/ⓡ 0.712/ㅡ/2.480 최종감속비 3.77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듀얼링크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195/60 R15 성능 최고시속 200km 0→시속 100km 가속 ㅡ 시가지 주행연비 10.9km/ℓ 값 1,480만 원
쌍용 뉴 체어맨 안과 밖 모두 멋진 변신 이룬 .. 2003-11-07
쌍용자동차가 1998년 대우자동차한테 경영권을 넘겨주기 전까지, 쌍용의 김석원 회장은 자동차의 시대적인 요청과 흐름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제한된 재력 내에서 지프차 같은 코란도, 오늘날 SUV의 선구자 역할을 한 무쏘, 그리고 벤츠 엔진을 얹은 대형승용차 체어맨이라는 세 가지 차종에만 중점을 둔, 일반고객용 차를 만들어 모두 성공했다. 대우는 당시 현대 다음가는 규모로 다양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어찌된 셈인지 중소형차에만 집중하다 보니 종합적인 자동차 메이커로서 구색이 갖춰지지 않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쌍용을 그의 산하에 두기로 했다. 디자인에 과감하게 변화를 준 2세대 모델 새 헤드램프, 구형 오너라면 불만 가질 듯 이 체어맨에는 에피소드가 있다. 쌍용이 벤츠측과 합의하여 벤츠 엔진을 도입하기로 했으나 차체 스타일은 쌍용이 디자인하여 벤츠측의 사전양해를 얻게 되어 있었다 한다. 사실은 벤츠측이 디자인해 주겠다는 것을 쌍용측이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차니까 우리 손으로 디자인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쌍용이 만든 렌더링을 벤츠측이 보고 감탄하여 단발에 ‘OK’가 나왔다고 한다. 이리하여 탄생한 체어맨은 정말로 예뻤다. 대형승용차로서 길지도 짧지도 않은 5천55mm의 길이에다가 말끔하게 다진 차체는 공기저항을 최대한 없애버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80년대의 벤츠 모양을 더욱 진화시킨 것 같은 매끈하고도 탄탄한 스타일이었다. 이 모델의 보급형엔 직렬 4기통 2.3X 150마력 엔진이 그리고 고급형에는 4기통 2.8X 197마력 엔진이 얹혀있다. 보다 더 고급형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길이 5천355mm인 리무진형이 마련되어 6기통 3.2X 220마력 엔진이 얹혀 있다. 연비도 아주 좋아 보급형은 8.8km/X, 고급형의 두 가지 차종도 7.9∼7.7km/X, 그리고 리무진형도 7.7km/X 나 되니 놀라운 일이었다. 대우왕국이 김우중 회장의 실각으로 기세가 기울어지자 다시 쌍용으로 환원되면서 체어맨의 앞 그릴은 완전히 벤츠의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그야말로 ‘벤츠의 한국모델’같이 변모하여 더욱 예뻐졌다. 물론 예쁘다는 것뿐만 아니라 안전과 기능면에서도 본고장의 벤츠차와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국회의원과 전문직 종사자 및 부잣집 마나님까지도 선호하는 기품을 지닌 차라 하여 인기가 높았는데, 드디어 그 제1세대가 끝나고 제2세대시대가 왔다. 차의 헤드램프와 테일라이트에 과감한 디자인 변화를 일으킨 모델로, 2004년형으로 데뷔한 것이다. 우람한 현대 에쿠스보다는 경쾌한 곡선을 지니면서도 권위가 있어 보이는 제1세대의 체어맨 애호가들은 삼각형 전조등을 달고 나온 제2세대 뉴 체어맨을 보고 처음에는 깜짝 놀랬다. 내 집사람도 체어맨을 타고 있지만 TV광고에 나타난 뉴 체어맨을 보자마자 “저 차가 뉴 체어맨이라구? 참 이상하게 생겼네”라고 한다. 아마도 그 삼각형 전조등 때문인 것 같다. 하기야 기아 오피러스도 처음에 우리들한테 선보였을 때에는 그 대담한 앞 그릴이 로테스크한 인상을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옛 모습의 단정한 체어맨을 사랑해 왔던 사람들에겐 약간 저항감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광고화면을 통한 느낌이었을 뿐이고, 실물을 보면 또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외관 못지않게 더욱 고급스러워진 실내 계기판 밝아지고 중앙콘솔 제대로 손질 이 정도의 사전지식을 갖고 새로 나온 뉴 체어맨의 시승에 나섰다. 눈앞에 나타난 뉴 체어맨은 최고급형인 CM600S. 검은 차체에다가 이보다 약간 연한 쥐색으로 하체부분을 도장한 투톤 컬러의 멋진 모습이다. 언뜻 보기에는 옛 모델과 길이 차이가 없는 것 같았으나 사실은 5천55mm에서부터 5천135mm로 더 길어졌다. TV광고에서 본 인상과는 달리 삼각형 헤드램프 모양도 그리 나쁘지 않다. 프론트 그릴과 헤드램프를 합친 차의 앞머리 디자인은 그 차의 생명이니 만큼, 각 메이커들은 있는 지혜를 다 동원하여 만든다. 90년대에는 전조등과 그릴이 한줄로 길게 나열된 것이 유행이었는데,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조등이 갈라지던가 아니면 이중 타원모양으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이 전조등이 둥근 일체형이나 아니면 상하로 층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하던데, 뉴 체어맨은 유행을 앞당긴 셈이다. 제법 차 전체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그래서 뉴 체어맨의 TV광고는 ‘100년의 철학’ 개념이 투입된 차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100년까지는 못 가도 ‘10년쯤의 디자인 철학’이 살아있을 차의 외관이긴 하다. 특히 마음에 든 것은 차의 뒷부분 디자인이다. 테일라이트가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트렁크 뚜껑과 너무나도 고급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아주 세련된 스타일이란 말이다. 수많은 국산차를 총망라하여 판단했을 때, 이 뉴 체어맨의 뒷부분 디자인이 최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뉴 체어맨의 외관이 옛 모델보다도 더욱 고급스럽게 변모한 것에 놀랬으나 차 안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한번 “와”하고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우선 차 내부의 값비싼 분위기를 만드는 우드그레인 패널의 색깔이 옛것은 너무 밝아서 약간은 싸구려 같은 인상이었는데, 지금 것은 깊이 있는 어두운 색으로 바뀌어 육중한 무드를 조성하고 있다. 계기판의 각종 계기 눈금도 아주 밝아져서 좋았고 그밖의 편의시설이 모여져 있는 중앙콘솔도 잘 다듬어져 있다. 더욱이 운전석 오른편 암레스트 앞에 BMW 뉴 7시리즈가 자랑하는 컨트롤 노브가 달려 있잖은가 말이다! 그 디자인의 참신함에 놀라서 만져보니 그것은 이동용 담배재떨이였다. 이것은 재떨이 이상의 장식효과를 가진 존재이다. 실내장식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뉴 체어맨의 새 모습이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앞좌석엔 6.5인치 그리고 뒷좌석엔 7.1인치 크기의 LCD를 설치한 점이다. 이것은 국내 최초로 이용한 DVD로 일반 CD용량보다 7배 정도나 더 크니 135분짜리 영화도 그대로 볼 수도 있고, 뛰어난 화질은 물론 13개의 실내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입체음향은 마치 극장 안에 몸을 담은 기분을 준다. 1997년 10월에 탄생한 체어맨은 2003년 9월에 6년간의 세월을 거쳐 새 모델로 변신했는데, 우선 길이가 CM600S는 5천35mm에서 5천135mm로, 리무진 모델은 5천355mm에서 5천435mm로 더 길어졌다. 이것은 현대 에쿠스의 세단(5천65mm)과 리무진(5천335mm)보다 더욱 긴 스타일이다. 그동안 에쿠스와 비교하여 결코 질에서는 뒤지지 않았으나 크기에 밀리던 것을 뉴 체어맨으로 단번에 앞서게 되었으니,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승용차가 된 셈이다. 그러나 크기만 갖고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생명인 엔진을 비교해 봐도 성능과 효율성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뉴 체어맨과 에쿠스는 각각 3.2X와 3.5X의 배기량을 지니고 있으나, 최고출력을 보면 220마력에다 210마력으로 뉴 체어맨이 앞선다. 최대토크도 32.0kg·m와 31.0kg·m로 우세하다. 연비도 7.7km/X와 7.2km/X로 비교되니, 과연 벤츠 엔진답게 효율 좋은 것을 뉴 체어맨이 얹은 셈이다. 특히 이 벤츠 엔진은 비단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운 작동으로 유명하다. 벤츠의 인공지능 5단 자동변속기에 연계되어 있어서 달릴 때 노면이나 경사도, 운전자의 개별적인 습관 및 기계마모의 상태 등을 모두 전자신호로 바꾸어 기억해 두었다가 주행상태에 가장 알맞게 자동기어 레버를 D위치에 걸어 놓고 가속판만 밟고 있으면 차가 알아서 달려준다는 이야기이다. 얼마나 편한지 직접 운전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쾌감이다. 이 변속기는 기어레버가 게이트 형식이어서 초보자가 실수로 잘못 레버를 움직이게 하는 것을 방지해 준다. 여기에는 또 W(Winter)와 S(Standard) 모드의 스위치가 옆에 달려 있다. W 모드는 별도의 작동형식으로 2단 출발이 가능하며 겨울철 눈길에서도 부드러운 출발을 유도한다. S 모드는 운전자의 개성(즉 가속판을 밟는 버릇)에 대응하여 변속하니까 편안하게 운전에만 전념할 수 있다. 무단전자제어 서스펜션으로 승차감 좋아져 검은 도장에 은색 투톤이 더 잘 어울릴 듯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해 보니 정말로 저력 있는 엔진이 소리 없이 나를 끌고 간다. 진동이 전혀 없고 방음장치도 잘 되어 있어서 나만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200마력의 강력한 엔진은 노면에 나서면 그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차의 앞과 뒤의 무게배분이 잘되어 있어서 핸들을 잡은 손에 부담이 안 간다. 게다가 승차감이 월등하다. 이른바 IECS라는 무단전자제어 서스펜션 덕분인가 보다. 노면을 달리는 것 같지 않고 무엇인가에 매달려 공중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제법 붐비는 차들 때문에 시속 200km까지 속도를 내보지 못했으나 추월과 제동기능은 더할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탁월했다. 그런데 제동페달을 밟을 때 순간적으로 제동반응을 하지 않고 한번 더 밟아야 제동이 걸리는 기분이었는데 이것은 초보운전자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숙달된 운전자에게는 약간 불안한 기분이 들 것 같다. 이것은 물론 페달조정으로 얼마든지 운전자의 취향에 맞게 바꿀 수 있으리라 이 차는 악착같이 뒷바퀴굴림 시스템을 고집한 차다. 그래서 나는 대환영이다. 요사이 어찌된 셈인지 한국에서 현대 에쿠스와 기아 오피러스같은 딴 회사의 대형차들이 모두가 앞바퀴굴림을 채용하고 있는 것에 나는 불만이다. 앞바퀴굴림은 중소형차에게는 안전한 눈길운전과 기동성 향상을 위해 필요할지 모르겠으나 산길 코너링, 급제동 및 등판능력이 뒷바퀴굴림에 뒤떨어지고 특히 승차감에 있어서도 열세인 것이다. 그래서 외국의 고급차들인 롤스로이스, 벤츠 그리고 BMW 등이 모두 뒷바퀴굴림방식을 쓰고 있다. 탁월한 승차감 면에서 앞바퀴굴림 방식은 상대가 안되고 안전운전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뉴 체어맨이 유일하게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형차 중 이렇게 뒷바퀴굴림 방식으로 설계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높이 평가하고 싶다. 끝으로 차는 잘 달려야 하지만 또 잘 멎어야 한다. 비상시의 급제동, 눈·빗길과 산길에서의 자동차컨트롤 등을 위해서 그동안 ABS에서 TCS(슬립방지), ASR(엔진출력제어를 통한 슬립방지) 등을 거쳐 이제는 ESP(슬립 및 오버 또는 언더스티어 방지)가 쓰이는 진화를 해왔다. 그런데 이 차에는 BAS라는 제동보조장치까지 부가되어 있다. 운전자가 급제동을 할 때 제동력을 신속하게 증가시켜주는 것이다. 이 장치는 노약자나 여성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가지 나 개인의 의견을 말한다면, 시승차는 검은 도장에다 차 아랫부분에 짙은 쥐색도장을 하여 투톤 효과를 냈는데, 그 짙은 쥐색도장이 그리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이전 모델의 은색도장이 훨씬 잘 조화되고 권위 있어 보인다. 이 쥐색페인트는 윗부분의 검은 페인트에 묻혀버려 투톤의 효과가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덮어놓고 옛것을 버리는 것보다 좋은 것은 그대로 계승해도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뉴 체어맨은 멋지게 진화했다. 스타일도 길게 더 커졌고, 그전보다는 획기적인 앞 그릴의 전조등과 뒷모습의 디자인 처리로 아주 클래식하면서도 ‘100년 앞을 바라보는 철학이 담긴 차’(?)로 변신했다. 내장도 세련되었고 승차감도 더욱 좋아졌다. 금년 초에 체어맨을 구입한 내 아내가 나의 시승 이야기를 듣고 뉴 체어맨으로 차를 바꿀까 할 정도이니 말이다. 돈만 많이 준다면 나도 뉴 체어맨의 판매원으로 변신하고 싶은데 쌍용측의 생각은 어떠할는지. 쌍용 뉴 체어맨 CM600S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5135×1825×1475mm 휠베이스 2900mm 트레드 앞/뒤 1550/1540mm 무게 2185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직렬 6기통 DOHC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9.9×84.0mm 배기량 3199cc 압축비 10.0 최고출력 220마력/5500rpm 최대토크 32.0kg·m/38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80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392/2.408/1.486 ④/⑤/ⓡ 1.000/0.830/3.100 최종감속비 3.026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리서큘레이팅 볼(파워)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V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15/60 R16 성능 최고시속 230km 0→시속 100km 가속 10.6초 시가지 주행연비 7.7km/ℓ 값 5,450
르노삼성 2004년형 SM525V 26가지의 참신한.. 2003-10-21
모처럼 내비친 새파란 하늘에 보조라도 맞추듯 말쑥한 순은색 정장을 갖춰 입고 나타난 신사. 족히 1년은 지나 마주한 주인공은 얼추 보아 달라진 모양새를 찾기 어려웠지만, 먼저 만난 이의 설명을 듣자니 ‘26가지의 새로운 매력’이 곳곳에서 뚝뚝 묻어난다고 했다. 세상의 절반이 이성-여자 혹은 남자-이라도 가슴을 흠뻑 적시는 데는 ‘필 꽂힐’ 매력 하나로 충분한 법인데, 하물며 섬겨야 할 매력이 26가지나 된다니 손도 잡기 전에 가슴부터 미어지는 기분이다. 충실하고 매력적인 변화에 애틋해지는가 하면, 딴은 보일 듯 말 듯 숨겨진 매혹의 증거들을 들춰낼 생각에 목덜미부터 야릇한 피로감이 밀려든다. 르노삼성이 내놓은 새로운 SM525V와의 만남은 이렇게 마주치기도 전에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을 풀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예의 수수함에 입체감 불어넣어 르노삼성 SM5는 뉴 EF 쏘나타 아니면 그랜저 XG이기 일쑤인 국내 중형 및 중대형차 시장의 ‘현대 일방주의’식 구조에서 꽤나 설득력 있는 대안이 되어주었다. 닛산 맥시마 구형의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믿음직한 품질에 대한 소문이 고객 입을 타고 번지면서 주목받은 SM5는 비(非) 현대 모델로는 드물게 잠재 고객을 꾸준히 늘려가는 스테디셀러의 성공적인 케이스로 자리잡았다. 그간 SM5의 족적을 들춰보면 이만한 하드코어(hard core, 고집 센, 치료불능의) 모델도 드물다. 98년 데뷔 후 단 한번의 모델 변경도 없이 지난해 초에야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내놓았을 만큼 요지부동. 그 변화도 기껏해야 그릴에 굵고 얇은 선을 넣고 트렁크리드의 붉은 반사판을 떼어낸 정도에 그쳤으니 이쯤 되면 페이스리프트가 아니라 화장기 살짝 고친 이어 모델에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번 2004년형 모델은 다르다. 서투른 재주를 부리지 않은 수수한 스타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과감히 헤드램프의 눈자위를 도려내고 동그스름한 크세논 램프를 박아 싱거운 얼굴에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가운데 콧대를 도톰하게 불리고 촘촘하던 수직 줄무늬를 살짝 성글게 벌린 그릴은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아도 표정의 선명함을 더하는 솜씨 좋은 성형의 흔적. 돌려세운 등에는 트렁크리드에 한층 두껍게 찍어 바른 크롬 가니시가 눈에 띄지만 이보다는 디테일한 위치 변화로 느낌을 달리하고 기능성을 높인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가 훨씬 마음을 잡아끈다. 앞뒤 램프 모두 클리어 타입으로 바뀐 2002년형 이후 모델은 브레이크 등이 지나치리만큼 밝고 불빛이 뒤차 운전자의 시야에 꽂히듯 비춰 야간운전, 특히 정체도로에서는 결코 뒤따라 달리고 싶지 않은 블랙리스트 중 하나였다. 난생 처음 페이스리프트에 가까운 변화를 겪은 SM5가 ‘뉴’(new)라는 붙이나마나한 수식어 대신 이어 모델로 선보인 점도 환영할 만하다. 세간에는 램프 디자인을 살짝 다듬거나 그릴 무늬 바꾼 것만으로도 떳떳하게 ‘뉴’라는 형용사를 달고 새것인 양 행세하는 얄미운 차가 제법 많다. 군더더기를 찾을 수 없는 심플한 보디 안에는 겉모습만큼이나 수수한, 어째보면 낡은 티 나는 인테리어가 여전하다. 새로 더한 마호가니 우드그레인은 적갈색의 깊이 있는 색감과 원목을 빼닮은 그윽한 나뭇결로 그럴 듯한 고급차 분위기를 낸다. 인테리어를 감싼 나무장식은 기어박스, 센터페시아와 인스트루먼트 패널 하단을 아우르고 아이섀도를 바르듯 스티어링 림의 위아래를 단장하고 마무리된다. 하지만 검은색(대시보드, 센터콘솔)과 연회색(도어트림), 짙은 베이지빛(가죽시트)을 뒤섞은 독특한 컬러 조합은 뜯어말리고 싶은 인테리어 구성. 2004년형 SM5의 26가지 새로운 매력 중 절반 이상은 실내에 오글오글 모여 있다. 편의장비를 더하고 일부는 기능을 개선해 실내공간의 쓰임새와 운전편의성을 높였다는 얘기. 레인 센싱 와이퍼, 후방경보장치 등은 국내 중대형차 고객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결과. 앞좌석 오버헤드 콘솔에 얹어둔 선글라스 케이스와 트렁크룸에 마련된 6장들이 CD 체인저(또는 인대시 타입 6CD 체인저를 갖춘 플래티늄 오디오)는 ‘홀로 운전’이 잦은 오너 드라이버에게 반가운 장비다. 하지만 적재공간 덮개에 마련한 손잡이나 트렁크 쇼핑백 걸이는 쓰임새가 만점일지 몰라도 운전자가 DIY 작업으로 덧붙인 듯 뒷마무리가 거칠고 플라스틱 재질도 고급감이 떨어져 차급에 어울리는 개선이 필요하다. 25가지 변화보다 강렬한 텔레매틱스의 매력 새로운 SM5는 입체감 넘치는 스타일과 풍성하게 마련한 편의장비로 분위기 쇄신에는 성공했지만 다른 차 오너들까지 꼬셔 넘기기에는 흡인력이 약하다. 그러나 시동키를 꽂고 달음질을 준비할 찰나, 센터페시아 중앙에 남아 있던 마지막 매력이 은근한 빛을 뿌리며 사소한(?) 25가지 매력을 단숨에 잠재워버렸다. ‘지능형 정보/내비게이션’이라는 지루하게 긴 이름을 지닌 이 시스템은 다름 아닌 SK텔레콤의 ‘네이트 드라이브’를 활용한 텔레매틱스 서비스다. 텔레매틱스는 교통과 생활정보 등을 종합해 운전자에게 전송해주는 서비스센터와 단말기를 갖춘 자동차가 무선통신망(CDMA, GPS, 블루투스 등)을 통해 온갖 데이터를 주고받는 네트워크 서비스의 하나다.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한 길 안내로 막히는 곳을 최대한 피해갈 수 있도록 돕고 식당, 병원, 상가 위치 등의 생활정보를 받아볼 수도 있어 일반 내비게이션보다 몇 수 앞선 쓰임새와 실용성을 자랑한다. 목적지와 경로는 음성과 명칭(자음), 지역·업종, 전화번호, 경위도 입력 등으로 검색한 뒤 전용 휴대폰으로 정보센터가 보내주는 정보를 다운로드받는 방식. 내려받은 정보는 트렁크에 설치된 단말기에 저장되어 몇 번이고 불러 쓸 수 있고, 길 안내 도중 경로를 벗어날 경우 정보센터로 자동연결되어 새로운 경로 데이터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길 안내는 가로로 긴 스크린과 음성 두 가지 방식으로 전달한다. 안내화면이 좁고 지도 축적도 1:2만km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어 아쉽지만, 방향 바꿀 지점을 확대해 보여주고 터닝 포인트가 나타날 때까지 너덧 차례씩 나아갈 방법을 일러주어 큰 불편은 없다. 처음에는 익숙한 길 대신 엉뚱한 우회도로를 알려줘 당혹스럽지만 어지간해서는 ‘네이트 드라이브의 생각’에 동의하는 편이 좋다. 실시간 교통정보를 수집해 알려준다는데 밑지는 셈치고 한번쯤 믿어볼 만하지 않은가. SM525V의 탁 트인 시야와 편안한 운전자세는 여전하고 몸을 차분하게 감싸안는 가죽시트는 넉넉하고 안락한 크루징을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V6 2.5X DOHC 172마력 엔진은 매끄러운 가속으로 단정한 차체를 시속 100km까지 손쉽게 이끌고, 액셀 페달을 깊숙이 밟아 최고속도에 가까운 시속 195km까지 도달하는 데도 답답한 기운을 느끼기 어렵다. V6 엔진은 3천500rpm 무렵부터 앙칼진 소음을 내뱉지만 크게 거슬리지 않아 경쾌한 운전 재미로 여기면 될 듯. 솔직한 엔진 반응과 매끈한 가속은 그대로 한없이 부드럽기만 한 경쟁 모델의 주행감각을 생각하면 SM525V는 비교적 솔직한 엔진 반응과 깔끔한 핸들링으로 재미를 더한다. 엔진은 드로틀 조작에 정확히 반응하고 2천~4천rpm까지 토크감 손실이 적어 폭넓은 영역에서 당찬 추월가속을 이끌어낸다. 적당히 단단한 서스펜션은 기민한 몸놀림을 뒷받침하는 일등공신. 액티브 댐퍼 서스펜션 옵션(87만 원)을 더하면 모드(스포츠/컴포트)에 따라 안정되고 민첩한 핸들링을 즐기거나 안락한 승차감을 만끽할 수 있다. 운동성능은 일상적인 주행에 딱 알맞은 정도다. 굴곡이 심한 와인딩 로드에서는 앞뒤 밸런스가 쉽게 무너져 과격한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기에는 부담스럽다. 직각에 가까운 코너를 시속 60~70km 이상으로 밀어붙이면 심한 언더스티어와 함께 코너링 라인을 벗어나기 일쑤. 심한 경우에는 롤링으로 인해 코너 안쪽 뒷바퀴의 접지력이 옅어지면서 뒤꽁무니가 흐르는, 실전 감각에 가까운 드리프트를 경험할 수도 있다. 제동력을 알맞게 분배하는 EBD-ABS와 차동제한장치(LSD)로 차체 밸런스를 확보했다지만 더욱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뒤 서스펜션을 단단히 조여 안정된 접지력을 확보하고 ESP와 같은 주행안정 프로그램을 갖추는 등 좀더 발전된 엔지니어링 부문의 개선이 필요하다. 2004년형 SM525V의 구매가치를 높여준 지능형 정보/내비게이션 시스템에는 ‘보이지 않는 손’처럼 드러내지 않고 운전자를 도와주는 든든한 서비스가 하나 더 있다. 교통사고나 엔진 이상 등 운전자 능력 밖의 문제로 곤경에 처했다면 스티어링 휠 오른쪽에 마련된 빨간 단추를 누를 것! 르노삼성과 SK텔레콤이 공들여 마련한 수호천사―긴급구난 서비스 팀―가 신속한 사고처리를 도울 것이다.
2004년형 르노삼성 SM 525V 눈매 손질하고 .. 2003-10-01
지난해 SM5는 모두 10만775대가 팔렸다. 10만9천293대가 팔린 현대 뉴 EF 쏘나타에 이어 판매 2위였다. 잠깐 동안이기는 하지만 올해 7월 현대가 노사문제로 주춤하는 사이 SM5는 현대 뉴 EF 쏘나타를 제치고 월간 판매1위 자리에 올라서기도 했다. 굳이 판매대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준중형차인 SM3이 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르노삼성을 대표하고 있는 SM5가 국내 중형차시장 대표모델의 하나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닛산이 만든 2세대 전의 중형차를 베이스로 한 SM5가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해외에서는 현대-기아의 중형차와 SM5의 베이스가 된 맥시마의 2세대 진화모델이 함께 판매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2세대 전의 맥시마가 여전히 현대와 기아, 그리고 GM대우의 최신 중형차와 앞을 다투고 있어, 일본과의 기술격차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몇 번의 변화를 거친 르노삼성의 SM5는 더 이상 2세대 전의 맥시마와 같은 차는 아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겉모습을 손본 2002년형 모델이 나온 지 꼭 1년 9개월만에 2004년형 SM5가 다시 선보였다. 이번에는 헤드램프를 손질해 눈매가 달라졌고 리어램프와 트렁크 패널도 바뀌었다. 2004년형 모델은 분명 2002년형 모델보다는 변화의 폭이 크지만 그렇다고 페이스리프트를 한 것도 아니다. 과연 르노삼성이 내세우는 ‘26가지 매력적인 변화’는 정말 매력적인 것일까. 헤드램프 모양 바꿔 새로운 분위기 내고 적갈색 우드그레인으로 실내 분위기 바꿔 2004년형 SM525V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헤드램프 안쪽에 들어간 동그란 원이다. 간혹 “BMW 닮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헤드램프 안에 두 개의 원을 넣은 BMW나 기아 스펙트라 윙, 혼다 인테그라 등과는 달리 2004년형 SM5는 헤드램프 안쪽 상향등만 동그랗게 처리했다. 원이 좀더 커지면 예전 현대 쏘나타Ⅲ같은 우스운(?) 모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본 2004년형 SM5의 눈매는 사진으로 볼 때보다 어색한 느낌이 덜하다. 헤드램프 아랫부분의 모양이 바뀌면서 범퍼도 다시 디자인되었다. 예전 닛산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범퍼 한가운데 뚫린 공기 흡기구가 2004년형 SM5에서는 사라졌다. 옆모습에서는 측면 방향지시등이 흰색으로 바뀌고 알루미늄 휠의 디자인이 달라진 것 외에는 이전 모델과 차이점이 없지만 뒷부분의 변경 폭은 조금 크다. 트렁크 패널이 바뀌면서 뒤 패널 가운데를 가로지르던 애매한 선이 없어져 한결 깔끔해졌다. 또한 리어 램프의 모양도 바뀌었고 두 램프 사이에 자리한 르노삼성의 엠블럼이 예전 삼성상용차가 생산했던 야무진에나 어울릴 만큼 큼직해졌다. 실내에서는 우드그레인이 밝은 색에서 적갈색을 띄는 마호가니 나무색으로 바뀌었다. 오버헤드 콘솔 부분에 선글라스 케이스, 스티어링 휠 가운데 크롬으로 도금한 르노삼성 엠블럼이 더해진 것도 약간의 변화. 그러나 무엇보다 센터 페시아에 달린 1딘 사이즈의 내비게이션이 눈길을 끈다. 이 내비게이션은 르노삼성이 삼성전자, SK텔레콤과 함께 개발한 것으로, 그 성능이 궁금해 기자는 일부러 르노삼성 홍보실에 시승차를 청하면서, 6장짜리 CD체인저를 내장한 플래티늄 오디오 대신 내비게이션을 달아달라고 부탁했다. 시승차로 나온 V6 2.5X 엔진을 얹은 SM525V는 중형차와 준대형차 사이에 넓게 걸쳐있는 SM5 가운데 종종 같은 배기량의 현대 뉴 그랜저 XG와 비교되는 준대형차이다. 지난해 2002년형 SM525V를 시승한 기억을 더듬으며 시동키를 돌렸다. 엔진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용하기는 매한가지. 액셀 페달을 밟으면 초기에 약간 굼뜬 것 같다가도 이내 rpm의 상승에 따라 꾸준한 가속이 이어진다. 넘칠 정도는 아니지만 넉넉한 엔진힘을 바탕으로 제법 스포티한 주행도 즐길 수 있다. 엔진음은 어느 속도에서나 바람소리를 넘어서는 일이 없다. 텔레매틱스 기능 갖춘 내비게이션 자랑 탄탄한 기본기에 더해진 각종 편의장비 SM525V의 서스펜션은 약간 부드러운 듯하지만 다른 국내 중형승용차보다는 출렁거림이 덜한 편이다. 특히 전자제어 서스펜션의 스위치를 스포츠 모드에 놓으면 얌전한 세단이 제법 탄탄한 몸놀림을 보인다. 노멀 모드와 스포츠 모드의 차이는 코너링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예전 경험으로는 분명 SM5는 한계치에 가까운 코너링에서 심한 언더스티어를 보였지만 오늘 시승한 525V는 예전의 기억을 의심케 할 만큼 뉴트럴에 가까운 약한 언더스티어를 보였다. 물론 서스펜션의 스위치를 스포츠 모드에 두었을 때의 반응이다. 시승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내비게이션은 2004년형 SM525V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1딘 크기의 조그마한 화면에 현재위치가 표시되는 것은 물론이고 네이트 드라이브 센터에 연결해 교통정보를 반영한 목적지까지의 경로도 정확하게 내려 받을 수 있다. SM518부터 SM525까지 모든 모델에 옵션으로 달리는 지능형 내비게이션은 네이트 드라이브를 지원하는 휴대폰이 없으면 따로 구입해야 하는 것이 약간의 흠. 그러나 평소 네이트 드라이브를 쓰며 그 기능에 만족하면서도 지도를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던 사람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장비이다. 화면을 통해 발신자의 번호나 휴대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고 최근 발신번호를 선택해 곧바로 전화를 걸 수 있는 편리한 기능도 갖추고 있다. 2004년형 SM5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르노삼성이 말하는 ‘26가지 매력적인 변화’ 가운데 SM5의 가치를 높여주는 변화도 분명 있지만 ‘2004년형’이란 딱지를 붙이기 위해, 즉 ‘변화’를 주기 위한 변화도 찾아낼 수 있다. 또한 다소 나이가 들어(?) 요즘 차들만큼 다양하지 못한 편의장비를 보강한 부분이나 요즘 중형차들의 유행을 쫓아간 부분도 눈에 띈다. CD체인저를 내장한 오디오나 지능형 내비게이션, 국내에서 처음으로 보디의 철판을 보증기간에 넣은 것 등은 분명 2004년형 SM5의 가치를 높여주는 변화다. 또한 앞 천장에 새로 마련한 선글라스 보관함이나 핸즈 프리키트의 비밀 통화기능, 바깥 온도를 알 수 있는 온도계, 후방 경보장치, 레인 센싱 와이퍼 등은 부족했던 편의장비를 보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헤드램프나 범퍼 모양, 알루미늄 휠 등의 디자인을 바꾼 것은 변화를 주기 위한 변화인 듯하다. 또한 하얀색 측면 방향지시등이나 크롬으로 도금한 스티어링 휠 엠블럼, 우드그레인을 두른 스티어링 휠, 마호가니 우드그레인과 회색 내장재 등을 써 애써 어둡게 만든 것은 현대 그랜저 XG를 염두에 두고 벤치마킹한 혐의가 짙다. 그리고 트렁크 패널 안쪽 애매한 곳에 달려 그 기능이 의심스러운 트렁크 핸들은 그다지 ‘매력적인 변화’란 항목에 집어넣고 싶지 않다. 2004년형 SM5는 무덤덤한 스타일과 어쩔 수 없는 구 모델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버린 차는 아니다. 그러나 세련된 스타일과 다양한 편의장비로 유혹하는 경쟁모델을 마다하고 탄탄한 기본기에 반해 SM5를 고려하던 사람들에게는 2004년형 SM5가 매력적인 유혹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Toyota Prius 과도기적 대안 넘어 그 자체.. 2004-04-28
미래 자동차의 동력원에 대해서는 수소가 가장 유망해 보인다. 이미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의 프로토타입이 여러 종 나와 있고 필자도 벤츠 A클래스 수소차를 잠깐 타본 적이 있다. 하지만 수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충전소나 그 외의 인프라가 모두 구축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무공해 차라고 인식되고 있는 전기자동차는 항속거리가 지나치게 짧고 충전시간이 길어 실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배터리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있기 전에는 당분간 비주류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기차에 쓰이는 에너지도 결국은 발전소에서 나온 것이므로 무공해 차는 결코 아니다. 양산 메이커의 전기차로는 새턴에서 나온 EV1이 있었으나 값이 비싸 일반인들에게는 리스로만 제공되었고 그 차들 모두 리스기간이 끝나 회수에 들어갔다. 그 외의 자동차 회사에서도 몇 종의 전기차를 내놓았으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특수 용도로 유원지나 대량 구매를 하는 회사 차로만 판매했다. 반면 두 개의 동력원을 쓰는 하이브리드카는 도요타와 혼다에서 2만여 대를 시판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카는 오래 전부터 컨셉트카의 단골 세그먼트였다. 두 가지 동력원을 써 성능과 경제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개념으로 주로 내연기관이나 가스터빈 엔진에 전기 모터를 조합하는 방식을 따랐다. 가스터빈 엔진의 경우 특성 자체가 자동차의 주행에 적합하지가 않다. 따라서 가스터빈 엔진으로 발전기를 돌리고 여기에서 얻어지는 전기로 바퀴를 굴리는 방식의 컨셉트카가 여럿 선보였다. 디젤차도 이와 비슷했다. 대형 디젤 엔진은 속도를 조절하기 쉽지 않으므로 대용량 발전기를 돌리는 데 쓰고 여기에서 얻은 전기로 차를 움직인다. 엔진과 전기 모터를 합친 컨셉트카 중에서도 엔진은 전기를 얻는 데만 쓰고 모터로 차를 움직이는 방식이 있었지만 현재 시판중인 하이브리드카들은 모두 엔진과 전기 모터 모두를 바퀴를 굴리는 데 사용하는 페러렐 방식이다. 1.5X 76마력 엔진과 67마력 모터의 조합 최초의 양산 하이브리드카는 도요타의 프리우스였으나 북미 시장에 먼저 진출한 것은 혼다 인사이트다. 프리우스는 4도어 4인승인 반면 인사이트는 2도어 2인승 쿠페였다. 그러던 중 혼다는 시빅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더했고 도요타는 얼마 전 2세대 프리우스를 내놓아 하이브리드카 대전 2차전에 들어갔다. 새 프리우스는 차체가 커지고 시스템도 개선되어 출시 직후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엔진은 1.5X이지만 실내공간은 미드사이즈 급이다. 혼다는 IMA(Integrated Motor Assist)라는 방식으로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들어간 얇은 두께의 모터가 힘을 보태고, 도요타는 엔진과 모터를 병렬로 연결한 구조를 쓰고 있다. 혼다는 모터가 엔진을 보조하는 정도이고 도요타는 엔진과 모터가 비슷하게 업무분담을 한다.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의 경우 85마력을 내는 1.3X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에 모터 힘을 더하면 93마력까지 출력이 높아진다. 도요타 프리우스는 76마력을 내는 1.5X 엔진과 67마력을 내는 전기 모터가 차의 주행을 함께 담당한다. 후진은 전적으로 전기 모터가 맡고 완만하게 가속할 때도 모터로만 움직이는 일이 많다. 도요타 프리우스와 시빅 하이브리드 모두 정지 때는 시동이 함께 꺼져 효율이 나쁜 공회전을 막음으로써 연비를 향상시키고 배출가스도 줄이도록 배려되었다. 엔진이 정지된 상태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은 기본. 두 차 모두 감속 중에는 모터가 발전기로 작동해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시빅 하이브리드는 계기판에 나타나는 CHRG/ASST를 통해 모터가 힘을 쓰는 중인지 충전중인지를 알 수 있고, 프리우스의 경우 대시보드 중앙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그런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프리우스의 경우 공회전을 하지 않고 또 모터로만 움직이는 저속주행이 많은 시내 연비가 고속도로 연비보다 좋다. 시내에서 1X 당 20km 이상을 달릴 수 있다. 주행 저항이 적은 타이어를 끼워 승차감이나 코너링이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은 들지만 보통의 경제형 승용차와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프리우스는 구형 모델에 비해 운전 감성이 한층 나아졌다. 구형은 가속감과 스티어링 감각이 조금 어색했을 뿐 아니라 제동 감각은 정말 이상했다. 속도를 줄일 때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리제너레이티브 브레이킹 시스템과 유압식 브레이크가 조합되는 부분에서 발생한 문제 탓인지, 브레이크 페달을 밟다가 다시 서서히 풀어도 차는 점점 더 강하게 감속되려는 경향을 보여 페달의 입력과 차의 거동 사이에 적잖은 차이가 있었다. 새 모델은 가감속 반응이 한층 직선적이어서 보통의 휘발유 엔진 차와 거의 다르지 않은 운전 감각을 보인다. 발진가속은 조금 굼뜬 느낌이지만 추월가속은 보통의 미드사이즈 세단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범한 세단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평범한 운전 감성과 많은 장점 갖춰 경제성이 높은 차라고 해서 가속성능이나 핸들링에 특별히 뒤지는 느낌은 없다. 코너에서는 뉴트럴에 가까운 언더스티어 경향을 띠고 스티어링 휠의 무게도 적당하다. 뒤 브레이크는 드럼 방식이지만 제동 때 모터가 발전기로 작용하면서 생기는 주행 저항 탓인지 제동 용량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시빅 하이브리드는 스타일링, 주행특성, 그리고 각종 장비가 일반형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반면 프리우스는 외관 디자인이나 실내 분위기가 상당히 독특하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미래지향적이고 참신하면서도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급 차종에 쓰이는 스마트키는 열쇠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차에 접근할 때 자동으로 잠금장치가 풀리고 실내에서도 버튼만으로 시동을 걸 수 있어 편리하다. 인테리어 또한 SF 영화에 나온 작은 우주선 같은 분위기이면서도 인터페이스가 비교적 잘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이드 질감의 시트나 기하학적이면서 잘 정돈된 대시보드는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CVT의 셀렉트 레버는 P 레인지 대신 버튼으로 대체했는데 P 버튼을 누르고 파워 스위치로 손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와이퍼를 켜게 된 경우가 두어 번 있었다. 손의 동선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필자가 유달리 부주의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값은 동급 휘발유차보다 높으나 정부에서 주는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최근 들어 미국 내에서의 기름값이 상승세를 지속해 연비가 예전보다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경우 전철처럼 스르륵 미끄러지듯 가속하는 느낌이 무척 이상한 데 반해 하이브리드카는 일반 차의 주행감성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이런 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일지도 모른다. 운송수단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이브리드는 상당한 장점과 매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나름대로의 운전재미도 갖추고 있다. 하이브리드가 내연기관에서 수소연료전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단계라고만 보기 힘든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요타 프리우스 Dimension 길이X너비X높이(mm) 4450×1725×1490 휠베이스(mm) 2700 트레드(mm)(앞/뒤) 1505/1481 무게(kg) 1250 승차정원(명) 5 Drive train 엔진형식 직렬 4기통 DOHC 최고출력(마력/rpm) 77/5000 최대토크(kg·m/rpm) 11.7/4200 구동계 앞바퀴굴림 배기량(cc) 1496 보어×스트로크(mm) 75.0×84.7 압축비 13.0 연료공급/과급장치 전자식 분사 연료탱크크기(L) 45 Chassis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맥퍼슨 스트럿/토션 빔 브레이크 앞/뒤 디스크/드럼(ABS) 타이어 모두 195/55 R16 Transmission 모터형식 AC 싱크로너스 모터출력(마력/rpm) 67/1200~1540 토크(kg·m/rpm) 10.8/0~1200 배터리형식 Ni-MH(201.6V) Performance 최고시속(km) 170 0→시속 100km 가속(초) 10.9 연비(km/L) 20 Price 19,995달러(2,4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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