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시승기

NISSAN 350Z 날카로우면서 편안한 퓨어 스포.. 2003-11-07
검은 망토의 영웅, 쾌걸 조로는 TV시리즈와 만화 및 영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조로는 항상 악당을 처단한 뒤 그의 칼로 날카롭게 Z라는 이니셜을 남긴다. 조로를 현대물로 각색한다면 그의 애마로 가장 잘 어울리는 차는 무엇일까? 바로 오늘 만나는 350Z가 그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Z카의 부활을 기치로 등장한 닛산 350Z의 보디 곳곳에 새겨진 Z 이미지가 조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관심은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차들이 있다. 바로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차들이다. 하지만 최근 틈새시장을 노린 차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 수입차시장이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닛산 350Z도 그런 까닭에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내수용 페어레이디Z는 몇 대 들어왔지만 오른쪽 핸들이고, 왼쪽 핸들 모델이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법규상 현지에서 오른쪽 핸들 차를 구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350Z는 일본에서 생산되어 미국으로 수출된 다음 다시 국내로 수입되었다. 가까운 길을 놔두고 먼길을 돌아 온 셈이다. 국내에서 오른쪽 핸들을 타면서 겪어야 하는 불편을 상쇄하는 대가다. 갓 300마일도 뛰지 않은, 형식승인을 마치자마자 달려온 2004년형 350Z가 기자의 눈앞에 나타났다. 페어레이디Z의 5세대 모델, 신선한 변화 보디 강성 높이고 타워형 스트럿 바 달아 카리스마 넘치는 스포츠카 중에는 타고 내릴 때 스타일을 구기는(?) 경우가 많다. 좁은 도어와 낮은 시트 때문에 몸을 잔뜩 구부려야 하는데 남 보기에 매우 이상한 포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350Z는 적어도 그럴 우려는 없다. 보통의 고급 세단처럼 우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다. 그럼 성능은? 물론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보통의 승용차에서 맛볼 수 없는 파워가 넘치고, 스포츠 주행을 위한 완벽한 자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350Z의 세계로 함께 가보자. 카를로스 곤 체제 이후 닛산은 르네상스로 불릴 만큼 부흥기를 맞고 있다. 2002년 7월에 등장한 닛산 페어레이디Z의 5세대 모델, 곧 350Z는 그러한 닛산의 한 상징이다. 세계에 통용되는 Z의 기호는 오랜 침묵 뒤에 부활을 완수했다. 양산 메이커에게 스포츠카는 영업수지 면에서 큰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기업 이미지 측면에서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명성이 더해진다. Z카는 특히 열렬한 팬들로부터의 기대가 큰 모델이고, 국내에서의 지명도도 꽤 높은 편이다. 350Z의 보디는 쿠페와 컨버터블 두 가지로 나온다. 이전 세대에는 뒷자리를 가지는 2+2 버전도 있었지만 신형은 순수한 2시터만이다. 사진으로 먼저 낯을 익힌 350Z의 실물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페어레이디에 Z 기호가 처음 붙은 1969년 태생의 초대 Z카인 S30(수출명 240Z)의 윈도 그래픽, 89년에 나온 4세대 Z32(300ZX)의 루프 라인 등으로 전통의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결코 복고적이지는 않다. 여기에 앞뒤 오버행이 매우 짧고, 보디 옆면이 훨씬 커지며 펜더부가 강조되었다. 그리고 특징적인 리어 쿼터와 테일 램프가 만드는 뒷모습은 Z카의 디자인 큐나 헤리티지를 남기면서도 미래지향적이다. 차체의 전체 길이×너비×높이는 4천310×1천815×1천315mm로 같은 2시터 스포츠카이며 라이벌인 포르쉐 복스터보다 길이는 10mm 짧고 너비는 35mm 넓다. 2천650mm의 긴 휠베이스가 인상적이다. 인테리어는 대시패널 중앙에 3개의 원형 미터가 240Z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남긴 듯하다. 2인승 공간은 비교적 여유가 있고, 각 계기와 스위치도 잘 배열되어 있다. 센터페시아의 터치형 수납함은 내비게이션을 달 수 있는 자리. 동반석에는 글로브 박스가 없고, 시트 뒤에 크고 작은 3개의 수납함이 있다. 큰 박스는 동반석 등받이를 앞으로 숙여야 하므로 사용하기에 조금 불편하다. 스포츠카로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해치백 타입으로 화물칸은 넓어 보이지만 높이가 낮고 타워형 스트럿 바를 달아 공간활용성은 떨어진다. 대신 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V6 3.5X DOHC 287마력 엔진 얹어 저속 토크 좋고 승차감도 평균 이상 2개의 시트 사이로 두툼한 센터 터널이 가로놓여 운전석의 독립된 느낌이 크다. 버킷타입 시트는 몸을 잘 잡아주고 스티어링 휠을 비롯한 모든 운전계기가 선 굵은 남자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무엇보다 차의 중심에 드라이버가 앉아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감각이 기분 좋다. 스티어링의 응답성이나 네 바퀴의 움직임을 잘 읽을 수 있다. 차체의 무게중심 또한 앞 뒤 50: 50으로 완벽하다. 엔진은 V6 3.5X DOHC로 ‘VQ’형 유닛이다. 최고출력 287마력/6천200rpm과 최대토크 37.0kg·m/4천800rpm을 낸다. 다만 일본에서는 최고출력 제한 때문에 페어레이디Z는 280마력이 된다. 이미 정평을 얻은 이 유닛은 스카이라인이나 르노 벨사티스 등에도 사용된다. 달리기 시작했을 때 엔진은 우선 저속의 토크가 좋다. 팁트로닉을 3단에 놓고 3천rpm 부근에서부터 드로틀을 열면 가속은 강렬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4천rpm부터는 호쾌한 파워가 나온다. 엔진은 경솔하게 회전수를 올리지 않는 듬직함이 있다. 고속에서 약간의 로드 노이즈와 진동이 전해지지만 확실히 보디 강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단한 서스펜션은 유럽차 감각이고 스포츠카로서 평균 이상의 승차감을 보여준다. 그리 힘들지 않게 가속이 이루어져 꽤 높은 속도로 달리면 스포츠카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기어박스는 수동 6단과 자동 5단 2종류. 시승차는 매뉴얼 모드를 갖춘 5단 AT로, 각 단이 고정되어 있어 한계회전수에 이르러도 마음대로 시프트 되지 않는다. AT이면서 즉각적인 감각을 가지는 트랜스미션이다. AT는 편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기어 위치가 조금 높은 느낌이다. 기어 레버를 오른쪽으로 젖혀 사용하는 매뉴얼 모드에서 몸에 밀착되는 느낌도 조금 부족하다. 수동 기어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느낌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스피드 핸들링 정확하고 순발력 뛰어나 350Z는 알루미늄 보네트, 카본제 프로펠러 샤프트, 범퍼 소재의 일부 알루미늄화 등의 경량화를 시도하면서 보다 엄격해진 충돌안전성을 확보했다. 이전 모델보다 100kg 정도 감량한 보디는 정말 빠르다. 자연흡기 엔진이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스피드가 올라간다. 무심코 있으면 커브 앞에서 당황하는 속도에 이르기 십상이다. 최고시속은 별 의미가 없다. 언제 어느 순간이고 원하는 만큼의 속도와 순발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걸로 끝이다. 도로에서는 어떤 스트레스도 없다. Z카의 컨셉트는 누구나 쉽게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와인딩 로드를 달려보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운전하기 쉽다고 하는 그 이상의 다이내믹함을 맛볼 수 있다. 퓨어 스포츠카로서 드라이버에게 무엇을 호소해야할 것인지가 명확하다. 핸들링은 샤프한 것은 아니지만 정보를 확실히 전달하면서도 여유가 있다. 그야말로 드라이버는 여유 있게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긴다. 보스제 오디오는 그런 여유를 더해준다. 웬만큼 음질에 민감한 오너라도 오디오 튜닝이 필요 없을 만큼 멋진 사운드를 낸다. 특히 등뒤에 대형 스피커가 있어 심장을 쿵쿵 울리는 사운드가 기막히다. 타이어는 앞뒤 다른 사이즈로 앞 225/50 R17, 뒤 235/50 R17을 신었다. 앞 225/45 R18, 뒤 245/45 R18 사이즈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350Z는 날카로운 동력성능을 지녔으면서도 편안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또한 350Z는 결코 뒤를 향하지 않았다는데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과거의 영광이나 역사를 과도하게 끌지 않았다. 새로운 닛산을 상징하는 것 같은 매우 적극적인 도전 자세가 당당해 보이는 이유다. 시승협조:Exotic line☎011-1742-9007 닛산 350Z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310×1815×1315mm 휠베이스 2650mm 트레드 앞/뒤 1535/1540mm 무게 1450kg 승차정원 2명 엔진 형식 V6 DOHC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95.5×81.4mm 배기량 3498cc 압축비 10.3 최고출력 287마력/6200rpm 최대토크 37.0kg·m/48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75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54/2.26/1.47 ④/⑤/ⓡ 1.00/0.83/2.37 최종감속비 3.36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2도어 쿠페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V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25/50 R17, 235/50 R17 성능 최고시속 240km 0→시속 100km 가속 6.0초 시가지 주행연비 ㅡ 값 ㅡ
Mercedes-Benz SL350 독일에서 날아온.. 2003-10-21
1930년대의 유럽은 평온함 속에 위험한 불씨를 품고 있었다. 33년 독일 정권을 잡은 히틀러의 제3제국은 영토 확장과 게르만 민족을 정점으로 한 새로운 질서 수립이라는 목표 아래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과는 별도로 유럽의 자동차 시장은 역사에 없던 화려한 꽃을 피웠다. 19세기 말 태어난 자동차는 20세기 초 기술적 바탕을 다지더니 1920~30년대에 이르러서는 부가티와 벤츠, 벤틀리, 들라이예 등 수많은 걸작을 쏟아냈다. 게르만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혈통임을 믿어 의심치 않은 히틀러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는 한편 자동차 분야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제3제국의 후광과 지원을 얻은 벤츠와 아우토우니온은 수퍼차저 등 최신 기술로 무장한 경주차를 선보였다. 이들은 유럽 서키트를 초토화시켰고 그 엄청난 스피드에 놀란 유럽인들은 ‘실버 애로우’(은빛 화살)라는 닉네임을 선사했다. 스포츠 레이싱계의 전설 SL 참혹했던 2차대전이 독일과 일본의 패전으로 막을 내린 뒤 전 유럽은 복구사업에 온 힘을 기울였다. 당시 대부분의 독일 기업들이 그랬듯이 항공기용 엔진 등 수많은 전쟁 무기를 생산한 벤츠는 연합군의 감시 하에서 자동차사업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였지만 벤츠는 ‘실버 애로우’의 부활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벤츠는 1954년 그랑프리, 55년부터는 스포츠카 레이스에 정식으로 복귀했다. SL은 스포츠카 레이싱을 위해 1952년 완성되었다. 튜블러 프레임에 215마력의 직분사 엔진을 얹고 270km의 최고시속을 낸 300SL은 걸윙 도어를 단 매력적인 보디를 뽐내며 세계의 드림카로 자리잡았다. 유로피안 투어링카 챔피언십과 밀레밀리아를 비롯해 수많은 로드 레이스에서 활약한 300SL은 전설의 이름 ‘SL’의 시발점이 되었다. 쿠페와 오픈 로드스터 버전(SLR)이 있었던 초대 SL은 스포츠카보다는 레이싱카에 가까웠다. 하지만 50년의 세월을 지난 SL은 이제 화려한 디자인과 절정의 성능을 보여주는 호화 스포츠 로드스터로 자리잡았다. 서키트를 호령하던 ‘질주본능’에 아쉬움이 남는다고는 해도 이미 서키트는 전문 레이싱카의 무대가 된 지 오래. 오래 역사를 지닌 대부분의 고성능 모델이 이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지난 2001년 프랑프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신형 SL(SL500과 SL55 AMG)은 수많은 이들의 기대와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아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차체는 SLK에서 발전된 신형 바리오루프를 얹음으로써 쿠페-컨버터블의 완벽한 변신이 가능해졌다. 비를 머금은 듯 찌푸린 하늘 아래서 만난 SL350은 차가워 보이는 은색 차체에 뜨거운 열정을 숨기고 있었다. 이런 초호화 스포츠 로드스터는 전 세계를 통틀어 소수의 고객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국내 시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시승차는 베이식 버전인 SL350으로 1억5천만 원이 넘는 가격표를 달았다. 완벽하고 정교한 메커니즘의 조화 패밀리룩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컴팩트하고도 우아하게 완성된 SL은 톱을 씌웠을 때와 접었을 때 서로 다른 매력을 내뿜는, 완벽하게 균형 잡힌 보디라인을 보여준다. 16초 만에 작동을 끝내는 신형 바리오루프는 그 움직임 자체가 퍼포먼스다. 필러와 리어 윈도, 루프 파트가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트렁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날카로운 헤드램프 디자인이 무색하게 너무 풍만한 엉덩이는 유일한 옥의 티다. 운전석에 앉자 속도계와 타코미터를 같은 크기로 배치한 인스트루먼트 패널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기계식 시계의 문페이즈(월령 표시)처럼 미터 아래쪽을 파고든 파란색 디스플레이가 보석처럼 빛난다. 속도계를 중앙에 놓은 디자인으로는 이런 스포츠 감각을 얻기 힘들다. 타원형 에어벤트, 홀드성이 좋은 시트 디자인 모두 속도에 대한 본능을 부추기는 요소. 구형에서 처음 써 주목을 끌었던 팝업식 롤바는 SL 안전성의 상징으로 승객에게는 든든한 보디가드다. 바리오루프의 완벽한 구조 덕분에 그 아래로 235X(톱을 씌웠을 때는 317X)의 트렁크 공간을 확보했고 운전석 뒤쪽에 수트케이스 자리가 있으니 짐 실을 걱정은 끝. 수트케이스 자리 밑과 도어 아래에도 뚜껑 있는 수납공간을 마련하는 등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마음을 가다듬고 엔진을 깨우자 낮은 으르렁거림이 차 전체를 감싼다. 지난해 파리 오토살롱에서 발표된 SL350의 엔진은 벤츠 V6 3밸브 중 가장 배기량이 큰 3.7X다. 245마력의 최고출력을 내고 6단 자동 변속기 ‘시퀸트로닉’을 조합했다. 레버를 좌우로 움직여 변속하는 수동 모드는 다른 벤츠 차와 공통된다. 윗급 SL500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면 SL350은 최상의 달리기 성능을 선사한다. 제원상 0→시속 100km 가속 7.2초의 순발력은 rpm 확인을 위해 눈을 타코미터로 옮기기 힘들 만큼 강렬한 가속을 이어나간다. 5천500rpm을 넘어서도 토크 부족을 느낄 수 없고 6단 AT는 재빠르며 동력 손실이 거의 없다. 윗급보다 100kg 가까이 가벼운 몸매도 플러스 요소. 보네트와 트렁크, 도어를 알루미늄으로 만들고 마그네슘과 복합 소제를 써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인상적인 점은 지붕을 씌우나 접으나 별다르지 않게 실내로 들어오는 엔진 소음과 배기음. 스포츠 주행에 어울리도록 한 의도적인 연출이다. 엉덩이에 전해지는 진동은 액셀 밟은 오른쪽 발을 은근히 자극한다. 도로를 제압하는 절정의 달리기 성능 짧은 휠베이스와 FR 구동계, 안정 지향의 서스펜션 세팅이 조화를 이룬 하체는 절정의 달리기 성능을 보여준다. 포근한 승차감과 숨막히는 가속, 격정적인 코너링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지고 귓가를 울리는 배기음이 어우러지며 이 날 시승 코스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어떤 차라도 극단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내리막 혹은 오르막 헤어핀에서조차 약간의 타이어 소음을 만들어낼 뿐. 이마저도 주행안정장치의 재빠른 개입에 금세 잊혀지고 만다. 너무 안정적이라 싫다면? 좀더 퓨어 스포츠에 가까운 페라리 360 모데나나 포르쉐 911 GT3으로 눈을 돌리는 수밖에. SL은 스테빌라이저가 없다. 대신 ABC(Active Body Control)라 불리는 전자제어식 댐퍼가 롤링과 피칭 등 불필요한 차체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억눌러 주행성능을 높인다. SL에 얹힌 또 하나의 첨단기술은 바로 SBC(Sensotronic Brake Control). 그 덕분에 코너 직전에서의 급격한 브레이킹은 물론 코너 도중에 감속해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시승차가 간판 모델 SL500이 아니라는 점에 아쉬움이 남지만 1억5천만 원이 넘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 로드스터를 몰며 할 투정은 아닌 듯 싶다. 아니, 액셀을 밟는 순간 아쉬움이 이미 날아가고 없었다. 반응 좋은 3.7X 엔진은 갈증을 느끼기 힘들 만큼 꾸준한 토크를 제공하고 뛰어난 서스펜션 세팅과 ABC, ESP의 조화가 스피드에 대한 욕망을 집요하게 부추긴다. 이처럼 흥분에 사로잡힌 운전자의 요구에 따라 어떤 코스도 완벽하게 요리해내는 것이 바로 SL의 매력. 뛰어난 자동차를 통해 게르만의 우수성을 입증하겠다던 히틀러의 야망이 은빛 벤츠 SL을 통해 실현되고 있었다. 시승 협조: 메르체데스 벤츠 코리아 ☎ (02)2112-2500
볼보 뉴 S80 T6 새시대를 상징하는 수퍼 세단 .. 2003-10-15
정말로 오랜만에 볼보를 타볼 기회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시승해 본 차종이 80년대에 나왔던 760시리즈였으니 말이다. 그때와 오늘날의 볼보는 완전히 달라졌다. 고집스럽게 지켜오던 벽돌장같이 모난 4각형 스타일이 이젠 아주 멋진 생동감 넘치는 유선형으로 변했다. 한마디로 감개무량하다고나 할까? 볼보는 1926년, 아사 가브리엘슨과 구스타브 라슨에 의하여 창업되었다. 그런데 볼보라는 회사 이름은 그 이전에 스웨덴의 볼 베어링 회사가 이미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 회사의 재정적인 뒷받침을 얻어 만든 것이었기에 그대로 볼보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이 볼보는 라틴어의 돈다는 뜻인 ‘volvere’에서 따왔으며, 자동차 바퀴도 돌아야만 달릴 수 있는 것이니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 하겠다. 보수적인 색채 버리고 화려하게 변신 넓은 차체와 넉넉한 엔진출력 돋보여 자동차생산은 1927년 4월에 시작되어 그 첫 작품은 야콥이라 부르던 OV4였고, 4기통 2.0X 엔진으로 최고시속을 60km까지 냈다. 1920년대의 차체는 딴 나라의 자동차모양과 비슷한 4각형이고 30년대에 들어서면서 앞 그릴과 창문이 바람의 저항을 막기 위해 뒤로 기울여졌고 차 뒷면도 곡선을 그리며 내려갔지만 그릴은 여전히 세워져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드디어 앞 그릴이 옆으로 길게 뻗으며 차 전체가 유선형 모습을 지니게 된다. 그 이후 나온 PV544는 아마존이라고도 불렸는데 아주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차가 볼보의 지위를 확고히 했고 1960년대에 이르러 144 및 164 모델이 나오면서 다시 앞 그릴은 두 개의 큰 타원으로 갈라진다. 74년에 240 모델이 나오면서 그릴은 볼보 특유의 긴 4각형 위를 대각선으로 한 줄이 이어지는 스타일로 확립되었다. 이 모델은 프랑스 르노와의 합작품이었다. 1975년 볼보는 네덜란드의 자동차회사인 DAF를 손에 넣는다. 재무구조가 든든해지면서 1982년 2월에는 6기통 엔진 760과 4기통 엔진을 쓰는 740을 출시한다. 이 모델이야말로 볼보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스웨덴차로서 전세계의 볼보 애호가를 꽉 붙잡아 놓았다. 보수적인 네모난 차체와 검소한 실내장치, 그러나 얄팍한 유행 따위에는 한눈을 팔지 않는 디자인 자세는 보수적인 중년층 이상의 사장족과 가족들에게 대환영을 받았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인 60년대의 볼보 광고에 ‘스웨덴 도로 중의 80%가 비포장도로인데, 10년 이상 그 도로를 달려도 끄떡없는 진동에 강한 차’라고 강조되어 있던 것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차체가 얼마나 견고하게 만들어졌는지 직접 보라는 듯이, 10여 대의 볼보차를 차례로 쌓아올려 놓은 80년대의 홍보사진도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볼보는 보수적인 스타일을 고수했지만 60년대에 선보인 스포츠카 P1800모델은 내가 미국에서 가장 갖고 싶었던 차이기도 했다. 페라리의 앞 그릴 같은 타원형으로 벌린 입과 옆으로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크롬 선들은 이 차의 속도감 넘치는 스타일을 돋보이게 해줬다. 오늘날 P1800이 도로를 달려도 멋진 현대감각에 아주 걸맞은 모습이어서 그 당시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볼보도 유행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90년대의 과도기에 볼보는 포드 산하에 들어갔고 스타일과 기술면에서 화려한 변신을 한다. 그것이 집약되어 2004년형 뉴 볼보 S80이 탄생했다. 지금부터 약 10년 전까지 우리 국민들은 수입차를 타는 사람을 비애국자인양 차가운 시선으로 보았고, 국세청은 외제차를 굴리는 사람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감시대상으로 삼기까지 했다. 성능 좋은 차를 타고 싶으나 남들의 눈을 의식했던 이때 구태의연해 보이는 사각형의 볼보와 싸구려 중고차 같은 인상을 줬던 아우디는 도로를 달려도 그리 탁 튀지 않아서 일부 애호가들의 선호를 받았던 역사를 우리들은 기억한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외제차들이 도로를 활보하고 있으며, 따라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볼보도 아우디도 이제는 획기적인 변신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은색으로 단장한 화려하고도 단정한 모습의 2004년형 볼보 뉴 S80을 보자마자,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란 “으와, 멋지다!”라는 탄성뿐이었다. 이 모델의 대항마라고 할 수 있는 벤츠 E320은 매끈한 스타일이지만 차의 왕자다운 볼품이 없어지고, BMW 530도 돈 많은 젊은이를 너무 의식한 디자인이어서 스포티하지만 힘이 넘쳐서 우아한 맛이 없다. 이 양자의 좋은 특징만을 모두 뽑아낸 차가 볼보 뉴 S80이다. 가격면에서도 이들보다 300∼500만 원 더 비싸다. 그렇지만 볼보의 최고작품인데다 확실히 차 자체의 안팎에 그만큼의 돈 차이보다 더 큰 장비와 정성이 가미되어 있다는 것을 뉴 S80 옆에 서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우선 차의 크기부터 다르다. 벤츠 E320은 길이×너비×높이가 4천818×1천822 1천452mm인데 BMW도 비슷한 4천805×1천800×1천445mm이다. 그런데 볼보 뉴 S80은 4천830×1천835×1천450mm이니 차 모습에 넉넉함이 보인다. 배기량은 벤츠 E320과 BMW 530이 3.2X, 3.0X이고 볼보 S80은 3.0X로 비등하지만 엔진출력이 다르다. 벤츠는 224마력이고 BMW는 193마력인데 비해 S80은 272마력이니 무려 50∼80마력 차이가 난다. 이것만으로도 볼보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 시속 250km로 달릴 만한 도로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저력을 가진 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기분만으로도 상당한 우월감을 느낄 수가 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차를 굴리기 시작할 때의 감각이 일품이다. 운전대를 잡은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방음장치와 함께 그냥 소리 없이 나를 떠받쳐 모시는 기분이다. 게다가 좌석 두께도 상당히 두터워져 유럽차를 굴릴 때, 울퉁불퉁한 노면을 지날 때면 엉덩이에 느껴지는 진동도 이 볼보에서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더욱이 볼보의 최상급 차답게 스티어링 휠과 도어 옆에 달린 창문 전동개폐장치와 콘솔을 끼고 장식된 호두나무 색깔이 아주 짙은 갈색이어서 장식효과뿐만 아니라 아주 고급차라는 인상을 준다. 매끈한 스타일과 엔진이 조화 이루고 소리없이 떠가는 듯한 승차감이 일품 이 차의 고마운 특징은 운전자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눈앞의 계기판 디자인에서부터 시작된다. 크고 밝게 밝힌 원형 속도계와 타코미터의 둘레를 넓은 밴드로 둘렀다는 점이 돋보인다. 딴 차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붉은 바늘이 아주 선명하게 움직이는 것이 마치 우주선을 조종하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콘솔 중앙에 잘 정돈되어 장치된 편의시설 가운데서 실내온도를 좌석 좌우 독립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한 것도 장점이다. 앞창 유리 밑을 길게 뻗은 패널 한 가운데에 낯선 것이 하나 박혀 있는데, 스위치를 누르니 점잖게 내비게이션 스크린이 위로 튀어 오른다. 이것은 TV겸용으로 차가 정지하고 있을 때만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되어 있고, 차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길잡이 지도가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이용하여 방영되면서 운전자를 편히 모신다. 내장되어 있는 지도 속의 교통정보는 1주일 전의 시설물 내용까지 담은 것으로 자유로를 통하여 시승장으로 달리는 동안 최근에 새로 장치된 속도감시 카메라의 위치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카메라 500m 앞까지 접근하자 “앞에 카메라가 있으니 속도를 줄이십시오” 하고 예쁜 여자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나는 아주 촌놈같이 탄복했다. 주요 시가지는 입체적으로 건물과 시설물이 세워져 있는 화면으로 비춰주니 너무나도 편리하다. 이 차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서스펜션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앞서 지적한대로 완전방음장치가 되어 있어서 차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가운데, 두터운 좌석이 탄탄하게 밑을 받쳐준다(미국차의 좌석은 엉덩이가 빠지는데). 게다가 서스펜션이 안락하고 편안해서, 어떤 상태의 노면을 지나가도 요동 없이 그대로 승차감을 유지해주었다. 다시 말해 운전자와 동승자가 함께 이 차를 타고 있는 기분은 마치 가정에서 소파에 앉은 그대로 이동하는 느낌이란 말이다. 진동 적고 접지감각 뛰어나 불안감 없어 제논 헤드램프와 충격흡수장치도 돋보여 동행한 기자가 나한테 “이 차의 인상을 단 한마디로 표현한다면……?”하고 질문하길래, 나는 서슴지 않고 “우수한 서스펜션이 받쳐주는 최고의 승차감”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차를 모는데 최고시속 200km, 250km 하는 것은 한국도로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순항속도로 달릴 때, 차에 탄 사람에게 주는 쾌적한 승차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차를 굴릴 때의 가속감각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추월할 때, 가능한 속도를 빨리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차는 0→시속 100km를 7.2초로 가속한다. 이 숫자는 스포츠카 수준이다. 실제로 가속페달을 밟아 보니 저력 있는 엔진이 그리 큰소리도 내지 않고 원하는 속도를 즉시 뽑아내준다. 스티어링 휠의 감각도 좋다. 고속으로 달릴 때나 저속으로 달릴 때나 휠의 파워 배분이 일정하여 제아무리 초보자라 해도 불안한 감을 받지 않을 것이다. 직진성도 그렇고 타이어의 접지감각도 아주 적절하다. 진동에 강한 차라고 볼보의 특징을 이야기했지만 큰 장애물이나 요철구간을 지날 때도 차의 모든 부분에서 건들거리는 잡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볼보의 생명은 또 하나, 딴 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최고로 견고한 차체구조다. 견고함은 곧 충돌사고 때의 안전성과 직결된다. 구석구석 차 앞면의 범퍼에서 시작하여 엔진 뚜껑, 루프, 도어, 차체의 바닥 그리고 뒤 범퍼에 이르기까지 12개 장소에 보강장치가 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앞좌석에는 차가 뒤로부터 추돌 당했을 때, 운전자의 목이 다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른바 WHIP (Whiplash Protection System)이라는 장치가 마련되어, 등받이가 충격을 크게 흡수해준다. 그리고 충돌사고의 25%는 측면에서 이뤄지는데, 여기에 SIPS(Side-Impact Protection System)라고 부르는 보강된 강판에다가 커튼식 사이드 에어백이 내장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앞면의 운전대와 조수대에는 큰 에어백이 당연히 마련되어 있다. 안전운전을 위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야간 운전 때 길 앞을 비춰주는 헤드라이트일 것이다. 90년대의 볼보는 헤드라이트가 가운데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비슷한 크기의 길고 납작한 4각형 유리판 속에 내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새로 나온 이 모델의 라이트는 멋있는 곡선을 그리며 구부러진 유리판 속에 바이제논 헤드램프가 방향지시등과 함께 들어있다. 보기만 해도 다이내믹한데 앞길을 로빔과 하이빔으로 도로의 조건에 상관없이 고르게 비쳐준다. 그리고 그라운드 라이트가 내장된 사이드미러와 함께 접근 또는 주차 때 주위를 환하게 비춰주기 때문에 캄캄한 밤에 차에서 나올 때 발을 헛디딜 위험이 없다. 이 장치는 특히 노약자에게 크게 도움될 것이다. 이밖에 자동차의 보안을 위해서 도어, 후드 및 트렁크에 감지기가 달려 있어 누군가가 차에 접근하면 경보가 울린다. 운전할 때나 정차하고 있을 때 비상사태가 일어나 구원을 요청해야 할 때 이 차 리모컨의 패닉(panic)버튼을 누르면 경보음이 발생한다. 정차하고 있을 때 괴한이 습격해오면 이것으로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다. 부녀자에게는 아주 소중한 장치가 되겠다. 요사이 건강문제도 하나의 화제인데, 지면의 오존은 인간에게 해롭다. 차의 에어컨을 돌려 실내 냉방을 하려고 할 때 볼보는 라디에이터에 프렘에어(PremAir)로 특수 코팅한 것이 있어 차 안으로 들어오는 오존의 75%를 신선한 산소로 변환시켜 준다. 이 차는 미끄러운 커브길과 산길을 달릴 때, 물론 ABS도 갖추고 있지만 여기에다가 스핀방지와 미끄럼방지 시스템(STC와 DSTC) 등도 마련되어 있어 바퀴를 도로 위에 ‘꽉’ 붙잡아 준다. 돈 값 이상의 기능을 듬뿍 담고 있는 볼보 뉴 S80이지만 나는 이 차의 절묘한 스타일에 오히려 박수를 한 번 더 보내고 싶다. 볼보 뉴 S80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830×1835×1450mm 휠베이스 2790mm 트레드 앞/뒤 1580/1560mm 무게 1670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직렬 6기통 트윈터보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1.0×90.0mm 배기량 2922cc 압축비 8.5 최고출력 272마력/5400rpm 최대토크 38.8kg·m/1800~50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80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4단 기어비 ①/②/③ 2.920/1.570/1.000 ④/⑤/ⓡ 0.700/ㅡ/2.380 최종감속비 3.29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모두 V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25/50 R17 성능 최고시속 250km 0→시속 100km 가속 7.2초 시가지 주행연비 8.5km/ℓ 값 8,470만 원
로버 ROVER75 고풍스런 색채 짙은 진짜 영국차.. 2003-10-15
영국 자동차 메이커로는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로버와 랜드로버, MG, 재규어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메이커는 80∼90년대 치열한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모두 해외에 팔렸다. 그래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에는 진짜 영국 메이커가 단 하나도 없었다. 이들 가운데 영국의 품안에 들어온 메이커가 있으니 바로 로버와 MG다. BMW의 기술과 자본으로 98년에 데뷔 크롬장식 많이 써 고급차 분위기 물씬 사실 로버처럼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메이커도 그리 많지 않다. 1800년대 말 자전거회사로 출발한 로버는 1904년 처음 자동차분야에 뛰어들어 대중차를 주로 만들었고 50년대부터 고급차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회사 경영이 어려워진 로버는 67년 트럭 메이커인 레일랜드에 인수되었고 이후 여러 번 회사의 주인이 바뀌다가 94년 급기야 독일 메이커인 BMW에 팔렸다. 제정상태가 나빠진 로버를 사들인 BMW는 로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4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그러나 로버가 99년 여전히 1조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자, BMW는 랜드로버를 따로 떼어내 포드에 팔고 2000년에는 미니를 제외한 로버를 영국 벤처캐피탈회사인 피닉스 컨소시엄에 넘겼다. 로버의 생산설비와 MG의 브랜드 사용권을 사들인 피닉스 컨소시엄은 곧바로 회사 이름을 MG 로버로 바꾸고 일반 승용차는 로버, 로버의 고성능 모델은 MG의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MG 로버는 영국에 기반을 둔 하나뿐인 영국 메이커로 남아, 현재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모델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로버 75는 BMW가 로버를 인수한 뒤 당시 로버의 기함이던 800의 후속모델로 개발한 차다. 로버 800은 88년 혼다와 기술제휴해 선보인 로버의 기함으로, 최고급 모델에는 혼다의 V6 엔진을 얹었다. 엄청난 자금과 BMW의 기술이 동원된 로버의 새로운 기함 75는 BMW가 로버를 인수한 지 4년 뒤인 98년 10월 영국 버밍엄의 브리티시 모터쇼에서 데뷔했다. 당시 BMW가 야심만만하게 선보인 로버 75는 고전적인 스타일에 BMW의 신기술을 듬뿍 담고 있었다.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혹독한 테스트를 거친 결과 구형 BMW 5시리즈보다 섀시 강성이 두 배나 강해졌을 정도다. 엔진은 1.8X DOHC(120마력), V6 2.0X DOHC(150마력), V6 2.5X DOHC(177마력) 휘발유와 2.0X 115마력 커먼레일 디젤을 얹고 트랜스미션은 수동 5단과 자동 5단 두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V6 2.5X 엔진을 얹은 로버 75의 최고급 모델을 한국에서 만났다. 지난 2001년 국내의 한 병행수입업체가 로버 75를 수입한 적이 있는데, 그때 들어온 두 대 가운데 하나다. 로버 75의 첫인상은 사납다. 보네트 라인이 둥근 헤드램프 위쪽을 싹둑 잘라버리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찌푸린 듯한 얼굴은 이미 25와 45까지 함께 쓰는 로버의 패밀리룩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로버 75의 인상은 25, 45보다 더 매섭다. 얼굴은 차갑지만 복고 디자인에 컨셉트를 맞춰 개발한 로버 75의 스타일은 상당히 부드럽고 고풍스럽다. 특히 로버 75는 ‘고급차=크롬을 많이 쓴 차’란 등식을 가장 잘 실천한 모범생이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앞뒤 범퍼, 윈도 주변은 물론이고 웨이스트라인과 로커패널, 도어 손잡이, 트렁크리드의 번호판 주변에도 크롬몰딩을 둘러놓았다. 심지어는 사이드 미러 커버까지 헌병들의 헬멧처럼 반짝거리는 크롬으로 뒤덮여 있다. 국산차 가운데 현대 뉴 그랜저 XG도 크롬 장식에 관해서라면 결코 뒤지지 않는데, 로버 75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테일램프 모양은 언뜻 보면 2004년형 뉴 그랜저 XG와 비슷하지만 트렁크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보디라인은 재규어를 닮았다. 영국의 설룬을 연상시킬 만큼 고급스러운 실내에서는 재규어 뉴 S타입과 닯은 센터 페시아를 비롯한 대시보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98년 브리티시 모터쇼에서 로버 75와 함께 선보였을 당시 S타입의 대시보드 디자인은 로버 75와 분명 달랐다. 그러나 지난해 초에 나온 뉴 S타입의 대시보드는 로버 75와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면 뉴 S타입이 로버 75를 표절한 것일까? 표절 시비를 운운하기 전에, 먼저 로버 75의 실내를 구석구석 살펴보자. 대시보드 윤곽이나 도어 트림 디자인 등에서 오히려 구형 재규어 XJ시리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로버 75와 재규어 S타입의 비슷한 인테리어는 ‘영국풍’이란 한 단어로 묶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진짜 나무로 만든 우드그레인을 두른 부드러운 곡선 모양의 대시보드는 분명 재규어 뉴 S타입의 그것과 닮았다. 고급 설룬답게 고풍스런 실내 돋보여 성능 뒷받침되는 진짜 영국차의 매력 차체 크기는 현대 뉴 EF 쏘나타와 비슷하지만 실내 크기는 쏘나타보다 조금 작은 듯하다. 그러나 도어트림과 앞좌석 뒷부분을 한눈에 봐도 움푹 들어갔을 정도로 파놓아 실제 공간은 그리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버 75의 헤드램프와 사이드 미러에서 본 타원형 모양이 실내 곳곳에 쓰인 것이 이채롭다. 송풍구와 계기판, 센터 페시아의 각종 스위치, 도어 핸들, 선바이저 안의 화장거울이나 스티어링 휠에 달린 클랙슨 스위치, 실내등이 모두 타원이다. 누가 보더라도 실내 디자인의 주제가 ‘타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크롬장식 또한 계기판이나 각종 스위치 부근, 도어 손잡이 등에 어김없이 쓰였다. 예전에 기아가 크레도스와 카니발에 얹기 위한 V6 엔진을 개발할 때 로버와 손잡았던 일이 있다. 당시 혼다 엔진을 쓰던 로버는 자체 기술로 V6 엔진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꼈고 기아 역시 V6 엔진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이때 함께 개발한 V6 2.5X DOHC 엔진을 로버는 기함인 75에 얹었고 기아는 카니발에 얹었다. 한편 이 엔진은 랜드로버 프리랜더 2.5에도 얹힌다. 아이들링 때의 엔진은 무척 부드럽고, 차체 곳곳에 덧댄 두툼한 흡음재 덕분에 실내 정숙성은 아주 만족스럽다. 액셀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은 꽤 무거운 편. 최고출력 177마력/6천500rpm, 최대토크 24.4kg·m/4천rpm의 성능을 내는 로버 75의 엔진은 초기 가속력이 조금 약하지만 rpm을 올리면 곧 진득한 힘을 내기 시작한다. 하체에서 받는 느낌은 탄탄하다. 개발 당시 로버 75의 섀시 강성은 이전 모델인 로버 600보다 2.5배나 강했다. 고장력 강판의 사용률도 40%가 넘는다. 앞 스트럿, 뒤는 ‘Z액슬’이라 불리는 BMW의 멀티링크를 개량해 얹은 서스펜션 덕분에 웬만한 코너링에서도 앞바퀴굴림 방식의 로버 75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주행감각은 독일차와 비교하더라도 결코 뒤지지 않지만 TCS의 세팅이 민감해 운전에 개입하는 빈도수가 많은 것이 조금 거슬린다. 시승차의 오너가 동승한 탓에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키트에서 가다듬은 로버 75의 동력성능을 마음껏 테스트해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어쩌면 부드러운 V6 2.5X 엔진을 얹은 로버 75를 과격하게 테스트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지 모른다. 로버의 모든 차들은 MG브랜드로 고성능 버전이 따로 나오기 때문이다. 로버 75를 바탕으로 1.8X 터보 160마력부터 V6 2.5X 190마력 엔진을 얹은 MG ZT가 나오고, 이것도 모자라 V8 4.6X 500마력 엔진을 얹은 MG ZT X파워 500까지 있다. MG ZT X파워 500은 최고시속 306km, 0→시속 60마일(약 97km) 가속 4.5초의 수퍼카급 성능을 낸다. 이 같은 고성능 버전의 토대가 된 로버 75의 기본기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MG 로버는 현재 고성능 메이커로 도약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영국의 유일한 자동차 메이커인 MG 로버에서 생산하는 로버 75는 분명 영국차가 아니면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또한 로버 75는 좋든 싫든 독일 메이커의 탄탄한 기술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진짜 영국차의 체취와 독일차에 버금가는 성능. 이쯤 되면 로버 75의 매력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로버 75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750×1780×1425mm 휠베이스 2745mm 트레드 앞/뒤 1505/1505mm 무게 1445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V6 DOHC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0.0×82.8mm 배기량 2497cc 압축비 10.5 최고출력 177마력/6500rpm 최대토크 24.4kg·m/40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65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470/1.950/1.250 ④/⑤/ⓡ 0.850/0.690/2.700 최종감속비 3.89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05/65 R15 성능 최고시속 215km 0→시속 100km 가속 9.5초 시가지 주행연비 ㅡ 값 ㅡ
도요타의 저력, 본고장에서 확인하다 ‘도요타 웨이’.. 2003-11-28
바람을 가르는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 잔뜩 찌푸린 날씨는 부푼 기대로 밤잠을 설친 기자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러나 2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일본 나고야의 햇살은 눈부실 만큼 따사로웠다. 4박5일간의 일본 도요타 방문&시승행사는 나고야에서 사업현황과 도요타 하이브리드 시스템(THS) 설명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홋카이도와 삿포로를 거쳐 시베츠에서 뉴 LS430과 ES330 시승행사에 참가한 후 마지막날 도요타 메가웹을 방문하는 일정이다. 차·환경·사람 조화로 시너지효과 노려 세계 처음으로 하이브리드카 양산에 성공 첫날 버스를 타고 20분쯤 달려 도요타 본사와 기술연구소, 공장 등이 모여 있는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도착했다. 여름 햇살을 등지고 서있는 도요타 본사의 모습이 세계 3대 자동차메이커의 본부답게 활기차 보였다. 도요타 회관에서 곧바로 사업현황과 THS 프리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아시아부의 시마다 노리히코 실장이 진행을 맡았고 아라이 마사유키 부장과 오기소 이치로 한국도요타 사장, 우치야마다 다케시 전무, 다까아키 마츠모토 관장이 참석했다. 첫 발표자로 나선 마사유키 아라이 부장은 도요타의 럭셔리 디비전인 렉서스에 대한 언급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렉서스에게 아시아는 중요한 시장이며, 특히 한국 시장은 진출한 지 2년밖에 안되었지만 아시아 판매의 35%를 차지하며 세계 7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기간 성장으로는 최고수준이다. 뉴 LS430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선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시장의 잠재가능성과 뉴 LS430 판매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이어 마츠모토 관장의 도요타 현황 발표가 이어졌다. 도요타는 1937년 출범해 현재 자본금 3천970억 엔(약4조772억 원), 연매출 15조5천억 엔(약 159조 원), 영업이익 1조3천억 엔(약 13조 엔)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3대 자동차메이커의 하나로 도요타, 렉서스, 다이하쓰, 히노 등의 디비전이 있고 해마다 616만여 대의 차를 판매한다.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일본은 물론 해외 26개국에 45개의 공장을 마련했고 종업원 수는 26만여 명에 이른다. 소형차부터 트럭, 버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종이 생산되고 판매순위는 일본,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오세아니아 순이다. 도요타는 사람과 환경, 자동차의 조화로 시너지 효과를 추구한다. 환경친화적인 차세대기술을 개발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혁신적인 제조방법을 고안하는가 하면 현지생산을 통해 세계화를 앞당기는 것이다. 이 가운데 환경친화적인 차세대 기술개발을 위한 THS(도요타 하이브리드 시스템)는 도요타가 거둔 가장 놀라운 성과의 하나다. 이 기술은 ‘가장 진화된 하이브리드카’로 불리는 도요타의 프리우스에 쓰이고 있다. 대부분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직렬형(시리즈 방식)과 병렬형(패러럴 방식)으로 나뉘는 반면 THS는 각각의 장점만 모아 만들었다. 플라네터리(유성) 기어를 쓴 무단변속 시스템으로, 구동용과 발전용의 분배비율을 조절해 고효율을 이끌어내는 것이 핵심기술의 하나다. 예를 들어 출발할 때는 병렬형처럼 배터리를 이용해 시동을 건다. 고속이나 정상 주행(시속 60km) 때는 엔진출력을 구동력에 쓰고 그 이상의 파워가 필요하면 배터리에서 보조 동력을 지원 받는다. 이로 인해 고효율 저배기가스가 실현되는 것이다. 전력은 필요에 따라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도 쓰인다. 브레이크 시스템도 돋보인다. 주행 중 속도가 느려지면 발생하는 발전저항은 브레이크 동력으로 쓰이고, 브레이크 마찰열은 회생브레이크에 의해 전기에너지로 바뀌어 배터리에 저장된다. 이 밖에도 차가 멈춰서면 엔진이 자동으로 꺼져 에너지 소모를 줄여준다. 도요타가 1997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양산화에 성공한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는 지금까지 세계 21개국에서 12만 대 이상 팔렸고, 하이브리드카 시장 점유율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연비도 휘발유차가 10km/X 내외인데 비해 프리우스는 22.1km/X에 이른다. 배기가스도 이미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SLEV기준을 통과했다. 이산화탄소의 배출량 역시 발진할 때는 휘발유차보다 약간 높지만 이후부터는 훨씬 적다. 프리우스 이외에도 도요타는 에스티마, 크라운 마일드 하이브리드, 알파드 하이브리드 등으로 하이브리드카 차종을 늘려 가고 있다. 올 가을에는 지난 4월 뉴욕 오토쇼에서 선보였던 뉴 프리우스를 양산차로 내놓을 예정이다. 뉴 프리우스는 25.1km/X의 연비에 고성능 모터를 얹어 111마력의 힘을 내고 0→시속 100km 가속도 10.9초로 빠른 도요타의 야심작이다. 환경과 자동차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할 차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프리젠테이션 뒤에는 도요타 회관을 둘러보았다. 약 1시간의 짧은 견학이었지만 도요타 프리우스와 전기자동차 RZV4 EV, e-콤, 퓨어셀 자동차, 레이싱카, 양산차 등을 볼 수 있었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자동차 제조과정을 대형 스크린으로 살펴볼 수 있는 시설(버추얼 팩토리)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배기량 300cc 키운 ES330, 스타일은 그대로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시속 200km 넘게 달려 이번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뉴 LS430과 ES330의 시승회는 일본 홋카이도 나요로 시베츠에 자리한 도요타 푸루빙 그라운드에서 열렸다. 모두 새차발표를 앞두고 국내에 들어올 모델이어서 운전석은 일본 현지 차와 달리 왼쪽에 자리해 있다. 시승에 앞서 헬멧을 쓰고 도요타 테스트 드라이버와 함께 코스를 돌아보는 등 연습시간을 가진 뒤 본격 시승에 들어갔다. 먼저 ES330에 올랐다. 시승을 옆에서 지켜보던 ES330의 치프 엔지니어 히라타 히로유키 씨가 동승을 자원했다. 뒤늦게 합류한 그에게 “겉으로 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네요”하고 말을 건넸더니 “차체는 똑같지만 엔진 출력이 높아져 훨씬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가속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시베츠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직접 테스트를 했을 때 시속 200km 이상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는 달리기 성능을 발휘했다”고 대답한다. 제원상으로도 ES330은 V6 3.0X 엔진 대신 V6 3.3X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이 210마력/5천800rpm에서 228마력/5천600rpm, 최대토크가 30.4kg·m/4천400rpm에서 33.2kg·m/3천600rpm으로 올랐다. 엔진 배기량이 커져 힘이 좋아졌지만 무게에는 변함이 없어 9.3km/X에서 10.2km/X로 연비가 개선되었다. 경쟁 모델 가운데는 유일하게 공인연비가 1등급이다. 프루빙 그라운드에서의 시승은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ES330의 잠을 깨웠다. 잔잔한 시동음이 들리더니 아이들링 상태에서 또다시 고요해진다. 액셀 페달을 밟아 테스트 로드로 진입해 시속 120km에 이르렀는데도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속력을 조금 더 높여 직진 도로에 접어들자 속도계 눈금이 프루빙 그라운드의 제한속도인 시속 180km를 훌쩍 넘어 버렸다. 규정 속도를 지키기 위해 브레이크에 발을 가져가려는데 히라타 씨가 “밟아요, 밟아!”하고 가속을 부추긴다. ES330의 성능을 직접 확인시켜 주고픈 눈치다. 이를 놓칠세라 엑셀 페달을 힘껏 밟았더니 차는 시속 200km를 넘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이전 모델과 비교했을 때 순간 가속력이 기대 이상이다. 매끈한 도로에서 표면이 거친 시멘트 바닥으로 진입하자 히라타 씨가 “서스펜션을 노멀에서 스포츠 모드로 바꿔보라”고 귀띔한다. 즉시 서스펜션 설정을 바꿨더니 안락하게만 느껴졌던 ES330이 한결 야무지고 단단하게 요철을 걸러나간다. 차선을 바꿔 추월가속을 테스트할 때도 기어 모드를 ‘D’에서 ‘S’로 바꾸고 레버를 3단으로 내렸더니 넘쳐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기분이 된다. 그러나 고회전에서도 엔진음이 너무 조용해 ES330의 달리기 성능이 감각적으로는 잘 와 닿지 않았다. 뉴 LS430, 시퀀셜 6단 기어 쓴 첫 렉서스 쇼크 업소버·서스펜션 바꿔 주행감 개선 ES330에 이어 마이너체인지를 거친 3세대 모델 뉴 LS430에 옮겨 탔다. ES330이 배기량에만 변화를 줬다면 뉴 LS430은 ‘감성’과 ‘진보’란 컨셉트로 겉모습과 동력성능에 차별화를 꾀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앞모습. 헤드램프가 좀더 날카로운 인상이고, 옆으로 키운 라디에이터 그릴은 낮아진 보네트 라인과 아우러져 위풍당당해 보인다. 안개등과 공기흡입구 역시 스포티하게 다듬고, 방향지시등을 클리어램프로 바꿔 샤프하면서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센터페시아는 버튼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쓰기 편하다. 대신 조금 심심한 느낌.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마크 레빈슨 오디오와 스마트키로 지울 수 있다. 몸에 지니고만 있으면 키를 꽂지 않아도 문을 열 수 있고, 손으로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 수 있는 스마트키는 예나 지금이나 돋보이는 편의장비다. 뒷좌석은 차체 길이가 20mm 길어져 한결 여유 있을 뿐만 아니라 냉난방 시트, 독서등, 화장거울 등을 갖춰 완벽한 쉼터를 구현했다. 소파처럼 편안한 가죽시트,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안마기, 냉온장고, 스위치가 모여있는 암레스트 등은 예전 그대로다. 뉴 LS430은 첨단·안전장비로 스티어링을 돌리는 방향에 따라 헤드램프 각도가 조절되는 AFS (Adaptive Front Headlight System), 레이더로 사고를 미리 감지해 안전장치를 작동시키는 프리 크래시 세이프티 시스템(Pre Crash Safety System), 운전석 무릎에어백 등을 새로 더했다. 그러나 국내 들여오는 모델은 법규 때문에 운전석 무릎 에어백만 달려 있다. 호흡을 가다듬고 렉서스에서 처음으로 얹은 아이싱 AW제 6단 자동변속기의 기어를 넣었다. 액셀 페달을 밟는 순간 뉴 LS430이 튀어나간다. 대형세단인데도 순간 가속력이 스포츠카 못지 않게 파워풀하다. 프루빙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LS430의 진가는 확연히 드러났다. 최대토크가 중저속 영역인 3천500rpm에서 터져 액셀 페달에 발을 갖다 대기가 무섭게 가속이 붙는다. 그러나 흡음·방음재로 얼마나 꼼꼼히 감쌌는지 바람소리나 잡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테스트 로드까지 너무 매끄럽게 닦여있어서 속도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계기판을 보니 시속 200km가 넘었다. 그러나 스피드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속력을 내고 싶어 발끝이 간질간질하다. 뉴 LS430의 제원상 0→시속 100km 가속은 6.3초. 대형세단으로 최적의 달리기 성능, 운전재미를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매끄러운 주행실력이다. 뱅크에 들어서서는 시속 160km로 액셀 페달을 지긋이 밟아 접지력을 유지하면서 돌아나갔다. 하체가 이전보다 탄탄해진데다 모노 튜브 타입의 쇼크 업소버가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과 잘 아우러져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차체를 잘 이끈다. 개발 컨셉트대로 주행감각이 조금 스포티하고 다이내믹해진 셈이다. 그러나 승차감은 여전히 안락하고 편하다. 뉴 LS430과 ES330의 시승을 마친 뒤 기자들이 가장 궁금해 한 것은 ‘렉서스만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너무 완벽해서, 혹은 누가 봐도 좋게만 만들어서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독특한 색깔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요타 기술진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뉴 LS430에 ‘감성적인 변화’를 주었다고 했지만 그 변화의 폭은 렉서스의 틀을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도요타 웨이’에 충실한 렉서스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도만을 걷는다. 개발과정에서도 가속력이 뛰어나면서도 조용하고, 핸들링이 날카로우면서도 안락하고, 한정된 차체 크기에서 최대의 실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상반된 조건들을 모두 양립시키려니 개성이 흐려진다는 지적도 받지만 ‘도요타 웨이’의 첫걸음은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고객만족’에서 시작된다. 완벽한 품질과 뛰어난 성능, 우수한 내구성은 렉서스를 신뢰하는 고객에 대한 그들의 보답이다. J.D. 파워& IQS(Associates Initial Quality Study)가 실시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매년 상위권에 오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요타의 철학은 이미 렉서스를 선택한 고객들에게 전해진 듯하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도요타 웨이’. 그 정신이 렉서스를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발돋움시킨 원동력이다.
VOLVO V70 2.4 볼보 왜건 50년 노하우를.. 2003-09-22
첫 번째 질문.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자신들만의 이미지를 가장 충실히 다듬어온 메이커는 어디일까? 두 번째 질문.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 가운데 ‘안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메이커는 무엇인가. 이 두 가지 질문의 정답은 볼보다. 물론 볼보의 안전성은 대단하지만 기술적으로 따져볼 때 반드시 볼보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로 손꼽을 이유도, 타당성도 크지 않다. 프리세이프 시스템을 선보인 벤츠를 비롯해 대부분의 세계적인 메이커들이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볼보를 ‘세계에서 가장 단단하고 안전한 차’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7대의 144를 쌓아올린 1970년대 광고사진 한 장은 볼보의 모든 이미지를 상징한다. 66년 데뷔한 144는 네 바퀴 디스크 브레이크와 충격흡수용 크럼플 존 등 종합적 안전 개념을 처음 도입한 차였다. 하지만 144의 안전도를 말하려고 이런 내용을 구구절절 읊을 필요는 없다. 이 차를 탑처럼 쌓아올린 광고사진만 보여주면 모든 설명은 끝. 볼보가 브랜드 이미지를 잘 만들어온 메이커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슬리지 않는 수수한 스타일링 98년 등장한 새 기함 S80은 예전 볼보의 투박한 박스형 이미지를 깨끗이 씻어놓았다. 북유럽의 악천후 속에서 오랜 세월 다듬어온 성능도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아무리 볼보 세단이 ‘쿨’해져도 고향인 유럽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2001년 기준으로 유럽에서 팔린 볼보 승용차의 88%가 왜건이었다. ‘세계 최고의 왜건 메이커’ 볼보의 왜건 만들기 노하우는 이미 범접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른 느낌. 최근 국내에 선보인 볼보 첫 SUV XC90의 인테리어 역시 오랜 세월 왜건을 만들며 다듬어온 볼보만의 손재주로 가득했다. 왜건 전문가 볼보가 올해로 왜건 만들기 반세기를 맞았다. 50년 전 ‘콤비’(Kombi)라는 이름으로 불린 볼보 왜건은 발빠른 아이디어로 생활 속 실용성을 든든히 받쳐온 볼보의 성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차종. 50회 생일을 맞아 ‘볼보 콤비’의 혈통을 가장 잘 이어받은 V70 2.4를 만났다. V70은 90년대 볼보의 대표 모델 850 왜건의 뒤를 잇는 후계자. 부드럽고 세련된 앞모습과 절대 변하지 않는 볼보 왜건 특유의 사이드라인을 조화롭게 섞어낸 작품이다. 왜건이라고 하면 대개 투박하리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지만 눈앞에 서 있는 V70은 오히려 시원하게 잘 빠진 인상을 준다. 호리호리한 패션모델이 아닌 당당한 체구의 농구선수에게서 느낄 수 있는 건강한 늘씬함, V70의 첫 인상이 바로 그랬다. 헤드램프와 특유의 라디에이터 그릴, 부드럽게 이어진 보네트 라인은 최근 볼보 승용 라인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스타일링. 근육질처럼 불룩 솟은 옆구리 라인을 따라 뒤쪽으로 가면 볼보 왜건만의 특징이 드러난다. 가장 큰 특징은 3장의 큼직한 통유리로 덮인 시원한 옆모습. 부엌칼로 싹둑 잘라놓은 듯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꽁무니도 특징적인 스타일을 그려낸다. 해치도어 양옆을 둘러싼 대형 테일램프가 유일한 ‘겉멋’으로 여겨질 만큼 V70의 스타일링은 무덤덤한 편. 그러나 국내 번호판 규격과 잘 맞지 않아 손가락 밀어 넣기가 쉽지 않은 해치도어 개폐 손잡이에 민감해질 정도로 V70의 겉모습에서 단점을 골라내기는 어려웠다. 인테리어 곳곳에 볼보 노하우 넘쳐 도어를 열면 겉모습을 능가하는 볼보 왜건의 장점들이 쏙쏙 보이기 시작한다. 대시보드와 운전석은 세단 그대로. 계기판 글자도, 센터페시아의 각종 계기류 조작 스위치들도 모두 큼직큼직해 쓰기에 더없이 편하다. ‘노인용 인테리어’라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어지간한 기능이 한눈에 들어오는 데다 조작도 쉽다. 높은 감성품질이 와 닿는 디자인. 왜건인지라 2열로 가면서 궁금증은 더해진다. 이미 지난 6월 XC90을 시승할 때 볼보의 인테리어 꾸미기 실력을 엿본 터. 기본적으로 거실 소파처럼 크고 편안한 시트는 시원시원한 센터페시아와 더불어 볼보 인테리어의 트레이드마크다. 2열 시트는 머리와 무릎공간 모두 부족함이 없을 정도. 시승차가 2002년형이라 2004년형에 더해진 부스터 쿠션(아이들을 태울 때 시트 밑바닥을 높일 수 있는 장치)이 없어 아쉬웠다. 센터콘솔 뒤쪽에 달린 쓰레기 봉지 고정용 고리와 넉넉한 크기의 앞뒤 컵홀더는 철저히 실용성에 바탕을 둔 개성적인 장비들. 볼보의 실력은 2열 시트 뒤 짐칸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풀플랫 기능을 갖춘 2열 시트는 수많은 미국 아줌마들이 자녀들을 볼보 왜건에 태우고 다니는 이유를 짐작케 할 만큼 조작하기 쉽다. 시트 바닥의 고리를 잡아당기면 엉덩이 닿는 부분이 빠져나와 운전석 등받이 뒤에 밀착된다. 등받이 헤드레스트도 옆의 작은 고리를 당기면 가볍게 앞으로 숙여진다. 이어 등받이 양옆 모서리의 레버를 누른 채 등받이를 앞으로 미는 것으로 접는 과정 끝. 아파트 거실처럼 완전평면을 이루는 드넓은 바닥은 SUV에서도 흔치않은 풀플랫의 진수를 보여준다. 2열 시트를 접어 만든 짐칸은 바닥 길이만 170cm를 넘어 화물용 밴이 부럽지 않을 뿐 아니라 야외로 나갔을 때 급한 대로 낮잠 한숨 잘 만한 간이침대 역할까지 해낸다. 짐칸 구석의 예비 전원은 볼보 왜건이기에 있어 마땅한 장비. 수직을 이룬 해치도어는 짐칸 맨 끝까지 짐을 꽉꽉 눌러 채울 수 있도록 한 볼보 왜건의 배려이자 전통이다. 패밀리 왜건의 진수 보인 꾸준한 달리기 무덤덤한 겉과 비범한 속을 고루 둘러보고 나서 직렬 5기통 2.4X DOHC 170마력 엔진을 흔들어 깨웠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시동음에서 길이 잘 든 차의 느낌이 전해온다. 5단 AT 레버를 D 레인지에 놓고 출발. 덩치에 비해 그리 무겁지 않은 1.5톤의 차체가 생각보다 가볍게 첫발을 내딛는다. 사뿐한 출발에 이어지는 가속성능도 괜찮은 편. 폭발적인 가속력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치고 올라가는 달리기가 잔재미를 준다. 시속 100km까지의 가속은 망설임 없이 단번에 해낸다. 제원상 V70의 0→시속 100km 가속성능은 9.9초. 몇 차례의 테스트에서도 그와 별 차이없는 성능을 보인다. 속도계 바늘은 시속 140km까지도 무난하게 올라간다. 그쯤에서 6천rpm까지 치솟던 rpm 게이지가 3천500rpm 부근까지 뚝 떨어지며 시프트 다운이 한 차례 이뤄지고 다시 이어지는 가속. 이때부터는 가속력이 눈에 띄게 둔해진다. 멎을 듯 멎을 듯 서서히 움직이는 속도계 바늘은 그러면서도 끝내 시속 195km를 넘어서는 저력을 보인다. 제원상 최고시속은 210km. 복잡한 일반도로임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달리기다. 짐칸을 고려해 댐핑 범위에 여유를 두어서인지 서스펜션은 무척 부드럽다. 급코너링에서는 제법 큰 롤링이 느껴지는 편. 그래도 차는 가야 할 코스를 근근히 물고 버틴다. 왜건치고는 차체 뒤쪽의 움직임이 안정적이다. 국내에 선보인 8가지 볼보 라인업 가운데 지난 7월까지 가장 많이 팔린 차는 S60 2.4와 S80 T6. 각각 판매대수 100대를 넘긴 이들은 모두 고급 세단이다. 세단은 국내 운전자들이 유난스레 집착하는 ‘대한민국 대표 세그먼트’. 반면 크로스컨트리(XC70)는 왜건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도 올 들어 7달 동안 51대나 팔리는 뜻밖의 활약을 보였다. 약 2천만 원의 값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성격이 비슷한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의 2배에 이르는 실적. 지금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왜건은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와 볼보 크로스컨트리, V40 T4, V70 2.4 등 네 가지뿐이다. 이들 가운데 세 가지가 볼보 왜건. 크로스오버 비클의 성격을 버무린 크로스컨트리와 달리 정통 왜건 스타일링을 간직한 V70과 V40의 국내 판매는 극도로 부진하다. 그래도 왜건 빠진 볼보는 생각할 수 없다. 50년을 앓아온 볼보의 왜건 중독은 국내 운전자들의 세단 집착증보다 훨씬 강하다. 시승 협조: 볼보자동차 코리아 ☎ (02)3781-3800 볼보 V70 2.4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710×1800×1490mm 휠베이스 2760mm 트레드 앞/뒤 1560/1560mm 무게 1530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직렬 5기통 DOHC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3.0×90.0mm 배기량 2435cc 압축비 10.3 최고출력 170마력/5900rpm 최대토크 23.5kg·m/45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68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070/1.770/1.190 ④/⑤/ⓡ 0.870/0.700/2.990 최종감속비 4.25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5도어 왜건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스트럿/트레일링암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05/50 R16 성능 최고시속 210km 0→시속 100km 가속 9.9초 시가지 주행연비 9.6km/ℓ 값 5,460만 원
Mercedes-Benz CLK320 Cabriolet.. 2003-09-19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알몸이듯 초창기 자동차의 모습 역시 오픈카였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뒤 벌거벗은 모습을 창피해하며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지만 자동차는 눈과 비, 바람으로부터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얹고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사계절 따뜻한 에덴동산이라면 모를까, 자동차가 달려야 하는 환경은 비 많은 영국과 폭설 내리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그리고 미국의 광활한 사막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승객을 지켜내기 위해 단단한 지붕으로 몸을 가다듬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 하지만 시원한 바람과 함께 도로를 질주하는 오픈 드라이빙은 어떤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누리고 싶은 마약과도 같은 쾌감이다. 자동차 초창기에는 그저 단순한 구조의 오픈카가 당연시되었지만 점차 ‘달리는 즐거움’을 위한 특별한 자동차로 자리잡았고 지금은 컨버터블, 카브리올레, 로드스터 혹은 스파이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안락함 갖춘 4인승 카브리올레 지금까지의 오픈카는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인 가시가 있는 장미였다. 지붕을 잘라낸 차체는 강성 확보를 위해 무거워지며 스포츠성은 오히려 떨어졌고 허술한 소프트톱은 대부분 비가 새 젖어드는 옷을 히터로 말리며 달려야 했다. 추운 겨울이면 실내에서도 두꺼운 방한복은 필수. 지붕을 닫고 아무리 세게 히터를 틀어도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이미 10년 전 빛 바랜 사진 속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적어도 기자가 경험한 최신 오픈카들은 이런 문제를 훌륭하게 뛰어넘고 있다. 그 리스트에 더해진 최신 모델이 바로 메르체데스 벤츠 CLK320 카브리올레다. CLK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6년 제네바 오토살롱. 3년 앞서 선보였던 컨셉트카 ‘쿠페 스터디’의 디자인과 C클래스 플랫폼을 활용해 탄생한 4인승 쿠페/컨버터블이었다. CLK는 E클래스를 통해 부활된 새로운 헤드램프 디자인과 다양한 편의장비를 자랑하며 지난해 풀 모델 체인지될 때까지 23만 대 정도 팔리는 인기를 누렸다. SLK와 CLK는 모두 C클래스 플랫폼과 구동계를 이용한 형제차지만 완전히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컴팩트한 2인승 차체에 전동 하드톱을 단 SLK가 스포츠카로 불리는 것과 달리 CLK는 4인승의 안락한 실내와 편의장비를 갖춰 장거리 여행 동반자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커진 덩치와 늘어난 무게 때문에 스포츠성은 반감되었지만 어느 한 부분 단점을 찾아내기 힘든 팔방미인이 된 것. 지난해 풀 모델 체인지된 신형은 모든 면에서 착실한 발전을 보여준다. 우선 구형 E클래스를 닮아 조금 둔탁했던 얼굴이 신형 E클래스의 변신을 따라 한결 세련되어졌다. 겹쳐진 2개의 타원 램프는 공기를 가르듯 날렵한 각도의 보네트라인으로 이어진다. 로드스터와 승용차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풍만한 곡선의 보디라인은 넓은 실내공간과 스포츠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독특한 형태의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와 컴팩트한 2도어 차체가 날렵하지만 리어 펜더 부근의 펑퍼짐한 라인 처리는 CLK 디자인이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점. 시승차는 아방가르드 패키지로 인테리어를 꾸몄다. 타원형으로 처리한 에어벤트나 대시보드의 미묘한 곡선이 구형에 비해 한층 세련되어 보인다. 촘촘한 망사 모양으로 차가운 느낌을 주는 알루미늄 그레인은 아방가르드의 가장 큰 특징. 4스포크 스티어링의 전화 스위치와 센터콘솔의 모빌 폰 홀더, 내비게이션을 선택할 수 없는 인포메이션 센터는 아쉬운 부분이다. 뒷좌석은 2명밖에 탈 수 없지만 C클래스 세단과 비교해도 그다지 옹색하지 않다. 더구나 뒷좌석 전용 에어벤트까지 갖추고 있으니 컨버터블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셈. 버튼 하나로 작동되는 지붕에서 소프트톱 스페셜리스트 카르만의 비범함이 느껴진다. 버튼 하나로 토너 커버가 열리면서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듯 순식간에 4인승 쿠페로 변신한다. 소프트톱은 생각보다 두껍고 탄탄할 뿐 아니라 창문과의 이음새가 정교하다. 도어를 열면 옆 창문 2개가 약간 벌어졌다가 문이 닫힌 후 완전히 밀착된다. 좀더 완벽한 방수를 위한 섬세한 조치. 전복사고가 났을 때 튀어올라 승객을 보호하는 팝업식 롤바도 믿음직하다. 여유 있는 출력의 V6 3.2X 엔진 시승차는 V6 3.2X 엔진을 얹은 CLK320 카브리올레. 벤츠는 90년대 중반까지 BMW와 자존심 경쟁을 벌이며 거의 모든 엔진에 DOHC 헤드를 얹어 출력을 높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소모적인 경쟁에 대한 비판이 거세어지고 배기가스 규제가 심해지면서 벤츠는 DOHC를 과감히 버리고 SOHC 3밸브와 트윈 스파크 기술을 쓰게 된다. 그 시발점이 된 것이 바로 구형 CLK에 얹었던 V6 3.2X. 운전석에 올라 이 사연 깊은 엔진을 깨우기로 했다. 도어를 닫고 몸을 시트에 파묻자 전동식 가이드가 잡기 좋은 위치까지 안전벨트를 밀어내준다. 도어가 큰 대부분의 쿠페나 카브리올레는 벨트가 너무 뒤에 달려 몸을 완전히 비틀어야 잡을 수 있다. 시트는 쿠션이 단단한 편으로 좋은 자세를 강요하는 느낌. 평소 구부정한 허리를 쭉 펴고 등받이에 기대 벤츠가 제안하는 ‘올바른 운전자세’를 만들어본다. 시동을 걸자 나지막한 V6의 진동이 전해져온다. 저속에서의 스티어링 감각은 상당히 무거운 편. 지나칠 만큼 가벼웠던 E클래스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정통 스포츠 로드스터와는 거리가 있는, 안락함을 강조한 CLK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조금 이질적인 부분이다. 7년간 숙성된 V6 엔진은 5단 AT와 어울려 매끈한 달리기 성능을 이끈다. 아슬아슬하게 출력을 쥐어짜는 느낌의 200K와 달리 넉넉한 배기량에서 오는 여유 있는 토크가 초반 가속은 물론 시속 100km 이상의 추월가속 때도 위력을 발휘한다. 다만 너무 부드럽고 매끈하면서 조용한 엔진은 어디까지나 승용차 감각이다. 반응 빠른 변속기와 쓰기 편한 수동 모드는 순발력 넘치는 달리기를 한몫 거든다. 스포츠와 컴포트 모드에 따라 변속 타이밍을 다르게 조절한다. 하체는 벤츠다운 안정된 느낌으로 일관한다. 효과적으로 노면충격을 거르면서도 코너에서는 높은 그립을 유지하며 스티어링 움직임에 정확하게 반응한다. 고속 커브와 급차선 변경, 시속 70km에서의 급코너 모두에서 믿음직하다. 저속에서 급가속할 때 변속기에서 나는 ‘그륵륵’하는 소음이나 노면 굴곡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서스펜션, 실내에서 들리는 잡소리가 신경을 거스르지만 시승차만의 소홀한 관리문제가 아닐까 치부해본다. 뒷좌석에 다는 윈드 디플렉터는 조작이 간단한 편. 이것을 달면 뒷좌석에 사람을 태울 수 없지만 덕분에 시속 120km까지 실내로 들이치는 바람은 피할 수 있다. 머리 윗부분으로는 강한 공기 흐름을, 그 아래로는 산들거리는 에어컨 바람을 느끼며 즐기는 조용한 음악은 색다른 경험이다. CLK 카브리올레는 운전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너무 많은 것은 얻으려다 보니 어느 한 가지 매력을 완벽하게 추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소프트톱을 접어 바람과 함께 달리고, 닫으면 쿠페의 안락한 실내가 생긴다. 편의장비와 감성품질도 수준 높고 ‘벤츠표’ 달리기 성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오픈 드라이빙의 즐거움. 이것이 CLK 카브리올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벤츠 CLK320 카브리올레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638×1740×1413mm 휠베이스 2715mm 트레드 앞/뒤 1493/1474mm 무게 1530kg 승차정원 4명 엔진 형식 V6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9.9×84.0mm 배기량 3199cc 압축비 10.0 최고출력 218마력/5700rpm 최대토크 31.6kg·m/30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62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950/2.420/1.490 ④/⑤/ⓡ 1.000/0.830/3.150 최종감속비 3.450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2도어 컨버터블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3링크/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디스크 타이어 앞/뒤 205/55 R16, 225/50 R16 성능 최고시속 241km 0→시속 100km 가속 8.2초 시가지 주행연비 ㅡ 값 9,270만 원
베크 스파이더 50년 세월 뚫고 나타난 매혹적인 차.. 2003-09-15
젊은이의 우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임스 딘. 1955년 9월 30일 오후, 그는 할리우드를 떠나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영화 ‘에덴의 동쪽‘이란 단 한편의 영화로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던 그는 ‘자이언트’, ‘이유 없는 반항’ 등의 잇따른 성공작으로 미국은 물론 전세계 틴에이저들에게까지도 우상이 되어 있었다. 당시 연기와 자동차경주 두 가지에 푹 빠져 있던 제임스 딘은 운명의 그 날에도 다음날 있을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약 250마일(400km)의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가고 있었다. 지평선을 따라 멀리서 해가 지고 있을 무렵, 딘은 한적한 46번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바로 그때 턴업시드란 대학생이 탄 차가 41번과 46번 도로의 교차로 앞에 서 있었다. 턴업시드는 멀리서 희미하게 달려오는 조그만 차를 보았지만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좌회전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멀리 있던 차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려와 순식간에 턴업시드의 차에 내리꽂히고 만다. 조그만 차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졌고 그 차에 타고 있던 딘은 부서진 스티어링 칼럼에 그대로 꽂혀버렸다. 이렇게 한 시대의 우상은 그가 가장 아끼던 차 안에서 영화같이 생을 마감했다. 이때 제임스 딘의 나이는 스물 넷, 마지막 순간을 그와 함께 했던 차는 포르쉐 550 스파이더였다. 90대만 생산된 50년대 포르쉐 스포츠카 키트카 업체 베크의 레플리카로 부활해 포르쉐 550 스파이더는 포르쉐 중에서도 매우 독특하고 희귀한 모델이다. 1953년 파리 오토살롱에서 모습이 공개되었고 54년 밀레밀리아 경주에서 경주차로 공식 데뷔했다. 르망과 세브링, 밀레밀리아 등 여러 자동차경주를 휩쓸었던 포르쉐 550 스파이더는 당시 포르쉐 경주차의 대명사였다. 56년 개선된 550A 스파이더가 나왔고 57년 단종될 때까지 모두 90대가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개인의 손에 들어간 차는 78대에 불과하다. 550 스파이더는 몇 가지 타입으로 생산되었지만 제임스 딘이 탔던 1500RS가 가장 유명하다. 초창기 포르쉐는 많은 메커니즘을 폭스바겐에서 빌려왔는데, 550 스파이더 1500RS 역시 폭스바겐 비틀이 썼던 방식대로 엔진을 뒤에 얹고 뒷바퀴를 굴리는 RR타입이었다. 4기통 1.5X 110마력 엔진을 얹고 최고시속 200km, 0→시속 60마일(약 97km) 가속 8초의 성능을 냈다. 당시 경주차를 만들던 방식대로 2중 튜브로 된 스페이스 프레임을 써 무게가 600kg 정도로 가벼웠고 앞 48%, 뒤 52%의 뛰어난 무게배분을 자랑했다. 서스펜션 역시 폭스바겐 차처럼 앞 트레일링 암, 뒤 스윙 액슬 방식을 썼다. 베크 스파이더는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미국 베크가 재현한 레플리카다. 베크는 지난 82년 문을 연 키트카 전문 생산업체. 주로 포르쉐 레플리카를 내놓고 있으며 완성도가 뛰어나 미국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지난 85년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 가 제임스 딘 사망 30주년을 맞아 기념 기획을 했을 때도 시승차는 포르쉐 550 스파이더가 아니라 베크 스파이더였다. 베크 스파이더는 키트카 업체들이 즐겨 쓰는 방식(폭스바겐 비틀의 섀시와 엔진, 트랜스미션을 바탕으로 그럴듯한 보디를 씌우는 방식) 대신 진짜 튜브로 스페이스 프레임을 만들어 완성도를 높인 차다. 포르쉐 550 스파이더와의 차이점이라면 원형보다 두꺼운 튜브(3×0.125인치)를 쓴 것 정도가 눈에 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트레드는 52인치(약 1320mm)로 원형과 같으나 휠베이스가 3인치(약 7.6cm), 길이가 2인치(약 5cm) 늘어나 실내가 조금 넉넉해졌다. 서스펜션은 앞 트레일링 암, 뒤 스윙 액슬로 원형과 똑같다. 엔진은 브라질에서 들여온 다양한 배기량(1.6∼2.4X)의 폭스바겐 엔진 중 고객이 주문하는 것을 얹는다. 기본형인 베크 스파이더 1.6은 최고시속 179km, 0→시속 60마일(약 97km) 가속 11초의 성능을 낸다. 최고 모델인 2.4는 최고시속 140마일(약 225km), 0→시속 60마일 가속 5.5초의 날렵한 몸놀림을 자랑한다. 이밖에도 포르쉐 550 스파이더는 보디가 100% 수작업으로 만든 합금이지만 베크 스파이더는 합금과 파이버글라스를 함께 써서 무게를 낮췄다. 국내에도 베크 스파이더 한 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전북 전주를 찾았다. 오너는 클래식 카메라 전문사이트(www.buycamera.co.kr)를 운영하는 곽풍영 씨. 베크 스파이더 외에도 민간인에게 불하된 군용지프(K-111) 한 대를 더 갖고 있는 그는 특이한 차는 꼭 타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정열적인 카매니아였다. 멋진 50년대 경주차 스타일 자랑해 귓전에서 울리는 거친 숨결이 매력 전주에 있는 베크 스파이더는 오리지널 뺨칠 정도로 구분하기 힘들었고 새차처럼 깨끗했다.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50년 전에 생산되었던 차가 최근 정교하게 만들어진 레플리카보다 깨끗하기는 힘들 것 같다. 물론 복제품으로 진품의 가치를 논하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미술품이나 도자기같은 골동품이 아니라 복제의 대상이 자동차라면 이 모방품은 단순한 복제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말을 하고 싶다. 레플리카는 ‘모셔두어야’ 하는 오리지널과는 달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몰고 나갈 수 있는 것이 장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머니가 가벼운 ‘보통 사람’ 입장에서 내린 결론이지만……. 곡선이 넘실대는 베크 스파이더의 보디는 앞뒤가 묘한 대칭을 이룬다. 전통적인 포르쉐 스타일에 따라 얼굴은 헤드램프 부분이 볼록 솟아있는 모양이다. 뒷모습 역시 빵빵한 두 엉덩이(뒤 팬더)가 좌우로 볼록 솟아있다. 범퍼가 없는 매끈한 보디, 조그마한 테일램프, 앞 윈도 테두리에 두른 크롬과 크롬 휠 캡 등에서 50∼60년대 클래식 로드스터의 진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데뷔 당시에도 550 스파이더는 확실히 눈에 띄는 스타일이었음이 분명하다. 파이버글라스로 된 가벼운 앞 보네트를 들어내면 연료주입구와 워셔액 통 그리고 짐을 실을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 나오고, 한 귀퉁이에는 57번째 생산된 차라는 것을 알려주는 ‘057’이란 생산번호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 역시 파이버글라스로 만든 가벼운 엔진룸(뒤쪽)을 열면 스페이스 프레임이 그대로 드러난다. 스페이스 프레임이란 둥근 파이프를 용접해 골격을 만든 프레임으로, 550 스파이더가 나왔던 50∼60년대 경주차들이 주로 썼던 형태다. 프레임 위에는 폭스바겐제 1.6X 수평대향 엔진이 자리하고 있고 액슬 뒤에 자리한 기어박스도 눈에 띈다. 언뜻 보면 쇼크 업소버가 없는 듯 보이는 스윙 액슬 서스펜션은 요즘 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이다. 시동을 걸자 폭스바겐 특유의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이 거친 음을 내뱉기 시작한다. 같은 엔진을 얹었던 올드 비틀이 ‘소음’을 냈던 것과 달리, 50년대 스타일의 경주차에서 울려 퍼지는 공랭식 엔진의 하모니는 말 그대로 멋진 ‘사운드’다. 타고 내리기가 불편하지만 실내공간은 넉넉한 편. 시트가 바닥에 거의 붙어있기 때문에 시트에 앉으면 아스팔트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 자, 이제 달리기 위해 기어를 넣을 차례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기어 감각이 애매해 1단 기어를 찾기가 힘들다. 예전에 68년형 카르만 기아를 시승할 때에도 같은 문제로 고생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제임스 딘이 49년 전에 타고 달렸던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호기롭게 차에 올라서는, 기어조차 넣지 못해 당황하고 있다니……. 한참 식은땀을 흘린 다음 드디어 출발을 했다. 제임스 딘이 그랬던 것처럼 액셀 페달에 지긋이 힘을 주었다. 귀 뒷전에서 방방거리는 공랭식 엔진음은 머플러 소리로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매력적인 음색이다. 1.6X 엔진이라면 그리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600kg밖에 안 되는 가벼운 차체에 얹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마치 카트를 탈 때처럼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잠시 후에 일어날 일을 모른 채 달렸던 딘의 통쾌한 감정을 느껴보았다.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 2년 전 미국에서 열린 MPG 트랙 데이에 참가해 베크 550 스파이더를 실컷 몰아본 이가 있다. 그는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Ⅶ이나 혼다 S2000 등 여러 대의 스포티한 차들로 트랙을 달려보았다는데, 가장 재미있었던 차로 베크 스파이더를 꼽았다. 드리프트를 맘껏 할 수 있고 거친 주행감각에서 묘한 매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가 탔던 베크 스파이더는 160마력으로 튜닝된 2.4 모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기자가 시승한 1.6 스파이더도 경쾌한 주행성능과 그에 못지 않은 감성적인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만 그 친구처럼 트랙에서 맘껏 달려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시승차 협조: 곽풍영 ☎011-677-2683
오펠 스피드스터 순수 드라이빙 머신의 매력에 빠지다.. 2003-09-05
모든 것이 편리해지는 세상이다. 자동차 세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갈수록 첨단 전자장비가 늘어 운전자가 개입할 여지가 자꾸만 줄어든다. 고급차로 갈수록 사용하지 않는 기능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또한 멀지 않은 미래에는 운전자가 승용차 안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목적지까지 가는 지능형 교통시스템도 개발중인 현실이다. 그럼에도 순수하게 운전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차들이 만들어진다. 또 이런 차들은 자동차가 존재하는 한 끝없이 태어날 것이다. 달리기에 대한 열정 또한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만나는 오펠 스피드스터는 그래서 더욱 반가운 모델이다. 오펠 100주년 기념하는 경량 스포츠카 독자 설계, ABS와 운전석 에어백 갖춰 스피드스터는 오펠의 자동차 제조 100주년 기념 모델이다. 1999년의 제네바 오토살롱에서 컨셉트 모델이 발표되었고 영국 로터스 엔지니어링사의 협력을 얻어 개발이 진행되었다. 보디 구조는 로터스 엘리제와 같이 에폭시 수지 접착제를 사용한 알루미늄 프레임 위에 25매의 FRP 패널을 덮었다. 하지만 단순히 엘리제의 GM판 모델은 아니다. 엘리제와 공유부품은 전체의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스피드스터의 전용 설계다. 엔진과 트랜스미션도 GM 오리지널로 엘리제와는 다르다. 휠 베이스도 엘리제보다 30mm 긴 2천330mm이다. 전체적으로 엘리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오펠의 독자적인 보디 스타일을 완성하고 있다. ABS와 운전석 에어백이 갖춰지는 것도 엘리제와의 차이점. 다만 앞뒤 더블 위시본의 서스펜션 형식은 같다. 스피드스터는 오펠의 첫 양산 미드십 스포츠카로서 영국 런던 북동쪽에 위치하는 로터스에서 생산된다. 유럽에서는 2001년 3월부터 판매가 시작되었고, 1천337번째 생산된 모델이 오늘 기자가 만나는 차다. 인스트루먼트 패널 오른쪽 아래에 생산 일련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플레이트가 있다. 주행거리는 300km를 조금 넘었을 뿐이다. 스피드스터가 도로에 나타났다. 순간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다른 차들을 왜소화시켜버리는 마력이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펠 엠블럼을 담고 있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강력한 앞모습을 만들고, 근육질의 보디라인이 역동적이다. 미드십 엔진 구성이지만 보네트 위에 방열 그릴을 달고 있는 것은 라디에이터를 엔진과 분리시켜 앞쪽에 두었기 때문이다. 트윈 머플러를 세로로 한 가운데로 몰아놓은 디자인도 다이내믹하다. 머슬카 분위기도 나지만 실제로 보면 아담하고, 예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소프트톱은 수동식이지만 정말 간편하게 떼고 달 수 있다. 톱을 벗겨내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양쪽의 고정고리를 젖히고 천 조각을 말듯 그냥 접으면 된다. 가로로 놓인 2개의 지지대도 간편하게 떼어낸다. 롤 바를 겸하는 A필러와 삼각형의 쿼터 필러가 보디 뒤쪽을 지지하면서 일종의 타르가톱 스타일이 된다. 벗겨낸 소프트톱은 엔진 뒤쪽에 별도로 마련된 짐칸에 수납할 수 있다. 도어를 열어 지상에서 불과 30cm 정도 높이의 시트에 앉는다. 거의 바닥에 앉는 기분으로 깊숙한 페달에 발을 맞추기 위해 시트를 수동으로 잡아당긴다. 버킷시트는 앞 뒤 슬라이딩은 되지만 등받이를 조절할 수는 없다. 윈도도 수동식으로 알루미늄제 고리를 잡고 빙글빙글 돌려야 열고 닫을 수 있다. 전자식 파워 장비는 애당초 기대해서는 안될 부분처럼 보인다. 심지어 에어컨도 없다. 3개의 다이얼은 외기유입 바람을 조절하는 기능일 뿐이다. 유일한 편의 및 전자장비라면 CD 플레이어 기능을 갖춘 VDO 데이톤 오디오. 애프터마켓용처럼 보이는데 오펠의 공식 옵션제품이라고 한다. 은빛으로 빛나는 스포츠 드라이빙의 쾌감 고속 코너링 때 차와 일체화되는 감각 압권 키를 시동 구멍에 넣고 대시 패널 중앙의 스타터 버튼을 눌러 엔진을 깨운다. 차갑게 빛나는 알루미늄 소재의 인테리어가 그대로 드러나 달리기의 욕구를 깨운다. 간결한 계기판과 딱딱한 시트에 이르기까지 거의 경주차에 가까운 스포츠 드라이빙 자세를 만들어준다. 역시 은색으로 빛나는 기어레버가 스포티한 기분을 북돋워준다. 기어를 넣을 때마다 ‘철컥’하는 소리가 차내에 울린다. 생경한 느낌은 오직 달리기를 위한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스피드스터와 친숙해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밸런스 샤프트를 가지는 알루미늄제 2.2X 147마력 유닛은 무리하지 않고 케이블식의 5단 MT와 매끄러운 연결을 보여준다. 생각보다 승차감은 나쁘지 않다. 엔진의 회전감각은 부드럽고, 파워와 토크 모두 불만은 없다. 다만 배기음은 뒷바퀴를 굴리는 스포츠카치고는 평범한 편이다. 토크 특성도 너무 실용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가속하기 시작하면 달라진다. 엔진은 폭발적인 추진력으로 슬립 없이 즉각 뒷바퀴에 동력을 전달한다. 기어변환은 빠르고 정확하다. 320mm 구경의 스티어링 휠은 파워가 아니어서 조금 무겁지만 정확한 응답성이 이를 보완한다. 속도가 붙으면 가벼워지고 타이어의 방향이나 노면 상황을 확실히 전달한다. 운전자의 조작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이 재미있다. 특히 빠른 스피드로 코너를 감아 돌 때 미드십 구조가 선사하는 쾌감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자동차와 일체화되는 감각이 압권이다. 와인딩 로드에서의 자세 제어 또한 어럽지 않다. 경량 보디는 핸들링이나 동력 성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스피드스터는 850kg의 무게에 0→시속 100km 가속 5.9초의 성능이 매서운데 위화감이 전혀 없다. 신경질적인 반응이 없고, 운전자를 편안하게 해준다. 물론 타고 내리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4바퀴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은 소프트하지만 불안하지 않다. 다만 안락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기어 레버 조작거리가 좀더 짧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피드스터는 요즘 자동차에서 만나기 힘든 기계의 순수성과 달리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차다. 국내에서는 아직 GM코리아가 수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윌트비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로터스 엘리제를 꿈꾸고 있다면 스피드스터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 값은 5천800만 원이고, 티타늄제 하드톱이 포함된다. 시승협조: (주)윌트비☎(02)6284-9910 www.wiltbe.co.kr 오펠 스피드스터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3786×1708×1117mm 휠베이스 2330mm 트레드 앞/뒤 1450/1488mm 무게 850kg 승차정원 2명 엔진 형식 직렬 4기통 DOHC 굴림방식 뒷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6.0×94.6mm 배기량 2198cc 압축비 10.0 최고출력 147마력/5800rpm 최대토크 20.7kg·m/40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36ℓ 트랜스미션 형식 수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58/2.02/1.35 ④/⑤/ⓡ 0.97/0.81/ㅡ 최종감속비 ㅡ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2도어 컨버터블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 서스펜션 앞/뒤 모두 더블 위시본 브레이크 앞/뒤 모두 V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175/55 R17, 225/45 R17 성능 최고시속 217km 0→시속 100km 가속 5.9초 시가지 주행연비 ㅡ 값 5,800만 원
자유영토를 넓혀 주는 럭셔리 SUV OFF ROAD.. 2003-08-27
비포장 험로와 싸울 때 투아렉의 위력은 빛난다. 기울기 45도의 비탈을 오르고, 옆으로 가로지를 수도 있다. 실제로 이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상당한 재미를 안겨 준다. 보네트를 열자 엔진룸을 둘러싼 고무 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엔진룸 주요 부품은 커버로 덮여 있다. 게다가 밀봉된 하프 샤프트와 3중 도어 실, 높은 엔진 공기흡입구, 방수 램프와 배선까지…. 자료를 볼 때도, 직접 차를 확인하는 순간에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폭스바겐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건 진짜 오프로더잖아.’ 지상고 6단계로 조절하는 에어 서스펜션 투아렉은 철제 스프링으로 500mm, 시승차처럼 에어 서스펜션을 달면 580mm의 물길을 건널 수 있다. 오프로드의 황제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보다 80mm 정도 더 깊이 차를 물에 담글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 깊이에서는 차안에 물이 들어오거나 엔진이 꺼지지 않았다. 투아렉에 쓰인 풀타임 4WD ‘4X모션’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폭스바겐에 쓰이는 4모션과는 다르다. 센터 디퍼렌셜 잠금 2단 트랜스퍼 케이스를 결합했다. 뒤 디퍼렌셜 잠금 장치는 옵션이지만 국내에 들어오는 모델에는 기본으로 달린다. 센터 디퍼렌셜을 잠그지 않을 때 정상적인 동력배분은 앞뒤 50 대 50. 바퀴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무단조절형 멀티 디스크 클러치로 구동력을 100%까지 앞뒤 어느 한쪽에만 보낼 수 있다. 2단 트랜스퍼 케이스는 가파른 오르막에서 기어 변환을 줄이고, 험로에서 엔진 브레이크를 걸고 초저속으로 움직일 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준다. 앞뒤 서스펜션은 더블 위시본. 럭셔리 SUV답게 고무완충재를 깐 서브 프레임에 얹혀 승차감이 뛰어나고 놀랍도록 운동이 정확하다. 위쪽 암은 알루미늄으로 무게를 줄였다. 투아렉의 가장 큰 자랑인 에어 서스펜션은 반자동으로 충격을 흡수하고 자동으로 무게를 배분하며 지상고를 조절한다. 센터콘솔 오른쪽 로터리 스위치를 오프로드 모드로 돌리면 지상고가 245mm, 엑스트라 하이에 놓으면 300mm까지 올라간다. 카이엔 터보의 에어 서스펜션이 273mm, 레인지로버의 그것은 280mm까지 최저지상고를 높이는 데 반해 투아렉은 20mm나 더 여유 있다. 오프로드에서 20mm의 공간이 얼마나 큰 이점이 되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하체를 최대한 올리고 4WD 로 레인지에 놓으면 차는 울퉁불퉁한 돌밭이나 둔덕도 거침없이 주파한다. 이 상태에서는 승차감이 나빠지지만 노면 상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오히려 운전에 도움이 된다. 1단으로 언덕을 오르다가 갑자기 섰을 때는 차가 뒤로 밀리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힐 스타팅 어시스턴트’가 작동, 바퀴가 절대로 미끄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리막에서는 랜드로버 HDC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내리막 보조장치의 도움을 받는다. 실제로 팁트로닉 1단, 4WD 로 레인지에 넣자 차의 시속이 7km 정도로 뚝 떨어져 브레이크를 밟는 데 신경 쓰지 않고 핸들링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이런 전자장비들은 운전 재미를 떨어뜨리는 요소일 수도 있지만 이 덕분에 오프로딩에 경험이 적은 사람들도 험로 드라이빙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넓은 의미로 본다면 요즘 온·오프로드를 두루 만족시키는 SUV는 많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투아렉이 돋보이는 이유는 같은 조건을 ‘최상’에서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투아렉은 폭스바겐 제품의 한계를 훨씬 넓혔다. 무엇보다 럭셔리 SUV 라이벌들과 맞서 높은 가치를 자랑한다. 매끈하고 단단하며 안락하고 오프로드 성능이 뛰어난 투아렉은 SUV 시장의 VIP임에 틀림없다. 오르막·내리막 보조장치 힐 스타팅 어시스턴트 : 오르막에서 풋브레이크를 놓을 때 미끄럼을 막아 주는 장비. 1단이나 후진기어로 언덕을 오르다가 풋 또는 핸드 브레이크를 걸어 차를 멈추면 이 장치가 작동, 차가 절대 뒤로 밀리지 않는다. 다운 힐 어시스턴트 : 전자안정장치(ESP)를 걸고 액셀을 밟지 않은 채 시속 20km 이하로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갈 때 작동한다. 팁트로닉 1단, 4WD 로 기어에 넣고 경사로를 내려가면 ESP가 켜지면서 차의 시속이 최저 7km까지 떨어진다.
SUV의 탈을 쓴 스포츠카 ON ROAD IMPRE.. 2003-08-27
유럽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 폭스바겐은 값과 품질에서 인기 있는 대중차 만들기에 앞장서 왔다. 유럽, 특히 서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나 폭스바겐 소형차들이 거리를 분주히 오간다. 하지만 일단 돈을 벌고 나면 폭스바겐 오너는 벤츠나 BMW, 포르쉐를 넘보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폭스바겐 둥지를 뚫고 나온 첫 SUV 투아렉을 보자. 해외시장에서 벤츠 M클래스, BMW X5, 볼보 XC90, 렉서스 LX470,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와 겨루는 야심만만한 라이벌이다. SUV가 득실거리는 요즘 투아렉에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V8 엔진과 6단 AT로 무장, 0→시속 100km 가속 8.1초 투아렉에는 재미있는 특성이 버무려져 있다. 매끈한 엔진, 세단에서 빌려 온 놀라운 인테리어, 오프로더에서 넘어온 본격적인 네바퀴굴림 장치가 돋보인다. 게다가 위엄을 자랑하는 독일 라이벌들보다 값이 싸다. 물론 국내에 들어오는 모델은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지 않았다.(V8 1억100만 원대, V6 7천900만 원대). 거꾸로 옵션이 ‘빵빵’하다. 에어 서스펜션, 패들형 기어, 디퍼렌셜 록 등이 기본으로 들어앉았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던 걸까, 아니면 허투루 SUV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지 않겠다는 것일까. 입체분석 제1장은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달리기 성능. 시승차에 얹힌 엔진은 아우디 A8과 A6에서 물려받은 310마력짜리 V8 4.2X DOHC다. 시동을 걸면 듣기 좋은 사운드가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한다. 배기량이 더 작은 220마력의 V6 3.2X DOHC 엔진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 럭셔리 세단 페이튼의 V6과 같지만 가파른 비탈에 알맞게 오일압을 조절하는 등 오프로드형으로 개조했다. 화려한 토크를 원한다면 내년 상반기 수입되는 V10 디젤 터보를 기다리면 된다. 배기량 5.0X로 자그마치 76.5kg·m의 최대토크를 분출한다. 투아렉 V8의 달리기 성능은 형제차 포르쉐 카이엔 S를 연상시킨다. 부드럽고 시원스러우며 막힘이 없다. 2.5톤에 육박하는 거구를 마치 스포츠카를 몰 듯 가볍게 컨트롤한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시속 200km에서도 힘이 남아돌 뿐 아니라 시속 230km까지 내몰아도 버거운 기색이 없다. 페이튼의 W12 6.0X 420마력 엔진을 얹은 투아렉이 내년에 나오면 고성능 SUV 무대를 평정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다. 온로드 드라이빙의 결정적인 매력은 핸들링이다. 무게중심이 높은 SUV의 약점을 완벽에 가깝게 처리해 고속 코너링 때도 바퀴가 재빠르게 이상적인 궤도를 그려 나갈 뿐 아니라 힘도 덜 들고 간단한 액셀 워크로 흔들리지 않고 평형을 유지한다. 카이엔 시승 때도 느껴 보지 못했던 높은 수준의 핸들링 감각은 에어 서스펜션 덕분이다. 오프로드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CDS(Continuous Damping Control) 에어 서스펜션이 온로드에서 스포츠카급의 정교한 드라이빙을 가능하게 해준다. 시프트 업이나 킥다운 때의 움직임은 정확하고 낭비가 없다. 자동 6단 트랜스미션은 운전자의 습관에 따라 시프트 포인트를 결정하는 메모리를 담고 있다. 수동 모드로 전환하려면 D레인지에서 시프트 레버를 오른쪽으로 밀면 된다. 핸들 뒤에 달린 패들형 기어는 왼쪽이 감속, 오른쪽이 가속이다. 시속 125km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속도가 바로 떨어지고 과속 방지턱을 높은 속도로 지나쳐도 노즈 다운 현상이 거의 없어 주행 흐름이 깨지지 않는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억제되었지만 조수석 유리 위쪽에서 들리는 하이톤의 소음이 거슬린다. 모래나 이물질이 끼어 나는, 대수롭지 않은 소리라 해도, 만약에 그럴 확률이 높다면 이 차를 끌고 오프로드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질 것이다. 막힘 없는 가속력, 정교한 핸들링, 강력한 제동성능. 이 세 가지가 뒷받침되는 투아렉의 달리기는 SUV의 새로운 경지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오프로드에서 운전 재미가 넘치는 SUV는 많지만 온로드에서 이처럼 즐거운 SUV는 극소수에 불과해 오히려 개성으로 받아들여진다. SUV와 스포츠카는 다른 별에 사는 존재였다. 10년 전만 해도 서로 만난다는 것은 꿈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제 현실이 되어 버렸으니 이 크로스오버 세상에선 불가능이란 없어 보인다. 엔진 형식 V8 4.2ℓ DOHC 압축비 11.1 최고출력 310마력/6200rpm 최대토크 41.8kg·m/3000~4000rpm 연료탱크 크기 100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6단 기어비 ①/②/③ 4.148/2.370/1.556 ④/⑤/⑥/ⓡ 1.155/0.859/0.686/3.394 최종감속비 4.560 성능 최고시속 218km(속도제한장치) 0→시속 100km 가속 8.1초 시가지 주행연비 6.7km/ℓ
Audi Allroad quattro 타협에 앞서 .. 2003-08-25
탄생 배경 아우디 콰트로가 첫선을 보인 것은 지난 1980년. 아우디는 당시 오프로더나 고성능 스포츠카에 간간이 쓰여온 4WD 메커니즘을 양산 세단으로 끌어내리며 승용 4WD라는 새 장르를 알리고 나섰다. 혁신적인 콰트로 4WD를 제안한 장본인은 폭스바겐(VW) 그룹의 전 총수인 페르디난트 피에히 박사. 70년대 중반 아우디는 VW에 흡수(1965)된 뒤 비틀과의 시장 간섭을 피해 중소형 이상의 고성능 차 개발에 주력하게 된다. 당시 아우디 R&D 센터를 지휘하던 피에히 박사는 벤츠, BMW와 경쟁하기 위해 고속주행 성능과 안전성 높은 네바퀴굴림 스포츠 세단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피에히의 콰트로 컨셉트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80년 제네바 오토살롱을 통해 선보인 80 쿠페 바탕의 아우디 콰트로는 5기통 2.1X 터보 160마력 엔진과 앞뒤 바퀴에 절반씩 힘을 나누어 보내는 센터 디퍼렌셜을 갖추고 최고시속 222km의 놀라운 성능을 뽑아냈다. 당초 한 해 생산대수를 3천500대 미만으로 점친 피에히의 예상을 뒤엎고 판매도 계속 늘어 콰트로가 아우디 차의 주축 메커니즘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부터 2001년 2월까지 팔린 콰트로 모델은 100만 대 이상. 독일 및 유럽 시장의 아우디 중 30%가 콰트로 4WD를 달고 도로를 누비는 셈이다. 4WD의 대중화를 앞당긴 콰트로 AWD를 갖추고도 90년대 중반까지 고집스럽게 승용차만 만들며 의구심을 자아내던 아우디는 지난 2000년 콰트로 20주년 모델 올로드 콰트로를 선보이며 ‘포링’(four ring, 아우디 엠블럼) SUV의 뒤늦은 출발을 알렸다. 왜건 섀시에 AWD 시스템으로 오프로드 주행성능을 가미한 아우디 올로드는 볼보 XC70, 스바루 포레스터는 물론 BMW X5와 벤츠 ML 등 미국 시장을 선점한 독일 라이벌의 SUV까지 경쟁 상대로 삼았다. 유럽 및 북미 RV 시장을 겨냥한 아우디의 크로스오버 컨셉트는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A3 베이스의 컴팩트 SUV 슈테펜볼프(2000), 2세대 A8의 방향을 제시한 럭셔리 왜건 컨셉트 아반티시모(2001)를 거쳐 지난 1월 디트로이트 오토쇼에는 미들 사이즈 SUV 파이크스 피크 콰트로 컨셉트를 선보였다. 앞으로 2~3년 내에 슈테펜볼프와 파이크스 피크의 양산 모델로 SUV 풀 라인업을 마련할 예정. 신형 A3의 4WD 버전인 A5, VW 투아레그 메커니즘과 A8의 첨단기술을 버무린 아우디 스타일 SUV가 2005년 데뷔를 목표로 한다. 메커니즘 올로드 콰트로의 지향점은 ‘어떤 도로환경과도 타협하지 않는’(no-compromise) 올라운드 플레이어. 아우디는 코너링 안정성과 연비가 뒤떨어지는 정통 SUV의 대안으로 중형 왜건 A6 아반트를 제시하고 콰트로 AWD와 4레벨 에어 서스펜션 등의 첨단기술을 더해 올로드 콰트로를 빚어냈다. 엔진은 V6 2.7X 트윈터보 250마력과 V6 2.5X TDI 180마력을 기본으로 신형 S4용으로 개발된 V8 4.2X DOHC 300마력을 함께 쓴다. 트랜스미션은 팁트로닉 자동 5단과 로 기어를 갖춘 수동 6단 등 두 가지. 4레벨 에어 서스펜션은 앞 4링크, 뒤 더블 위시본에 에어 스프링을 달아 주행속도, 노면상황에 따라 차고를 142~208mm 사이에서 4단계로 자동 제어한다. 뉴 A8에는 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이 쓰이고 있다. 콰트로 AWD의 중추는 프론트·리어 액슬 사이에 놓인 토센 디퍼렌셜. 상황에 따라 앞뒤 구동력을 30:70~70:30으로 자유롭게 분배하며 안정성을 높인다. 스타일 & 인테리어 올로드 콰트로는 A6 아반트와 차체 안팎의 많은 부품을 공유하지만 다양한 SUV 장식을 덧붙여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길이와 폭이 모두 늘어난 5도어 왜건 보디는 단정한 얼굴과 해치게이트에 덧댄 검은색 플레이트 패널만 남겨두고 강건하게 바뀌어 좀처럼 늘씬한 A6의 실루엣을 떠올리기 어렵다. 허리 밑을 에두른 검은색 플라스틱 범퍼와 오버 펜더, 범퍼 밑을 쳐 받든 스틸 언더가드로 오프로더의 색깔을 담았고, 뒤 범퍼 아래로 살짝 내민 트윈 머플러에서 스포츠 세단의 영역까지 넘보는 당찬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먹지로 그려내듯 A6의 내용물을 고스란히 쓸어 담았다. 진한 회색 톤 실내는 가죽 내장재와 질감 좋은 원목 장식으로 고급스럽게 꾸미고 넉넉한 시트도 알맞게 내려앉아 세단이나 다름없는 운전감각을 느낄 수 있다. 서로 다른 캐릭터를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버무려놓은 완벽한 균형감각은 크로스오버 카 올로드 콰트로의 가장 큰 매력. 비즈니스맨을 위한 고급 승용차로 손색없고 주말이면 산과 들을 자유롭게 누비며 왜건과 SUV의 기능까지 척척 해대는 차는 세상에 흔치 않다. 차고조절 기능은 비상등 왼쪽에 마련된 두 개의 스위치를 눌러 수동으로도 제어할 수 있다. 앙증맞은 자동차 실루엣을 화살표가 찍어누르는 왼쪽 스위치가 다운, 끌어올리는 오른쪽이 업 기능으로 두 버튼을 5초 이상 함께 누르면 타이어 교환이나 하체 점검을 위해 차고를 한껏 끌어올리는 재킹업 모드로 변환된다. 글러브박스를 열어제치면 컵홀더와 펜꽂이, 메모판 등이 모습을 드러내고 쓰임새 좋은 접이식 도어포켓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트 뒤로 펼쳐진 짐칸은 시원시원한 공간과 독일차 특유의 완벽한 짜임새가 돋보인다. 뒤 시트 등받이에 가로질러 달린 칸막이 그릴은 두루마리 휴지처럼 당겨 올려 천장에 마련된 홈에 꼽아두면 그만. 등받이를 눕혀 짐칸을 넓힌 뒤에도 뒷좌석 루프 테두리의 구멍에 꽂아 똑같이 쓸 수 있다. 하지만 차체 안팎의 화려한 꾸밈새 때문에 함부로 다루기는 조심스럽다. 뒤 시트를 접은 적재공간은 등받이가 올라가 트렁크 플로어와 반듯하게 이어지지 않고 D필러가 경사져 있어 의외로 공간활용성도 떨어지는 편이다. 주행 성능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에 만나본 올로드 콰트로는 ‘왜건의 탈을 쓴 스포츠카’라는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의 한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V6 트윈터보 엔진의 힘을 빌어 달리는 1.8톤 덩치의 폭발적인 가속과 안정된 고속주행 성능은 왜건과 SUV 어느 것도 아닌 진정한 스포츠카의 모습 그대로였다. 시판 1년을 지나 다시 찾은 올로드 콰트로의 운전석 앞에는 여전히 V6 2.7X DOHC 트윈터보 엔진이 세로로 놓여 있고 포르쉐 팁트로닉 기능을 가미한 5단 AT가 신뢰도 높은 콰트로 AWD에 충만한 힘을 전달한다. 힘찬 V6 엔진의 잠을 깨우기에 앞서 경험에서 우러나온 무의식의 명령으로 시트를 한껏 낮추고 스티어링 휠 가까이로 당겨 앉아본다. 출발가속은 굼뜨지만 발걸음을 떼고 난 뒤부터 득달같이 달려나가는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네바퀴굴림 구동계나 에어 서스펜션을 더하느라 무거워진 차체에 대한 부담은 기우에 불과하다. 35.7kg·m의 힘찬 토크가 1천800~4천500rpm의 넓은 영역에서 뿜어져 나와 스트레스 없는 경쾌한 가속을 만끽할 수 있다. 기어 레버를 D레인지 아래 S모드로 옮기면 변속 타이밍을 3천200~3천500rpm까지 끌고 올라가는 DSP(Dynamic Shift Program)가 작동해 스포티한 달리기를 이끌어낸다. 5단 AT의 팁트로닉 기능은 M(Manual, 수동)모드뿐 아니라 D와 S모드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부지런히 스티어링 휠의 팁트로닉 스위치를 누르는 동안 나란히 달리던 차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차창 밖 풍경이 흐릿한 덩어리로 뭉쳐진다.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추월가속으로 도로를 정복했다는 자아도취는 그러나, 굽이진 도로를 만나는 순간 무참히 깨져버린다. 온로드는 물론 비포장도로에 대한 욕심까지 담은 부드러운 서스펜션은 여느 독일차와 달리 노면에 따라 차체를 흔들어대고 핸들링 성능까지 무디게 만들었다. 피드백이 더딘 스티어링도 다른 아우디 모델들의 묵직하고 빈틈없는 반응과는 다른 모습. 이런 아쉬움은 차고를 한껏 올리고 오프로드를 헤집을 때 자연스레 사라진다. 올로드 콰트로의 당찬 발걸음은 험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볍게 떨쳐낼 수 있을 만큼 믿음직하다. 구입 가이드 아우디 공식 수입 딜러인 고진모터임포트는 지난해 6월 새차발표회를 갖고 올로드 콰트로의 국내 시판에 들어갔다. 수입 모델은 V6 2.7X 트윈터보 250마력의 2.7T 한 가지. 올로드 콰트로는 볼보 크로스컨트리를 맞상대로 수입 럭셔리 SUV 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국내 수입차 시장을 노크했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6~12월 판매대수는 23대로 같은 기간 74대나 팔린 크로스컨트리의 질주를 저지하지 못했다. 지난 5월까지 올해 두 차의 성적은 각각 18, 33대로 격차가 줄었지만 전세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2천만 원 이상 비싼 차값과 뒤늦은 시장 투입으로 인한 약한 인지도가 올로드 콰트로의 부진 원인. 고진모터임포트는 V6 2.5X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얹은 2.5 TDI를 선보일 올 10월을 승부처로 삼고, 함께 들여올 RS6과 함께 스포츠 마케팅에 전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5단 AT와 매치한 올로드 콰트로 2.5 TDI는 1천500~2천500rpm에서 최대토크 37.7kg·m를 내고 최고시속 205km, 0→시속 100km 가속 10.2초로 휘발유 엔진의 2.7T 못지않은 성능을 발휘한다. 문의: 고진모터스 ☎ (02)516-2468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 2.7T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810×1850×1504mm 휠베이스 2757mm 트레드 앞/뒤 1574/1585mm 무게 1825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V6 DOHC 트윈터보 굴림방식 네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81.0×86.4mm 배기량 2671cc 압축비 9.3 최고출력 250마력/5800rpm 최대토크 35.7kg·m/1800~4500rpm 연료공급장치 전자식 연료분사 연료탱크 크기 70ℓ 트랜스미션 형식 자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665/1.999/1.407 ④/⑤/ⓡ 1.000/0.742/4.096 최종감속비 4.379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5도어 왜건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파워) 서스펜션 앞/뒤 4링크/더블 위시본 브레이크 앞/뒤 V디스크/디스크(ABS) 타이어 앞/뒤 225/55 R17 성능 최고시속 234km 0→시속 100km 가속 7.7초 시가지 주행연비 7.9km/ℓ 값 8,7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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