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정체성의 혼란기가 끝나간다, 링컨 노틸러스
2019-10-11  |   10,559 읽음

브랜드 정체성의 혼란기가 끝나간다

링컨 노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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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포드에 인수된 이후 1960~1980년대에 미국 대통령 공식 의전차로 쓰이면서 미국의 대표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노틸러스는 MKX의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부분변경 치고는 많은 기능이 추가됐다. 실패를 인정하고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다음 노틸러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그러니까, 사실은 MKX

정확히 말하자면, 이 차는 새 모델은 아니다. 노틸러스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쓴링컨이지만, 이 차의 정체는 3년 전 등장한 MKX다. 차종 불문 MK로 시작하는 헷갈리는 작명법과 멋대가리 없는 쌍 날개 그릴을 드디어 폐기처분하고서 나온 마이너 체인지 모델이다. 준중형 SUV MKC(이쪽은 싹 바꾼 풀 체인지 모델 커세어로 곧 바뀐다)의 윗급 모델로 포드 라인업에서는 중형 SUV 엣지의 연장선에 위치한 차다. 둘 다 포드의 중형 CD4 플랫폼에서 같이 만들어지는 차이기도 하고. 링컨판 익스플로러에 해당하는 차 에비에이터가 새로 나온 덕분에 링컨의 SUV 라인업은 내비게이터 포함 4가지나 되는 촘촘한 구성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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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의 품질은 프리미엄급 맞다 


새 시그니처인 폭포수(waterfall) 그릴이 MKX 속에서 어색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기우였다. 원래 이렇게 나온 차였던 것처럼 기존 차 속에 잘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앞모습만 바꾼 것으로 현재의 노선변화가 제대로 담길 리는 없다. 처음부터 새로 만든 커세어나 에비에이터 같은 신선함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다고 한 결과물임에도 조금만 뒤로 가면 바로 보인다. 나머지 부분은 여전히 MKX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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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에 차량이름 엠블럼은 모든 링컨 차공통사항인 듯


좋은 점도 나쁜 점도 그대로

실내도 마찬가지다. 구조적인 변화는 전무하다. 2016년에도 보고 놀라웠던 보수적인 인테리어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계기판은 12.3인치 풀 컬러 LCD로 바뀌었지만, 그 속에 떠오른 내용은 그냥 성의가 없어 보일 지경이다. 센터 콘솔의 8인치 모니터도 마찬가지다.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까지 기능면으로 빠지는 것은 없는 SYNC3 기반이지만, 단색 상자로 채운 유저 인터페이스는그 단조로움에 할 말이 없어진다. 어차피 구형이 되어버린 인터페이스, 시간과 돈을 쓰기에는 아까웠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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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인치 휠이지만 컨티넨탈 크로스컨택트 타이어는 좋은 승차감과 접지력을 보인다 


나쁜 점은 그대로지만 다행히 좋은 점도 그대로다. 가죽과 우레탄 소재의 높은 품질은 MKX 시절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머리와 양팔, 무릎 공간은 넉넉하고 시트의 푹신함도 여전하다. 22방향이나 되는 미세 조정이 가능한 시트는 체형에 맞춘 완벽한 포지셔닝이 가능하고, 안마 기능까지 제공한다. 하이엔드 브랜드인 레벨과 협업해 만든 사운드 시스템은 이제 무손실 압축파일(FLAC)조차 재생한다. 데이터를 남김없이 소리로 쏟아내는 놀라운 해상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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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는 스티어링을 빼고 바뀐 게 없다. 2016년 발매시점에서도 MKX는 올드했다 


이토록 편한 달리기라니

엔진은 V6 2.7L. 터보차저 2개를 단 에코부스트 다운사이징 엔진은 333마력에 54.7kg·m이라는 뿌듯한 토크를 낸다. 트윈 터보라는 이름에서 과감한 발진 성능을 기대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3L 후반의 자연흡기 엔진처럼 군다. 그래도 자연스러운 토크감 상승 덕에 출력이 모자란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엔진, 굉장히 정숙하다. 진동과 소음 모두 흠잡을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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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속기는 6단에서 8단으로 진화했다. 변속버튼을 센터콘솔에 올려놓은 것은 여전하다 


이중 차음유리도 모자라 엔진룸 테두리에 고무 몰딩까지 둘러 꼼꼼하게 소리를 차단한 덕분이다. 8단으로 올라간 변속기는 소리로 겨우 감지할 정도로 매끈한 변속을 자랑하며, 업 다운을 가리지 않고 패들을 치는 대로 지체 없이 반응한다.


여기에 몸놀림까지 부드럽다. 어느 정도 롤을 허용하지만, 코너의 진입 후 탈출 과정이 아주 유순하게 이루어진다. 네 바퀴가 동력을 분산하는 과정도, 한계가 오기 전에 개입해 출력과 제동을 조절하는 과정도 마냥 부드럽기만 하다. 모든 움직임이 단절 없이 스르륵 일어난다. 일정 각도를 넘기면 기어비가 변하는 어댑티브 스티어링까지 들어가 있어, 어느 순간부터는 차가 작아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밀어붙이며 보채기보다는 느긋하게 믿고 맞기면 틀림없이 따라와 주는 유순하기 짝이 없는 핸들링이다. 본격적인 오프로드는 무리겠지만, 빗길이나 눈길에서는 큰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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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그니처 그릴과 헤드라이트로 앞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새롭게 추가된 것도 있다. 능동안전 패키지, 링컨 코파일럿 360 플러스(Lincoln Co-Pilot 360 plus)는 영민한 반자율 주행 기능을 담고 있다. 제동이 약간 거친 것을 빼면 운전의 많은 부분을 차에 의지하고 달릴 수 있는 믿음직한 장비다.  차선의 가운데를 조용히 흔들림 없이 항속하는 속에서, 이 이상 편한 운전이 있을까 싶은 생각에 빠져든다. 빠르고 정교한 달리기가 모든 차의 판단 기준이 될 필요는 없다. 편안하고 느긋한 달리기 또한 수준 높은 프리미엄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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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 시트는 각도조절이 가능 


나만의 헤리티지를 만들어라

고급차 브랜드를 정의하는 것은 정체성이다. 디자인, 품질, 성능에서 대중차 브랜드와 선을 긋는 명백한 차이가 담겨있어야 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선명해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흐릿해지는 순간, 소비자는 냉혹하게 돌아선다. 한번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는 상상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링컨과 캐딜락이 미국 내수용 프리미엄이라 조롱받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캐딜락은 나아지고 있다. 디자인이 명료해지고, 그 만듦새가 전하는 메시지도 또렷해지는 중이다. 그런 변화의 시간까지 고스란히 헤리티지로 쌓아나간다. 하지만 캐딜락이 자신의 길을 가는 동안, 링컨은 방황했다. 십 수년간 디자인만 두 번을 갈아엎었고, 그 시간은 고스란히 날려 먹었다. 넓고 편안한 실내, 훌륭한 품질과 품위마저 느껴지는 달리기가 선사하는 경험은 분명 프리미엄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에 걸맞은 헤리티지는? 이제 겨우 쌓기 시작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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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신한 시트는 마사지 기능까지 갖췄다 


그래도 고집만 부리던 회사가 실패를 인정하고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점은 다행히 아닐 수 없다. 새 얼굴을 기초로 처음부터 만든 최신 모델 속에는, 고급차로 인식할 수 있는 정선된 자기주장이 분명하게 담겨 있다. 다만 이것은 내비게이터나 에비에이터 같은 신차에 국한된 이야기다. 반대로 말하면, 노틸러스는 아직도 과거의 혼란스러운 흔적이 남아 있는 차다. 새 얼굴을 받아들였지만, 알맹이가 예전 것임은 숨길 수가 없다. 링컨의 변화한 모습이 완전히 자리 잡는 시점은 노틸러스가 다음 모델을 선보인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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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 플로어까지 감싸는 도어는 개폐면적이 넓다


지난 6월, 링컨의 디자인을 이끌었던 데이비드 우드하우스(David Woodhouse)가 회사를 떠났다. 그가 있던 동안, 링컨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했다. 이제 링컨에는 나아지는 일만 남았다. 이다음 노틸러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프리미엄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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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변성용 객원기자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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