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BORGHINI HURACAN EVO, 힘을 뺀, 가장 성숙한 람보르기니
2019-09-25  |   4,448 읽음

LAMBORGHINI HURACAN EVO

힘을 뺀, 가장 성숙한 람보르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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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카 시장은 이제 플래그십 이하 모델들도 걸핏하면 700마력을 웃도는 시대다. 더군다나 힘 하면 람보르기니 아닌가. 우라칸 부분변경 모델 에보는 의외로 하드코어 모델인 퍼포만테와 동일한 성능이다. 700마력을 상회해야 할 것 같은데, 경쟁 모델 F8 트리뷰토와 720S에 비해 다소 부족한 출력은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차는 스포츠카의 본질에 더욱 집중한 결과물이다.


작은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가 아우디 산하로 들어가면서 2003년 이 차의 전신인 가야르도가 세상에 나왔다. 한동안 람보르기니는 염가형 모델이 없어서 진입 장벽이 굉장히 높았던 메이커다. 80년대 말 8기통의 잘파가 단종된 후 10년 넘게 12기통의 디아블로만 만들었다. 물론 크라이슬러에서 메가테크, V파워 등모기업이 바뀌며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1998년 아우디에 인수되고 신모델을 개발하면서 디아블로 후속인 무르시엘라고 외에 새로운 ‘베이비 람보르기니’도 함께 만들었다. 당시 경쟁자 페라리가 V8 엔진을 탑재한 F355와 360 모데나로 연이은 대성공을 거둔 것도 자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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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을 마치고 피트로 들어온 맹수 2마리 


가야르도는 등장하자마자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때부터 5억을 호가했던 람보르기니 배지를 3억 원 대에 구입이 가능해졌다. 이 차는 10년 동안몇 번의 세대를 거듭하며 수많은 에디션까지 더해져 1만4,022대가 생산되었을 정도로 람보르기니 역사상 가장 성공한 모델이 되었다. 섀시와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아우디 R8을 사는 게 낫다는 사람도 있지만, 드라이브 로직 세팅이 달라서 실제 타보면 가야르도 쪽이 확실히 날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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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차가 심한 코너에서도 롤을 허용하지 않는다 


가야르도는 람보르기니의 시그니처인 시저 도어가 없어 멋에서는 다소 떨어지지만 실용성에서는 더 뛰어나다. 시저 도어는 시간이 지나면 도어 쇽업소버 내구성이 떨어져 문이 점점 쳐지고 내려와 오너의 품격이 떨어질 수있지만 우라칸은 일반적인 도어 방식이라 이런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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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맹렬한 질주가 시작 


레이스에서 검증된 MPI 방식의 심장

가야르도 초창기 모델은 V10 5.0L 엔진으로 아우디에서 제조했다. LP 560-4에서 5.2L까지 키워 현재 우라칸에도 탑재되었다. 게다가 직분사 방식 엔진이 대세인 시대 속에 여전히 MPI를 고수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사용한 방식이지만 사실 MPI 쪽이 실린더에 카본 슬러지가 직분사 방식보다 상대적으로 덜 쌓이기 때문에 내구성과 관리 면에서는 더 낫다. 게다가 복잡한 방식의 직분사보다 MPI가 단순해 잔고장이 없다. 여기에 많은 개량으로 완성형에 도달해 요즘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람보르기니를 좋아하는 이유에 MPI 방식도 포함된다. 여담이지만 991 GT3는 직분사 방식이지만, 911 GT3 CUP(991 보디) 레이스카는 한스 메츠거가 개발한 MPI 엔진이 들어갔을 정도로 완성도와 신뢰도 면에서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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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칸 에보 스파이더와 쿠페 


람보르기니는 아우디 산하로 들어간 후부터 이탈리아 특유의 가내 수공업 느낌이 점차 사라지고, 우라칸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독일 기술 흔적이 묻어나서 심심해진 인상이다. 반면 장점으로는 람보르기니에서 드디어 상품성과 내구성을 제대로 갖춘 차가 나왔다는 것과 데일리카로도 손색없어졌다는 사실이다. 단점은 감성적인 부분에 있었다. 가야르도는 싱글 클러치 변속기인데 반해 우라칸에는 DCT가 달려 시프트 업-다운 느낌이 극적이지 않다. 사실 아우디의 자본과 기술이 들어갔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렇지 막상 우라칸을 경험하면 ‘원효대사의 해골물’과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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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는 ALA 공력 시스템은 없지만, 성능은 퍼포만테를 넘어섰다 


코너링 왕좌에 오른 EVO

우라칸은 2017년 고성능형 퍼포만테에 이어 올해 마이너체인지 버전인 에보를 내놓았다. 우라칸 이름 뒤에 붙는 숫자는 LP610-4. 풀이하자면, 세로 배치형(LP) 610마력 엔진-AWD(4)다. 요즘의 람보르기니는 모두 네바퀴 굴림이지만 예전의 람보르기니는 LM002와 디아블로VT를 제외하고 모두 후륜이었다. 고출력화가 되면서 뒷바퀴 그립만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졌고, 최근 람보르기니는 대부분 네바퀴 굴림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예전 방식을 그리워하는 마니아를 위해 앞바퀴 구동계를 제거한 2WD 버전 LP 580-2도 있었다. 후륜에만 온전히 600마력 이상의 동력을 보내는 것은 부담스러워서인지 580마력으로 디튠해 밸런스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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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 없는 보닛과 리어 윙이 안 달려 군더더기 없는 에보


출력은 기존 우라칸 퍼포만테와 동일한 640마력에 고정시켰다. 아벤타도르 S도 기존 SV보다 뒤에 나왔지만 10마력을 낮췄었다. S가 다운그레이드처럼 보이나 수치만 비슷할 뿐 막상 타보면 후기형쪽이 여러모로 성능이 더 나은 듯하다. 퍼포만테와 에보도 마찬가지다. 수치상 성능은 거의 같지만, 코너 진입 전과 후의 탈출속도는 에보쪽이 더 과격하고 정교하다. 여기에 속도에 따라 각도가 달라지는 뒷바퀴 조향과 토크 벡터링 시스템이 한 몫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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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몸을 잘 고정시킨 알칸타라 시트 


퍼포만테의 ALA 능동식 공력 시스템은 없지만 기존 우라칸 보다 공력 효율 효과는 6배, 바람만으로 엔진 냉각 효율을 16% 더 끌어올려 고성능차의 숙명인 열문제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 트랙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도, 캐빈 안은 쾌적했을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뤘다. 아울러 고정식 윙과 후드에 공기 통로를 만들지 않고도 얻은 수치라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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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아벤타도르보다 더 세련되었다 


람보르기니의 가장 아픈 손가락인 모터스포츠에 족적이 없어서인지 우라칸 이전의 람보르기니는 열관리가 잘되지 않았으나 이 차는 코르사 모드로 트랙에서 2세션을 보냈는데도 거침이 없다. 일반적인 공도 주행과 트랙에서 2세션을 오버 페이스로만 타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게다가 운전자가 생각하는 데로 움직여주니 트랙의 특정 구간에서 밸런스가 무너졌던 차들과는 달리 페이스를 크게 올려도 경이로운 몸놀림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하드코어 퍼포먼스와 데일리성 모두를 양립시킨 것이 우라칸 에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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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휠과 두껍고 큰 고정식 패들 시프터의 질감은 환상적이다. 그에 반해 방향지시기 조작성은 개선이 요구된다 


그동안 트랙의 몇몇 포인트를 몸으로 익혀본 바, 절대 불가능한 속도의 진입 구간이 있다. 이 차는 브레이킹 포인트와 라인을 벗어나도 전혀 걱정 안 해도될 만큼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그동안 트랙에서 타본 차들 중 이렇게 관성을 거스르는 건 에보가 처음이다. 잘 연마한 칼날의 느낌으로 코너를 돌다가도 스로틀을 확 열면 꽁무니가 살짝 돌아가고, 그 때 바로 카운터를 치는 맛이 정말 끝내준다. 금세 그립을 찾으면 다시 액셀 페달을 끝까지 밟아 맹렬한 가속이 이어진다. 패들 시프터 조작에 따른 빠른 변속과 즉각적인 반응을 맛보고 나면 자연흡기 엔진이 왜 최고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배기 통로가 막혀 있는 터보 엔진 스포츠카들이 굳이 자연흡기의 회전 질감을 모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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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칸타라가 아닌 가죽 시트와 파란색 스티치만으로도 다른 느낌을 준다 


에보 퍼포만테? 에보 이오타?

근래 람보르기니 정책을 보면 풀 체인지 직전에 하드코어 끝판왕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네이밍이 쓰일지 모르지만 더욱 진화된 ALA 공력 시스템이 장착될 것 같다. 외형은 기존보다 훨씬 강한 인상에 최대출력은 700마력에 이를 것이다. 단순히 출력으로 승부하는 옛 람보르기니의 방식이 아니라 정교함과 완성도까지 담지 않을까. 에보를 온종일 타는 동안 이 차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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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룸의 열관리가 점점 나아지고 있는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가 최고의 코너링 머신을 만들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640마력을 품은 차를 완벽하게 제어하면서 예리함과 감성까지 아우르는 걸 보면 이탈리안 수퍼카는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는 최고의 마스터인 듯하다. 하루빨리 후속 모델을 기대하게 되지만 지금 당장은 에보를 더 많이 경험하고 싶다. 기자는 시종일관 코르사 모드로 격하게 몰았지만, 오히려 아픈 허리가 나았을 정도로 에보와는 찰떡궁합에 그야말로 혼연일체였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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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맹범수 기자 사진 람보르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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